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CN Tower는 여전히 토론토의 명물이다. 회사의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멀리 보이는 저 탑은 어제나 그제나 아니 20 여 년이 넘도록 그대로인데, 나는 많이 왜소해진 것 같다. 이민 와 살면서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가 언어 소통이다. 본의가 와전되다 보니, 차라리 말 하지 않는 게 상책일 때도 있다.

단지 언어의 통행 만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말의 온도, 뉘앙스, 속 뜻… 그런 것까지 모두 포함해서 우리는 소통이란 걸 한다. 마치 글 속에서 행간의 의미를 찾아내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언어 교감은 쉽지 않다. 세태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것 중의 하나가 문자 교환이다. 전화로 통화하기 보다는 텍스트를 주고 받거나 카톡을 사용한다. 소통이 건조할 것 같으면 이모티콘을 이용해서 교신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 생일이었다. 아침부터 문자가 오더니, 전화 벨이 울렸다. 목소리를 통해 축하를 받으니 그 전달력이 새롭기는 했다. 더 반갑기도 했다. 다만 어느새 습관처럼 익숙해진 틀에서 벗어난 듯하여 어색한 면도 없지 않았다. 소통 방법의 변천 과도기에 있는 걸까.  

 

 얼마 전에 여자 프로테니스 마이애미오픈 단식 준준결승전 시합을 보게 되었다. 미국의 제시카 페굴라가 러시아의 아나타시아 포타포바와 겨루었다. 페굴라는 4-6, 6-3으로 한 차례씩 패하고 이기며 1:1 동점을 이루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3세트에서 두 차례 매치포인트를 이겨내고 7-6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매 게임 마다 손에 땀이 나게 하였다. 29세의 페굴라는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으로 21세 포타포바의 젊은 패기에 맞서 치열한 접전을 치렀다. 세계 랭킹 27위의 포타포바는 3위의 페굴라와 겨루며 혼신의 힘을 다했다.

테니스도 여느 구기 종목과 마찬가지로 공의 방향과 거리가 중요하다. 힘의 완급 조절도 승패를 좌우한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고, 육체가 정신을 조정한다. 개인과 개인이 대결하는 1:1 승부의 코트에서는 특히 더 정신과 육체의 조화가 중요할 것이다. 남자 테니스 선수 중에는 앤디 머레이가 본인과의 소통으로 정신을 가다듬는다. 스스로 써놓은 메모를 주로 코트 체인지 시간을 이용해 들여다보며 마인드 콘트롤을 한다. 2015년 로테르담 경기에서 그 메모장 일부가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는데,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최선을 다하라. 다리를 많이 움직여라. 매 득점하는 과정에 집중하라…” 등 그 만의 경기 비법이 적혀 있었다.

스포츠 세계에서의 노련미는 바로 이런 소통의 능력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해서 관록이 쌓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나와의 진정한 소통을 이루며, 곧 대중과의 교류로 확장되는 교두보가 형성되는 것이리라. 비단 스포츠 게임에서만 그러하겠는가. 삶의 여정에서도 소통이 그렇게 작용하리라 믿는다.  문득 어릴 때 보았던 과학 티브이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투명 유리 상자 안에 큰 자갈을 우선 꽉 차게 넣었다. 그리고 조약돌이 자갈 사이 사이를 메우도록 하였다. 다음에 모래를 넣으니 모래가 빈 공간을 모두 빈틈없이 채웠다. 꽉 찬 상자에 무엇을 더 채울 수 있겠느냔 질문이 이어졌다. 프로그램 연출자는 아마 그러면서 시청자와의 교감을 유도했을 것이다. 숨구멍 하나 없이 꽉 차 보이는 상자를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순간, 물이 부어졌다. 너무나 당연한 정답을 잠시 놓치고 있었다. 부드러움이 강직함을 이긴다는 명언도 그렇게 해서 와 닿았을 것이다. 진리와 소통한 격이었다.

 

하던 일 계속해서 성공하면 사람들이 그걸 길이라 부르게 된다. 나는 고집스레 한 직장에 계속 몸담고 있다. 전직하는 재주도 딱히 없었지만 타성에 젖어 드는 걸 막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언제부터인가 성공이란 개념을 너무 강박스럽게 다그치지도 않는다. 다만 내 한계를 남들이 결정하지 않도록 의연하게 살고자 한다. 유리 상자의 물처럼 유연하고 포괄적인 존재를 언제나 가슴에 담으며 소통하려 한다. 나다니엘 호오손의 <큰 바위 얼굴> 주인공 어네스트처럼, 소망을 가슴에 담으면 소망을 닮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통의 부재는 곧 존재감 상실이라는 시대에 살고 있다. 

향기로 찾아와 스치듯 사라지는 봄, 마법 같은 계절에 주문 하나 외워본다. 소통에 스며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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