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C칼럼- 194
우리 모두가 때를 기다리는 사형수(Condemned)일 뿐인데 과연 누가 누구에게 갑질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찌 보면 그 누구도 잘난 것도 또 못난 것도 없으며, 부유도 가난도 지식도 권력도 사랑도 모두 순간적 착각일 뿐 그 무엇도 남이나 자신에게도 자랑할 것이 전혀 없다. 따라서 남에게 갑질을 하며 살 이유도, 가치도 없다는 말이다.
필자가 전에도 말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삶 속에서는 성공적인 삶의 기준을 부유, 행복, 건강, 지식, 학력, 권력, 가정, 사랑, 지위 등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만, 성경이 말씀하는 영적 세계의 성공이란 오로지 천당에 가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잠깐인 이 세상과 영원한 천국을 두고 판단한다면 우리의 선택과 판단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닐까? 단지 천국은 우리가 보질 못했으니 100% 믿질 못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혹시나 하며 중간지점을 찾으며 세상과 내세를 적당히 타협하면서 세상에서도 잘 살고, 또 천당도 가기 위해 가끔씩 교회도 나가고 또 헌금도 하며, 죄를 안 지으려 노력을 한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 양 다리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가끔씩 뉴스를 통해서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일부 목사, 장로, 집사, 선교사라는 사람들의 악행과 사기 소식을 들으며 흥분하는데, 그런 일들은 지금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그 옛날부터 계속했던 것이다. 또 미래에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왜냐면 우리 모두는 악인이고 살인자 가인의 후예들이며, 악과 죄를 이미 소유하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70-80년 주어진 시간 안에 속죄를 하라고 기회를 주셨지만 그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이 세상엔 열심히 공부해서 얻어지는 지식이 있고, 원래 가지고 태어난 인성이 있는데 우리 모두가 잘 알다시피 지식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고 인성은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생활하는데 교양과 지성으로 나타나며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배운 지식으로 교양과 지성으로 표방하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때때로 이성을 잃고 본인이 원래 모습인 교만과 오만함으로 인한 갑질을 하게 되면서 남에게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하나님도 교만한 자들을 그리도 싫어하셨나 보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정신없이 먹고 싸고 자고 하는 동안 세월이 지나며 어느새 늙어가고 결국 남의 도움을 받다가 빈손으로 죽는 것을 인지하면서 살고 있다면 그 누구도 남에게 갑질할 이유도 자격도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저 때를 기다리는 사형수일 뿐이란 말이다.
교회에 헌금을 남보다 더 하고, 단체나 사회를 도와주고 또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부를 할 때마다 우린 은근히 남에게 알리고 남이 알아 주기를 원하게 된다. 그것 역시 남에게 갑질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기부와 도네이션 자체가 잘못되거나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한다면 그것 역시 남에게 가하는 갑질이며 위선인 것이다. 반대로 남을 위해서 헌신을 하면서 자기 만족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참된 헌신이며 또 보람이 아닐까?
하지만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쉬운 일이 아니 것이 그런 의도가 전혀 없이 남을 위해 헌신을 했더라도 언론이나 남들이 칭찬을 해줄 때는 왠지 자기도 모르게 어깨가 올라가고 으쓱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역시 어리석고 연약한 인간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뒤를 자주 돌아보게 되면서 껄껄껄하며 살고 있는데 지난 과거에 누굴 만났건 또 무슨 일을 했든 지금 함께 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하는 일들이 나의 미리 정해진 운명인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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