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C칼럼- 191
(지난 호에 이어)
벌써 개나리도 목련도 다시 한번 내년을 약속하면서 아주 잠깐 얼굴을 내밀며 피고 또 지었다. 이제 몇 남지 않은 우리 한인동포 1세의 노인 분들은 아직도 이곳 저곳에서 산마늘, 고사리, 취나물을 따다가 친구들과 나누어 먹는 모습에 마음이 짠하다. 이제 그것도 우리 2세, 3세들에겐 잊혀진 조상들의 역사로 남을 것이고 우리는 너도 나도 먼 길을 떠난다.
이렇게 우리 모두는 한 일생마다 아무도 보지 않는 한편의 영화를 찍고 그것을 되돌아 보면서 지독한 그리움에 따라오는 고독 그리고 후회를 가슴에 품고 어디론가 흘러가고 또 잊혀진다. 죽음 후엔 또 어떤 세상이 우리를 기다릴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사라져 간다.
하나의 그리움, 후회, 슬픔, 고통, 고뇌가 함께 하는 삶이 없는 그저 아무 기억도 없는 존재치 않는 무(無)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는 희망을 바라며 50보, 100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우리 모두는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
며칠 전엔 오랜만에 50년 전 이민을 함께 왔던 친구들을 만났다. 모두 나이가 70대 중반을 넘어선 옛말로 표현한다면 고령의 노인들이다. 다행히 아직 상처를 한 친구는 없었는데, 한 친구의 아내가 오랫동안 치매를 앓고 있어 참여를 못했다.
모두가 수십 년 이민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또 정직하게 살아온 오랜 친구들이다. 자주는 아니고 그저 1년에 한 번씩 모이는 친구들의 대화가 이제 모두 과거의 이야기들일뿐 현재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은 하나도 없는 것을 보면서 너도 나도 이제 모두가 포기 그리고 순간순간 이별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니 갑자기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모두가 저마다 큰소리를 치고 미래의 설계를 하면서 밤을 새우던 그 시절이 마치 엊그제였는데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골프 비거리가 얼마고, 자식이 어느 대학을 가고 손자손녀가 무슨 상을 타고 등등 말들도 많았지만 이제 우리 모두는 자기자신에게 또 자식들에게 또 지나온 삶에 실망을 하면서 조용히 다가오는 운명에 순종하는 모습들이다. 얼굴마다 굵게 또는 얇게 패인 주름 속에서 씁쓸한 웃음들과 함께 여기 저기 숭숭 빠져버린 앞니들 사이로 찐한 외로움들이 흘러내린다.
어찌 보면 짓궂기도 하신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역시 아무 것도 아니었던 세상,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니었던 나를 우리는 이미 조상들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제야 실감을 하는 어리석기만 했던 우리들은 모임은 그저 초라하기만 했다.
워낙 추운 이곳 캐나다는 벌써 5월이 되었지만 아직도 가끔씩 쌀쌀하고 또 비도 자주 내린다. 어찌 보면 그나마 유일한 우리 한인동포들의 즐거움은 오늘도 이곳 저곳의 골프장을 누비며 마치 갈 곳과 갈 길을 헤매며 뭔가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처럼 별 이유도 없이 멍하게 살아가고 있다. 긴 겨울잠에서 덜 깨어난 사람들처럼 말이다.
지독히도 가난하게 살았던 50-60년 전 가난했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선진국 그리고 잘 사는 나라로 바뀌면서 한국을 떠나 이민을 오던 시대는 이미 옛말이 되었고, 이젠 오히려 거꾸로 복수국적이다, 귀화다 하면서 한국으로 역이민을 하는 동포들이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캐나다에 사는 동포 수는 점점 줄어들고 또 유학생까지 줄게 되니 한국인을 상대해서 먹고 사는 영세업자들의 고통이 말이 아니다. 물론 한국에도 남북간의 문제와 아직도 후진국 수준인 정치문제가 있긴 하지만 세상에 물도 좋고 정자도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
필자는 모국 방문할 때마다 종종 느끼는 일이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 수준을 넘어서 이미 방종(self-indulgence)의 단계에 온 것 같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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