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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서 살며 사랑하며 -Wild in Wind

kob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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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bac
Ke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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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0
낙엽을 쓸면서.. 시월의 어느 멋진날에...


 

가을이면 한국에선 내장산과 설악산 등 단풍으로 유명한 곳에 관광객이 몰리지만, 이곳 토론토에서는 가는 곳마다 단풍잎 천국이라 멀리 갈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집 앞 골목과 공원은 물론 대로변까지 단풍잎이 지천으로 뒤덮고 있다.
이민 후 첫 가을, 토론토 북쪽으로 차를 몰고 충청북도 면적보다 크다는 광활한 알공퀸 공원에 갔었다. 사방에 펼쳐진 아름다운 단풍 숲을 보면서 떠나온 고국의 빠알간 단풍이 떠올랐고 순간 그리움에 사무쳤었다. 그 자리에 서서 향수에 젖어 스스로 타오르는 하나의 단풍이 되었던 기억이 살아있고 그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제2의 고향 캐나다에 살면서도 가을만 되면 아무리 바빠도 매년 단풍구경을 놓치지 않으려는 연유이기도 하다.
잘 알려진 대로 캐나다 국기는 단풍잎이며 북미에서 오랜 전통으로 유명한 '오리지날 식스'의 일원인 토론토 하키팀의 이름도 ‘메이플 립스’라는게 이민자의 시각에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이곳 단풍잎의 색상은 한국단풍잎처럼 선명한 붉은색보다는 노랑, 빨강, 초록 등 다양하게 섞여 있는 게 달라서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지난번 한국에서 방문 온 친구와 함께 돌셑 전망대에 올라가 드넓은 단풍 숲을 보며 모처럼 힐링타임을 가졌다. 지형이 오밀조밀한 한국은 완성된 만두 같고 넓은 국토를 자랑하는 캐나다는 만두피를 늘려 놓은 것 같다는 내 비유에 친구가 실감 나는 묘사라며 동감을 표시한다.

20도를 넘나들던 기온이 어제 종일 비가 내린 후 밤엔 4도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동네 가로수와 인근 공원마다 지천으로 널린 단풍나무들이 제각각 울긋불긋 화려함을 뽐낼 때는 조석으로 산책할 때마다 기분이 좋았었다. 이젠 대부분 낙엽이 되어 떼구르 굴러다닌다.
며칠 동안 마당에 수북이 굴러와 쌓인 낙엽을 치우려고 벼르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가 몰려 와 습관처럼 늦잠자던 토요일인데도 왠지 모르게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청명한 하늘이다. 빗자루를 들고 앞마당에 서서 파아란 하늘을 보며 심호흡을 해본다.

이민생활의 분주함을 잠시 잊고 가을비가 지나간 뒤 바닥에 구르며 애교떠는 이 수많은 낙엽을 찬찬히 보며 나도 모르게 잠시 상념에 젖어들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린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며"가 아스라이 떠오르며 한국과 캐나다 낙엽의 이미지들이 오버랩 되고 있다.

문득 고교 시절…. 가을비가 내리던 그 날, 비닐우산을 들고 개울가에서 센티해져 멍하게 서 있던 그때 어디선가 나타나 팔랑개비처럼 접은 편지를 훌쩍 내 주머니에 찔러주고 계면쩍어 총총히 달아나던 그 예쁜 여학생… 푸시킨의 ‘삶’이란 시구를 편지지에 깨알같이 써서 전해주던 그녀도 어디선가 이젠 중년의 세월을 거역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새삼 세월의 무상함에 만감이 교차하고 있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상쾌한 기분으로 고즈넉한 여유를 만끽하며 사색의 세계로 몰입된다.
새삼 자연의 섭리와 우리 인생에 관하여 반추해 보며 낙엽들을 쓸어모으며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특혜에 감사하며 행복한 기분에 젖는다.
 


 

떨어진 잎사귀 하나 하나를 찬찬히 보면 같은 단풍잎이라도 하나도 똑같은 게 없다. 개성을 지닌 이 많은 낙엽을 보며 우리의 삶과 대비해 본다. 각자의 애환이 다르듯이 생생한 낙엽, 벌레 먹은 것, 노란색, 빨간색, 아직 녹색 그대로 떨어져 뒹굴고 있는 잎사귀 등등 각기 다른 사연들을 지닌듯하다. 마치 인간의 지문처럼 참 다양한 낙엽들이 쓸어내면 어디선가 또다시 가을 산들바람에 파도처럼 밀려온다.
이 낙엽들도 모아 태우면 그 향기가 꽤 좋을 것 같은데 여기선 누구도 태우는 사람이 없다. 그러면 안 된다는 시청의 조례 때문이리라...

