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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억 칼럼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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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고독

 

1962년 10월14일에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쿠바 해협을 봉쇄하고 흐루시초프 소련 수상에게 쿠바내의 소련 미사일 기지를 즉시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쿠바 해협에 접근하는 모든 선박들에게 발포할 것을 명령하고, 14,000명의 예비역 공군을 재소집함과 동시에 소련과의 핵전쟁에 대비하는 조처까지 취했다. 이른바 쿠바 미사일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쿠바의 위기가 계속되는 동안 전 세계는 3차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실제로 미 국무성은 그것에 대비한 모든 준비를 진행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는 어느 날, 케네디 대통령이 백악관 그의 집무실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사진이 Time지에 실렸고, 그 밑에는 “세계에서 제일 고독한 사나이”라 쓰여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권력과 영광의 자리에 앉아있는 미국 대통령이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지도 모르는 결정을 앞두고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고독 속에 묻혀버린 것이다.

 

그때 케네디가 느꼈던 고독은 우리들이 상상하기조차 힘들게 깊고도 심각한 것이었을 게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고독은 아니었다. 전 세계는 지구를 파멸시킬 수도 있고, 보존할 수도 있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결단을 내리기 위해 홀로 앉아 골몰하는 그가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기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의 고독은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케네디의 고독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진정 힘들고 비참한 고독을 맛보았던 분이 계셨으니, 그가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께서 당하신 고독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 성문 밖에 있는 갈보리 언덕에 올라가야 한다. 나지막한 갈보리 언덕 위에 초라한 십자가 세 개가 세워져 있고, 오른편과 왼편의 십자가엔 흉악한 강도들이 못 박혀 신음하고 있으며, 가운데 십자가에는 가시관을 쓰시고 채찍에 맞아 찢어진 몸과 못 박힌 손, 발에서 피를 흘리시며 기도하고 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눈에 들어온다.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려 하늘 영광을 버리고 오셨으나,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고 홀로 되신 예수께서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사형방법으로 알려진 십자가형에 처해진 것이다.

 

예수께서 죄 짐을 지고 멸망의 길로 향하는 인간들에게 줄 ‘구원’이란 선물을 안고 세상에 오셨을 때 아무도 그를 위해 따뜻한 방 한 칸 내어주지 않았다. 미치광이 헤롯 왕의 칼날을 피해 마리아의 품에 안겨 애굽으로 피신하는 아기 예수의 작은 가슴에 스며들었을 처량한 외로움을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나사렛 작은 마을의 목공소에서 매일 그가 져야 할 무거운 십자가를 의식하며 지내야 했던 예수님을 억눌렀던 고독은 크기만 했을 것이다. 병든 자를 고쳐주시며, 버림받고 고통 받으며 억눌린 자들을 감싸주셨지만 감사와 찬양을 받기 보다는 언제나 배척당하기면 했던 예수님의 슬픔 또한 컸을 것이다. 그가 당하신 이 모든 고난과 슬픔으로 인해 고독하기만 하셨을 예수님을 사람들은 위로하기는커녕 멸시하고 핍박하다 끝내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이다.

 

이마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등에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로마 병정들의 채찍을 맞으며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님의 뒤를 따른 사람들은 요한과 여인 몇 명뿐이었다. 예수께 충성을 맹세한 다른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숨어버렸던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치셨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으며, 각종 불치의 병을 고쳐주신 사람들은 물론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까지 버림받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그를 조롱하는 무리들을 내려다보시며 느꼈을 고독의 깊이와 슬픔을 우리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예수님의 고독의 정점을 아니었다. 세상은 그를 버렸을 지라도 아버지 하나님은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오가 되자 광명하던 태양이 빛을 잃고 온 세상이 어둠에 잠겼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 짐을 등에 지신 아들 예수님을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버리셔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로부터 등을 돌리시자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외치셨다. 예수님의 이 처절한 절규를 들으며 우리는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사나이가 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만든 것은 그를 판 유다도 아니요, 그를 죽이려 한 헤롯 왕도 아니고, 그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한 빌라도 총독도,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도 아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고, 죄를 쳐다보실 수도 없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외아들 예수님을 버리셔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죄로 인해 예수님은 십자가로 가셨고, 우리들의 죄 짐을 지셨기에 예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으셨다. 이 사실을 깨닫는 다면 우리는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야만 한다. 그래야만 그 분을 고독으로부터 해방시켜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계속하여 “나의 길”을 걸어간다면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사나이로 십자가에 달려 있어야 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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