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들어, 한국인들은 세계 많은 나라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런 이유가 무엇인가? 우선, 한국의 제조업이 철강, 기계, 석유 화학, 조선, 자동차, 전동차, 발전설비, 가전제품, 반도체, 스마트폰, 화장품 등 현대인의 주목을 받는 거의 전 분야에서 세계의 선두 주자가 된 것이다.
전투기, 군함, 잠수함, 탱크, 장갑차, 대포, 미사일 등 방위산업에서도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건설과 의료 기술 또한 세계적 수준에 달했다. 정신문화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뤘으니, 한국의 영화, TV 드라마, 춤, 노래 등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세계의 젊은이들을 매료하고 있다.
제조업이나 문화 예술 등은 2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유럽, 일본 같은 선진국들이 독점적으로 휘날리던 분야였다. 여타의 나라들은 일류 선진국이 생산한 제품을 다투어 구입하고, 선진국이 창조한 문화 예술에 심취하고 모방하며, 자신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거기에 길들여 온 것이 사실이다.
동북아의 중심에 삐죽 나온 한반도의 남쪽에 사는 5천만 명이 6.25전쟁의 잿더미 위에 맨손으로 쌓은 금자탑이 오늘날 한국의 모습이다. 북녘의 김씨 임금과 그의 충복들은 세 불리하면 압록강, 두만강 너머로 달아날 곳이라도 있겠지만, 남녘의 사람들은 모두 바다에 빠져 죽기만 바랄 뿐 따로 갈 데가 없다.
한국의 제조업에 견인차 구실을 한 포항제철소를 세울 때,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권을 받은 박태준 사장이 하던 말이 있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에 흘린 선열의 피 값인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현대식 제철소를 여기에다 세운다. 그런데 부정을 저지르거나 나태하여 건설 사업에 차질이 생기고, 그래서 실패한다면 우리는 조상의 피를 더럽힌 죄인, 곧 역적이 될 것이니, 그때는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는 게 옳다.”라고 했다.
한국 제조업의 역사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30여 년간 그렇게 밤낮으로 일하며 흘린 피땀으로 쓴 대서사시 같은 것이다.
중국, 일본의 심술은 이때까지 단 하루도 거른 때가 없었다. 미국의 심술과 훼방은 우리가 인정하기는 싫지만, 명확히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태클은 노골적이고 야비해져서 이젠 중국의 그것보다도 심각하다.
미국은 6.25 전쟁 때 우리를 구해준 은혜의 나라요, 그 군사력을 한국에 주둔하고 있어서, 웬만한 잘못은 눈감아주는 게 우리네의 습성이다. 그런데 지금의 경제 전쟁은 너무나 야비하여 살벌한 지경이다.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삼성, 현대, 선경, LG를 초청하여 “Thank you”를 열 번씩이나 외치며 칭찬하더니, 돌아서서 뒤통수를 쳤다. 한미 관계에서 이렇게 야비한 배신을 맛본 게 언제부터였나? 2005~2010년 6년간에 벌어진 한미 간의 다툼이 기억난다. 미국 업체 듀폰+FBI+미국 정부가 합세하여 합성섬유 신소재인 ‘아라미드’를 개발한 한국 업체 ‘코오롱 인더스트리’를 고사시키려던 버지니아주 법정 싸움에서, 코오롱 측은 중간 승소를 하고서도 불어나던 소송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강철의 1/5수준으로 가벼우면서도 6배나 강도가 높고 인장력이 뛰어난 아라미드는 광케이블의 내부 보장재나 전기차용 타이어에도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한국 측은 이 신소재를 개발하려고 1979년부터 국책사업으로 선정했다. 한국 측은 카이스트+코오롱 기술진이 20년간 연구하고, 상용화한 증거들을 제시했지만, 미국 측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코오롱 측은 $2억7,500만의 배상금과 $8,500만의 벌금을 별도로 내면서 화해를 청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1월 삼성전자 평택공장의 우람찬 모습을 헬리콥터에서 내려다본 순간, “What the hell is that?”라고 물었다. 미국 측 인사가 “삼성 반도체 공장을 짓는 겁니다.”라고 했다. 트럼프는 “저걸 미국에다 지었어야 했는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측의 방위비 분담금을 당장 10배로 올리라.”고 소리쳤다.
최근에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을 통과하여, 한국산 전기 자동차 산업, 배터리 산업을 불리하고 불편하게 했다. 바이든은 한국이 F-35 전투기 40대를 구입할 때 록히드마틴사가 한국에 제공키로 한 $14억 상당의 기술 이전도 못하게 했다.
올해 8월 빌 게이츠가 한국 국회에서 “이제 선진국이 된 한국은 바이오산업의 강점인 위탁 생산(CMO) 능력을 발휘해 저개발국의 방역을 도와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됩니다.”라고 호소했다.
지난해 “한국의 백신 허브 구상에 미국은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라고 말한 바이든은 그 자신의 언약도 뒤엎었다. 그는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란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한미간에 진행되던 바이오와 제약 분야의 국제협업마저 금지했다. 실제로 한국의 주력 산업에 모두 족쇄를 채우고 훼방을 놓는 조치들이다.
한국의 첨단 공장들을 미국에 끌어들인 후 뒤통수를 치는 것이 바이든의 일 처리 방식임이 밝혀졌다. 미국 대통령과 의회가 손발을 맞추어 추진한 것을 보면, 이런 추세가 가까운 시일 내 달라지기 어려울 듯하다. 한국은 제 살길을 찾아야 한다.
“계란을 전부 한 바구니에 담지 말아라.”라는 서양 격언이 떠오른다. 미국 시장이 크고 탐나더라도 거기에 올인하지 말고, 위험을 분산하는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하릴없이 ‘문재인 망신 주기’ ‘이재명 때려잡기’에 진력하는 동안에, 굳게 믿었던 미국 측이 중요한 약속을 뒤엎고 뒤통수를 치는데, 윤석열은 바이든을 만났을 때 왜 이런 배신에 대해 따지지 못했는가?
미국, 일본, 유럽의 자본가들이 합세하여 한국 경제에 분탕질을 친 것이 1997년 외환위기였다. 많은 국민은 그때 ‘이래서 우리나라가 망하고 마는구나.’라고 부르르 떨면서 분루를 삼켰다. 그것은 아마도 6.25 기습 남침을 당하여 영남지방의 불과 1/4쯤 되는 한쪽 구석에 내몰린 1950년의 그 여름 이후 처음 당하는 막연한 공포였을 것이다.
외교는 내치의 연장선에 있는 국가 기능으로서 총성 없는 전쟁이다. 그러므로 외교 시스템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대비책을 세운 다음에 서서히 나아가고, 장기적 관점에서 국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세련된 언행으로 싸우는 분야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 나가서도 샌다. 무식하고 무경험 한 사람들이, 옷과 장신구만 바꿔가며 찍는 패션 사진에 마음을 쏟는 듯해 안타깝다. 기회를 그런 식으로 날려버리면 나라에 큰 손실이다. 깨닫지 못하겠는가? (202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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