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돌아가라!” 노골적 공격> 오타와의 외곽 소도시 바헤이븐(Barrhaven)에서 한국인이 사는 집을 향해 노골적인 인종혐오 발언을 내뱉으며 가족들을 상습적으로 위협하고 괴롭히는 사건이 발생… 신개발지(Maynooth Court)인 이 동네의 한인주택 근처에 남녀 두명이 수시로 나타나 계란을 투척하고 사용한 콘돔 등을 지붕위로 던지면서 온갖 욕설을 퍼부어대… 특히 이들은 창문을 열고 큰소리로 한국인 집을 향해 'Oh you Asians, go back to your home! Go back to your country!'라고 고함을 질러대… 이같은 장면이 주민들에 의해 영상으로 유포돼 동네주민들 모두가 불안… 이에 주민들은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왠일인지 적극 대처를 하지 않아… 한 주민은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에 이런 일이 일어나 엄청 스트레스를 받느다. 이런 사건은 신속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경찰은 뭘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 결국 사건이 온라인으로 확산되자 오타와경찰국 증오범죄 수사반(Hate and Bias Crime Unit)이 뒤늦게 수사에 착수… 이 동네엔 동양계가 절반을 차지하는 등 다양한 인종이 거주중이어서 특정인종에 대한 혐오 요소는 별로 없는 상황… 특히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한국인 가정은 동네주민들에게 예의바르고 친절한 이웃으로 알려져 그들에게 왜 이런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 한편 이 지역에서는 지난 3월 6일 스리랑카계 유학생(19)이 세들어 살던 집의 같은 스리랑카계 일가족 6명을 칼로 찔러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 발생해 전국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어… https://www.kocannews.com/koreannews/c2b0hcygfagcgi1b597902j75t8z99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GTA 바어어마켓, 상당수 지역에서 ‘Over-bidding’ 사라져 부동산정보업체 Wahi 보고서 5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광역토론토의 새 부동산매물은 작년 이맘때보다 83% 늘었다. 이민자 유입 등으로 주택공급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집을 사려는 실수요자라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정보업체 ‘와히(Wahi)’에 따르면 입찰전쟁은 옛말이고, 광역토론토 대부분의 지역에서 구매자들이 우위에 선 채 부동산 매매 협상이 진행 중이다. GTA 302개 커뮤니티 가운데 지난 5월 매물에 복수의 입찰자가 몰린 '오버 비딩(over-bidding)' 지역은 36%(110개 커뮤티니)로, 지난해 68%에서 반토막났다. 오버비딩 지역은 지난 3월 43%에서 4월 39%로 떨어지는 등 매월 3~4%씩 줄어들고 있다. 나머지 180여 커뮤니티에서는 입찰 경쟁이 거의 없는 셈이다. 다만 주택 유형별로 나누면 상황이 다소 엇갈린다. 콘도는 호가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가능성이 높지만 단독주택은 복수 입찰이 다소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와히 측은 보고서에서 "단독주택이나 타운하우스 등은 여전히 53% 이상의 커뮤니티에서 복수의 입찰자가 몰리고 있다"면서 지난 4월의 58%보다는 다소 줄었다고 전했다. 콘도의 경우는 와히에서 분석한 지역의 11% 만이 오버 비딩으로 나타났다. 콘도보다 주택에 대한 오버 비딩이 더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는 추세는 지난 2월 이후 계속되고 있다. 광역토론토 커뮤니티 가운데 구매자가 호가(asking prices)보다 낮은 가격에 입찰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은 Southwest Oakville로, 평균 14만9,000달러 낮은 가격에 제안이 들어갔다. 이밖에 King(평균 9만9,900달러 이하), 옥빌의 Eastlake(9만9,000달러 이하), 노스욕의 Hogg's Hollow(8만5,000달러) 및 Old Oakville(7만3,500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초과 입찰이 가장 활발한 지역은 마캄으로, 시장에 나온 가격보다 평균 20만6,000달러 더 많은 금액이 제시됐다. 이어 East York(20만1,600달러 이상), 리치먼드힐의 베이뷰 힐과 마캄의 Catchet(19만7,000달러 이상), 올드 토론토의 Bickford Park(18만8,050달러 이상)가 톱5 지역으로 조사됐다. 와히는 한 지역에 오버 비딩이 많다고 해서 그곳의 모든 주택이 호가 이상으로 팔리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며, 다만 전반적인 광역토론토의 부동산 시장 분위기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전년 대비 9%나 상승…토론토 1베드룸 2,479달러 어버내이션 5월 보고서 캐나다의 평균 렌트비가 2,200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렌털스(Rentals.ca)와 어버내이션(Urbanation)의 5월 보고서에 따르면 임대주택 렌트비는 전년 대비 9.3% 상승해 2,202달러로 집계됐다. 1베드룸 기준 토론토는 2,479달러, 미시사가는 2,339달러로 뒤를 이었다. 