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와 놋그릇

 

요즘 카톡으로 날아다니는 소식이 있다. 미나리를 날로 먹지 말라는 것이다. 미나리는 향기가 특이하지만 한국인들이 좋아해서, 고기 종류의 음식과 함께 즐기며 때로는 생으로도 먹게 되는 채소다.

한국의 미나리 종류는 밭 미나리, 들 미나리, 돌미나리, 불미나리 등 몇 가지되지만, 주로 미나리꽝이라고 하는 논물에서 재배하는데, 거머리가 득실대어도 베어내면 또 자라고 베어내면 또 자라며 그 향기를 잃지 않고 죽죽 큰다. 참 신비하다. 연꽃도 썩은 물에서 자라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 않는가.

미나리에는 거머리나 기생충들이 많고, 눈에 보이지 않는 비브리오균 때문에 날것으로 먹으면 담관암(膽管癌)의 원흉이 된다고 한다. 담관암이란? 간 내 담관에서 발생하는 샘암종(adenocarcinoma)으로 걸리면 생존율이 낮다는 암이다. 위산에서도 잘 안 죽고 보통 기생충 약으로는 퇴치가 어렵다고 하니, 절대로 알고 있는 이상 생으로 먹을 수는 없겠다. 팔팔 끓인다면 그것들이 즉사하겠지.

한국의 경남 합천 해인사 근방에 언양이라는 곳이 있다. 언양 미나리는 예전에 임금님께 진상하던 미나리란다. 산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로 깨끗한 논에서 키워 해인사 스님들이 주로 드신다는데, 해독작용은 물론 수도승들의 정신을 맑게 한단다.

어느 해인가 음력 초파일에 해인사를 찾는 불자들에게 언양 미나리로 잔칫상 베푸는 걸 보았다. 미나리나박김치는 기본, 삶아 무치기도 하고, 겉절이도 먹어보았는데, 사각사각 씹는 그 연한 식감(食感)과 미나리 향에 감탄이 끊이질 않았던 추억이 있다. 과연 임금님께 진상하던 미나리라는 걸 그때 실감하고 확인했었다. 또한 미나리는 체내의 중금속을 흡착하여 배출하는 기능이 뛰어나다고 하니,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좋은 채소임에는 분명하다.

어릴 적에 엄마는 이른 봄 미나리를 사오시면, 우물가에서 놋 양푼에다 물을 담고 미나리를 물에 잠기게 넣으셨다. 잠시 후 작은 막대기로 미나리를 헤치고 보면 크고 작은 거머리들이 놋 양푼 바닥에 떨어져 죽어있는 걸 보았다. 우리의 조상들은 놋그릇에 미나리를 담아 거머리 제거하는 방법을 어떻게 알았을까?

예전에는 집안에 놋 양푼은 물론, 꽃문양이 그려진 삼발이 놋화로, 놋대야, 놋요강, 놋 주걱, 놋 국그릇, 놋 밥그릇, 놋접시, 놋수저, 놋젓가락, 제사 지낼 때 쓰는 모든 제기 등, 다 놋으로 만든 그릇들이었다.

놋그릇은 얼마 동안 사용하면 얼룩이지고 색깔이 파란빛도 띠며 거무죽죽 변하여 모양새가 추해진다. 명절을 앞둔 때에는 일할사람을 불러서 가마니를 펴 놓고, 볏 집을 돌돌 말아서 수세미를 삼아, 불을 땐 후 나온 재나 기왓장 가루를 묻혀 놋그릇을 닦게 했다. 그러면 황금색으로 반들반들한 새 놋그릇으로 변하는 걸 보았다.

엄마는 기품 있는 귀한 황금빛 놋 밥그릇에 밥을 담고 놋대접에 국을 떠서, 할머니와 아버지께 밥상을 차려 올리면 음식 맛이 더욱 맛있다고 하시며 좋아하시던 기억이 있다. 역시 추운 설날 놋 국그릇에 뜨거운 떡국이나 고깃국을 떠드리면, 다 드실 때까지 식지 않아서 좋다고 하시며 맛있게 드시고, 더운 여름에 냉국수나 냉면을 해드리면 다 드실 때까지 시원하게 드시는 걸 보았다.

놋그릇은 보온, 보냉 효과가 있어 찬 음식은 차게, 따뜻한 음식은 따뜻하게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그 온도를 유지시켜 주는 특별한 효능이 있어서, 특히 한식에 잘 어울리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겁고 닦아 쓰기가 힘들어서 그랬는지, 놋 주걱 하나 빼놓고는 놋그릇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어느 날 없어졌고, 놋 양푼 대신 스테인리스로 된 큰 양푼이나 혹은 플라스틱 큰 그릇에 물을 담아, 미나리를 넣고 그 위에 놋 주걱 올려놓는 것을 보았다. 역시 놋 주걱의 구리성분 때문에 거머리들이 죄다 바닥에 숨 끊어져 있었다.

요즈음은 놋그릇이 귀하다 보니 식초 물에 미나리를 담가 놓아 거머리들을 잡는다. 거머리는 미나리 속대에 붙어 살기도 해서 철저히 색출해내어 처형시키지 않으면 담관암에 걸릴까 신경 쓰인다.

우리의 조상들은 어찌 놋으로 그릇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놋은 정확하게 구리 78%와 주석 22%의 비율로 만든다고 한다. 이런 비율을 찾아냈다는 것도 참 신기하다. 78:22 이 비율이 맞지 않으면 강한 놋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성경 구약 출애굽기에도 놋을 여러 군데에서 언급한 걸 보면 놋의 역사는 인류시작과 함께 꽤 오래 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부터 왕실에서는 놋그릇만을 쓴 이유가, 놋그릇은 숨 쉬는 그릇이라 하여 신선도를 유지하고, 그릇 자체에서 살균효과를 내는 것은 구리성분이라 하며, 독극물이 들어가면 색이 변하는 똑똑한 그릇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은수저도 그런 것처럼 과학적으로 세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어도 우리의 조상들은 참으로 영특했다.

코로나로 손 씻기를 자주해야 하는 이때에, 여러 사람이 같이 쓰는 시설로 병원이나 공항, 어린이 집의 손잡이들을 구리로 하면 감염을 차단하고 세균증식을 막는데 도움이 된단다. 구리는 박테리아뿐만 아니라 바이러스박멸에도 살균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전통 놋그릇을 ‘유기(鍮器)’라고도 하는데, 한국의 경기도 안성에 지금도 한국의 전통문화 유기의 맥을 이어가는 ‘안성맞춤 명장 1호’로 선정된 이종오 라는 분이 인터넷에 떠있는 걸 보았다. 예로부터 안성은 유기를 주문하면 손님마음에 쏙 들게 만든다고 해서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거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른 봄 연한 햇 미나리 속대를 많이 썰어 넣고 나박김치를 담으면 동동 뜬 미나리 속대만 골라 먹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아삭아삭 하며 어찌나 그 향기가 좋았던지 지금도 그 향을 못 잊어,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지만 늘 한국미나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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