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내가 물오징어 한 상자를 사왔다. 마른 것이나 싱싱한 것인가를 따지지 않고 오징어를 좋아하는지라 유난히 커 보이는 것 하나를 꺼내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삶아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내장을 끄집어내려고 오징어 배를 째고 보니 손목보다 큰 조기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오징어가 조기를 잡아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까지는 좋았지만 삼킨 조기를 소화도 못 시키고 낚시에 걸린 오징어를 먹을 생각을 하니 이상해졌다. 거기다 이상한 호기심이 발동하여 조금도 상하지 않은 조기 배를 가르고 보았더니 그 속에 손가락만한 새우가 들어있었다. 조기 속의 새우도, 오징어에서 나온 조기도, 먹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싱싱한 것으로 보아 조기는 새우를 잡아먹자마자 오징어 밥이 되었고, 오징어는 조기로 배를 채운 만족감이 사라지기도 전에 인간의 밥상에 올라야 하는 슬픈 운명을 맞이했음이 틀림없다.
그 날 저녁 평소에 좋아하던 삶은 오징어를 반 이상 남기고 말았다. 따지고 보면 새우가 조기의 밥이 되고, 조기는 오징어의 먹이가 된 것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법칙이 적용된 것뿐이고, 내가 오징어를 낚아 올린 것도 아니지만 새우와 조기까지는 제압하고 승리자가 될 수 있었지만 인간에게 패배한 오징어를 먹는다는 생각을 하니 식욕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맛없이 먹은 밥이기에 속도 개운치 않아 소화도 시킬 겸 편한 자세로 앉아 텔레비전을 켜 Discovery Channel을 보기 시작했다. 이 Channel은 자연의 신비나 동물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기기묘묘한 사건들 또는 야생동물들이 벌이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과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모성애와 부성애, 이성간의 사랑 등을 많이 보여주기에 틈 나는 대로 보곤 한다.
다큐멘터리는 자기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자기보다 약한 상대를 삼킬 수밖에 없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얼마나 냉혹하고 비정한가를 보여주는 것들 만을 모아 편집한 것이었다. 그 중에 뱀이 물고기를 잡아먹는 장면이 특별히 나의 관심을 끌었다. 물살 빠른 강기슭에서 물속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던 뱀이 날쌔게 고기 한 마리를 물어 올린다. 이름 모를 물고기는 필사적으로 버둥대지만 뱀은 자기 보다 더 굵은 고기를 머리로부터 삼키기 시작한다. 머리가 들어가고도 안 빨려 들어가려 결사적으로 몸부림치는 물고기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뱀은 노획한 먹이를 터질 듯이 불어나는 목을 통해 몸 속에 밀어 넣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물속에서 악어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나 뱀을 물어버린다. 뱀은 물고기가 자기에게 한 반항조차도 하지 못한 채 커다란 악어의 입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새우, 조기, 오징어에서 물고기, 뱀, 악어로 출연 배우들이 바뀐 ‘생존을 위한 투쟁’의 재연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 외에도 그날 밤 Discovery Channel은 사자가 얼룩말, 사슴, 심지어는 자기보다 훨씬 힘도 세보이고 덩치도 큰 들소를 잡아먹는 장면과 순결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새하얀 학이 몸부림치는 뱀장어를 삼키고, 둔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곰이 날쌘 동작으로 연어를 잡아 찢어 먹는 광경들을 보여주었다. 하나하나가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장면들이었다.
그러나 죽이고 죽는 결사적인 투쟁을 하는 동물들은 그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정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약자를 잡아먹으며 생존하다 언젠가는 자기들도 강자의 희생물이 된다는 것을 당연한 운명으로 알고 살아가는 것이 다큐멘터리에 나타난 그네들의 세계였으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세상도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때가 많지 않나 생각된다. 강자가 약자 위에 군림하여 지배하고, 착취하고 핍박하기를 되풀이되며 형성된 것이 인간역사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선 인류역사에 나타난 약육강식의 현상이 동물세계의 그것보다 몇 배나 가혹하고 매정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분명한 데도, 크게는 국가와 민족과 인류의 번영을 위하여, 작게는 자신의 만족과 출세, 행복을 위하여 강자의 특권을 서슴없이 발휘하여 약자를 멸망시키거나 억울하고 슬프고 괴롭게 하는 행위가 되풀이 되어온 것이 역사의 변천과정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인간사회에 근본적인 혁명을 일으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그 분은 강자의 권리는 약자를 핍박하고 착취하는 것이 아니고, 도와주고 보호하는 것이라 가르치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철두철미 비천하고 연약하기에 억압을 당하면서도 불평하거나 저항하지 못하고, 절망과 낙망 속에 처해도 그것을 운명으로 알고 사람들 편에 서서 자기에게 무겁고 힘든 짐을 다 맡기라고 말씀하셨다. 그 어떤 의술로도 고칠 수 없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영생의 길을 보여주시면서 말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새로운 질서를 지키고 실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갈 때 이 세상은 약육강식이라는 비참한 현상이 사라지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으로 변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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