토론토의 2베드룸 평균 렌트비는 3,310달러였다. 1베드는 작년 대비 2.3% 내렸고, 2베드룸은 연간 0.1% 떨어졌다. 그러나 지난 4월과 비교한 월별 통계는 각각 0.8%와 1.9%씩 올랐다. 밴쿠버는 침실 1개짜리 임대료가 2,671달러로 전국에서 가장 비싼 지역으로 꼽혔다. 뉴펀들랜드의 세인트존스는 955달러, 앨버타주 포트 맥머레이에서는 1베드룸 렌트비가 1,242달러였다. 어버내이션 측은 토론토와 밴쿠버의 렌트비는 작년 5월 이후 약간 하락세를 보였으나 퀘벡시티, 핼리팩스 등은 연간 10% 넘게 올랐다고 전했다. 주별로는, BC주 아파트 또는 콘도의 평균 임대료가 2,526달러로 2.3% 상승해 가장 높았고, 온타리오주는 2,423달러로 0.7% 상승했다. 캐나다 전역의 렌트비 인플레이션은 사스캐처원(21.4%, 1,334달러), 앨버타(17.5%, 1,787달러), 노바스코샤(17.1%, 2,238달러) 등 대부분 지역에서 10% 이상 큰 폭으로 올랐다. 부동산업체는 "국내 임대시장은 지속적인 강세로 여름 성수기에 접어들고 있다"면서 "다만 토론토의 경우 사상 최고치를 찍은 이후에는 수개월간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중은 기준금리 0.25% 인하 효과는?. "구매능력 회복하기엔 부족" 중앙은행이 4년여 만에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부동산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먼저 주택시장이 심리적 요소에 많이 좌우된다는 점에서 금리인상 시대가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주택가격의 변동이나 실수요자들의 구매력을 높이기에는 금리 인하 폭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몬트리올은행(BMO) 관계자는 "6월 금리인하 이후에도 단기적으로 주택 매물이 계속 증가하고, 실제 거래는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BMO의 로버트 카브치치 선임연구원은 "대부분의 시장 참가자들은 이번 금리인하를 간절히 기다려 왔으며, 금리인상 사이클의 정점에서 내리막으로 전환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심리적 부양책 역할을 분명히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동시에 많은 모기지 대출자가 이미 더 낮은 고정금리로 전환한 데다, 23년 최고치에서 변동금리를 0.25% 낮췄다 해도 대출자들에게 안도감을 주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BMO 관계자는 주택구입능력 측면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려면 모기지 금리가 4% 미만으로 떨어지거나, 주택 평균가격이 12% 더 하락하거나, 소득이 이 두 가지 요소의 차이를 메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르거나, 아니면 이들 모든 변수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짜 주택이 필요한 실수요자라면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기 보다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마이크 실링 Community Savings Credit Union 대표는 CTV와 인터뷰에서 "부동산을 구입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20년 전, 아니면 바로 지금뿐이라는 옛말이 있다"면서 "중앙은행이 언제쯤 추가로 금리를 내릴지 기다리기 보다는 모기지 정보를 찾아보고, 전문가를 찾아 조언을 구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최근 단행된 개각에서 온타리오 관광문화게임부 장관(Minister of tourism, culture and gaming)에 임명된 조성훈(Stan Cho) 장관이 첫 외부업무로 지난 10일(월) 토론토 셰리던칼리지(Sheridan College)에서 영화산업 종사자들과 만나 현황을 청취하고 향후 발전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질 던롭(Jill Dunlop) 온주 대학부 장관(Minister of Colleges and Universities)이 동행했다. 업무영역이 훨씬 넗어진 조 장관은 앞으로 온타리오 한인사회의 문화관광산업 발전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부동산임대 사이트 "보수 신경 안쓰고 이사도 자유로워" 2016년에서 2021년 사이 국내 세입자 수가 10.3% 늘었다. 이는 같은 기간 자가주택을 보유한 가구 증가율 4.6%의 배 이상이다. 부동산임대 사이트 포인트투홈스(Point2Homes)는 최근 인구조사 자료를 토대로 "지난 10년간 렌트 가구 수는 100만가량 늘었다"고 밝혔다. 국내 50개 주요도시의 렌트가구 비율은 33%였는데, 28개 도시에서 평균보다 높았다. 가장 많은 세입자가 사는 도시는 토론토이며, 55만1,290가구였다. 이어 몬트리올이 51만2,775가구로 2위였는데, 세입자 비율은 몬트리올이 63.4%로 가장 높았고, 토론토는 47.9%로 나타났다. 밴쿠버, 셔브룩, 퀘벡시티는 각각 54.5%, 50.4%, 48.6%로 세입자 비율이 높은 상위 5개 도시에 들었다. 포인트투홈스는 "온타리오의 여러 도시는 다세대주택보다 단독주택이 월등히 많지만 최근 세입자 인구가 크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5년간 세입자 비율이 가장 많이 늘어난 도시는 BC주 리치몬드로, 17.6%에서 28.7%(11.1%p)로 급증했다. 