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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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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한인사회의 종합시사전문지 <부동산캐나다>는 지난 2003년 5월 1일, 주로 한인사회의 부동산 및 경제 뉴스를 다루는 부동산경제 전문지로 창간됐습니다...동포여러분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 주시길 바라며, 기사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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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7
피곤한 이민살이- 나는 ‘진보’다

 

 최근 어느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인들 모임에서 흔히 보듯, 그날도 예외없이 한국정치 얘기가 나와 논쟁이 치열한 와중에, 가만히 듣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물었다. ‘당신은 보수냐, 진보냐.’ 나는 서슴없이 외쳤다. “나는 진보다”. 그랬더니 많은이들이 의외라는 눈초리로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나는 한마디  덧붙였다. 나는 ‘진짜 보수’, 즉 줄여서 ‘진보’다… 그랬더니 그제야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출신성분상(?) 누가 봐도 보수성향일 것이라고 분류되기 때문이다.   

 

 


 요즘 한인모임 어딜 가나 한국정치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또한 모임마다 어느 한편으로 갈라져 대통령 탄핵 찬반논쟁이 치열하다. 그러다 자칫 언쟁으로 비화되고, 이러다 보면 서로 얼굴을 붉히며 갈라서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민감한 정치 이야기는 가능한 피하려 노력한다. 나의 생각과 소신을 피력한들 상대방이 이해할 리 없으며, 괜히 속마음만 비치다 자칫 인간적으로 가까운 사람과도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번 굳어진 사람의 생각은 쉽사리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의 현명한 처세술은 ‘침묵이 곧 금’이 됐다.  


 0…나는 왜 이민을 왔는가. 좀 엉뚱한 얘기 같지만, 걸핏하면 소모적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세월을 보내는 조국의 현실을 견디기 어려워서였다. 그런데, 이민사회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좌, 우, 진보, 보수 등 이데올로기 편견이 여전히 사람들의 머릿속에 짙게 배어 있다. 이념이 대체 무엇이길래  이민사회에서까지 서로를 못 믿게 하는지.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사안의 본질은 사라지고 엉뚱한 사상논쟁으로 비화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럽다. 무능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어떻게 북한추종으로 해석되는지. 대통령 탄핵과 좌빨, 종북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더 큰 문제는 동포들이 해외에 나와서까지 사상적으로 어느 한쪽에 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 같은 세대는 직접 겪지 않았으나 해방 전후의 사상논쟁이나 6.25 한국전 당시 상황이 이러했다. 좌나 우, 어느 한편에 서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회주의자나 회색분자로 몰렸다. 사상이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또다른 문제는, 한인들에게 이곳 현지 이야기는 관심대상이 아니란 것이다. 실제 살고 있는 현실이 중요하건만 현지 정치 등은 흥미가 없다. 오로지 모국 뉴스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이러니 그야말로 한인 게토(ghetto)에 갇힌 꼴이다. 모두들 어떻게 그렇게 고국 소식에 해박한지, 한국 사정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동족간 대화에 낄 수가 있다. 이러니 이민살이가 더 피곤하다.  

    
 0…요즘따라 태극기가 왜 이렇게 섬찟해보이는지. 이민 와서 보기만 해도 가슴 뭉클했던 태극기. 월드컵 한일전 당시 펄럭이는 모습만 보아도 눈물이 흐르던 그 태극기가 지금은 어이없는 이념의 올가미가 씌어진 채 분열의 상징이 됐다. 


 촛불도 더 이상 낭만이 아니다. 학창시절 캠핑 가서 촛불을 밝히고 친구들과 밤을 지새며 이야기를 나누던 감미로운 추억거리가 아니다. 이런 아름다운 이미지를 망친 사람이 밉기만 하다.   


 해외에 나와서까지 이데올로기에 집착해 핏대를 세우는 사람을 보면 존경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모든 것은 상식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지나치게 어느 한편에 서면 사단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자중하자. 누구를 향한 외침인가. 이곳 광장에서 시위를 벌인다 해서 무슨 영향이 있을까. 현지인들에게 고국의 누추한 모습만 드러내는 꼴 아닌가. 


 한인사회에서 한발짝만 벗어나도 쩔쩔 매면서 무슨 고국 걱정까지 하는지. 고국을 생각하는 것은 순수하고 당연하지만 정도를 지켜야겠다. 또한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남을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 이민자는 현지에 적응해 사는 것이 중요하다. 고국 문제를 여기까지 와서 들추어내며 촛불을 밝히고 태극기를 흔든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참 씁쓸한 풍경들이다. 


