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6월 29일 노태우의 ‘대통령 직선제 수용 선언’은 새 시대를 여는 팡파르였다. ‘72년 ‘10월 유신維新’ 때 독재자에게 빼앗긴 ‘대통령 직접 선출권’이 15년 만에 국민의 손에 돌아왔다.
그간 많은 희생과 곡절을 겪었지만,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은 학생 데모에 30대, 40대의 서울시민이 가세한 ‘6.10 시민항쟁’이었다. 그로써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직을 차지하거나, ‘국정자문단’ 같은 조직으로 후임 대통령을 조종하려던 전두환의 음모는 분쇄됐다. 깨어 있던 시민이 독재자의 끝없는 야욕을 꺾은 것이다.
그 이후 한국의 헌정 질서는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실시로 자유민주주의를 완성하자’는 합의 위에 선 소위 ‘87년 체제’ 또는 ‘87년 패러다임’이라 한다.
‘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가 15만 표 차이로 신승했을 때 한국은 전란 후 10년도 채 못 된 터라, 참으로 가난했다. 넉넉한 것이라곤 사람뿐이었다. 제사 문화와 남존여비 사상만은 확고하여, 간혹 부유한 집에서 딸만 여럿 낳은 경우에도 단산할 생각은 못 하고, 사손(祀孫; 제사를 모실 아들)을 볼 때까지 계속 낳다 보면 7명, 8명의 딸을 낳은 후에야 아들을 보기도 했다. 부잣집이야 7공주든 8공주든, 먹이고 입히고 기른 후 재산을 기울여 시집 보내기도 하련만, 형편이 딱하면 자식을 내다 버리기도 했던지라, 미국, 유럽 등지로 자식들(특히 딸들)이 팔려나가는 경우도 흔했다.
전쟁고아를, 미국이나 유럽의 여유로운 가정으로 보낸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쟁 끝난 후 40년, 50년이 지나 인구가 줄어드는 판국에도 한국은 여전히 고아 수출국 1~2위에 랭크되곤 했으니, 자식을 버려 다른 나라에 양육의 짐을 지운 것이 꼭 빈곤 때문만은 아님이 밝혀지면서, 낯을 붉히게 된다. 민족의 자존감이나, 타국의 입방아에 오를 조국의 품격이 염려돼서다. 세계 꼴찌의 출산율에 애타는 지금의 상황은, 우리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하늘의 징벌인지도 모르겠다.
민족의 기질이 좋고 싫음의 양극단을 격하게 오가는 다혈질이라, 표변하는 성정을 보일 때가 많다. 지난날 가난한 생활 중에도 중용지도中庸之道의 가치를 강조하던 유교식 훈육이라도 있었건만… 인구는 줄어드는데, 출산율은 회복될 기미조차 없다. 후진국의 인력을 데려와서야 산업을 유지하니, 격세지감이 있다. ‘60만 국군 장병’ 운운했는데, 요즘은 ‘50만 장병이 어떻고…’ 하니,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용병으로써 휴전선을 지켜야 할 날이 올 것만 같아, 조국을 떠난 지 오래된 처지임에도 슬며시 걱정스럽다.
박정희 정권은 ‘72년 10월, ‘유신’이란 살벌한 강권 통치로 변질되어 ‘긴급조치’를 남발했다. 그의 사후, 이어지던 전두환 깡패 정권 말기에 발생한 ‘87년 6.10 시민항쟁으로부터도 어언 36년이 흘렀다. 그간 시대가 바뀌었고, 경제 사회상도 크게 변했다. 그러나 국내 정치만은 ‘87년 당시에 지녔던 사고의 틀에 갇혀 시대의 변화를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
즉 한편은 반공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보수당’(아니 태극기만 흔들어 대는 ‘수구당’이라 함이 정확할 듯.)으로서 자기편에게 반대하는 자는 누구든 ‘좌익분자’ 또는 ‘빨갱이 집단’이라는 욕설로 매도한다. 정치권, 특히 여권에서 야권을 대하는 데 비아냥거리거나 상스러운 말투가 일반적이다. 반대편에 도사린 민주화 투쟁 경력을 지닌 진보 성향의 인사들 또한, 감옥을 한두 번 들락거린 것을 훈장으로 여겨 평생 정치판의 기득권 행세를 하려고 한다. 그들의 행태가 캐나다 시민의 눈에는, 좌익분자라기보다 이곳의 자유당과 닮은 중도 우파 성향 정도로 보인다.
공산 종주국 소련이 그 이념의 깃발을 거둔 지도 30년이 지났다. 국정의 상대를 ‘빨갱이’ ‘전체주의자’로 매도하는 자들은 무식한無識漢, 무뢰한無賴漢을 자임하는 것이니, 민주정치를 논할 자질이 없다. 말과 행동은 사람의 지식, 생각, 인격을 담은 그릇인데, 그런 소음을 일으키는 무리가 민족의 명운을 좌우하는 자리에 있다니… 그것이 바로 한국이 지닌 불행의 씨앗이 아닌가.
양대 계파 중, 보수 정당은 무엇을 어떻게 보수保守 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적도 없다. 맹목적인 지지자가 항시 받쳐줄 것이란 믿음이 있어 그러나 보다. 국방 의무를 회피한 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함에도 보수당의 앞에 서서 ‘국가 안보가 어떻고…’ ‘북한을 무력으로 압도해야…’ 등등 안보 전문가인 양 전쟁을 부채질한다. ‘국방의 의무는 남들이 지게 하고, 나는 꿀만 빨면 된다’는 그런 태도는 모든 위선자들이 보여주는 행태의 전형典型이다. 지도자에게 ‘솔선수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요구되는 건 동서고금의 상식인데도 한국에서만은 그렇지 않으니, 국민 정신이 뭔가 큰 착각 속에 헤매고 있는 것 같다.
공산주의도 세습하는 건가? 북쪽의 폭압적 집단은 이제 공산주의자라 할 수도 없다. “봉건 왕조를 무너뜨리고 만민 평등을 기한다”는 공산주의라며 선전하더니, 자기의 기본적 원칙에 배치된 짓을 하고 있다. 북쪽에는 3대째 세습한 ‘김 씨 봉건 왕조’와 그 신민이 있을 뿐이다. (2023. 9.)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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