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는 약속처럼 찾아들 봄기운’이 누리에 가득해질 테다. “와~ 벌써 목련 꽃봉오리가!” 돌고 도는 물레방아에 비유되는 세상살이지만, 역사는 과거의 기록만이 아니다. 24절기에서 4번째 우수(雨水)와 춘분(春分) 사이에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깜짝 놀라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 낼모레다. ‘정의(正義)와 용기(勇氣) 그리고 우정(友情)의 소중함’을 애써 강조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Three Musketeer)’는 루이 13세 시대를 배경으로 “One for all and all for one” 명언으로 우리들에게 기억된다.
“국가의 위급(危急)과 존망(存亡)은 이 거대한 사회에 속한 누구에게나 실존적인 갈등으로 다가온다. 한반도 주변에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중화(中華)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기치로 패권 도전을 선언했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위대한’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위해 빼앗긴 땅을 수복하겠다며 3년째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 뒤를 이어, 미국을 다시금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Make America Great Again>의 횃불을 들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 재입성(再入成)을 향해 진군 중이다.
마치 19세기 제국주의 시대가 부활하기라도 한 듯 한반도가 온통 주변국들에 둘러싸이고 상호 대립하는 신(新)냉전 체제가 깊어지고 있다. ‘안보(安保)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미국의 적국 중국에 의존’했던 모순된 정책은 이제 설 땅이 없고, 한국이 원하건 원치 않건 선택이 불가피한 시대가 왔다. 게다가 당선 가능성이 점증(漸增)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가 초래할 ‘미국우선주의’로의 정책 전환은 냉전(冷戰)이래 70년간 한•미동맹의 일방적 수혜에 안주(安住)해 온 한국 외교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미국은 냉전 시대 40년간 자유 민주진영 전체에 막대한 군사적, 경제적 보호막을 제공했고 한국은 그 대표적 수혜국이었다. 그러나 탈냉전 후 30년간 지속된 세계화의 시대에 미국의 일부 동맹국들은 미국의 군사적 보호에 의존하면서도 자국의 경제적인 이익 극대화를 위해 미국의 잠재적 적국인 중국, 러시아와 손잡고 그들의 전략적 이익에 열심이었다. 그 대표적 사례는 유럽의 독일과 아시아의 한국이었다. 국력이 점차 쇠퇴해 가는 탈냉전시대의 미국이 직면했던 상황에 대해 정면으로 분노의 칼을 뽑았던 것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었다.
‘자국우선주의’라고 비난받는 트럼프 대외 정책의 핵심은 ‘미국의 이익이 없는 곳에 일방적 안보(安保)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상응(相應)하는 기여(寄與)를 제공하고 자주국방을 강화하라는 거다. 동맹국들의 볼멘 불평에도 불구, 미국을 대체할 더 좋은 옵션은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미국 대신 중국이나 러시아의 안보지원을 받으려들면 아마도 주권이나 영토를 담보로 제공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자국우선주의’는 세계적 공통 현상이며, 한국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다. 미국의 안보지원을 70년간 받고도 자국의 현안(懸案)에만 매몰돼 남중국해, 대만 등 미국의 관심사에는 무관심하고, 방위비 분담금을 한 푼이라도 더 깎는 게 애국이라고 칭송받는 한국도 철저한 ‘자국우선주의’ 국가다.
양극화(兩極化)된 코끼리와 당나귀의 기치(旗幟)아래 세력을 결집하는 정치 지형은 섣부른 예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느 후보가 ‘더 쉬운 상대’인지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입맛대로 가늠해볼 순 있겠지만, 상대 후보에 맞서 어떻게 대선(大選) 선거운동을 펼치느냐가 보다 중요할 테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前) 대통령의 재(再)대결은 당내(黨內) 불만 세력이나 부동층을 끌어들이는 유인책이 된다고 한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과거 자신이 나토(NATO) 회원국 중 ‘GDP 대비 국방비 2%’라는 최소기준을 못 맞추는 나라는 “보호하지도 않고, 러시아에게 맘대로 하라고 부추기겠다.”고 공개하자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동맹국들끼리 서로 지켜주지 않겠다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모두의 안보를 훼손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독일 외교부도 소셜미디어 X에 “One for all and all for one” 이 나토의 신조(信條)가 9억5000만여 명을 안전하게 지킨다.”라며 비판했다.