이어 워털루는 31.2%에서 38.3%(7.1%P) 늘었고, 마컴은 13.8%에서 18.1%(4.3%p), 오샤와는 31.5%에서 35.8%(4.3%p), 옥빌도 18.3%에서 22.2%로 4%p 가까이 늘었다. 본(Vaughan), 킹스턴, 배리, 밀튼, 그리고 에이잭스 등도 렌트인구 비율이 가장 많이 늘어난 상위 15개 도시에 포함됐다. 부동산업체는 "캐나다 여러 지역에서 전례 없이 세입자 인구가 늘고 있는데, 주택가격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재정적 이점이 있고 주택 유지보수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점 등이 강점으로 꼽히기 때문"이라며 "또한 언제든 다른 도시나 집으로 쉽게 옮길 수 있다는 점 등도 젊은이들이 렌트를 선호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ditor’s Note -모진 세월 헤치고 살아온 삶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그 이름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김현승 ‘아버지의 마음’) 나는 여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이 거의 없다. 아니 아버지라는 용어 자체가 어색하다. 그 이름을 불러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0…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아버지와 함께 손을 잡고 다니거나 아버지 덕택에 잘 된 것을 보면 무척 부러웠다. 한편으론 “왜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일찍 돌아가셨나.” 속으로 원망도 많이 했다. 내가 지금도 부친의 후광으로 떵떵거리며 사는 계층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나는 어쩌면 이 나이토록 아버지라는 이름을 아예 잊고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빛바랜 사진첩들을 뒤적이다가 노랗게 색이 변한 옛날 사진들을 보노라니 새삼 눈에 띄는 장면들이 몇개 있었다. 바로 내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었다. 0…갓난아기 때부터 너댓 살 무렵까지인 것 같은데 너무도 새삼스러워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그러면서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아, 나에게도 아버지가 있었구나!” 그런데 왜 나는 그동안 아버지 생각을 안하고 살아왔을까? 아버지라는 존재가 전혀 없었던 것 마냥… 그것은 아마도 먹고 사는데 열중하느라 옛 생각을 안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안도의 한숨을 쉬어본다. 나에게도 아버지가 있었다! 0…사진 속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멋진 신사숙녀였다. 아버지는 예전 구세대답지 않게 하이칼라 머리에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맨 세련된 모습이셨다. 언젠가 친구들과의 계모임에 참석할 때 어머니와 나를 함께 데리고 간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호탕하게 웃으시는 얼굴에서 쾌남아 인상을 짙게 풍긴다. 단아하신 어머니는 내 평생 보아온 모습과 똑같다. 아버지는 일제시대 일본으로 건너가 세탁소 일을 하시다가 해방 후 귀국하셔서도 그 일을 하셨다고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0…아버지는 내가 여섯살 때 집에서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시더니 너무 고통스러워 병원으로 실려 가셨다. 진단 결과 급성 복막염인데 시간이 너무 지나 손을 쓸 수가 없다고 다시 돌아오셨다. 그 몇시간 후 아버지는 참으로 허망하게 돌아가셨다. 요즘같은 시대엔 병이라고 할 것도 없는 질환으로 40대 중반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 아버지 상여(喪輿)가 나가던 날 나는 깡충깡충 뛰어 놀았고 어른들은 그 모습에 눈시울을 훔치셨다. 아버지는 무엇이 그리 급하시어 젊고 고운 어머니와 철모르는 다섯 남매를 남겨두고 홀연히 떠나셨는지. 0…아버지는 대청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한적한 산기슭에 어머니와 합장돼 있다. 선산(先山)의 묘는 수몰(水沒)지역이라 호수에 물이 차면 조각배를 타고 가야 한다. 산소는 또 왜 그리 외지고 먼 곳에 썼냐고 성묘를 갈 때마다 투덜대기도 했다. 그나마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있다. 이런 불효가 없다. 아버지가 오래 살아계셔 효도하는 분들을 보면 부럽다. 우리 아버지가 좀더 오래 사셨더라면 나의 운명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가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볼 때도 있다. 0…나는 막내로 태어난데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가족들의 측은심 때문인지 형님 누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내 천성이 마음이 여리고 인내심이 부족한 것은 그런 성장 환경 때문이라 생각된다. 내가 나이들수록 건강에 신경을 쓰는 이유도 내 자식들만큼은 아버지가 오래 함께 있어 좋은 추억거리들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0…‘아버지’란 말엔 왠지 외롭고 고달픈 이미지가 스며있다. 