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이어)
조공을 바치는 날 에훗은 그 칼을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감추어 차고 에글론 왕에게 나간다. 비장한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왕 앞에 나가려면 철저한 몸수색을 받아야 하는데, 경호원들이 그의 몸 속에 숨겨진 예리한 칼을 발견하면 즉석에서 처형될 각오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왼손잡이인 에훗은 칼을 왼쪽 아닌 오른쪽 허벅지에 숨겼기 때문에 엄격하고 까다로운 수색과정을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다. 에훗이 왼손잡이인 것을 모르는 경비원들이 그의 왼쪽다리에 신경을 쓰노라 오른쪽 다리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45 센티미터나 되는 긴 칼을 허벅지에 숨길 수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에훗이 상당히 키가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글론 왕에게 최대의 존경과 경의를 표하며 조공을 바친 에훗은 동행했던 사람들을 먼저 돌려보내고 은밀히 드릴 말씀이 있다며 왕에게 독대를 청한다. 그가 여름에 머무는 궁정의 서늘한 다락방에 앉아있던 에글론 왕은 에훗의 청을 거절해야 할 아무런 까닭도 없었기에 주위를 모두 물러가라 명한다.
에글론 왕과 마주한 에훗은 음성을 낮추어 “임금님께 전해드릴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라 아뢴다. 그러자 에글론 왕은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선다. 비록 이방인이기는 했지만 하늘의 뜻을 경건한 자세로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에훗이 에글론 왕에게 들려준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왼손으로 오른쪽 허벅지에 차고 있던 칼을 빼어 힘을 다해 그의 배를 찌른 것이었다. 얼마나 세게 찔렀는지 칼자루까지 몸속으로 들어갔으며, 칼끝이 그의 등 뒤로 나왔다. 모압 사람들은 원래 건장하고 비대했는데 에글론은 더욱 몸이 부해서 에훗이 찌른 칼날 전체에 그의 몸속에 축적되었던 기름기가 엉켜 붙었다고 한다.
에글론이 죽은 것을 확인한 에훗은 다락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그곳을 빠져 나온다. 한편, 왕과 에훗의 독대가 길어지는 것을 이상히 여긴 신하들이 와보니 다락문이 안으로 잠겨 있었다. 그들은 왕이 시원한 방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그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줄로 생각했지만 너무 오래 인기척이 없자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왕은 칼에 찔려 죽어있었다.
왕의 시신 앞에서 신하들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에훗은 에브라임 산지까지 달려가 나팔을 불었다. 민병대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나팔소리들 듣고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모여들자 에훗은 그가 에글론 왕을 죽인 사실을 공포하며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우리의 원수 모압 사람들을 우리들의 손에 넘겨주었다.”(삿 3:28)고 외쳤다.
모압의 폭정 밑에서 고통 받으며 일어날 때를 기다리고 있던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은 용기백배하여 함성을 지르며 에훗의 뒤를 따른다. 뒤에서 명령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선두에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에훗의 지도력이 에브라임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것이다. 사사 에훗은 앞장서서 양떼를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는 선한 목자와 선두에서 “나를 따르라.”(Follow me!)외치며 전진하는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에훗은 에브라임 민병대를 이끌고 모압 진영으로 진군하면서 요단강 나루를 확보하여 철저히 지키라고 명령한다. 에훗이 이같이 명한 것은 그가 승리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동시에 그는 패배한 모압 병사들이 요단강을 건너 도망할 것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퇴로를 차단하는 고도의 군사작전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에훗은 실전경험이 있기는 했지만 군사학을 정식으로 공부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런 그가 적의 퇴로를 차단하는 치밀한 작전계획을 세웠다는 것은 성령께서 함께 하셨다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모압과의 전투에서 에훗이 감행한 적의 퇴로 차단작전은 후일 기드온이 미디안을 물리칠 때와(삿 7:24), 입다가 에브라임을 격파할 때도(삿 12:5-6) 사용했는데, 이로부터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택하신 사사들에게 적을 섬멸할 수 있는 전략을 알려주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날 에훗은 모압군을 완전히 제압하고 만여 명을 죽이는 전과를 올렸다. 그 결과, 모압은 이스라엘에게 완전히 굴복했고, 이스라엘은 18년에 걸친 모압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전혀 괴롭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의 왕정시대가 시작되고, 모암이 국가체제를 갖추기 전까지는 이스라엘에게 어떤 위협도 가하지 못했다.
이 같이 에훗이 모압을 완전히 정복한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가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사탄의 왕국을 제압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학자들도 있다.
에훗이 모압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평화롭게 통치한 80년은 다윗과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을 합한 것과 같은 것이며, 다른 어떤 사사들의 통치기간 보다 긴 기간이었다.
미약한 베냐민 지파 출신일 뿐만 아니라 당시에 신체장애자로 여겨지던 왼손잡이 에훗이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을 모압의 압제에서 구해내어 80년 이란 오랜 기간을 평화와 안정 속에 다스렸다는 사실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면서도 선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여 지혜 있는 자들과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그의 뜻을 이루신다(고전 1:18-31).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능하고 이상적인 지도자는 고상한 인격과 인품을 지니고 폭넓은 지혜와 지식을 소유한 인물이다.
이에 반해 하나님이 사용하기를 원하는 일꾼은 그에게 온전히 순종하며 그만을 의지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왼손잡이 에훗을 이스라엘을 모압의 손아귀에서 건져낼 구원자로 택하시어 그의 뜻을 이루신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들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외치며 전진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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