‘고진감래(苦盡甘來)’

 

-집념(執念)과 결기(決氣) -

 

월드시리즈 ’24 MVP… 경기 열흘 전까지만 해도 “출전 명단에서 제외시키라”던 선수였다. 발목 부상과 늑골(肋骨) 골절(骨折)을 안고 뛴 LA 다저스 우승주역인 프레디 프리먼이 MVP 트로피를 높이 들어 올리며 환호(歡呼)하기까지의 전해 듣는 얘기다. “올해 내내 과속방지턱(speed bump)에 부딪히면서 지낸 느낌입니다.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했고, 그들 덕분에 월드시리즈 우승과 MVP까지 차지해서 황홀할 따름입니다.”

LA 다저스 우승으로 막을 내린 2024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월드시리즈. 주연은 원래 다저스 수퍼스타 오타니 쇼헤이와 뉴욕 양키스 홈런 타자 애런 저지로 압축됐었으나 영웅은 따로 있었다. 1차전 연장 10회 말 월드시리즈 사상 첫 끝내기 만루(滿壘) 홈런을 쳤던 프레디 프리먼(35)는 이번 월드시리즈 5경기에서 20타수 6안타(타율 0.300), 홈런 4개 12타점을 기록해 그가 MVP를 받아야 하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프리먼은 사실 9월 말 입은 발목 부상이 완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포스트시즌 출전을 강행했지만 주루(走壘) 과정에서 불편한 모습이 자주 포착됐다. 시즌 중이라면 경기에 나서지 않았겠지만 한 해 마지막 영광을 가리는 월드시리즈에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다친 데가 너무나 많았다. ESPN은 프리먼이 여섯 번째 갈비뼈 연골이 부러진 상태로 경기에 나섰다고 전했다. 프리먼은 포스트시즌 시작 이틀 전인 지난달 4일 연습 도중 흉곽 부근에 뻐근한 통증을 느껴 바닥에 눕고 말았다.

혼자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해져 부축을 받은 채 X-ray실로 향했고, 정밀 영상 검사에서 갈비뼈 연골이 부러진 게 확인됐다. 보통 갈비뼈 연골이 부러지면 서 있는 것조차 힘들고 숨을 쉴 때도 아프다고 한다. EPSN은 “일반적으로 수개월 정도 쉬어야 낫는다면서 타석에서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그는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출전했다. 지난 8월 미세 골절을 겪은 오른손 중지(中指)도 정상이 아니었다.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시련도 있었다. 지난 7월 아들 맥스 프리먼(4)이 갑자기 전신마비 증세로 병원에 이송된 일이 있었다. 병명은 길랭 바레 증후군(면역 체계가 말초신경계를 공격해 신경 손상과 근력 악화를 일으키는 신경 질환). 그는 잠시 팀을 떠나 아들 곁을 지키다 돌아왔다. 당시 다저스 동료들은 ‘힘내라 맥스(#MaxStrong)’ 문구를 새긴 티셔츠를 입고 프리먼을 응원했다. 맥스는 고비를 넘기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처지라고 한다.

안팎으로 힘든 상황을 안고서 그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 투혼을 불살랐다. 프리먼의 아버지 프레드는 부상으로 괴로워하는 아들에게 ‘다음에도 기회가 있으니 올해 포스트시즌은 나가지 말자’고 권했다. 그때 프리먼은 ‘무슨 황당한 말씀을 하시느냐’며 “아버지(Dad) 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고 말했다. 그 여정이 쉽진 않았다. 월드시리즈 이전 디비전 시리즈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선 부진했다. 32타수 7안타. 장타는 1개도 없었다. “정상이 아닌 프리먼을 왜 고집 하냐며 당장 교체하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프리먼을 월드 시리즈 명단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그런데 되레 다저스가 뉴욕 메츠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를 6차전까지 끌고 간 게 프리먼에겐 전화위복이 됐다. 시리즈가 길어지면서 월드시리즈 일정이 덩달아 뒤로 밀렸고, 덕분에 프리먼이 회복과 치료 기간을 가질 수 있었고 심각한 통증을 줄일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물론 갈비뼈 연골이 부러진 만큼 정상 스윙을 가져갈 순 없었다. ESPN은 “프리먼은 스윙할 때 통증을 줄이기 위해 몸이 최대한 구부러지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1루(壘) 쪽으로 보폭을 더 넓히는 방식으로 타격 방식을 수정했다”고 전했다. 그는 1차전 만루 홈런을 시작으로 4차전까지 4경기 연속 홈런을 날렸다. 2021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월드시리즈에 나서 5~6차전 홈런을 연거푸 때린 데 이은 월드시리즈 6경기 연속 홈런은 MLB 역사를 새로 쓴 신기록이다.

 

프리먼의 아내 첼시는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남편이 부상 중인데 경기에 나선 것”이라면서 “발목이 아프고 손가락도 금이 갔다. 최악인 상태에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 뛰었다. 엄청난 기적”이라고 말했다. 프리먼은 10세 때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냈다. 지금도 어머니를 기리며 경기에 나선다. 어머니 머리카락이 든 십자가 목걸이를 차고 어머니 이름이 새겨진 신발을 신는다. “자외선 차단제를 잘 발라야 하고 옷은 언제나 긴팔, 긴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어머니 유언을 지키기 위해 20년 넘게 아무리 무더운 날씨에도 긴소매와 긴바지를 입고 훈련과 경기를 소화하고 있다. 프리먼은 캘리포니아 출신이다.

부모 국적은 캐나다. 프리먼은 국제대회에서 캐나다 국가대표로 뛴다. 캐나다 국적인 어머니를 위해 행동하는 작은 효심(孝心)이다.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프리먼은 캐나다 국가대표로 출전해 3패를 기록하고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우승 팀은 미국이었다. 프리먼은 “캐나다를 위해 뛰는 것이 어머니를 추모하는 것”이라며 “어머니는 어떤 유니폼을 입고 뛰든 응원하겠지만 그래도 캐나다를 위해 뛰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누구나 가슴 속 깊이 새긴 다짐이 있다. ‘집념(執念)과 결기(決氣)’로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프리먼은 “매일 밤 자기 전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하루 모든 걸 바쳐서 최선을 다 했냐?’는 자문(自問)에 100% ‘YES!’로 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이번에는 너무 힘든 일을 많이 겪어 (우승이) 더 달콤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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