단풍이 빨간색, 노란색, 갈색 등으로 변하는 이유는 잎의 액포 속에 들어있는 엽록소와 다른 색소 성분의 비율 때문이다. 밤이 길어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나무는 스스로 보호할 준비를 하게 된다. 이때 잎과 나뭇가지 사이에 층을 만들어 영양분 공급을 차단한다.
이에 따라 녹색의 원천인 엽록소가 줄어들면서 그 속에 남아있던 색소의 종류에 따라 잎의 색상이 변하게 된다. 우리에게 가을 한 철 아름다운 단풍잎을 보여주고 그러다 땅에 떨어져 썩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무도 줄기에서 잎을 떨어뜨려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매서운 바람의 영향을 줄여 추운 겨울에 스스로 대비한다. 춥고 긴 겨울 동안 목재의 밀도가 치밀하게 형성되어 단단해지기 때문인지 캐나다 단풍나무는 쓸모가 많다. 목재의 경도가 높아서 세계볼링협회에서 국제경기용 볼링장의 레인목으로 캐나다산 단풍나무를 쓰도록 유일하게 지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 수액으로는 메이플 시럽을 만들어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

촛불이 자신을 소진해 가면서 주위를 밝게 하는 것처럼 나뭇잎의 생애도 그야말로 ‘살신성인(殺身成仁)’이다. 봄부터 잎으로 햇빛을 받아 광합성 작용을 통하여 양분을 만들어 나무뿌리에까지 공급해 준다.
기온이 낮아지는 가을이 되면 아름다운 단풍으로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다가 스스로 가지에서 떨어져 다른 나무를 위해 거름이 된다. 싱싱했던 초록과 화려했던 컬러의 기억도 땅속에 함께 묻히며…

우리의 삶도 여러 계절로 이루어진다. 혹시라도 땅에 떨어진 낙엽이라고 낙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새로운 봄을 위해 기꺼이 썩어 거름이 되어주는 가을 낙엽의 숭고한 의미를 깨우치도록 권하고 싶다. 가을은 결국 자기희생을 통해 새로운 준비를 하는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순간적인 즐거움을 주는 천연색 단풍의 화려함보다 땅 위에 나 뒹구는 초라한 낙엽 같지만 거름이 되어 차세대를 키우는 귀한 역할을 할 때 더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낙엽은 죽음이 아니라 또 다른 새 생명을 위한 거룩한 희생이다. 다른 나무뿌리에 보온작용을 해주고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쳔들의 가을은 화려한 단풍과 추수의 기쁨을 즐기기만 해서는 안 된다. 땅에 떨어진 낙엽이 다른 나무의 자양분이 되어주는 것처럼 자신을 희생 제물로 삼아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준비와 결단의 계절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뭇잎을 예수님의 생애와 비유하면 봄과 여름의 녹색 잎은 공생애 사역으로 볼 수 있다. 화려한 단풍은 마치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해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며 환호를 받는 마지막 장면 같고, 낙엽은 십자가의 희생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형형색색으로 외면을 자랑하는 단풍보다 타인을 위한 희생정신과 내면의 숭고한 가치가 더 중요함을 깨우쳐 주는 낙엽의 의미를 반추해 보며 이 가을에 또 한 번 하나님의 사랑을 깨우치고 있다.

빗자루 하나 달랑 들고 모처럼 낙엽을 치우다가 감사하게도 너무 깊은 뜻을 깨우치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 정취에 사색에 젖어 낙엽을 치우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나 보다.
벌써 해가 중천이다. 시장기가 든다. 문득 오늘 산책은 이걸로 대체할까?



게으른 생각이 드는 순간 영특한 코코가 벌써 목을 빼고 산책하러 나가자고 무언의 시위로 압력을 넣고 있다. 주인님만 애처롭게 쳐다보는 애완견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글 | 양경춘

 

*본 수필은 토론토 영락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웹진 "맥닛골 사람들"에 동시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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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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