한잔 술에 취해 잠든 아버지의 모습은 측은해만 보인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 얼마나 힘이 드실까.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 직장에서 무시당하고 화나는 일이 있어도 집에 와선 내색 않고 그저 미소만 지으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오로지 가정과 자녀드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세상의 온갖 굴욕을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한국의 아버지 상(像)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때론 자식들이 무시하고 대화에 끼여주지 않아도 그냥 허허 웃어넘기는 우리의 아버지. 0…6월 세번째 일요일(올해는 16일)은 캐나다에서 정한 아버지의날(Father’s Day)이다. 어머니날은 선물이다 외식이다 하여 떠들썩하지만 아버지날은 대충 넘어간다. 그래도 이날만큼은 아버지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챙겨 드리는 것이 어떨까. 무기력하고 초라해 보이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 요즘처럼 어려운 시대에 그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다. 세상의 아버지들에게 용기를 주자. 그들의 기(氣)를 살려드리자. 가장(家長)의 빈자리는 없을 때 더 큰 법. 살아계실 때 잘 해드릴 일이다. 0…‘아버지는 태산 같은 존재/ 나이가 들수록 작은 동산의 둔덕/ 흔들림 없는 아름드리였다가/ 누구보다 연약한 갈대/ 수많은 감정들을 가슴에다 채우고/ 가장이라는 짐을 지고 휘청대는/ 참으로 외로운 사람인 것을!’ (김향숙 ‘아버지’) (주필)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C칼럼- 195 (지난 호에 이어) 이미 정해진 운명이란 바로 지금 우리가 함께하는 사람들, 그리고 하고 있는 일이다. 옛날에 만났던 이성들, 그리고 자기가 공부했던 전공, 이전에 하던 일 등, 이 모든 것보다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 하고 있는 일 등이 나의 운명이며, 또 바로 지금의 처지가 나에겐 최고였기에 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 정해진 운명 안에서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있지만 때로는 지금의 삶이 너무도 힘이 들고 또 현실이 싫어서 그것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갑자기 대책도 없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옛 애인 아니면 새 이성을 만나는 등 돌발 행동을 하는데, 그렇게 해서 모두가 행복하고 잘되면 좋겠지만 자기의 행동 때문에 같이 하던 사람이나 가족들이 불행하고 힘들어진다면 그것 역시 본인이 책임질 일이다. 본인의 행복이 가족의 불행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우리가 알고 배운 상식과는 다르지만 우리가 당사자가 아닌 이상 함부로 판단이나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이 우리에게 정해진 운명이라면 바로 이 운명이 나에겐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자는 뜻이며, 그것은 내가 사는 동안 나를 좀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시지프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지프스가 신에게 반항하는 오직 단 하나의 길은 신이 내린 벌을 계속해서 꾸준히 순종하고 행하는 것이며, 비록 그것이 끝이 없는 영원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필자의 의견엔 그것은 반항이라 표현은 했지만 그것은 실제로 반항이 아니라 굴복한 것이라 판단 되지만 말이다. 다른 말로 표현을 한다면 우리 인간은 때때로 시도는 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이미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몸부림을 치다가 모두 외길로 가야만 하는, 선택이 없는 우리들인데 누가 어디가 뭐가 잘났다고 감히 남에게 갑질을 하고 살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가난하고 배고픈 때가 없었다면 어찌 풍요로움에 대한 감사를 알 수 있으며, 아픈 때가 없었다면 어찌 건강에 대한 감사를 알며, 공산당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지 알지 못한다면 어찌 민주주의가 좋은 줄 알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나 지난 후에 깨닫고 또 후회를 하게 되는데 함께 사는 배우자 역시 옆에서 잔소리 하던 사람이 없어지면 그때야 그 잔소리가 그리워지고 또 고마움을 알듯이 우리 모두는 매일매일 그렇게 또 멍하게 살면서 깨닫고 또 잊으며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제 벌써 6월 중순이 되었고, 이곳 캐나다에선 최고의 계절이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아쉽고 또 잡아두고 싶기만한 계절이다. 출퇴근 할 때마다 문 앞에 서 있는 라일락나무에서 찐한 향기를 안겨주던 꽃들이 벌써 시들어가는 모습은 매우 안타깝다. 잡을 수도, 멈출 수도 없다 보니 내년에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과 함께 인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아 울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순응할 수밖에는 없는 피조물의 운명이 아닌가. 