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겨울보단 따뜻하고 여름보다 선선한 계절이다. ‘눈(雪)이 비(雨)로 변하고,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다’는 우수(雨水)가 엊그제였다. 봄이 오는 문턱에서 머잖아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도 뒤따를 터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든 세대 갈등은 있었고, 문명의 흥망성쇠는 부침(浮沈)을 거듭해 왔다. 서로가 이해와 양보를 통해 협력했으면, 조직과 사회가 보다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더불어 잘 사는 행복을 추구한다”는 생색은 찬란했건만 ‘시니어 승객의 무임(無賃)승차를 지하철 만성적자의 주범으로 마녀사냥 하듯 빌미로 삼아내는 뉴스가 마땅찮게 여겨진다. 만성적(慢性的) 재정악화는 운영기관의 방만한 경영 때문일 수 있고 무임승차 때문만은 아니라는 견해에 동조한다.
바닷물고기 잡는 배도 투망(投網)과 양망(揚網), 선별작업이 필요하다. “유관(有關)회사 임직원과 그 가족들에게 무임승차가 실시되고 있는데 왜 이런 불공정은 보도가 안 되는지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는 불공정이 없는 사회질서를 유지하며 제도를 보완 수정해가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바이러스 횡포는 우리 모두에게 힘들고 지난(至難)했던 시간이었다. 이젠 개인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안면 마스크 탈·착용을 할 순 있지만, 방역대책본부는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조정되더라도 마스크의 보호 효과 및 착용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환기가 어려운 밀폐·밀집·밀접 환경이나 다수가 밀집한 상황에서 함성·합창·대화 등 비말(飛沫) 생성(生成) 행위가 많은 경우엔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다.
한국 갤럽이 젊은이에 대한 주제로 한 설문에 기성세대 응답자 열 중 아홉이 요즘 젊은이들이 자기 권리만 너무 주장한다고 답했다. 이기적이다(87%), 돈 계산이 과하게 정확하다(73%) 같은 부정적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한다. 지금의 2030세대 얘기가 아니다. 설문을 한 시점은 1992년이었으니 당시 젊은이라 해도 1960년대 생들이다.
586 세대도 한때는 이기적(利己的)인 ‘요즘 젊은이’였던 셈이다.
직장마다 20대인 Z세대와 함께 일하는 방법을 찾느라 고민이라고 한다. 기업 임원 사이엔 ‘3요? 주의보’라는 말까지 돈다. 업무 지시에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되묻는 젊은 직원의 흔한 반응을 일컫는 말이다. 젊은이들에 대한 한탄은 뿌리가 깊다. 1982년 한 신문엔 ‘잖아요’ ‘같아요’란 말투가 무례해 참기 어렵다는 독자 투고가 실렸다.
비슷한 시기의 기사는 당시 젊은이들이 ‘웬일이니, 별일 아냐, 웃기지 마’ 등을 너무 많이 써 걱정된다고 적고 있다. 지금으로선 왜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감정을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표출한다고 지적을 당했다.
Z세대들이 꼰대라고 부르는 지금의 40대야말로 한때는 자기표현에 거침없는 젊은이였다. 당시 대기업은 개성에 집착하는 이른바 ‘X세대’를 유인한다며 경쟁적으로 튀는 채용광고를 냈다. ‘노래방에서 30곡을 부를 수 있는 사람’(대우), ‘트로트에서 힙합까지 쫙 꿰고 있다구’(삼성전자)란 식이었다.
이들은 입사 후 찢어진 바지 입고 출근했다가 야단맞기도 했다. 이 X세대도 이젠 Z세대들에게 핵심 ‘라떼’ 세력으로 찍혀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생각이 없고 무례하며 완전히 이기적이다.’ 한때 제멋대로라던 동서고금의 ‘요즘 애들’은 결국 다 어른이 돼 ‘요즘 애들’ 흉을 봤다. 시간이 흐르면 ‘이걸요? 제가요? 왜요?’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애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라는 낙서가 고대 동굴 속 벽화에도 그려져 있다고 했다. 어르신들은 “난 아닐세!”하시며 손사래를 저으시겠지만… 우리들에게도 섣부른 자·잘못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기록적인 한파와 겹친 에너지 비용 상승에서 비롯된 ‘난방비 폭탄’이 국민들을 놀라게 한 가운데 정부는 난방비 지원대상을 차상위(次上位) 계층으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서둘러 발표했다. 힘겨운 삶이지만 꿈과 열정을 잃지 않고 묵묵히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버팀목이 되었으면 오죽이겠다.
“칠순 여인네가 환갑내기 여인네한테 말 했다지 /‘환갑이면 뭘 입어도 예쁠 때야!’ /그 얘기를 들려주며 들으며 /오십대 우리들 깔깔 웃었다 /*나는 왜 항상 늙은 기분으로 살았을까 /마흔에도 그랬고 서른에도 그랬다 /그게 내가 살아본 /가장 많은 나이라서 /*지금은, 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 /이런 생각, 노년의 몰약(沒藥) 아님 /간단한 이치 내 척추는 아주 곧고 /생각 또한 그렇다(아마도)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황인숙 시인의 <송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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