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C칼럼- 181
(지난 호에 이어)
이렇게 우리 모두의 바람은 Happy Ending인데 일반적인 우리들의 삶에는 그 어느 것 하나도 인생에Happy Ending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원래부터 영원이란 인간들에게 허락되질 않았기에 영원이 없는 Happy Ending이란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헤밍웨이가 쓴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주인공 헨리는 전쟁을 혐오하며 사랑했던 연인 캐서린과 스위스로 도망가서 살았다. 그러나 헨리에게도 탈영 후 캐서린과 나눴던 평화와 행복은 잠시 뿐이었다. 언제나 인생의 Ending은 비극으로 끝난다는 말이다.
우리는 영화를 보든 아니면 연속극을 보든, 결과가 슬프거나 또 때로 불의가 승리를 하면서 끝을 맺으면 보고 난 이후 느낌이 찝찝하고 개운치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인간이 지어낸 단순한 하나의 Fiction이라 해도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요즘 유행한다는 ‘서울의 봄’이란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는데, 이미 내용은 정의가 아닌 불의가 승리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뿐 아니라 그 누구한테도 시원하고, 기분 좋은 결말의 영화일 리가 없다.
그렇게 무고한 사람들을 많이 죽이고 권좌를 차지하며, 이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도 한마디 사과도 후회도 없이 살다간 그 사람의 삶은 우리 선인들이 말하는 인과응보(因果應報)란 실제로 이 세상엔 존재치 않는다는 좋지 않은 교훈을 남겨 줄 수 있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게 허황된 꿈과 희망을 안겨다 줄 수 있는 나쁜 역사로 기록이 될 것이다.
이렇게 세상에서 많은 죄를 지으면서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Happy Ending을 꿈꾸며 살았던 그의 삶이나 아님 이북의 독재자 김정은의 삶이 Happy Ending으로 끝날 수 있을까? 사후의 세상이 존재치 않는다 가정을 할 때는 충분히 그럴 수 있고 이런 일들은 우리가 말하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논리는 성립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이나 과거 소련의 스탈린 등 수많은 독재자들이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김정은을 포함한 많은 독재자들이 남들의 목숨과 부와 자유를 빼앗으며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또 저렇게 세상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삶이란 이미 정해진 시간과 운명 속에 쾌락과 영화 역시 순간일 뿐, 그들의 삶 역시 한줌의 재로 변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은 매일반 마찬가지 아닌가.
소설가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는1926년 첫 소설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 이어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또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그리고 1952년 ‘노인과 바다’ 등 여러 유명한 작품들을 남기고 1954년엔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다. 그럼에도 그는 1961년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을 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당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전쟁에 직접 참가했던 주인공 헨리 역시 비극을 싫어하며 죽음을 피하려는 본성을 갖고 있고, 사람들을 죽이고 죽는 전쟁 속에도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려는 염원을 품고 있었다.
결국 탈영까지 했지만 전쟁이란 원래 시간이 갈수록 그 싸움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목적이 희미해지면서 전쟁에 대한 혐오가 생기고 서로를 증오를 하게 된다는 것을 헤밍웨이는 소설을 통해 보여준다.
또 그런 증오가 커지면서 다른 나라 또는 집단을 원망하게 되고 그것은 또 하나의 더 큰 전쟁과 싸움을 일으키며 그것이 커지면서 1차, 2차 그리고 3차 전쟁도 일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 중동에서 퍼지고 있는 전쟁을 보면서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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