사춘기 시절엔 일부러 빗속을 걸으며 상념에 젖어들던 그때의 기분과 지금의 상늙은이가 어쩔 수 없이 빗속을 걸으며 상념에 젖어드는 생각들이 어쩜 이렇게도 다를 수가 있을까?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도 섭섭한 것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젊었을 땐 가을철 낙엽 하나가 바람에 굴러가도 서로가 낄낄거리며 폭소를 자아내던 우리들이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낙엽 하나가 떨어져 굴러가면 그것마저도 슬퍼지는 이유를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둔 아이젠하워 장군(왼쪽) "침공 이후, 24시간은 결정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연합군에게나 독일군에게나 이 순간은 제일 긴 하루(The Longest Day)가 될 거야. 제일 긴 하루가"! -에르빈 롬멜- [영화 사상 최대의 작전에서(The Longest Day)] 1944년 6월6일 아침, 15만6,000명의 연합군이 영국 해협을 건너 프랑스로 진군을 개시했다. 이들 중 13만2,000명은 바다를 건너 상륙 하였으며 2만4,000명은 공수작전으로 강습, 투하 하였다. -연합군, 육해공, 장병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가 수개월에 걸쳐 준비한 위대한 성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용맹한 동맹과 다른 전선의 전우들과 함께 독일의 군사력을 돌파하고 탄압 받고 있는 유럽시민들에 대한 나치의 폭정을 몰아내고 자유세계에서의 안보를 지켜낼 것입니다… 적들은 무자비하게 싸울 것 입니다. 하지만 올해는 1944년입니다…. 이제 전세는 역전 되었습니다. 전 세계의 자유 시민들이 우리와 함께… 우리는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무운을 빕니다. 그리고 이 고귀한 임무를 수행하는 우리에게 전능하신 신의 가호가 있기를!" -드와이트 디 아이젠하워- 1944년 6월6일 당일 아침 프랑스로 진격하는 연합군 모든 장병에게 전달된 사령관 아이젠하워 장군의 명령서를 요약한 것이다. 연합군의 보병사단 및 기갑사단은 길이 80km 노르망디 해안 5개 구역(유타, 오마하, 골드, 주노, 소드) 침투작전을 시도하였다. 해변을 내려다보는 독일군 요새에서는 총탄이 빗발쳤고, 사상자는 절벽이 높은 오마하 해변에서 극심했다. D-day 당시의 날씨도 결코 이상적이지 못하였고 강풍으로 인해 일부 상륙선은 의도한 장소에서 동쪽으로 밀려났으며, 해안은 지뢰를 비롯해 나무말뚝, 철선 등의 장애물이 널려 있어 이러한 장애물을 제거하는 임무는 매우 어렵고 위험했다. 첫날, 전투 중 사망자는 독일군이 4,000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고 연합군은 확인된 사망자만 4,414명을 기록했다. 연합군은 많은 병력 손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만에 목표한 임무를 달성 하는 데 실패하였다. 상륙 첫날 서로 연결된 해변은 '주노'와 '골드' 두 장소뿐이었고, 다섯 상륙지점이 모두 연결된 것은 6일 후인 6월 12일이었다. #사라져가는 노르망디의 노병들. 주노해변은 골드해변 동쪽과 소드해변 서쪽 사이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서 제 3 캐나다 보병사단이 담당하고 있던 지역이었다. 1944년 6월6일, 디-데이 새벽 당시 19세였던 몬트리올 출신의 빌 로스(Bill Ross)는 전우들과 함께 해변가에 상륙하여 목표지점인 베르니에르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장병들은, 작전 개시 전의 해상 폭격과 공군의 폭격이 전투를 수월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예상하였다. 그러나 사전 폭격은 예상했던 것보다 비효율적이었으며, 거친 날씨 또한 상륙작전의 장애물로 작용하여 선발대의 진격은 07:35분까지 지연된다. 빌 로스가 소속되어 있는 상륙부대는 독일 제716사단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많은 전우들이 전사하며, 죽은 전우들의 시체를 밟고 밟으며 돌진했다. 밤 9시가 되어 해가 떨어져 참호를 파고 지친 몸을 쉬게 되었을 때, 그가 소속되어 있는 보병사단은 어느 연합군 부대들의 디-데이 목표보다 더 큰 진군의 성과를 얻게 된다. 80년이 지났다. 2016년 91세로 노병 빌 로스는 이 세상을 하직하였으나, 80년 전 그의 전우들이 진군했던, 피로 얼룩졌던 12 킬로미터의 길을 회상하며, 또 기억하기 위해 현지의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노병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걷는 기념행사를 거행하였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올해 102세인 미국인 2차대전 참전 용사인 로버트 페르시치티 씨가 노르망디에서 열린 상륙작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현지로 가는 도중 사망하였다고 한다. 평소 심장질환이 있던 노병 페르시치티 씨는 장거리 여행의 위험을 감수하고 유럽을 찾았다가 중간 기착지의 노르망디로 가는 선박 안에서 응급 의료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며, 항공편을 통해 독일의 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끝내 사망하였다 한다. 