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 -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성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리로 올라갈 때에 또 자기와 함께한 추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다윗이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읍에 살게 하니라.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삼하 2:1-4)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니라.”(삼하 5:1-3)
다윗을 제거하는 것을 그의 인생의 사명으로 믿었던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그들의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자 그의 칼을 배에 대고 그 위에 엎드러져 자결한다.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의 손에 죽기 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 것인지도 모른다. 사울과 그의 세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가 길보아 산 전투에서 전사하자 블레셋 군사들은 사울의 갑옷을 벗기고 그의 목을 벤 후 그 시체를 벳산 성벽에 못 박았다. 그리고는 블레셋 땅 곳곳에 이 소식을 알렸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벳산까지 가서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성벽에서 내려 야베스로 가지고 돌아와 화장하고 7일 간 금식하였다.
다윗은 아말렉군을 격파하고 시글락으로 돌아와서 사울과 그의 세 아들들이 전사한 소식을 알게 되었다. 다윗에게 이 소식을 전한 사람은 아말렉 출신 젊은이로서 길보아산 전투 현장을 지나다 부상당한 사울의 요청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왕관과 팔찌를 가지고 왔노라고 말한다. 이 젊은이는 다윗과 사울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다윗에게 사울이 죽은 사실을 알려준 목적이 다윗에게서 큰 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보고를 듣고 크게 노하여 그를 즉석에서 처형하고 사울과 요나단의 즉음을 슬퍼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를 죽이려던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때와 방법에 따라 최후를 맞이한 사울의 죽음을 애도하며 기도하는 다윗을 보며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선택하신 까닭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일이 있는 후 다윗은 시글락을 떠나 이스라엘로 돌아가도 좋을 지를 하나님께 묻는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유다 지파의 성읍이며 다윗을 추종하는 백성들이 많은 헤브론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다윗이 하나님의 명에 따라 헤브론으로 올라가자 유다 지파 백성들이 그를 추대하고 기름을 부어 유다의 왕으로 삼는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그에게 기름을 부은 지 15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후 마침내 다윗은 유다의 왕위에 오른 것이다.
이 오랜 기간 동안 다윗은 사울을 피해 여러 곳을 방황하며 견디기 힘든 고통과 온갖 수모를 당해야 했으며, 형용하기 힘든 불안과 공포를 안고 쫓기는 자의 신세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다윗은 결코 좌절하지 않고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것을 믿고 기다리는 믿음의 용장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 그 결과 유다의 왕위에 오른 다윗의 믿음을 본받아 살 수 있다면 우리들에게도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 질 날이 올 것이다.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되어 한 첫 번째 일을 사울의 시체를 찾아 장사 지낸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포상한 것이다. 그들은 전에 사울에게 입었던 은혜를 갚기 위하여 한 일이지만 다윗은 그들의 공로를 인정하며 그들에게 상을 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유다를 통치하는 기초로 확립함과 동시에 사울의 통치하에서 상처 받고 흐트러진 민심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삼하 2:6-7)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된 후에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그의 통치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사울이 죽자 그 밑에서 이스라엘 군 총사령관을 지낸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이며 그의 조카인 이스보넷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내세우고 유다의 왕이 된 다윗과 대치했기 때문이다.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로 왕이 되게 한 목적은 이스보넷으로 하여금 사울의 왕위를 계승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기 위한 야욕을 실현시키기 위함이었다.
아브넬은 사울이 다윗을 제거하고 그의 왕권을 든든히 하려고 총력을 기울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일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시기 때문임도 아브넬은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던 아브넬은 유다의 왕이 된 다윗의 충성된 신하가 되었어야 했다. 그런데도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넷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것은 그가 모시던 사울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가 아닌 그의 개인적인 욕망의 실현을 위한 것이었던 것이다. 아브넬의 힘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된 이스보넷은 여러 면으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 정치 경력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 또한 아브넬이 그를 왕으로 추대한 진정한 이유는 그의 왕권 위에 군림하여 이스라엘을 자기 손아귀에 넣기 위한 것이었음을 분명히 해준다.
이스보넷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다윗과 대적할 수는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브넬이 이스보넷을 왕으로 내세워 다윗과 겨누려 한 것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하신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도전한 행위였다. 따라서 아브넬은 해서도 안 되고, 성사될 수도 없는 무모한 일을 자행하는 큰 죄악을 범한 것이다. 그 결과 그는 다윗의 부하 장수 요압에 의해 살해당하게 되는 것이다.(삼하 3:22-27) 이 같은 아브넬의 과오와 그로 인한 그의 불행한 최후를 보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된 다윗은 아브넬의 섭정에 의한 이스보넷의 왕권을 무력으로 무너뜨려 통일왕국을 이루려 하지 않았다. 대신 인내와 믿음으로 무장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유다를 계속하여 통치하고 있었다. 그러자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대표들이 찾아와 그를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하게 되는 것이다.(삼하 5:1-5)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된지 7년 만에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려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 보며 우리는 어떤 시련과 역경이 닥쳐올지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때까지 인내와 믿음으로 겸손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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