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에서 배 따 먹기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마태복음 13장 44~48절).

 

마태복음 13장에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비롯해 가라지 비유 등 7가지의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예수께서 마치 작심한 듯 천국에 관한 이야기를 비유로 계속해서 설명하신 것이다. 그 배경은 12장에서 찾을 수 있다. 바리새인 서기관 등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수 차례 격렬한 충돌이 있었다.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었고” 이를 본 바리새인들은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하고 시비를 걸어왔다.
또 회당 안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는데,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하고 넌지시 물었다. 예수를 고발하고, 죽이기 위한 속셈이었다. 안식일과 관련해 율법을 들먹이며 덫을 놓고 있는 모습이다.
‘그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사람들이 예수께 데려왔다. 그를 고치자 바리새인들은 “이(예수)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 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고 말했다. 아예 예수를 귀신 취급하고 있다.
이처럼 작정하고 덤벼드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께서는 구약성경을 인용해 반박하시거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고 그들의 입을 막으셨다. 또 서기관 등이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고 했을 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셨다. 요나처럼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는 십자가의 계획을 넌지시 드러내셨다.

 

애초 성경이 쓰여질 때 장절 구분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바리새인들과의 충돌 연장선에서 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고, 이때 여러 비유를 잇따라 꺼내신 것이다. 그 목적은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려는”(13장35절) 데 있었다. 그것은 십자가를 통한 구원 계획이며, 그 비밀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13장 44~48절의 세 가지 비유에는 이런 복음에 대한 설명이 압축돼 있다.
감춰진 보화를 얻기 위해 밭을 모두 사버린 사람과 값진 진주를 발견한 장사는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유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던져버린 것이다. 이것은 천지만물의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다.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동등한 지위를 버리고, 가장 낮고 비천한 자리로 내려오셔서 죄인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셨다. 그리고는 죄인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저주 받은 모습으로 죽었다. 율법을 들먹이며, 여호와께 택함을 받은 백성이라 자부하던 자들 손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아니 유대교 지도자들, 종교를 앞세워 이 땅의 주인행세를 하던 자들을 자극해, 어쩌면 스스로 죽음의 길로 걸어가신 것이다. 이것이 창세 전부터 예정됐지만, 비밀로 감춰졌던 ‘다 팔아’에 들어 있는 의미다.

 

진주와 보화를 얻기 위해 모든 소유를 팔아버린 사람은 마치 바다의 그물처럼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그러나 그물에 잡힌 모든 물고기를 진주와 보화처럼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신다. 다른 표현으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지겠다”(49절)는 결말이다. 
‘좋은 것’과 ‘못된 것’의 차이에 대한 논쟁은 기독교 안에서 격렬하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 성경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교회라는 이름을 내걸어 놓고 “좋은 것이 되자”고 외치고, ‘좋은 것’으로 변하라고 권면도 한다. ’못된 것’에 머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겁을 주기도 한다. 또 소유를 다 팔아 바쳐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유혹한다.

 

마태복음 13장 24~30절에 등장하는 이른 바 ‘가라지의 비유’에 주목해 보자. 예수께서는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밭에는 “밤에 원수가 와서 가라지도 덧뿌리고 갔다”. ‘가라지’는 검은 빛이 나며 독까지 있는 식물로, 처음 자랄 때는 얼핏 좋은 밀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미치광이 밀’이라고 부른다. 
예수께서는 친히 이 비유를 제자들에게 설명하시며, 가라지를 뿌린 것은 마귀라고 하셨다. 종들이 밭의 주인에게 가라지를 뽑을 지 물었다. 그러나 주인은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고 하셨다. ‘그물로 잡은 물고기’ 비유와 결말이 똑같다. 
물고기 스스로 자기의 가치를 평가하지 못한다. 마치 가라지가 결코 좋은 씨앗으로 변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전적으로 그물의 주인이 좋은 것, 못된 것을 가른다. 보화를 발견하고, 값진 진주를 얻기 위해 소유를 ‘다 팔았던’ 주인의 선택이 ‘좋은 것, 못된 것’의 가치를 결정한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께 전적으로 속한 권한이다. 

 

여기서 맥락을 놓치면 안 되는 것이, 이 비유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등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의 충돌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제자들이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지 묻자 예수께서는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는 이사야 6장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그리고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13장11절)라고 하셨다. ‘너희’와 ‘그들’이 ‘좋은 것, 못된 것’의 다른 표현이다. 
여기서 허락이라는 단어는 역사의 뒤편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어떤 존재가 활약하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의 주권적 결정에 따라 허락 여부가 떨어지는 것이다.

 

재미 있는 것은 저자 마태가 7가지 비유가 시작되기 전인 마태복음 12장 끝부분(46~50절)과 비유가 끝난 후인 13장 53~58절에 예수님의 가족과 고향 이야기를 배치했다는 점이다.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다는 제자들의 말에 예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하고 물으신 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고 하셨다. 13장 끝에는 고향 사람들이 ‘목수의 아들’ ‘어머니 마리아’를 거론한 뒤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하며 예수를 믿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들이 안다고 하는 것, 심지어 종교적 열심이나 혈통까지도 무가치하게 여기시고, ‘오직 은혜’, ‘오직 십자가’만 반복해서 강조하는 모습이다. (사장 /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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