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C칼럼-167
(지난 호에 이어)
일생을 살아가면서 앞날을 상상하고 또 과거를 바라본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미련이다. 작고한 최희준 씨가 부른 노래 중에 ‘하숙생’이 있다. 그 노래 내용은 “우리 모두 잠깐 왔다 가는 하숙생이고, 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이니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자”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이 다하기 전까지는 가끔씩 지난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으며, 그럴 때마다 ‘껄껄’ 하는 미련이 남는다.
학창시절의 미련, 연인시절의 미련, 열심히 사업을 했을 때의 미련이다. 아니면 우린 지금 이 시간에도 미련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결국 미련이란 어찌보면 후회란 말하고도 연관이 있다. 전공을 다른 분야로 할 것을, 결혼을 그때 그 여자와 할 것을, 그때 딴 곳에 투자를 했으면… 별 생각을 다 하다가 우린 이내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래도 내가 선택한 것들이 맞을거야’ 하면서 자신을 위로한다.
다른 전공, 다른 여자, 다른 투자, 다른 삶. 이 모두가 우리의 상상 속에서 그것이 잘 되었을 경우만 생각하면서 막연한 미련을 자아내고 있지만 결국 삶이란 오십보, 백보다. 거기서 거기일 뿐이고 어떻게 살았든 모두가 영원치 않은 잠시 허상 속의 순간일 뿐이다. 아무 것에든 미련도 후회도 헛것일 뿐이란 말이다.
하지만 순간의 삶이 그냥 평범하게 살아도 힘이 드는데 이 세상에는 남보다 특별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하숙생’이란 노래 가사에도 나오듯이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것일 수 있다. 다만 우리들이 알 수 있는 것은 구름 속에 흘러가는 안개 속의 미래뿐인데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라는 가사처럼 평범하고 소박하게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이렇게 평범하고 소박하게 사는 것이 원래부터 욕심과 탐욕과 죄성을 갖고 태어난 우리들에겐 제일 힘든 것일 수도 있다.
얼마 전 우리의 모국 대한민국의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법원에서 기각됐다. 과연 한국만의 특이한 민주주의와 끝까지 버티려는 한 인간의 투쟁, 또 그를 추종하는 여러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라와 국민을 진정 사랑하고 위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건지 모르겠다. 왜 우리 한국은 언제나 부정과 부패가 계속 존재하면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돈과 권력이란 얼마나 좋은 것이기에 저렇게 처절하고 또 비참하게 숨기고 가장을 하고 연기까지 하면서 싸우는 것일까? 돈과 권력 앞에선 나라도 국민도 형제도 가족도 정말 없는 것일까?
필자의 눈에는 300명의 국회의원들 거의가 자기 욕심, 그리고 자만과 거짓으로 꽉 차 있는 사람들 같다. 정작 나라와 국민의 민생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도대체 법원 앞에서 직장 연차까지 내면서 피켓을 들고 시위와 야유와 고성을 지르며 욕을 퍼붓는 사람들의 정체는 무엇이고 또 그들이 원하는 것이 정말 나라가 걱정이 되고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나라를 아껴서 본인의 희생과 시간과 돈을 들여가면서 저렇게 길거리에서 교통까지 방해하면서 시위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남의 사주를 받거나 혹 본인의 이권과 관계가 있어서일까?
교사들이 일방적으로 학부모들의 무모한 행동 때문에 하는 시위나 또는 본인들의 좀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 봉급을 올려달라는 데모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저렇게 정치 색깔과 이념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은 이해가 잘 안 된다.
지난번에도 여러 번 기술을 했지만 사람이 부정과 잘못을 했으면 거기에 응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누가 되었든 벌을 받고 반성하는 세상을 우리 모두가 바란다.
얼마 전 어느 TV쇼를 보던 중 지난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 떄 데모를 했든, 아니면 시위를 했든 여러가지 이유로 당시 한국의 정보부 또는 전두환 시절의 국보위 등 국가의 정보기관들에 많은 사람들이 끌려가 죽고, 또 온갖 고문과 고초를 겪으며 아직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들을 보고 들었다. 그러면서 생각을 해 보았는데 과연 이 세상의 동물들 중에 우리 인간들보다 더 사악하고 독한 동물들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심한 고문을 당해본 사람들은 모두 실감을 하겠지만 고문을 당하며 아파하고 신음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친구도 가족도 의리도 도덕도 그 무엇도 고문을 앞서지 못한다. 진실이고 사실이고 아무 것도 필요가 없고 그저 그 시간의 고통에 무릎을 꿇을 수밖엔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고백할 게 없어도 자백을 해야 하고 아무리 사실이 아니라도 사실이 될 수밖에는 없다는 말이다. 전혀 없었던 일도 있었던 일이 된다는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