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셋 땅으로 망명하는 다윗-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며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다윗이 그 말을 그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아기스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들 내게로 데려왔느냐?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삼상21: 10-15)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삼상 27:1-2)
다윗이 사울을 피해 놉으로 간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었다. 거기서 대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나 왕의 특수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왔다고 말한 것도 큰 실수였다. 그로 인해 아히멜렉을 비롯한 제사장 85명과 그들의 가족들이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비극은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그의 판단만 믿고 행동한 데서 시작된 것이었다. 다윗의 실수는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대량 학살하는 것을 보고 더욱 신변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적지인 블레셋으로 망명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원수지간이다. 때문에 다윗이 피난처로 블레셋 땅을 택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아마도 사울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마음이 약해지고 순간적으로 판단력이 흐려졌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윗은 그 나름대로 블레셋 땅이 그에게 안전한 은신처가 될 수 있다고 믿었을 수도 있다. 가드는 블레셋 영토이며 엘라 골짜기에서 그가 물맷돌로 죽인 골리앗의 고향이기도 했다. 때문에 얼핏 생각하면 그곳에 가면 이스라엘 지경에 있는 것보다 더 위험해 질 것 같지만 다윗은 반대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가 골리앗을 죽인 것은 오래 전 일이기에 가드 사람들이 그 일을 잊어버렸거나 그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그를 알아본다 할지라도 그들과 원수지간인 이스라엘의 사울 왕과 적대관계가 된 다윗에게 우호적일 것이라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드 사람들은 다윗을 잊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군이 승전하고 돌아올 때 여인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 노래한 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상황이 그가 예상했던 대로 전개되지 않자 다윗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미친 사람 행세를 한다. 전에는 골리앗을 물리칠 만큼 용맹스러웠지만 미쳐버린 지금을 상대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임을 아기스 왕에게 주지시키기 위해서였다.
다윗의 연극은 효과를 거두어서 아기스 왕은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는 다윗을 보고는 “어째서 저런 실성한 놈을 내 집까지 끌고 와서 나를 번거롭게 하느냐?”며 신하들을 꾸짖는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으로 선택한 다윗이 그 같이 추한 모습을 이방 왕 앞에서 보인 것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하나님은 다윗의 인간적인 과오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아기스 왕이 다윗이 정말 미처 버린 것으로 믿게 함으로 그를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주셨다.
다윗은 후일 그가 목숨을 구하여 블레셋 땅으로 피했고, 아기스 왕 앞에서 미친 사람 행세를 한 것이 얼마나 잘못되고 부끄러운 일이었던가를 회개한다. 그리고는 그를 아기스 왕으로부터 구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시 118:8-9)라고 하나님을 향한 그의 굳건한 믿음을 고백하고 있다.
미친 척하여 가드 왕 아기스의 지역에서 벗어난 후에도 다윗은 사울의 끈덕진 추격을 피하여 아둘라 굴, 헤렛 수풀, 십황무지 등 여러 곳을 방황해야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엔게지 황무지와 십황무지 하길라 산에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에게 기름부음 받은 사울을 죽이기를 원하지 않았다. 사울은 두 번이나 다윗이 자기를 죽일 수 있었음에도 살려준 것을 알고는 “네가 내 생명을 구했으니 나도 다시는 너를 해치지 않겠다”며, 다윗에게 그의 곁으로 돌아오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윗은 얼마 가지 않아 사울이 또 다시 그를 죽이려 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블레셋 땅으로 피신하여 사울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로 마음먹는다.
아기스 왕 앞에서 실성한 척함으로 목숨을 구한 경험이 있는 다윗이 또 다시 그에게 가기로 결정한 데는 그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다. 우선, 아기스 왕은 다윗과 사울이 완전히 적대관계인 것을 알았을 것이기에 그를 받아들이면 자기에게 손해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하리라는 것이 다윗의 생각이었다. 두 번째로, 아기스 왕을 찾는 다윗에게는 600명의 군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윗이 첫 번째로 가드로 망명했다 돌아와서 아둘람 굴로 도망갔을 때 다윗을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울의 학정 밑에서 고통 당하거나 부당하게 착취당하면서 불평과 불만 가운데 지내다 다윗과 함께 행동하기 위해 그를 찾아왔으며, 그 수는 400명에 달했으며 얼마 안 되어 600명으로 늘어났다.(삼상 23:13)
다윗은 600명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온 그를 아기스 왕이 전처럼 대하지는 않을 것이라 예측했을 것이다. 600명의 군대를 거느린 다윗을 휘하에 두고 활용하면 그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아기스 왕이 판단할 것이라고 다윗은 생각한 것이다. 그 같은 다윗의 생각은 옳았다. 다윗 일행을 맞이한 아기스 왕은 그를 위험인물로 간주하지 않고 그의 지경에서 지내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다윗이 그의 일행이 조용히 지낼 수 있는 한 성읍을 할당해 달라고 요청하자 아기스 왕은 두말하지 않고 가드에서 멀지 않는 한적한 시글락에서 그들이 지낼 수 있도록 조처해 주었다.
그렇게 하여 다윗은 블레셋 땅에서 안전하게 망명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윗은 혼란한 시국을 틈타 이스라엘의 변방을 침략하여 약탈행위를 일삼는 그술, 에르스, 아말렉을 공격했다. 그때 마다 다윗은 그곳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으며, 가축들과 의복을 약탈하곤 했다. 조국 이스라엘을 도우면서도 이 사실을 아기스 왕이 모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블레셋 땅 가드로 두 번이나 망명한 것은 크나큰 실책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때문에 다윗을 버리지 않으셨다. 다윗은 위급한 처지를 모면하기 위해 자기 생각대로 행동했을 지라도 하나님은 그가 기름 부어 왕으로 택한 다윗과 동행하시며 모든 위험에서 그를 구해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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