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가사상과 부국강병책으로 나라의 힘을 키운 진의 왕 영정이 BC 221년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스스로 시황제(始皇帝)라 칭했다. 그는 천하를 순시하던 BC 210년 하북성 사구(沙丘)에서 병사했다. 이때 승상 이사(李斯), 환관 조고(趙高), 막내아들 호해(胡亥) 등이 수행하고 있었다.
황제에겐 20명의 아들이 있었지만, 직언을 잘하던 맏이 부소(扶蘇)는 몽염 장군과 함께 30만 정병을 거느리고 변방에서 장성 축조를 감독하고 있었다. 조고는 ‘권세를 함께 누리자’며 이사를 꾀었다. 그들은 황제의 유조(遺詔)를 위조하여 부소와 몽염에게 ‘자결하라’는 가짜 황명을 보내고, 함양에 돌아가 호해를 2세 황제로 옹립했다.
조고는 2세 황제를 환락에 빠뜨려 정신을 못 차리게 하면서, 승상 이사를 비롯한 중신들은 반역죄로 몰아 하나씩 처치했다. 조고는 승상의 직까지 겸임함으로써 혼자서 모든 권세를 틀어쥐었다. 신하 중에 그의 전횡에 반대하는 사람을 골라내고 싶었던 조고는, 어느 날 사슴 한 마리를 궁궐 안마당에 끌어왔다.
조고가 아뢰었다. “폐하, 저것은 참 좋은 말입니다. 소신이 폐하께 바치려고 구해 온 것입니다.
황제 왈, “승상이 농담을 하시는구려. 사슴을 말이라니.”
조고 왈, “폐하, 말이 틀림없습니다.”
황제 왈, “경들의 눈에도 저것이 말로 보이오? 말씀들 해보시오.”
많은 신하들은 조고의 주장을 반박하기가 두려워서, “폐하, 저건 말입니다. 승상의 말이 옳습니다.”라고 거짓말로 대답했다. 그러나 일부 곧은 신하들은, ‘폐하, 저건 사슴입니다.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라고 다르게 말했다.
조고는 바른말을 한 신하를 전부 찾아내어, 그들을 반역죄로 몰아서 죽였다. 그때부터 조정에서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자는 사라졌다. 차츰 교만해진 조고는 2세 황제를 겁박해 자살하게 하였고, 국새를 황제의 형 자영에게 바치고자 찾아갔다가 살해당했다.
BC 207년 자영은 쳐들어온 유방에게 국새를 바치니, 최초의 대제국은 14년 만에 막을 내렸다. 이상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기다.’라는 고사, 지록위마(指鹿爲馬)와 관련한 사연이다. ‘가짜 황명’, ‘거짓말’ 등이 결국 대제국을 무너뜨린 시초요 바탕이 된 셈이다.
그런데 근래 외교 무대에 나선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바이든”, “날리믄” “쪽팔려서. ” 따위의 ‘품위 없는 말을 뱉었다’느니, ‘아니 했다’느니 하는 논란을 일으켜, 2200년 전 진나라의 그 사건을 비춰지게 한다.
9월 19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간 윤 대통령은 늦게 도착한 탓에 여왕의 관에는 조문이 허락되지 않았다. 다른 나라의 국가수반들은 찰스 3세가 주재한 리셉션에 얼굴을 내민 후 1km쯤 걸어서 조문하러 갔다. 이때도 그는 저녁을 먹느라, 조문하지 않았다. 결국 조문 없는 조문외교를 했다. “직접 상관이 없는 시신에 접근하면 악령이 옮겨붙으니, 가급적 삼가라.”는 천공 법사의 9월 15일자 지침이 그렇게 한 이유일 것이란 말이 나돌았다.
윤석열은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했으나, 미국 측이 거절했다. 9월 21일 바이든이 주관한 ‘글로벌 펀드’ 모금 파티에 찾아간 그는, 예정에 없던 1억 달러를 기부하고, 48초간의 틈새에 인사를 나누었다. 어수선한 파티장 한쪽에 선 채로 몇 마디 나눈 것을 한국 측은 ‘한미 정상회담’이라고 발표했다. 통역을 거친 대화였으니까, 각자가 12초 안에 의례적인 인사와 함께 현안을 충분히 논의한 것이라는데, 그 짧은 순간에 서로 관심 사항을 얼마나 얘기하고, 또 합의에까지 이를 수 있었을까? 도무지 불가능한 얘기다. 윤석열은 그를 홀대하며 회피한 바이든의 제스쳐를 확인하고는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이때 윤석열이 구시렁거리던 소리가, 부실한 조문외교에 쏟아지던 국민적 질타와 함께 새로운 논란거리가 되었다.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펀딩 자금 지출) 승인을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떻게 하냐?”라는 말이었다. ‘이 새끼들’은 60억 달러를 기부한 바이든의 통 큰 조처를 의결할 미국 의원들을 칭한 것일텐데, 그가 미국 의회와 바이든 대통령을 싸잡아 비아냥거린 것이다.
8월 4일 펠로시 하원의장이 왔을 때, 의전을 외면한 실책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만나주지 않은 홀대가 이번 사고와 연계되어 떠오른다. 미국 의회 특히 민주당 의원들이 느꼈을 모멸감이 상당했으리라. 미국 측의 윤석열에 대한 홀대는 그가 준대로 돌려받은 외교 참사였다. 그는 외교 전쟁에 준비가 안 된 채로 거칠게 덤볐다가 이것저것 다 틀어지니, 허탈한 심사에 평소 술자리에서나 쓰던 막말을 내뱉은 것이다.
냉엄한 외교 현장에서의 언행은 단정하고 품격을 지녀야 함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실 미국 의원들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우방국 원수가 ‘Fuxxers’란 쌍욕으로 그들을 매도했으므로, 얼마나 황당했을까? 안으로 헌정질서를 깨뜨리고 혼란을 자초하면서, 밖으로 나라에 망신을 주는 대통령이 너무나 쉽게 긴장을 풀고 무례한 속마음을 터뜨렸다. ‘기본부터 배워야 할 사람’이란 영국 언론의 평이 적중했다.
김은혜 대변인의, “’이 새끼들’은 한국 야당 의원들을 칭한다.”, 또 김대기 비서실장의, “대통령이 욕설한 적이 없었다.” 등 거짓말 위에 또 다른 거짓말로 열심히 덮었지만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그런 코미디가 오히려 조롱거리만 더 늘려놓았다. 집권세력이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그들에 대한 국민의 믿음은 자꾸 떨어진다. 이번 사건으로 나라의 품격과 이미지는 구겨졌고, 국민의 자존심도 상했다.
아득한 옛날 조고의 장난질에 황제께 거짓말로 아뢰던, 진나라의 비굴한 신하들과 오늘날 윤석열 주위의 멍청한 측근들을 비교해본다. 나라의 지도부에 목소리 큰 거짓말쟁이들이 설쳐대고는 있지만, 그들의 언행을 신임하는 국민은 극히 적다. 취임 이래 계속 바닥을 기는 정부의 지지율이 그 증거다. (202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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