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잘못된 허물에 대하여 용서를 비는 것이다. 이 말이 요즘같이 묵직한 느낌으로 다가와 그 의미를 곱씹는 일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어떤 이들은 국민의 간택을 석 달쯤 앞둔 시점이라,‘사과를 제대로 하고 안 하고에 따라’정치적 위상이 크게 달라질 계제에 있다. 또 90년간 비슷한 삶을 살면서 한 시대를 쥐락펴락한 두 남자가 한 달 차이로 별세한 사건이 있었다. 사과 여부에 따라 그 둘에 대한 세평(世評)이 하늘과 땅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본다.
휴전선 너머 공산군을 경계하는 과업에 열중했어야 할 군인이었지만, 그 둘은 청와대‘각하’의 동정과 심기를 살피는 데 온통 마음을 쏟았다. 그들은 박 대통령이 시해된 격변의 회오리바람을 타고 군사반란을 획책했다.‘하나회’라는 군내의 사조직을 이끌어오다 이를 바탕으로 얽힌 사적 인맥을 활용하여 군의 공식 통수계통을 마비시켰으며, 육참총장(계엄사령관 겸임)과 수도권의 군 지휘관들을 체포하고, 군권을 찬탈했다.
“다시는 나같이 불행한 군인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라던 박 대통령의 전역사(轉役辭)가 진심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대통령은 자기를 닮은 정치군인들을 주위에 키우고 있었다. 그는 경제적으로 큰 공적을 이루었지만 영구집권을 노린‘유신통치’를 하면서 국민을 숨도 못 쉬게 억압했으며, 많은 정적을 쫓아내고, 고문하고, 죽이는 등의 전횡을 다반사로 저질렀다.
정권을 탈취한 신군부는 더 거칠고 모질게 권병을 휘둘렀다. 삼청교육대에서 450여 명, 형제복지원에서 5백여 명, 광주에서 2~3백 명을 학살했다. 그들이 무슨 명분과 권한으로 4.19 때보다 6~7배나 많은 국민을 죽였던가? 신성한 국방 무력을 국민을 학살하는 데다 쓰다니! 까닭도 모른 채 끌려가서 몽둥이 찜질을 당하고 목숨을 잃은 원혼과 그 가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전 씨 등이“새 시대”, “정의사회 구현”같은 막연한 구호를 외쳤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초라한 정당성을 감추려는 발버둥이 아니었을까 싶다. 공동정범(共同正犯) 노 씨는 훔쳐간 돈을 반납하고, 부인과 아들이 광주 묘지를 참배하여 최소한의 시늉은 했다.
전 씨는 군사반란과 강권통치의 주역이면서“난 잘못한 것이 없다.”는 억지만 부리다 갔다. 훔쳐 간 돈도 970여억 원이나 미납인 채로. 천 수백 명을 죽이고, 수천 명을 다치게 한 폭거에 대해 사과받고 화해할 기회는 사라졌다.
전 씨 때의 경제발전을 운위하지만, 백성을 학살한 데 대해 진솔한 참회와 사과가 없다면야 무슨 평가를 기대하는지? 양민을 떼로 죽였는데‘정의’‘경제’‘행복’이란 구호가 무슨 소용인가. 사과와 화해의 마지막 기회를 놓친 건 전 씨나 국민에게도 유감된 일이다.
인간은 완전할 수 없고, 때로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늦게나마 자기 잘못을 깨달아 참회하고 용서를 빌어 화해할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다.“To err is human, to forgive Divine.”(잘못을 저지름은 인지상정이요, 용서는 신의 섭리다.) 라는 격언은 사과와 용서의 속성과 상관관계를 알게 한다.
잘못을 사죄하고, 이를 용서하는 긍휼은 신의 영역에 근접한 마음일 것이다. 그리 보면 사과도 인품이 그만한 수준에 달하고 마음의 여유를 지닌 이라야 가능한 일 같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 빗발치는 아우성에 어깃장 놓는 것은 무지하고 무례한 자질을 스스로 폭로하는 짓이다. 의도했든 아니든 남의 목숨이나 재산을 빼앗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고 외면하는 것은 파렴치한의 모습이다.
이재명 대선 후보가, 조금 과하게 나갔다 싶으면 바로 사과하고 국민의 요구에 맞춰 공약을 수정하거나 유예했다. 그의 처신이 가볍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국민의 뜻에 순응하는 자세는 민주 사회의 지도자로서 당연하고 안심이 되는 바가 있어, 장점으로 볼 것이다. 진보적 가치에 사로잡혀 성급하고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다가 어정쩡하게 멈추어 서던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과 비교해 구체적이고 살가운 정책을 제시하는 이 후보의 주장이 손에 잡힐 듯하다.
경기도지사 때 주민 지지율이 첫해 40%, 둘째 해 60%, 셋째 해 70%였다는 실적이 지도자로서의 성실성을 말해준다. 대통령이 우리의 지배자로 군림한 것이 이승만 정부 때부터였던가? 후보자의 입으로 오랜만에 듣는“국민의 뜻에 충실한 큰 머슴이 되겠습니다.”라는 생경한 표현에, 제3대 대선 후보 신익희 선생의‘한강 백사장 연설’을 떠올린다. 해공(海公)은 첫 유세에서 “주권재민(主權在民)의 헌법정신을‘민국의 임자들’께 상기시키고, 그 실천을 다짐”하였다.
야당의 주자는“헌법정신”, “공정”을 되뇌는 윤석열 후보다. 오랜 검사 생활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검사스럽다. 타인의 잘못은 신속하고 무자비하게 척결하더니, 자신과 처가의 위법, 탈세에는 나 몰라라 한다. 그런 불공정한 행태에,‘먼 길을 가던 전 씨가 돌아왔나? 싶다. 그래서 그런지 용감하게도 전두환의 통치를 찬양하였고,‘개와 사과’사진을 트윗에 올려 국민을 우롱하기도 했다. 대통령 입후보자가 국민의 뒤통수를 치는 농간을 부린다니…
박근혜 대통령이 빨간 두루마기 차림으로 오방색 주머니를 나무에 매달던 일이나, 윤 후보의 손바닥에 그린 ‘王’자 부적을 보는 느낌도 낯설고 섬뜩하기는 마찬가지다. 언제는 성경을 끼고 교회에 나타나던데, 그건 또 무슨 변신인지? 여하튼 한국이란 번듯한 나라를 이끌려는 대통령 후보자의 정신력이 약하여 무당의 주술을 담은 부적에 의존해야 한다니, 께름칙하다. 그러기보다는, 매사에 건전한 상식으로 임한다면 보는 마음이 편할 것 같다.
한국이 지성적이고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지도자를 만나서 자유롭고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기를 빈다. (2021.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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