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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억 칼럼

    (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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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동반자

오래 전 단체로 미 서부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 5박 6일 동안 우리 일행을 담당했던 안내원은 여러 번이나 “여행은 목적보다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합니다”란 말을 했다. 여행을 좋아해서 기회 있을 때마다 북미의 여러 곳들을 다니면서 나도 늘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의 말에 동조하면서 마음속으로 그에게 들려주었다. “과정이 의미 있으려면 좋은 동반자를 만나야 한답니다”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 보다 몇 년 전에 한국에 다녀오며 여행의 과정과 동반자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지녔는가를 피부로 느꼈던 기억을 회상해 보게 되었다.

 

그때 고국을 다녀왔던 여행은 처음부터 기억할 만한 일로 시작되었다. 집을 나서려는데 표를 구입한 여행사에서 “좋은 자리를 마련해 드렸으니 편히 다녀오시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공항에 나가 수속을 마치고 기내에 들어가니 2층에서도 제일 공간이 넓은 앞자리가 내 좌석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널찍한 좌석이 침대처럼 거의 수직으로 눕혀지는 특등석에 편히 누어 하늘을 나르면서 나 같은 평범한 고객에게까지 최선을 다해 이런 호의를 베푸는 여행사 측에 감사했다.

 

새벽 1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세관을 빠져나가니 토론토에서 서너 번 도움을 준 일이 있는 L씨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부인에게서 내가 서울 간다는 전화를 받고 한 밤중에 인천까지 달려온 것이다. 서울행 리무진이 운행을 시작하는 4시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이 그의 차로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 도착하니 그 곳을 예약해준 K목사님 말대로 경비원이 친절하게 지정된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나를 향한 주위 분들의 사랑과 호의에 감사하며 서로가 성의껏 상대를 돕는다면 모두들 기쁨과 만족을 느끼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몇 시간 수면을 취하려 했다. 그러나 걸려오기 시작한 전화들 때문에 쉴 틈도 없이 서울에서의 첫 날을 시작해야 했다. 숙소를 나서는 순간부터 혼탁한 공기로 목이 따끔거렸고, 어디를 가나 자동차와 사람들로 봄비는 서울 시내가 극도로 복잡하면서도 생소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참으로 감사하게도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이 거대한 도시에서 이방인이 아님을 느끼게 해주었다. 세 번 이상이나 강산이 변하는 오랜 세월 동안 불과 세 번째로 찾아온 나이기에 그런지는 몰라도 모두들 진정으로 반가워하며 다정하고 따뜻하게 맞아주었기 때문이다. 계획했던 일들도 기대이상으로 잘 해결되었고, 수필집 “달팽이의 행진”도 출판사에서 좋은 조건들을 제시해 주어서 만족할만한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서울 방문이 진정 잊을 수 없는 여행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시절 글자 그대로 서로의 분신처럼 지내던 친구들과 서해안 일대를 돌아볼 수 있었다는 데 있다. 친형제 이상으로 가깝게 지내던 일곱 명 중에서 미국에 있는 춘배군과 국내에 있기는 하지만 건강문제로 집을 떠날 수 없는 J군을 제외한 우리 다섯은 차에 오르는 순간부터 억제하기 힘든 감격과 흥분에 사로잡혔다. 마음은 간직한 꿈으로 늘 풍요했지만 주머니는 언제나 비어있었기에 우리들은 언제나 “가진자”들의 풍요를 애써 외면하며 우리들에게도 저들과 같은 날이 오리라는 희망만을 품고 지내야 했다.

 

대학 2학년 때, 춘배군과 윤식군 그리고 내가 동해안을 따라 소위 무전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웠다. 그러나 그때 주머니가 비었던 우리는 여행 내내 불안했고 배고팠다. 서울서 강릉까지 가는 기차에서 우리 앞에 앉은 중년 신사가 점심으로 삶은 계란이 수북이 담긴 찬합을 열고 꺼내 먹은 것을 보며 우리 셋은 침을 삼키며 쳐다보고만 있어야 했다. 난 속으로 그가 “학생들, 하나씩 먹겠어?”라며 계란을 우리들에게 집어 주기를 바라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계란 대 여섯 개를 먹어 치우더니 남은 계란들이 들어 있는 찬합 뚜껑을 닫고 짐 속에 집어넣었다.

 

그때 일이 어제 같은데, 고급 승용차를 타고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는 처지들이 되어 서해안을 달리면서 내 마음에 찾아든 감격은 크기만 했다. 하지만 진정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 것은 밤과 낮이 다른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40 년 가까운 긴 세월을 서로의 삶에 몰두하던 우리들이 전혀 간격 없는 학생 때의 너와 나로 되돌아가 여행길에 오르게 된 사실이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차를 몰며 우리들이 함께 지낸 2박 3일은 진정 아름답고, 보람되고, 의미 있었던 나의 삶 속에서 잊을 수 없는 기간이었다.

 

우리들이 서해안 일대를 60여 시간에 걸쳐 누빈 그 여행이 내 생애 최고의 여행 중의 하나로 간직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같이 간 동반자들 때문이었다. 세상은 놀랍게 변했고, 그 무서운 변화의 물결을 타고 넘으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엄청나게 달라졌지만 대학시절 무임승차를 하는 모험까지 단행해가며 무전여행을 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달리는 차 안에서 함께 웃고 노래 부르며 우리 다섯은 모두 티 없이 맑고 고운 그 옛날의 꿈 많던 대학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그러기에 함께 먹고 마시며 호흡한 3일을 통해 난 “Es ist eine Freude“(산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란 시성 괴테의 말을 가슴속에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얼마가 될지는 몰라도 남은 인생의 여행도 이런 동반자들과 더불어 동행하며 마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그들에게 필요한 동반자가 되어야 하리라. “나의 것이 되어 달라”는 대신 “너의 것이 되어 주겠다”는 독일 청년의 마음을 지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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