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남동부 전선 돈바스(Donbas)지역에 주력하던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하르키우(Kharkiv)주의 하르키우시를 향해 진격을 해오고 있다.(하르키우시는 우크라이나의 제2도시이자 하르키우주의 주도다.)
지난 5월13일, 우크라이나 동북부에서 지상전을 시작한 러시아군은 진격 이틀 만에 우크라이나의 '하루키우주' 9개 마을을 차례로 점령하는 등 파죽지세로 공세를 펴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서방의 무기지원이 늦어지는 틈을 이용해 동북쪽 국경을 넘어온 러시아군에게 속수무책 밀리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알레산드로 시루시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1000KM에 걸친 전선에 얇게 배치했던 병력을 다시 빼내 북동부 하루키우로 지원을 보내는 등 최전방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무기지원이 빨리 오지 않으면 현 전선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우리는 매우 힘든 고난을 겪고 있다”고 하였다.
가장 용맹한 군인들과 대통령이 있다 할지라도 현대 전쟁은, 자금이 없어 무기가 바닥나면 절대 이길 수 없다. 몇 달 간의 지연 끝에 미국 공화당이 다수당인 하원에서 지난 4월20일, 610억 달러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추가 예산안이 가결되었다. 미 하원에서 통과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은 상원의 승인을 거쳐 4월24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 함으로써 법안으로서 그 효력이 발생했다. 또한 지난 4월29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면담을 통해 우크라이나 국방분야 지원을 위한 1,000억(약 148조 원) 규모의 특별기금 설치 계획을 전달하였으며, "이제 우리의 책임은 이 같은 발표가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무기 탄약 등이 우크라이나군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러시아는 1945년 5월9일을 모스크바 시간으로 나치 독일이 소비에트 연방에 무조건 항복한 날로 삼아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지난해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항복한 날인 5월8일을 전승기념일로 정해 러시아와의 차이를 두고 있다. 지난 5월9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SNS에 올린 동영상에서 80여 년 전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나치즘을 쳐부수기 위해 피를 흘렸고, 지금 우리들은 다시 악에 맞서고 있는데, 이 악은 '러시아 파시즘'이라며 러시아를 나치 독일에 비유하여 비난했다. 그리고 이 동영상의 촬영 장소는 2년전 러시아군이 아이들을 포함한 약 350여명의 주민을 감금한 체르니우치 마을에 있는 지하실이라고 설명한 뒤, 빛이나 식량, 물도 없는 지하실에 갇힌 그들을 상상하면 푸틴의 러시아가 어떤 악의 존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더불어 세계가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서 "반 푸틴 연합"으로 뭉치게 되면 "모스크바의 나치스"를 저지할 수 있고 새로운 악이 유럽 전체를 넘어 전 세계에 퍼지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역설하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결속을 호소하였다.
1952년 5월, 마크 클라크 장군이 한국전쟁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취임하던 당시의 미군 수뇌부의 분위기는 승리보다는 패하지 않는 전쟁에 더 관심을 두고 있던 시기였다. 클라크 장군은 자신이 미 정부의 지시와 명령을 수행하여야 하는 휴전협정에 서명하면서도 승리 없는 휴전에 서명한 첫 미군 사령관으로서 휴전 자체를 불명예스럽게 생각했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던 한국군과 미군이 주도하는 유엔군은 중국 인민군의 참전으로 밀리면서 쌍방이 휴전선 인근에서 전투를 벌이며 수많은 인명이 희생 되고 있었다. 소련의 도움을 받아 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김일성은 1952년 무렵부터 전쟁을 끝내고 싶었다. 그런데 중공의 모택동과 같은 동맹국이면서도 은연 중 그와 라이벌 의식이 있었던 스탈린은 미, 중 두 강대국이 한반도에서 격돌함으로써, 특히 미국의 군사력을 소진시키기 원하였다. 치밀한 성격의 스탈린은 그렇게 함으로서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미국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차지 하고 싶은 복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953년 스탈린이 갑자기 죽고 그가 숨진 후에야 소련의 정책이 바뀔 수 있었고, 그해 7월27일 휴전 협정이 성사된다. 그 후 소비에트 연방은 1990년 붕괴되고, 한국전쟁 휴전 71년 후,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략을 발판 삼아 동유럽의 지배자가 되어 대 러시아 제국을 꿈꾸게 된다. 그 첫 번째 단추가 우크라이나 침략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결사적인 항쟁과 서방세계의 군사지원에 밀려 예상 밖의 고전을 하게 된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크라이나가 핵강국 러시아에게 군사적으로 완승을 거두기는 힘들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한국전쟁처럼 국토가 유실된 채 휴전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트럼프가 오는 11월5일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그렇게 될 확률은 아주 높다.
한국 동란 당시, 한국공군과 미국공군은 공산군의 기지가 있는 압록강 너머를 폭격할 수 없었다. 70여 년이 지난 현재, 우크라이나군 또한 미국과 캐나다, 유럽 등 서방국가가 제공해준 무기로는 우크라이나 국경 너머 있는 러시아군대에는 공격을 가할 수 없다. 단, 러시아군대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오면 그때야 방어차원에서 서방세계가 제공해준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철저한 대리전이라 할 수 있다.
역사는 과거에서 인증(認證)되지만 현재에서 증명된다.
2024년 5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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