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노바 스코샤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목적지인 S시에 가기 위해 핼리팩스에서 비행기를 바꿔 타면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옮겨 타는 비행기가 거기까지 타고 간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작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군 복무 시는 물론 캐나다에 와서도 여러 차례 소형 비행기를 타보았기에 난 작은 비행기에 비교적 익숙하다. 바람이 불면 기체가 흔들리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낮은 고도로 나는 비행기 아래 펼쳐지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크기만 하다. 그러기에 지상 승무원들이 안내를 받아 트랩을 밟고 소형 프로펠러기에 오르며 불안감은 물론 생소한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 내 자리를 찾아 앉아 주위를 둘러보며 야릇한 감정에 사로잡혀야 했다. 30여 명의 승객 중 동양인은 나 하나임을 확인하는 순간 참으로 오래 전 일이 생각난 까닭이다.
캐나다에 온 다음 해니까, 1972년 가을에 알공퀸공원으로 단풍구경을 가던 때였다. 400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60번 도로로 진입하기 직전 깨끗하고 한적해 보이는 시골식당에 들렀다. 커피를 마시며 좀 쉬어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안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처음 보는 인종을 관찰하려는 눈초리로 우리를 쳐다보며 우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던 것이다. 열 살 정도로 보이는 한 여자아이는 어머니에게 “엄마, 칭크들이야!”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우리들 귀에까지 들렸다. 두 살 된 딸아이를 안은 채 나와 아내는 다시 나오지도 못하고 들어가기도 거북한 입장이 되어 잠시 망설이다 구석자리에 찾아 들어 억지로 다가온 종업원에게 커피를 주문해 마시고 도망치듯 거기를 떠나야 했다.
그로부터 반백 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 그 시골 식당보다도 협소하고 빠져나올 수도 없는 소형 비행기 안에서 백인들 틈에 끼어 앉게 된 내게 그때와 같은 눈길을 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S시에 도착해서도 동양인은 찾아볼 수 없었고, 거기 머무는 이틀 동안 나를 부른 한국의 모회사 주재원 외에 중국인으로 보이는 여인 한 명을 보았을 뿐이다.
이처럼 원주민들만이 살고 있는 광산지대에서 통역으로 일하면서 난 조금도 낯선 곳에 왔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했고, 멀리서 와서 어려운 일을 처리한다며 격려해주며 예의 바르게 대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보며 토론토에서 불과 200km 정도 북쪽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던 그때에 비해 지금은 그들의 동양인들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아졌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우리들은 언어와 풍습과 문화가 완전히 다른 이역 땅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노라 안간힘을 다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이민자들에게 주어지는 권리와 특혜가 무엇인지조차 몰랐기에 이유 없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멸시를 당하면서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인종차별일 뿐 아니라 기본권 침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정도는 우리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저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억울한 피해를 보상받거나 관계당국에 시정을 요구할 일이 생겨도 그 절차도 모르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주저앉아야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각종 문제로 인해 이역 땅에서 방황하는 한인동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직적인 한인기관이나 단체들도 극소수였고, 그들의 기능도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때와 비교해 볼 때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많은 수의 동포들이 이 곳에 경제적 기반을 이룩했고, 적지 않은 한인들이 이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인정받는 위치를 올라있다. 어디 그 뿐인가. 이민 1세들의 피와 눈물과 땀에 힘입어 성장한 2세들이 주류사회의 요소요소에 파고들어 복합문화를 지향하는 캐나다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달라지고 향상된 우리들의 입지 때문에 동양인은 몇 명 없는 노바 스코샤의 작은 광산촌에 와서도 당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긍지와 자랑을 느끼며 많은 것들을 생각했었다.
지금 우리는 그때처럼 백인들의 눈치를 보기는커녕 모든 면에서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현재의 처지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힘차게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전진해야 할 줄 안다. 안정된 현재의 삶에 취해 안일하게 살아가면 이루어 놓은 것도 잃어버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생자체가 파탄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멀리 그리고 넓게 보며 우리들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 줄 안다. 그래야만 수십 년 후에 우리들의 아이들이 그때 우리 부모들이 세운 원대한 계획 때문에 지금의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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