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Common Sense (1776. 1)>이라는 주장을 한 권의 책에 담아 펴낸 이는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 1737~1809)이다.
그는 영국 세관의 관리로 일하던 중에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하게 운영되던 당시의 지배구조를 이 책에서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의 주장은 때마침 들끓던 아메리카 식민지의 독립운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가 결국 세관원이라는 ‘밥자리’에서 쫓겨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다.
재물과 권세를 거머쥔 기득권 세력은 그들이 누리는 ‘살기 좋은 이곳’에 근접하는 모든 존재를 지독한 의심과 혐의를 씌워 경원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군주제가 상식이 아니고 공화제가 상식이다”는 토머스 페인의 주장은 삶에 치어서 좀체 머리를 쳐들지 못하던, 신대륙의 거류민들을 깨우치는 촉매가 되었다. 그것은 ‘아메리카’라는 신천지에서 종교적 박해도 없고, 머리 위에 군림하면서 무위도식하는 ‘군주와 귀족 집단’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혁명적 깨우침이요, 자유인의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몸부림이었다.
지금 보면 당연한 말이라고 여길지 몰라도, 수천 년 지속되던 군주제 아래에서 펼친 그런 주장이, 당시의 통치 세력에게 얼마나 위험한 발상으로 인식되었을지 짐작은 된다.
아메리카의 독립운동에 앞장선 아버지들은 신교의 박해뿐만 아니라, 언론의 자유, 사상의 자유, 나아가서 모든 행위에서 건전한 상식이 지배하는 사회를 추구하기에 이른다. 인간 집단의 조직화한 규율과 질서유지에 관한 전례(前例)가 없었던 신대륙 위에서 그들은 ‘어떻게 하면 보다 자유롭고 바람직한 사회 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궁리에 바빴다. 페인 자신은 새 시대를 여는 데 크게 기여한 사상(이론적 기조)을 제공한 게 빌미가 되어 말단 공직에서 쫓겨났지만, 그의 이론은 그 후 ‘아메리카의 독립’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민주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북극성 같은 좌표가 되었다.
그로부터 248년이 흐른 2024년, ‘상식’을 기준으로 한국의 정국을 일별한다. 수만 리 먼 곳에 이민 보따리를 푼 처지에서 고국의 복잡다단한 사정을 시시콜콜 논하자는 게 아니지만, 이민 1 세대로서 아직도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자연스럽고 양식보다는 한식을 먹을 때 속이 더 편한 걸 어쩌리오.
빨라지는 교통, 통신 등이 우리의 생활과 의식을, 더 쉽게 조국의 움직임에 연결 짓는 것까지 떨쳐낼 수는 없다. 그곳에서의 일들이 사리(事理)에 맞게 돌아간다면야 더 바랄 게 없지만, 논쟁이 심한 일도 최소한 상식(건전한 상식)에 어긋나지 않게 처리할 줄 아는 나라가 되면 다행이겠다는 소망까지 숨길 수는 없다. 그게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공개적으로 묻고 싶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국민의 주권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권한을 부여해 뽑은 통치자이다.
그는 국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할 책무를 진 사람이다. 최근 여야 대치 정국에서 대통령이 직접 행하는 시행착오 중에서 두드러진 사건들을 보자. 그의 국정 지지도가 20% 아래로 헤매 돌자, 그는 KBS, MBC, YTN 등 공영 언론을 장악하여 자기를 칭송하는 나팔수로 만들려는 유혹에 빠졌나 보다. 방송통신위원장에 이동관, 김홍일을 추천했다가 실패하니, 이번엔 이진숙을 밀어붙이다가 중도에 멈춰 섰다. 그들의 인품이나 삶의 족적이 국민의 상식 기준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자들이었다.
취임 전부터 현재까지 정권, 아니 나라의 위신을 지저분하게 추락시키는 대통령 부인의 문제가 한국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지만, 그녀의 남편은 거짓된 말로 둘러댈 뿐 실질적 개선에 노력하지도 않는다. 타국의 언론들이 모진 말로써 김 씨에게 창피를 주었고, 그것이 건전한 상식을 가진 한국인의 위신과 한국의 존엄성에 먹칠을 하는 데도,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그들 부부는 괜찮은지 몰라도 국민의 심정은 전혀 그렇지가 않고, 거의 미칠 지경이다. 김 씨의 비위 사실은 몇 해 동안 소환 조사를 하지 않다가, 최근에 한 번 했다는 것이 요상한 방식이었다. 세계의 모든 법률은 ‘이 법으로, 여당 측 거물이나 대통령 가족을 조사하는 경우를 예정해서 조사 방법 또는 장소를 예외적으로 임의 변경할 수 있다.’ 같은 부대조건을 지닌 조항이 없다. 법률이 만인이 평등하게 적용되는 일반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법률을 특수적 불공평한 조건으로 적용한다면 그것은 법률의 자격을 포기한 문구요, 법이라 부를 수조차 없다는 건 상식이다.
박정희 정부에서 경제개발을 추진한 이래 수십 년간, 경제성장률에서 한국은 세계 최선두 그룹을 유지했다. 전두환 정부나 노태우 정부에서도 경제성장에 다소 기여는 했지만, 그들은 국민 입을 틀어막고, 양민을 살육했으며, 엄청난 금전적 부정을 저질러서 민주적 발전에 기여하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는 하나회를 척결해 30년 군부 통치를 종식함으로써 정치의 권한을 국민의 손에 돌려주었다. 동시에 금융실명제와 공직자의 재산 등록을 법제화하여 민주주의와 선진 자본주의 체제로 나아가는 대도(大道)를 활짝 열었다. 그의 “세계로 나가자!”는 호소에 군부 정권 추종자들이 “나라의 문을 성급히 열어젖혀서 큰일 났다”라며 계속 딴지를 걸었다. 한국의 눈부신 성장을 질시한 서방 세력과 일본 투기꾼들이 합세해, 한국에 투자된 자금을 의도적으로 동시에 일본 증권시장으로 빼돌리며 몰매를 준 것이 IMF 외환 위기였다. 그러나 그네가 때려잡으려던 한국의 산업 능력은 이미 그들의 턱 밑에까지 이르렀고, 자력으로 민주 정치를 이룩한 한국 국민의 자존심과 애국심이 이미 선진국 수준에 있었음을 간과한 큰 실수를 범했다.
외환 위기를 조기에 종식한 김대중 정부는 한국 경제의 체질을 급속히 개선하였고, IT산업을 중심으로 미래 먹거리를 개척하고, 문화예술의 세계 진출을 지원하여 한국이 선진국 문턱을 넘게 하였다. 이에 한국인의 자부심, 자존감이 되살아났으며, 세계에 떨치는 단계에 이르렀다.
앞의 지도자들은 한 때의 오해나 모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국가 사회를 고양(高揚)하려고 분골쇄신한 당당한 처신을 보였다. 그들이 큰 일을 하여 역사에 기록된 것은 자신의 영광이요, 동시에 국민의 행복이었다. 미국이 탄생하던 240여 년 전에 실시한 민주주의를 21C의 한국에서 시행하지 못하고 자꾸 후진하려는 잡음만 요란한 건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그 싸움판을 지저분하게 끌어가는 집권 세력의 말과 행동이 몰상식하고, 무례하여 못 봐주겠다. 훗날 역사서에 그들의 이름 앞에 ‘조선조의 유자광 같은 간신배’ 따위의 칭호가 붙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202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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