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 남침한 북한 공산군은 수도 서울을 장악한 90일 동안 천일공노 할 만행을 저질렀다. 때문에 1951년 1월 4일 유엔군이 소위 작전상 후퇴로 다시 한 번 수도를 저들에게 내주게 되었을 때 모든 시민들은 앞을 다투어 서울을 벗어났다. 가다가 죽더라도 그들의 포악함과 잔인함을 다시 맛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울거리에 인적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서울을 떠날 수 없었던 극소수 선량한 시민들이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바뀌는 세상에 편승하기 위한 악한 무리들의 눈치를 살피며 도시 구석구석에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가운데 특수 목적을 지니고 공포의 도시에 남아 있었던 작은 집단이 있었으니, 서울을 벗어나지 못한 불행한 시민으로 위장한 국군첩보대가 그들이었다.
그들은 부부, 부자, 혹은 친척으로 행세하며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다가 정체가 탄로 나게 되자 필사의 적진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피차간에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지고 아내로 위장했던 여자가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저는 틀렸어요, 어서 여기를 벗어나세요.” “당신을 남겨두고는 결코 이곳을 떠날 수 없습니다.” 진정과 결의로 가득 찬 남자가 말했다. 그들은 부부로 위장한 사랑하는 남녀였던 것이다.
“당신은 가셔야 합니다. 당신이 사는 것은 제가 사는 것이니까요.” 남자를 올려다보는 여자가 밝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어느 작품의 한 대목이다. 작가도 제목도 내용도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지만 숨져가는 여자가 남긴 “당신이 사는 것은 제가 사는 것입니다”란 말은 물망초 꽃잎처럼 내 가슴에 남아있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만남이 없어도 대화할 수 있고, 함께 호흡할 수 있은 사이가 그들이다. 그네들은 서로의 가슴 속에 새겨져 있다.
아름다운 사랑, 부러운 사랑, 해보고 싶은 사랑이다. 그러나 난 이들보다 깊고 참되며, 성스럽고 아름다운 사랑을 한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서로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타인들이었다. 서로가 무관심하였고, 미워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가 되면서 자신을 회생하며 서로를 돕고 격려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모함이니 질투나 서로를 향한 비난의 감정 같은 것은 그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을 향해 세상 사람들은 말했다. “보라! 저들은 얼마나 서로 사랑하는가!”라고.
그네들이 살던 시대로부터 2,0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모든 것이 변하고 발전하고 풍요해졌다. 하지만 그들이 나누었던 사랑 같은 건 찾아볼 길이 없다. 풍족하고 안락하고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은 할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사랑의 결핍으로 진통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외로움과 슬픔의 늪 속에 빠져있는가 하면 북미 땅에는 먹을 것이 너무 많아 비만증에 걸리는 사람들이 늘어가지만 지구 저편의 제3세계의 어린이들은 먹지 못해 죽어가고 있는 슬픈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사랑의 온실이 되어야 할 교회에서 조차 사랑의 불길이 꺼져가고 있다.
어째서 이런 슬픈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왜 교회와 교인들은 날로 늘어나는데 세상은 날이 갈수록 병들어 가고 타락해 가는가? 믿는 자들의 가슴 속에 사랑의 불길이 사그라들었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는 사랑하자고 외치면서 실천은 하지 않기 때문이라 말해도 잘못된 것은 아니리라.
우리 모두 우리들 가슴 속의 사랑을 점검해 볼 때다. 그리고 냉랭해진 우리들의 가슴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채울 때다. 주안에서 형제자매 된 우리들이 먼저 사람으로 하나 되어야 하리라. 예수님의 사랑이 강권적으로 우리를 그의 형제자매로 삼으셨으매 우리들은 결코 헤어 질 수 없는 사이임을 깨달아야 한다. 다시는 안 불 것처럼 모른척하며 멸시하고 증오하다 훗날 주님 앞에서 다시 만날 때 그 부끄러움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헤어질 수 없는 우리 믿음의 형제자매들은 주안에서 하나 되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메마르고 강퍅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채워주어야 한다. 방황하는 영혼들을 구원열차에 탑승시켜야 한다. 제각기 멸망의 길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은 결코 헤어질 수 없는 사람들의 대열 속으로 불러드려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신 인생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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