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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억 칼럼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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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죽는 사람들

 

30여 년 전에 눈언저리에 돋아난 이물질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는 적이 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무기력한 환자가 되어 침대에 누었다. 내가 누운 침대가 수술실로 밀려들어가자 두 명의 간호사가 능숙하게 내 몸을 침대에 고정시켰다. 혈압과 심전도 측정을 위한 장치가 끝나자 두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가 부드러운 천으로 덮였다. 다음 순간 태양보다 밝게 느껴지는 불빛이 얼굴에 비쳐왔다.

 

“눈 주위를 마취하기 위한 주사를 놓겠습니다. 움직이면 안 됩니다.” 연하고 엷은 눈꺼풀 사이를 파고드는 주사바늘이 주는 고통은 의외로 컸다. 두 발과 팔을 단단히 침대에 묶어 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대 여섯 번을 계속해서 찔러대는 주사 바늘로 인한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아내야 했다. 외람되게도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미스터 김, 인내력이 대단하시군요. 이제부터는 아프지 않습니다.” 수술이 진행되는 한 시간 남짓 의사는 칼로 베어내고, 가위로 잘라내고, 불로 지저댔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고통은 전혀 없었다. 헤어진 살을 바늘로 꿰매는 작업이 끝나도록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표본실의 개구리’가 되어 누워 있어야 했다.

한 마리 개구리에서 다시금 인간으로 되돌아온 나의 모습은 처절했다. 두 눈 주위를 돌아가며 붙여진 특수 반창고, 그 사이 사이로 번져 나온 핏자국들, 퉁퉁 부어 오른 눈언저리, 이렇게 되도록 내 몸이 학대를 당하는 동안 조금도 아프지 않았던 것은 마취의 놀라운 효과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 수술을 통해 난 마취의 효과가 얼마나 큰가 보다는 참되고 보람된 인생을 살 수 있는 깊고도 진실 된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때까지 반백이 가까운 나이를 먹기까지 난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써왔다. 가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던 소년시절을 지내면서 패배하면 끝장이라는 삶의 철학이 내 몸과 마음에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실패하면 또 다시 도전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환경에게도. 그러나 비겁하게 편법을 사용하거나 부당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한 적은 없다. 부정과 불의와 모순을 묵인하거나 그들과 타협하지도 않았다. 거짓과 모함이나 음모의 희생물이 되었을지언정 그것들을 내 삶 속에 용납한 일도 없다.

 

그러나 나는 이기기 위해선 져야 하고, 참되게 살게 위해선 죽어야 한다는 진리를 머리로는 받아들였으되 실천하며 살지는 못했다. 그러기에 내 가슴은 패배의 아픔과 못 이룬 것에 대한 미련으로 얼룩져 있었다. 모욕이나 멸시를 당하면 분했고,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만학으로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된 후 그와 같은 나의 인생관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난 패배자가 됨으로 참된 승리자가 되며, 죽어지므로 삶의 가치를 발휘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러노라니 멸시와 모욕을 당하면서도 분노를 참으며 웃어야만 했다. 입원한 교인을 방문하기 위해 허기진 배를 안고 병원으로 들어가는 꾸부정한 나의 뒷모습을 본 어느 친구가 말해 주었다. “자네도 이제는 죽어가는 구만” 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난 알고 있었다. 난 그때까지도 이기고 싶어 하며, 웃고 있으면서도 가슴 속에는 눈물이 흐르고, 태연한 얼굴을 유지하려고 애쓰면서도 가슴 속에서 분노가 솟구치는 때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진정 자신을 죽임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이 기쁨으로 열매를 거두는 승리자의 삶이다. 진정 승리하는 인생을 사는 것은 평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나를 죽이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런 패배자가 되셨을 뿐만 아니라 죽기까지 하심으로 최후의 승리자가 되신 분이시다.

철학자 니체는 예수님을 십자가로 보낸 로마 총독 빌라도의 힘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비틀거리며 힘에 겨운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의 연약함을 경멸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기고 산 빌라도는 인생의 비참한 패배자가 되었고, 패배하며 죽으신 예수님의 영원한 승리자가 되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매일 매일 우리들 자신을 죽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의 모진 역경과 멸시와 핍박을 받으면서도 천성을 향하는 승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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