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피 중에도 사울을 구한 다윗 –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들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는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삼상 24:1-7)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매, 사울이 일어나 십 광야에서 다윗을 잡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과 함께 십 광야로 내려가서 사울이 광야 앞 산 길 가에 친 치니라. 다윗이 광야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광야로 들어옴을 알고, 이에 다윗이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을 알고 , 다윗이 일어나 사울이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사령관 아브넬이 머무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에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삼상 26:1-5)
다윗이 사울을 피해 여러 곳을 방황하던 중 엔게디 광야에 이르렀을 때, 사울이 3,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그를 잡으러 왔다. 사울이 이처럼 많은 군사들을 동원한 것은 다윗을 잡으려는 그의 의지와 집념이 엄청나게 강했음을 말해 준다. 동시에 그 당시 다윗에게도 그의 폭정에 항거하여 다윗에게로 간 용맹스럽고 신앙으로 무장된 600명의 군사들이 일었음을 의식했기 때문이라 사료된다.
엔게디 지역은 석회석 지대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크고 작은 동굴들이 많았다. 때문에 양치는 목자들은 그 중에 적당한 것들을 골라 그들의 생활 주거지로 삼기도 했고, 날씨가 사납거나 추울 때는 가축들의 거처로도 이용하였다. 다윗과 그의 병사들은 이들 동굴 중 하나에 은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윗 일행을 일망타진 하려 온 엔게디 광야에 온 사울이 용변을 보려 다윗이 숨어있는 동굴로 들어 왔다. 그러자 다윗의 병사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이니 사울을 죽여 지겨운 도피생활을 끝내자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의 마음은 몹시 흔들렸을 것이다. 그에게는 사울을 죽일 만한 충분한 까닭과 권리가 있었으며, 그 절호의 기회를 노치지 않고 사울을 죽이면 쫓기는 자의 신세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사울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면 그는 주저하지 않고 다윗을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선택하여 기름 부은 이스라엘의 왕을 자기가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사울을 죽여서 편하게 살겠다는 유혹을 뿌리치고 살금살금 기어가서 사울의 옷자락만 잘랐다. 그러고는 사울을 죽이기를 원하는 부하들에게 그를 해치지 말라고 명령한다.
쉽게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도 다윗이 그를 살려주는 것을 보면서 우리들은 사울은 다윗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고 없애야 할 정적으로 간주했지만 다윗은 사울을 그의 앞길을 막는 장애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울이 볼 일을 마치고 굴 밖으로 나가자 다윗은 뒤따라 나가서 부하들이 그를 죽이자고 했고, 또 그를 쉽게 죽일 수도 있었는데 그의 몸에는 손 하나 대지 않고 옷자락만 베었다고 말하며, 어째서 왕은 나를 죽이려 하냐며 그에 대한 적개심을 버리고 그로 하여금 편히 살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다윗의 말을 들은 사울은 큰 소리로 울며 “네가 선으로 악을 갚는 것을 보니 나보다 낫구나.”라 원수를 손아귀에 넣고도 그냥 놓아준 다윗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사울이 다윗을 용납하거나 그를 죽이려는 마음을 바꾼 것은 결코 아니었다. 더 이상 너를 찾지 않겠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사울은 자기의 길을 갔고, 다윗과 그의 군사들도 그들의 은신처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사울은 다윗의 행방을 탐색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다윗 일행이 십 광야의 하길라 산에 숨어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사울은 또 다시 3,000명의 정병을 이끌고 십 광야로 가서 하길라 산 길가에 전을 쳤다. 이를 알게 된 다윗은 그날 밤 사울의 진영으로 잠복해 들어가 살펴보았다. 사울과 그의 군사령관 아브넬은 진지 안에서 잠들어 있었고, 그들을 둘러싼 병사들도 졸고 있었다. 이를 본 다윗은 요압의 동생인 아비새와 함께 사울이 누운 곳으로 접근해 보니 사울의 창이 그의 머리맡에 꽂혀있었다. 아비새가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또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제가 가서 단 번에 해치우겠습니다.”라 속삭였다. 그러자 다윗은 단호하게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사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만을 집어 들고 그 곳을 떠난다.
다윗이 이 번에도 사울을 살려준 까닭을 간단히 요약하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그의 때에, 그가 정하신 방법으로 사울의 목숨을 거두실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마땅히 죽여야 할 사울을 두 번씩이나 살려준 사실로부터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할 줄 안다.
첫째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어떤 위급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그를 보호해 주셨다는 사실이다. 사울이 아무리 잘 훈련된 병사들을 동원했어도 성공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다윗에게는 결코 사울이 생각한 대로 그를 밀어내고 왕이 되겠다는 야망이 있거나 그를 해칠 의사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모든 문제는 사울의 질투와 시기와 오해 그리고 그의 열등감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기름 부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일꾼을 인간들이 공격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다윗이 그의 군사들이 권고를 무시하고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준 것은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공의로 해결해 주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든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우리도 이 같은 다윗을 본받아 살면 “평생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며 천성문을 향해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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