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라는 감정처럼 자신과 주위를 괴롭고 비참하게 만드는 것도 드문 것 같다. 분한 생각은 마음의 평안과 안정을 송두리째 빼앗아 갈뿐 아니라 분별력을 상실케 한다. 그러기에 응어리진 분노는 이성의 절제를 받지 않고 언행을 통해 나타나며, 그 결과는 자기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와 피해를 입히게 된다.
그 좋은 예를 1992년 4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흑인 폭동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수많은 인명과 엄청난 재산 피해를 내며 며칠간 나성일대를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던 폭동의 발단은 경찰의 비인도적인 흑인 탄압에서 시작되었다.
폭동이 일어나기 일 년 전인 1991년 3월 3일 고속도로 순찰대가 과속으로 질주하던 차량을 붙잡았다. 운전자인 흑인 남성 로드니 킹은 음주 상태였으며, 그를 체포하려는 4명의 백인 경찰에게 결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런 그를 경찰관들은 길바닥에 눕혀놓고 곤봉으로 난타하며 구두발로 짓밟는 등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은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비디오에 담겨서 재판정에 제출되었다. 그러나 이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경찰관들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때 배심원들은 흑인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10명의 백인, 1명의 히스패닉 계의 미국인과 1명의 아시아 계 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부당한 판결을 보도되자 흑인들은 분노했다. 떼를 지어 거리로 내달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고, 불을 지르고, 약탈을 했다. 로스앤젤레스를 불법지대로 만든 이 흑인폭동으로 50명 이상이 살해당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으며 천문학적 숫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고 알려졌다. 그곳에 거주하던 우리 동포 상인들이 당한 재산 손실만도 5억불을 능가한다고 보도되었다.
비록 잘못은 했지만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인권을 박탈당하고 짐승처럼 두들겨 맞는 동족을 바라보며 느꼈을 설움은 크기만 했을 것이다. 만인에게 평등해야 할 법마저 그들의 억울함을 해결해 주는 대신 위법자를 무혐의로 인정하는 불법을 저질렀을 때 끓어올랐을 그네들의 격분된 마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분노”는 “증오”로 변했고, 그 증오는 살인과 방화, 약탈이라는 “폭력”으로 변해버렸다. 그들의 분노는 자신들을 불법자로 만들었고, 안정된 사회질서를 파괴했으며, 수많은 선량한 시민들이 애써 키워 온 꿈을 무참히 깨어 버리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분노가 도화선이 되었던 이 흑인 폭동을 보며 예수님이 분노하셨던 경우와 비교해 본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하시며 “성내지 말 것”을 가르치셨다. 하지만 예수님 자신이 분노하셨던 경우가 몇 번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오른손을 못 쓰는 사람을 고쳐준 일이 있다. 그때 그 광경을 목도한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정죄할 마음을 품는다. 그들의 생각을 훤하게 들여다보신 예수님은 분노하셨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매매행위가 성행하는 광경을 보셨을 때로 예수께서는 노하셨다. 이 같은 예수님의 분노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예수님은 한 번도 자기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거나 모욕을 당했을 때 화내신 적이 없으시다. 그에게 숱한 사랑의 빚을 지고서도 빌라도의 법정에 선 그를 향해 “저 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을 때도 예수님은 한탄하며 분노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와 진리가 외면당할 때 예수님은 분개하셨다. 하나님의 집이 인간을 탐욕으로 인해 더럽혀지는 것을 보면서도 그 분은 노하셨다.
고난과 핍박 속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위선으로 가득한 종교 지도자들이 비웃으며 조롱할 때도 예수님의 가슴엔 분노의 불길이 점화되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분노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기 위한 사랑의 분노이며, 거룩한 분노였다. 따라서 예수님의 분노는 자신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질서를 파괴하거나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도 없었다.
우리들의 가슴에 솟구쳐야 할 분노는 이 같은 예수님의 분노를 닮은 것이어야 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마땅히 분기충천하여 일어나야 할 때 침묵하며, 인내하며 잠잠해야 할 때 불 같이 화를 냄으로 나와 내 이웃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야 할 줄 안다.
의로운 분노를 발할 수 있는 우리들 되어야 겠다. 그래야만 우리는 세상이 혼란과 무질서와 악과 불의가 맞서 싸우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어 드릴 수 있는 십자군의 정병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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