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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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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페이스(black face) -위선적인 인종차별 논란

▲2001년 고교 파티에서 아라비안나이트의 알라딘으로 분장한 트뤼도 총리  

 

 내가 어렸을 적 시골에서는 어쩌다 간혹 외국인이 나타나면 신기해서 온 마을 사람들이 뛰쳐나와 구경을 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그에게 다가가 얼굴과 몸을 만져보며 이것이 진짜 사람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가 웃으면 동네사람 모두가 신기해 함께 웃음을 터뜨렸던 추억도 있다. 그만큼 예전 한국에서는 외국인 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학교를 다니면서 이 세상엔 한민족 말고도 다른 인종과 민족이 엄청 많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인종에 대한 선입견은 좀처럼 지우기 어렵게 각인돼버렸다.

 그 후 어쩌다 ‘이민병’에 걸려 이주봇짐을 싸게 됐고 그럭저럭 19년 째를 소위 선진국이란 데서 살고 있으나, 솔직히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인종에 대한 편견은 지우기가 어렵다. 허여멀건한 피부와 얼굴 윤곽이 뚜렷한 백인들이 모인 곳에 가면 아무리 당당하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주눅이 들고, 특히 언어문제로 버벅거릴 땐 학창시절 외쳤던 ‘반만년 단일민족, 자랑스런 한민족’의 기개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게 된다.

 반면, 피부가 거무스레하고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 사람을 만나면 웬지 우월의식이 나타난다. 서양 레스토랑에선 메뉴 주문에서부터 움츠러드는 반면, 중국식당이나 월남국수집 같은 곳에선 말이 잘 안 통해도 마음은 편하다. 그 근원을 따져보면 역시 인종에 대한 허접한 우월의식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국인의 인종편견 의식은 이처럼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이다.

 이곳 백인들이라고 왜 우월의식이 없겠는가. 그럼에도 겉으로는 그런 내색을 않고 친절하게 이방인을 대해주니 우리 같은 사람이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만약 드러내놓고  인종차별이 자행된다면 자존심 강한 한국인들은 상당수가 역이민 보따리를 쌀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힘든 육체노동으로 살아가는 동남아시아나 소수민족 이주자들을 일부 악덕업주들이 노예취급 한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들리는 이유는 우리라고 다를게 없다는 동병상련 의식 때문이다.

0…캐나다 언론이 저스틴 트뤼도(47) 총리의 18년 전 '브라운페이스'(Brown face: 갈색얼굴) 분장을 놓고 난리법석이다. 그의 사진은 이웃 미국 등 세계적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가뜩이나 SNC-라발린 수사외압 스캔들로 궁지에 빠진 트뤼도는 이로 인해 다음달 21일 총선을 앞두고 더 깊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Time)이 입수해 공개한 사진은 트뤼도가 정계입문 전 교사로 일하던 2001년 밴쿠버의 한 사립학교에서 열린 연말 코스튬(costume) 파티에서 '아라비안 나이트' 연극을 위해 짙은 갈색으로 얼굴을 분장하고 터번을 쓰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해 졸업 앨범에 담긴 사진에서 트뤼도는 얼굴은 물론 목과 손 등 외부에 노출된 부위는 모두 짙은 갈색으로 칠하고 있었다. 당시 트뤼도는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알라딘으로 분장했던 것이다.

 사진이 공개되자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인종과 성평등 면에서 다양성과 사회통합을 최우선 가치로 둔 ‘진보정치의 아이콘’ 트뤼도가 인종차별 행위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다. 이는 특히 총선을 앞두고 트뤼도의 총리 연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와중이어서 파문은 더욱 증폭됐다.

 트뤼도는 즉시 기자회견을 열어 “내가 어리석은 짓을 했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그때 그런 분장이 인종차별적 행위였음을 알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랍인 분장 사진에 이어 다음날에는 흑인분장 영상까지 등장했다. 글로벌 TV가 폭로한 영상엔 트뤼도가 고교시절 장기자랑 행사에서 얼굴을 검게 칠하고 마이크를 들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담겨 있다.

 파티나 장기자랑에서 행한 행위이긴 하지만 북미나 서구에서는 흑인이나 아랍인 등으로 분장하는 행위 자체가 인종차별적 모욕 행위로 간주된다. 당장 야권은 트뤼도가 인종차별주의자라며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는 캐나다는 물론, 영국 BBC방송과 CNN 등 세계 언론이 일제히 속보로 전하며 캐나다 총선을 뒤흔들 이슈라고 보도했다.

0…유색인종 분장이 뜨거운 감자인 이유는 '블랙페이스'가 갖는 인종차별적 상징성 때문이다. 블랙페이스는 19세기 연극무대에서 백인 배우들이 흑인 노예를 연기하기 위해 했던 분장으로, 흑인 배우를 직접 무대에 세우지 않고 백인 배우가 분장을 했다는 점에서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더욱이 분장 과정에서 얼굴을 까맣게 칠하고 입술을 과하게 두껍게 그리는 등 흑인을 희화화했던 관습 때문에 20세기 들어 연극계에서는 ‘브라운페이스'나 ‘블랙페이스' 분장을 금기시해왔다.

 이런 분장 때문에 정치인이 곤란한 상황에 빠진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 주지사 랄프 노스햄도 20대 때 마이클 잭슨 분장을 위해 피부를 검게 칠한 사진이 올해 초 공개돼 큰 논란을 낳았다.

 인종에 관한한 캐나다는 그나마 관대한 편이다. 그러나 이번 해프닝을 보면서 우리네 정서와는 참 멀다는 느낌이다. 20여년 전에 무심코 한 일을 이제와서 난리가 난듯 떠드는 것도 그렇지만, 현실에서 우리같은 유색인종이 겪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 얼마나 서러운데 별 생각없이 칠했던 분장을 놓고 논란을 벌이는 자체가 위선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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