 언젠가 멜라스트맨 광장에서 중동 출신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벌이는데, 지나가는 시민들이 우습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을 보았다. 자기네 민족 문제를 대외에 호소하는 것도 보편 타당성이 있어야 설득력이 있다. 대통령 탄핵 문제는 국내 문제다. 여기서 외쳐댈 사안이 아니다. 


0…어쨌든 대통령 탄핵은 가부간에 빨리 결론이 나야 한다. 시간을 끌수록 민족간 갈등도 더 깊어갈 것이다. 나라를 온통 혼란으로 몰고갔을 뿐 아니라, 해외에서 고생하는 애꿎은 이민 동포들까지 분열시킨 대통령은 그 죄만 해도 엄청 크다. 나라와 국민을 통합시켜 일사분란하게 끌고 가도 모자랄 판에 국론을 분열시키고 자기 변명에만 급급해하는 모습이 딱하다. 


 모두들 힘든 타국생활을 하면서 조국의 못난 민낯에 너무 흥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이곳에서 동포정치인 등 유력인을 배출하기 위해 힘을 모을 때다. 부디 우리 동포사회가 이 땅에서 튼튼히 뿌리 내리고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자. 고국에 대한 사랑은 그저 가슴 속에 간직하고 차분히 지켜보면 좋겠다.   (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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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3
왜 조성훈(Stan)인가

 
 
 동포 2세 조성훈(Stan Cho)씨가 2018년 6월로 예정된 차기 온타리오 주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우선 온주보수당(PC) 노스욕 윌로데일 선거구 후보 경선에 나섰다. 주총선에 나서려면 먼저 당의 지역구 책임자(후보)로 선출돼야 한다.  

 

 

 


 조성훈씨가 주류 정계에 진출해야 하는 당위성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다. 하나는 그의 개인적 자질과 역량이 뛰어남이요, 다른 하나는 한인사회 측면에서 보아 그렇다. 


 우선, 그의 능력이다. 그는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위 동포2세다. 그가 단순히 한인2세라 해서 무조건 밀어주자는 것이 아니다. 민족의식이 없다면 동포사회와 별 관계가 없다. 그는 선거 때만 동포들에게 굽신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진정으로 한인들을 위할 인물이다.


 그는 고교시절 학생회장을, 대학(토론토대학)땐 럭비부 주장을 지냈다. 그래서 그런지 리더십이 뛰어나다. 고교시절 일화가 있다. 한 한인학생이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엔 학교에 한인학생이 별로 없던 때여서 만만해보였나 보다. 이때 조씨는 교내 방송을 통해 전교생들에게 경고했다. 한인학생을 더 이상 괴롭히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 후로 백인학생이 한인학생을 우습게 보는 일이 없어졌다. 


 그는 이처럼 어려서부터 같은 핏줄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금도 그는 동포 2세로서 동족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며, 어르신들에 대한 예의범절도 깎듯하다.


 그는 매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특히 대중연설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 그가 연설을 하면 장내 청중이 압도되고 확 빨려 들어간다. 세대를 막론하고 나는 그처럼 연설에 뛰어난 한인을 본 적이 없다. 연설 실력은 정치인이 지녀야 할 필수조건 중 하나다. 


 그는 캐나다에서 태어나 영어가 훨씬 더 편하지만, 한국말로 의사소통하는데도 큰 지장은 없다. 그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지금도 한국말을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0…그는 부동산으로 성공한 아버지(조준상)의 후광 덕도 있지만, 거기에 의지할 사람이 아니다.  대부분의 이민 1세들이 그러했듯, 그도 부모들이 하루종일 일만 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이에 그는 부모들이 자신의 삶을 희생해가며 자녀들을 키워온데 대해 그 은혜를 되돌려 드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그리고 이민자의 후손으로서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한인커뮤니티 등 소수민족은 주류사회에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정치적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포 2세인 조씨가 나선 것이다. 그는 이런 현실을 바꿀 적임자이며, 동포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제 목소리를 낼 인물이다.


 그는 대학졸업 후 부친의 뒤를 이어 부동산업계에 뛰어들었으며, 2011년부터 부동산회사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한인사회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면서 조성준 의원 선거 캠페인에 참여하고, 노스욕 한가위축제와 한인회 평화마라톤 등 각종 동포행사에서 사회를 맡아 강렬한 인상을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특히 비즈니스계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동시에 이상주의적 면모도 갖췄고, 특히 커뮤니티 파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정치경력은 없지만 소수민족의 권익신장은 바로 정치를 통해 이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강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그는 다짐한다. “동포 1세 여러분께서 쌓아오신 반세기의 찬란한 이민 역사를 더욱 계승 발전시키겠다.” 