“국제사회는 인간사회와 마찬가지로 베푼 만큼 받는 사회인 줄 안다. 트럼프 시대에는 더욱 그러 할 것이다. 한국외교가 격랑(激浪)을 헤쳐 가는 데 필요한 지혜는 먼 곳에 있지 않다. 한국민의 세계관 깊은 곳에 자리한 ‘자국우선주의’를 극복하고 우리가 미국에 바라는 만큼 상응하는 기여를 미국과 국제사회에 제공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미국의 예멘 후티 반군 공습에 아태(亞太)지역의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도 8개 연합국 일원으로 동참했다. 파병이 금지된 일본을 제외하면 미국의 아태지역 동맹국 중에서 빠진 나라는 한국뿐이다. 미국의 남중국해 ‘항행(航行)의 자유 작전’에 10년째 불참하는 동맹국도 한국뿐이다. D•트럼프의 ‘자국우선주의’만 비판할 때가 아니다”는 주장도 듣는다.
일본에서 올해 유행하는 신조어(新造語)는 ‘모시토라(もしトラ•혹시 트럼프가 米 대통령이 된다면…)’라고 한다. ‘혹시’라는 뜻의 일본어 ’모시’에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칭하는 ‘토람프’를 합친 조어다. 일본의 한 대학교수는 “일본의 대미 외교나 아시아 안보 정책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안타깝지만 벌써 트럼프 시대가 온 것 같은 분위기”라고 말했다. 미국의 정책에 트럼프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모시토라’라는 표현에는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일본의 위기감이 담겨 있다. 트럼프를 뜻하는 ‘토라’는 ‘토라(虎•호랑이)’라는 같은 발음의 일본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트럼프 리스크는 한국도 예외일 리 없지만, 전직 대통령•총리나 여당 실세 정치인이 ‘만남 불발’이란 치욕을 무릅쓰고 트럼프 진영에 다가갔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전•현직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트럼프 리스크’를 말하면서도 신경은 온통 4월 총선에 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어느 국회의원은 “만약 트럼프 2기가 온다면 “골프장 벙커에서 발라당 넘어지면서도 활짝 웃으며, 트럼프 리스크를 최소화했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없다는 점”이라며 “다행인 대목은 일•한 관계 개선 덕분에 이번엔 공동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이라고 했다.
“전쟁은 언제든 벌어진다. 그리고 아무도 대신 싸워주지 않는다.” 힘의 논리가 일맥상통하는 국제사회의 현실이 드러나면서 글로벌 정치•경제 구도가 격변하고 있다는 평가다. ‘자신을 이롭게, 이웃도 이롭게, 너나없이 이롭길’ 바라지만, 여의찮은 현실과 도로(徒勞)는 어찌할 수 없는 우리들 몫이 되고 만다. “여러 사람의 마음은 성(城)을 이룰 수 있거니와 뭇사람들 입에서 나온 성토(聲討)가 쇠붙이를 녹일 수 있다.(衆口成城 衆口?金)”고 했다. 총선을 앞두고 양극(兩極)으로 분열된 한국사회가 그나마 하나 되는 모습을 보길 희망한다. 국민을 단결시키는 중요한 촉진제(促進劑)가 되었으면 오죽이겠다.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다짐하십시오. 무엇도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자고. 누구도 더는 성별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같은 쓸모없는 범주로 나를 분류하게 두지 말자고.” [Bonnie Garmus, <Lessens In Chemistry>]
(대한민국 ROTC 회원지 Leaders’ World 202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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