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하면 슬픔과 고통과 아픔을 연상한다.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눈물은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원통함과 억울함의 소산물일 때가 많고, 외롭고 슬픈 사람들이 많이 흘리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렇다면 눈물로 얼룩진 인생을 산다는 것은 남보다 더한 역경과 시련과 좌절과 아픔 속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도 될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할 때 예수님은 누구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릴 조건을 가지셨던 분이었다. 비록 33년 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을 이 땅 위에 계셨지만 주님처럼 슬프고 고달프고 고통스럽고 천대받은 인생을 산 사람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은 그의 전 생애 중 단 두 번 눈물을 흘리셨을 뿐이다. 한 번은 그의 사랑하는 친구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였고, 또 다른 한 번은 감람산 위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면서였다.
예수님은 고통과 천대와 멸시의 가시밭길을 걸으시면서도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위해 울지 않으셨다. 온 인류의 숱한 번민과 슬프고 괴로운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면서도 초연하셨던 예수님이셨다. 그런 예수께서 어째서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우셨을까? 그것도 자신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서 영광 받을 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숨진 나사로를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눈물은 인간을 향하신 놀라운 사랑의 표현이라 믿는다. 강한 자와 가진 자들은 부러워하며 두려워하되 약한 자와 없는 자들은 천대하고 멸시하는 것이 인간세상이다. 그러므로 비천하고 낮은 사람들은 그들의 슬픔과 고통까지도 외면당하는 쓰라린 운명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데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한 시골 청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머리 숙이고 우신 것이다. 가족과 가까운 친지들 외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무명의 젊은이 나사로가 잠든 무덤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와 슬픔의 눈물을 흘리신 것이다.
나사로를 위한 예수님의 눈물은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두려움과 공포에 싸여 번민하고 고민하는 연약한 인간을 향한 따뜻한 우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다정한 벗이 유명을 달리하여 정다운 그의 음성을 다시는 듣지 못하게 될 때 우리의 마음은 산산이 깨어진다. 비록 남아있는 정다운 벗들의 위로와 격려가 곁에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도 각자의 길을 가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세상 끝날 까지 외롭고 슬픈 우리와 함께 동행 하시겠다는 약속의 표시로 나사로의 무덤을 찾아 뜨거운 눈물을 흘리신 것이다.
예수님은 한 나약한 인간 나사로 만을 위해 우신 것은 아니다. 감람산 위에서 예수께서 흘리신 눈물은 전 인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내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장터는 각종 매매행위로 떠들썩했고, 아이들을 공연히 신이 나서 골목길을 내달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과 지인들은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바빴고, 병정들은 긴 창을 메고 성내를 순시하고 있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도 유월절 행사준비를 하노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같이 활기에 찬 성내를 보시던 예수께서 불현듯 눈물을 흘리신 것이다.
활기차고 힘차게 생동하는 삶의 현장을 내려다보시며 예수님은 어째서 우셨을까?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기쁨과 희망 속에 그들의 삶을 즐기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환희를 종식시킬 멸망의 그림자를 보셨기에 우신 것이리라. 지은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맞아드리지 않으면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희희낙락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바라보시면서 예수님은 슬퍼지신 것이다. 생명의 주인이시며 하나님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신 예수께서 오셨건만 그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대신 그를 멸시하고 배척하며 죽음의 행진을 계속하는 인간들을 바라보며 예수님은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나사로의 무덤을 찾아가 우셨던 예수님은 오늘도 외롭고 고달픈 인생길을 걸으며 신음하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눈물 흘리고 계신다.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며 슬픔에 젖으셨던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을 하늘보좌에 내려다 보시면서도 예수님은 지금도 슬퍼하시고 계신 것이다.
이 순간에도 우리들을 위해 눈물 흘리시는 예수님의 손을 잡고 모든 인생의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힘찬 삶의 행진을 계속해야겠다. 무겁고 힘든 죄 짐을 지고 멸망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그들의 슬픈 운명을 인식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과 함께 애통의 눈물을 흘려야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슬픔에 동참하며 그 분의 눈물을 닦아 드리는 것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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