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 발을 디디고 살아온 게 벌써 40년을 넘었다. 돌아보면 수많은 설교를 듣고, 또 적지 않은 기독교 관련 책을 읽었다. 한때 명성을 떨치던 목사나 선교사, 저술가, 부흥사 가운데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도 있었고, 여전히 기독교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들도 많다. 과거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던 설교나 읽었던 책 가운데 지금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 게 사실이다. 아마 20~30년 후에 2024년을 돌아볼 기회가 있다면 똑같이 고백할 것이다.
구약성경 열왕기상 13장에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남유다 왕국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렸다. 다른 한 인물은 여로보암이 통치하던 북이스라엘에서 선지자로 살았다.
‘하나님의 사람’은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이 패역한 짓을 일삼자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할 임무를 띠고 유다를 떠나 이스라엘로 갔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벧엘에서 분향하고 있던 여로보암을 향해 여호와의 저주를 쏟아냈다.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그 날에 그가 징조를 들어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징조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열왕기상 13장 2~3절)
여호와의 말씀대로 제단이 갈라지고, 재가 쏟아져 내렸다.
이때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피로를 풀 겸 같이 쉬자고 하며, 선물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거절하고,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던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했다.
이 소식이 벧엘의 늙은 예언자에게 전해졌다. 그는 곧장 나귀를 타고 ‘하나님의 사람’을 쫓아갔다. 그리고는 상수리나무 근처에서 만나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자”고 말했다. 하나님의 사람이 거절하자, 늙은 선지자는 거짓으로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사람’은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고, 늙은 선지자를 따라 집으로 가서는 떡을 먹고 물을 마셨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거짓말을 했던 늙은 예언자에게 임했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하신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왕상 13장 21~22절)고 하셨다.
늙은 예언자는 ‘하나님의 사람’이 떡을 먹고, 물을 마시고 나자 나귀 등에 안장을 얹어주었다. ‘하나님의 사람’은 돌아가는 길에 사자에게 물려 죽었다.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돌아와 자기 성읍에서 슬피 울며 장사를 지냈고, 그의 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두고 “오호라 내 형제여” 하며 슬피 울었다.
이 에피소드는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중구난방처럼 보인다. 여로보암왕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던 ‘하나님의 사람’이 늙은 선지자의 거짓말에 넘어간 것이나,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했던 그를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에 속지 않게 보호해 주시지도 않았다. 또한 거짓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속였던 늙은 선지자의 입을 빌려 여호와의 말씀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야기를 다시 살펴보면 우상숭배에 혈안이 된 여로보암에게 ‘하나님의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왕상 13장 2절)
뜬금없는 이름, ‘요시야’가 예언에 등장하는데, 그는 남유다의 16대 왕으로, 기원전 640~609년 사이에 활동했다. 여로보암이나 ‘하나님의 사람’ 보다 대략 300년 후대의 인물이다.
요시야왕의 역사는 구약성경 열왕기하 22장부터 기록돼 있다. 그는 율법책을 발견하고, 유월절을 지키며 각종 우상을 섬기던 제단을 혁파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열왕기하 23장 24~25절에 나온다.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고 기록한다.
특히 열왕기상 13장의 내용이 열왕기하 23장 15~16절에서 그대로 성취된다.
“또한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이어 17~18절에는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무덤 이야기도 언급된다. 요시야는 우상을 섬기던 산당의 제사장을 죽이고 무덤까지 파헤쳤으나 ‘하나님의 사람’과 사마리아의 늙은 선지자의 무덤은 그대로 두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시야의 최후도 비극이다. 그는 애굽왕과 전쟁을 하다 전사했다. 더구나 율법을 지키려 한 요시야와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는 계속됐다.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왕하 23장 26~27절)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고, 예언도 했고, 신비한 일도 일으켰지만 사자에게 찢겨 죽은 ‘하나님의 사람’. 우상을 부수고, 율법을 회복시켰지만 전쟁에서 전사한 요시야. 거짓말도 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외쳤던 늙은 선지자.
그들의 삶은 무의미하고, 삭제 당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해 여호와의 손길에 이끌려 다녔으며, 인간의 불가능을 온 몸으로 표현하는데 차용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은혜를 증거하는데 동원됐던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장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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