올해 100세로, 20세 때 캐나다공군 정찰기 조종사로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던 노병 리차드 로멀(Richard Rohmer)은 디-데이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나기 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1944년 당시만 해도 히틀러 치하의 나치군대는 조직이 잘 되어 있는 군대였고, 세계를 장악하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을 때였다. “만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실패했더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세계는 독일의 나치와 유사한 권위주의 정권이 활개치는 판도로 변모하였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번 방문이 매 10년마다 열리는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80년 전 권위주의 독재정권에 저항하다 흘린 전우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아야 한다는 그의 마지막 염원은, 100세 노구의 몸에도 불구하고 노르망디로 향하게 하였다. 세계 1차대전이 끝난 지 10여 년 후 1930년대 초, 유럽은 새로운 권위주의(Authoritarian) 정권의 출현을 목격하게 된다.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 이태리의 무솔리니 그리고 제3 제국(The Third Reich)이라 불렸던 독일 히틀러의 나치(Nazi)정권이다. 나치독일은 정부 국민들의 삶을 통제하는 전체주의적인 독재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세계는 민주주의 체제인 연합국과 권위주의 정권인 전체주의 국가와의 격돌 장소로 변모하게 된다. 이 권위주의 정권의 상징인 나치 독일의 예봉을 꺾은 것이 사상 최대의 작전이라 불리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그 후 11년이 지난 1945년 5월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멸망하게 된다. 80년이 지났다. 그간 세계는 놀랄 만한 변화를 이루었다. 20세기 역사의 시계추를 돌려 놓았던 역사의 주역들인, 참전용사들은 사라져 가고 있다. 모든 참전용사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하더라도 노병은 죽지 않고 기억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많은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인류가 발견한 최대의 정치 시스템이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잊지 말자, 1944년 6월6일 노르망디 해변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 젊은 나이의 병사들과 그들의 전우였던 노병들을! 2024년 6월6일.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교회 안에 발을 디디고 살아온 게 벌써 40년을 넘었다. 돌아보면 수많은 설교를 듣고, 또 적지 않은 기독교 관련 책을 읽었다. 한때 명성을 떨치던 목사나 선교사, 저술가, 부흥사 가운데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도 있었고, 여전히 기독교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들도 많다. 과거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던 설교나 읽었던 책 가운데 지금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 게 사실이다. 아마 20~30년 후에 2024년을 돌아볼 기회가 있다면 똑같이 고백할 것이다. 구약성경 열왕기상 13장에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남유다 왕국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렸다. 다른 한 인물은 여로보암이 통치하던 북이스라엘에서 선지자로 살았다. ‘하나님의 사람’은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이 패역한 짓을 일삼자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할 임무를 띠고 유다를 떠나 이스라엘로 갔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벧엘에서 분향하고 있던 여로보암을 향해 여호와의 저주를 쏟아냈다.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그 날에 그가 징조를 들어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징조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매”(열왕기상 13장 2~3절) 여호와의 말씀대로 제단이 갈라지고, 재가 쏟아져 내렸다. 이때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피로를 풀 겸 같이 쉬자고 하며, 선물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거절하고, “떡도 먹지 말며 물도 마시지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던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했다. 이 소식이 벧엘의 늙은 예언자에게 전해졌다. 그는 곧장 나귀를 타고 ‘하나님의 사람’을 쫓아갔다. 