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 캘리포니아에 왔다. 캘리포니아에 엄청난 비가 내렸다.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는데 처음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홍수 폭탄을 맞았다고 미 대통령 바이든까지 왔을까. 우리가 온 곳은 Monterey라고 샌프란시스코의 두 시간 남쪽으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오기 전부터 한 5일간은 LA에 가기로 되어있었다. LA에 내 친구 모정식이 자기네 집으로 놀러 오라고 했다. 70년대에 같이 학교를 다녔던 내 친구 모정식, 만나면 약 반세기 만에 만나는 것이 된다. 99년도 내가 한국 나갔을 때 잠깐 만난 적이 있긴 하다. 그때 그가 나에게 자기도 미국을 들어가는 수속을 밟는다고 했다.
그리고는 먹고 살기 바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작년 5월, 시카고 누나네 가는 도중 고속도로에서 전화가 울렸다. 차 화면에 번호가 좀 생소한 번호다. “여보세요?” “혹시 이러이러한 김재기씨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재기야, 나야 정식이, 모정식” 그래 모정식…너의 그때 학창시절의 정식이의 모습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는 문자로 카톡으로 그와 계속 대화를 해 나갔다.
캐나다의 겨울이 추우니 자기집에서 겨울을 나고 가라고 했고, 혹시 우리 아이들이 LA 쪽으로 오거든 자기집에서 묵고 가라고 했고, 이번 캘리포니아에 오거든 자기집은 꼭 들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 정식아 이번에는 너를 꼭 보고 싶다.
그와 대화 중에 그가 내 짝꿍이었다고 했다. 그랬나? 맞다. 내가 캐나다에 온 후에 가장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 받은 것이 정식이었다. 그때 내 편지에 자꾸 영어가 섞이게 되자 그가 답장을 보냈는데 영어가 너무 많이 섞여 읽기가 불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글을 쓸 때 되도록이면 영어는 안 쓰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그건 모정식의 영향이 크다.
이곳에 오자 홍수로 캘리포니아의 길이 끊긴 곳이 많아 위험하다고 가네 마네 의견이 분분했다. 비행기 타고 가려니 그것도 복잡하고, 버스나 기차는 열 몇 시간씩이나 걸리고, 떠나가는 금요일 전날까지 결정을 못해서 내가 선언했다. 내일 아침 차 빌려주는 곳에서 차 빌려 나 혼자 간다. 그러자 셋째 처형이 우리와 동행하기로 하고 셋이 길을 떠났다.
금요일 오전 8시에 출발해 6시간 반 만에 친구네 집에 도착했다. 그의 집에 들어가는데 집 입구부터 별천지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갖은 꽃에, 포도나무 넝쿨에, 금붕어들이 뛰노는 항아리, 항아리에 물 떨어지는 소리, 이건 완전히 화원에 들어온 것 같았다. 초인종을 누르자 나온 정식이,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지만 그의 옛모습이, 내 머릿속을 스쳐갔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세상에, 나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오 헨리는 ‘20년 후’를 썼는데 나에게는 ‘50년 후’라고 하면 되나?
그의 집안에 들어가니 집안도 밖에 못지않게 독특하게 꾸며져 있다. 비싼 걸로 고급스럽게 꾸민 것이라기보다는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집을 꾸몄다. 집 단지가 산 위에 있어 뒤뜰이 숲으로 이어졌는데 뒤뜰로 쭈욱 내려가면 계곡이 있고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는 내 친구 정식이 부부의 취향에 딱 맞는 그런 집이었다.
부부는 에나하임에서 두 곳의 한의원을 운영하며, 외아들은 종합병원 내과의사로, 며느리는 수학자로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데 수학경시대회를 주관하는 곳에서도 일을 한다고 했다. 아들마저도 멋지게 잘 키운 정식이, 집 뒤의 덱크도 혼자 설치하고, 요리도 얼마나 럭서리하게 잘 하는지 내 친구를 재발견하는 귀한 휴가였다.
4박 5일 동안 그의 지극정성을 곁들인 대접을 받았다. 아침은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특식으로 우리가 일류 호텔의 조식을 먹는 듯했고, 낮에는 여러 관광지 등을 안내하였으며, 오랜만에 그의 집에서 노래방을 열고 옛 노래들을 불렀고, 부부가 운영하는 한의원 두 곳을 방문하는 등 친구에게 넘치는 환대를 받았다.
편하게 다녀가라고 배려를 해주신 미세스 모와 바쁜 와중에 아버지 친구를 대접하러 악천후 속에 와준 그의 아들부부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리고, 모든 가족이 건강하기를 바라며 새로 개업한 한의원이 대박 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고맙다 정식아, 또 보자. (202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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