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치맨 참회록

 김치맨은 47년생 돼지띠다. 지난 봄에 만 72세 생일을 조용히 보냈다. 체격과 생김새도 그저 그런 평범하면서도 그다지 평탄한 삶을 누리지 못한 김치맨이다. 매우 소심해서 남들 앞에선 말도 잘 못한다. 어떤 모임에서 사회자가 마이크 건네주며 “한마디 하라!” 하면 쑥스러워 죽을 지경이다. 머뭇거리다가 더듬거리며 몇 마디 하고선 줄행랑 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글쓰기가 김치맨의 유일한 취미다. 물론 문학적 가치가 있는 글도 못되고 학문적으로 논리적으로 타당하지도 못한 잡문들이다. 누가 읽어 주건 말건, 어떻게 평을 하건 신경 안 쓰고 글들 자꾸 써내며 혼자서 좋아한다.  

그런데 2년 전 나이 70이 되고 나선 어느 날 갑자기 절필했다. 글 쓰는 손가락이 아파서가 아니었다. 문득 “내가 왜 이렇게 글질을 하지? 누구를 위해? 무엇하자구?” 그런 생각들이 들어 글쓰기에 흥미를 잃었다. 이런 경우를 ‘슬럼프에 빠졌다!’ 했나?


동포신문들에 가끔씩 독자투고나 써 보내던 김치맨이다. 주간신문 부동산캐나다 이용우 사장의 권유로 쓰기 시작해서 4년 넘게 매주 1편씩 써냈다. 그동안 써낸 잡문 신변잡기 글들은 총 220편쯤이다. 참 많이도 썼다.  글 1편의 글자수가 대략 2,500자(공백 포함)쯤이니 200자 원고지로는 편당12매쯤 된다. 대충 계산해 보면 원고지 약 2,500매 분량이며 글자 수로는 50만자에 육박할 것 같다. 만일 수필집을 펴냈으면 3-4권쯤 될 것이다. 그 많은 글자들을 오른손 검지 하나만 쓰는 독수리타법으로 찍어대며 혹사했다.

마침내 재작년에는 그 불쌍한 검지 손가락이 퇴행성 관절염에 걸렸다. 또한 한동안은 트리거-핑거(Trigger Finger) 증상이 생겨 겁이 덜컥 났고 애 좀 먹었다. 다행히도 가정의 처방으로 손바닥에 스테로이드(Steroid) 주사 1방 맞고 완치됐다.  그러다가 문득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할까?’ 라고 고려하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몇 십년 만에 연락을 해 온 서울 친구 소설가 이원호씨 탓이다, 아니, 덕일까? 작년 말에 뜻밖에도 그 친구가 좀 도와 달라며 무슨 부탁을 했다.

 

명함에 ‘대중소설가 이원호’라 새긴 그는 김치맨의 고교 동기동창이다.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 적은 없지만 꽤 유명한 밀리언 셀러! 아니, 1천만셀러 인기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영웅의 도시> <신의 전설> <질풍시대> <불륜시대> <광풍> <황금제국> <서유기> <영웅기> <군주론><제3제국> <영웅시대><가족> 등이다. 이원호 작가 홈피 www.leewonho.com

20여 년전 교교 졸업 30주년 기념 홈커밍 행사 때 서울 가서 만나 술을 함께 마시기도 했다. 글/소설 써서 성공한 그가 밥값, 술값을 다 냈다. 또 캐나다에 가서 고생만 한 어려운 처지로 알려진 김치맨에게 용돈 쓰라며 봉투에 얼마의 돈을 넣어 주었던 고마운 친구다.  그 친구가 캐나다의 어느 누구와 무슨 법적문제로 얽히게 됐다며 내게 도와달라 했다. 이곳의 법적대리인이 돼달라 해서 흔쾌히 응낙하고서 이것 저것 알아보았다. 오래 살다 보니 그 친구에게 진 마음의 묵은 빚을 갚을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부탁받은 일에 대해 알아보며 그와 한동안 전화와 카톡, 이멜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김치맨이 오래 전에 쓴 습작 단편소설 몇 편을 그에게 보내주었다. 그는 자기 책을 읽어보라고 9종 23권을 소포로 보내주기도 헸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친구로부터 칭찬을 들었다. “야! 너 글재주가 있구나!” 하며 단편소설들 몇 개를 보내주면 출판사와 연결시켜 주겠다 했다. 그래서 10여년 전에 써놓은 소설들을 꺼내어 다시 읽어보니 이건 내가 보아도 아니올시다! 였다. 출판사 북-에디터가 도저히 팔릴 수 있는 소설들이 아니라며 쓰레기통에 집어 처넣을 것만 같았다.

젊은 시절에 한동안 동포언론인을 자처했던 김치맨이다. 50대 중반에야 소설가로 데뷔하고 싶어 단편소설 몇 개를 썼다. 2004년에는 4회 동포문학상 소설부문에 응모하여 가작 입선도 한적 있다. 그런데 아무나 쓰는 게 소설이 아닌 듯! 소설가로 대성할 것 같지 않아 곧 그만두었다.

그런데 이원호 작가는 소설 대신 자서전을 써보라 권유했다. 젊은 시절에 캐나다로 이민해서 수십년 동안 고생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얘기들을 자서전 형식으로 써내면 대박 날 거 같다는 그 친구의 예언 아닌 예상이었다.

그 얘기 듣고서는 귀가 솔깃했다. 인기작가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우선 소설 제목부터 정했다. <소설 김치맨 참회록>이다. 물론 살아온 그대로의 진짜 자서전이 아니다. 자서전 형식으로 쓰여진 한 권의 창작소설일 뿐이다.

앞으로 8년쯤 뒤인 2027년 발행 목표로 지금부터 쓰기 시작할 생각이다. 그 때는 김치맨의 8순 잔치 겸 출판기념회를 성대하게 개최할 예정이다. 기대하시라! 세기의 걸작! 베스트 셀러! <소설 김치맨의 참회록>을! (2019.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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