그리고는 상수리나무 근처에서 만나 “나와 함께 집으로 가서 떡을 먹자”고 말했다. 하나님의 사람이 거절하자, 늙은 선지자는 거짓으로 “나도 그대와 같은 선지자라. 천사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내게 이르기를 그를 네 집으로 데리고 돌아가서 그에게 떡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느니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사람’은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고, 늙은 선지자를 따라 집으로 가서는 떡을 먹고 물을 마셨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거짓말을 했던 늙은 예언자에게 임했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하신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왕상 13장 21~22절)고 하셨다. 늙은 예언자는 ‘하나님의 사람’이 떡을 먹고, 물을 마시고 나자 나귀 등에 안장을 얹어주었다. ‘하나님의 사람’은 돌아가는 길에 사자에게 물려 죽었다.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돌아와 자기 성읍에서 슬피 울며 장사를 지냈고, 그의 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두고 “오호라 내 형제여” 하며 슬피 울었다. 이 에피소드는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중구난방처럼 보인다. 여로보암왕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던 ‘하나님의 사람’이 늙은 선지자의 거짓말에 넘어간 것이나,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했던 그를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에 속지 않게 보호해 주시지도 않았다. 또한 거짓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속였던 늙은 선지자의 입을 빌려 여호와의 말씀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야기를 다시 살펴보면 우상숭배에 혈안이 된 여로보암에게 ‘하나님의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서 사르리라 하셨느니라”(왕상 13장 2절) 뜬금없는 이름, ‘요시야’가 예언에 등장하는데, 그는 남유다의 16대 왕으로, 기원전 640~609년 사이에 활동했다. 여로보암이나 ‘하나님의 사람’ 보다 대략 300년 후대의 인물이다. 요시야왕의 역사는 구약성경 열왕기하 22장부터 기록돼 있다. 그는 율법책을 발견하고, 유월절을 지키며 각종 우상을 섬기던 제단을 혁파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열왕기하 23장 24~25절에 나온다.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고 기록한다. 특히 열왕기상 13장의 내용이 열왕기하 23장 15~16절에서 그대로 성취된다. “또한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벧엘에 세운 제단과 산당을 왕이 헐고 또 그 산당을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며 또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더라.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산에 있는 무덤들을 보고 보내어 그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그 제단을 더럽게 하니라. 이 일을 ‘하나님의 사람’이 전하였더니 그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더라.” 이어 17~18절에는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무덤 이야기도 언급된다. 요시야는 우상을 섬기던 산당의 제사장을 죽이고 무덤까지 파헤쳤으나 ‘하나님의 사람’과 사마리아의 늙은 선지자의 무덤은 그대로 두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시야의 최후도 비극이다. 그는 애굽왕과 전쟁을 하다 전사했다. 더구나 율법을 지키려 한 요시야와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는 계속됐다.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내리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왕하 23장 26~27절)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고, 예언도 했고, 신비한 일도 일으켰지만 사자에게 찢겨 죽은 ‘하나님의 사람’. 우상을 부수고, 율법을 회복시켰지만 전쟁에서 전사한 요시야. 거짓말도 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외쳤던 늙은 선지자. 그들의 삶은 무의미하고, 삭제 당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해 여호와의 손길에 이끌려 다녔으며, 인간의 불가능을 온 몸으로 표현하는데 차용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은혜를 증거하는데 동원됐던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장28절)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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