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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색소폰 부는 것은 좋지만 유행가는 불지 마”

“엄마, 색소폰 부는 것은 좋지만 유행가는 불지 마”

아들 녀석이 말한다. 

 

 제 생각과 안 맞는가 보다. 우리들은 만나면 가곡이 어떻고 가요가 어떻다며 입방아 언쟁을 벌인다. 나의 큰 사위는 이태리에서 10여년이상 성악을 공부하고, 이태리 로마 한인 동포사회에서 활동하는 바리톤 성악가이다. 또한 둘째딸은 한국에서 활약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이다. 

 

 “너희들은 너희들 좋은 대로 해라, 물론 나도 찬송가나 가곡, 동요 등을 좋아 하지만, 색소폰으로 연주할 때면 가슴속에 젖어있는 흘러간 가요가 더 맛이 난다.”고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내 주장은 가곡이든 가요든 때와 장소 그리고 분위기와 취향에 따라 쓰임이 다르다는 것이다. 

 흔히들 클래식이라 부르는 가곡을 노래하거나 악기로 연주하면 인격이나 음악수준이 올라가고, 뽕짝이라 부르는 대중가요를 하면 낮춰보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는다. 

 마음을 터놓고 어우러질 자리에서 갑자기 엄숙한 클래식 곡을 연주하는 것은 흥겨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요즘 한국에선 애창하는 가요들을‘흘러간 유행가’라고 하지 않고, ‘가요명곡’이라고 부른다. ‘흘러간 유행가’가 흘러가버리지 않고 언제 다시 불러도 싫증이 나지 않기 때문에‘명곡’과 뭐가 다르겠느냐는 주장인 것 같다.    

 

 나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할 한 일이 예전에 있었다. 

몹시 추운 2011년 1월 어느 토요일. 캐나다 문협 신년회와 신춘문예 시상식이 토론토 한국일보 도산 홀에서 있었다. 문협 회장이 이메일로 보낸 순서지를 보니 나의 색소폰 연주는 2부 순서로서 여흥 순서였다. 모두를 흥겹게 하는 가요명곡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첫 곡으로‘얼굴’을 택했다. ‘얼굴’은 우리나라 가곡도 되고, 가요도 되지만 노래자체가 좀 은은한 편이어서 중간 중간 테크닉을 넣으며 1절을 불고 나니 반응이 좋았다. 2절까지 부르니 실내의 체감온도가 달라지는 것 같았다. 두 번째 곡으로는‘꿈에 본 내 고향’으로 나이 드신 분들을 겨냥했다. 그러자 L교수 내외분이 앞으로 나와 춤을 추고, 다른 분들도 합세를 하니 분위기가 무르녹았다. 이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소폰 연주곡, 고음으로 부는 Sil Austin 의‘적과 흑의 부르스’를 정열을 다해 연주했다.

 이 곡의 끝부분에 가서는 내가 좋아하는 대목으로 롱 턴을 한없이 길게 뺐더니 참지 못하겠다는 반응들이 끓어올랐다. 

 

 거기서 끝을 내려니까 회장이 와서 팔을 붙잡으며 악기를 넣지 말라고 한다. 3부 순서에도 또 해달라는 것이다. 3부 순서에선 이미자의‘동백아가씨’를, 그 다음 곡으로‘선창’에 이어‘나그네 설움’을 불었다. 모두들 눌려 있던 감정들이 일시에 분출하는 모양이었다. 

 

감정 표현들을 자제하지 못하겠는지 박수를 치며 고성까지 지르고 난리였다. 내가 클래식 가곡을 불었다면 이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모두들 나를 둘러싸고 한 마디씩 던지니 '스타 탄생'의 기분이었다.

 

 많은 분들의 칭찬을 들으니 우선 기분은 좋았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서서히 마음은 무거워졌다. 내가 연주를 잘했다는 말 때문이었다. 실은 기대 보다 좀 나았다는 표현이 옳은 게 아닐까. 앞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잘해야만 그들의 기대치에 미칠 텐데 어떡한다? 부담감이 왔다. 그러나 그 부담감은 나를 더 키울 수 있는 기회이고 자극제이다. 부담감은 스타트를 어렵게 하지만 일단 가속이 붙으면 더 빨리 달릴 수 있게도 하리라.

 뿐만 아니라 연습하는 시간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는 절박한 이유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삶은 도전이다. 

 

 이 나이에 색소폰은 아무나 부나, 

 미쳐야 불고, 용감해야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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