0…그런데, 이번 보수당 후보 경선에는 공교롭게 조성훈씨를 비롯해 한인 3명이 동시에 뛰고 있다. 이러다 보니 한인끼리 경쟁을 벌이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한인사회가 자칫 분열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4년 9월 30일 연방자유당 윌로데일 지역구 후보 경선에 조성용씨가 나왔을 때는 전 한인사회가 일치단결해 힘을 모았었다. 승리 직전에 아쉽게 무너졌지만 한인들의 저력을 한껏 과시한 한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한인끼리 경쟁을 벌이게 됐다.  


 그러나 차선책으로, 지역구 후보를 뽑는 ‘선호도 투표 방식'을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즉, 1명의 한인후보가 첫 개표 때 과반을 넘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다수 출마로 표가 갈릴 경우 한인후보 지지자를 1번, 2번 순으로 복수 투표를 해야 한인후보가 선출될 수 있다. 


 2년여 전 조성용씨가 1차 개표에서 타후보들을 크게 앞서고도 3위 후보에게 3차 개표에서 9표차로 역전패한 것은, 첫 개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어 최하위 후보를 탈락시키고 그 후보 용지의 2순위 해당 후보에게 득표수를 더해주는 경선방식 때문이었다. 따라서 어차피 한인끼리 경쟁한다면 이 제도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0…윌로데일은 온주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다. 총인구는 약 11만 명, 유권자는 7만4천 명이다. 이중 영주권자를 포함한 한인인구는 1만 명으로 추산되며 한국계 유권자는 5,500명 수준이다. 


 그러나 이것은 본선 얘기이고, 당원 가입 및 지역구 후보 경선 투표는 영주권자는 물론, 14세 이상 한인은 누구나(사업체 운영, 유학생 등 일시체류자 등)가능하다. 이들을 모두 합하면 8천여 명  정도가 된다. 따라서 한인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으면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한인들이 조성훈씨를 돕는 방법은 온주 보수당(PC) 입당서류에 사인 후 경선일이 정해지면 그때 투표소에 나와 조후보에게 투표를 하는 것이다. 온주보수당(PC) 후보 경선은 4~5~월 경에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현역 위주로 공천을 해나가기에 조성준 의원은 이미 결정이 됐다.


 당원 가입은 누구를 통해서 하든 상관없다. 다만 앞으로 캠페인 기간동안 유심히 관찰해보고 누가 과연 한인사회를 대표할 사람인지 잘 판단해 그에게 표를 몰아주면 1차 투표에서 아주 깔끔하게 마무리 될 것이다. 아마 이란계도 3명이나 나온다니 이번 경선은 민족간 대결이 될 것 같다.  


 한인유권자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과 실천적 행동을 간곡히 당부드린다. 부디 조성훈씨를 도와 캐나다 한인역사상 최초의 2세 정치인을 탄생시키자. 이제 1세와 2세 한인 정치인이 나란히 탄생하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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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0
둘 다 먹겠다?-이기석 한인회장에게

▲지난 2015년 3월 28일 치러진 토론토한인회장선거에서 당선된 이기석 후보팀 

 

 

 동포들의 기대를 모았던 제35대 토론토한인회장 선거는 이기석 현 회장 외에는 다른 후보가 없어 이변이 없는 한 이 회장의 연임이 확실한 분위기다. 그동안 이런저런 인사들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먹고 사느라 바쁘다’는 이유 등으로 서로 눈치만 살피다 결국 현 회장에게 다시 대권이 주어지는 모양세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고 있으면서도 공개적으로 꺼내기를 주저하는 의문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 회장이 한인회장과 온타리오 주의원(MPP)을 다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이 회장이 한인회장 자리와 온주 의원 둘 다를 갖는 것이 가능한가.

 

 사실, 이런 말은 사석에서 많이들 하면서도 누구 하나 나서서 직언하는 사람이 없는 현실이 이상하다. 아마 그것은 (이 회장과)개인적인 감정을 쌓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이기석 회장에게 공개질의를 해본다.(이 회장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 따위는 없으니 오해 없기 바라며, 귀담아 들어주길 바란다.)


 지금 한인사회 상황을 보면 무슨 선거를 하고 있는지 헷갈린다. 토론토 한인회장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인지, 온타리오 주의원에 나올 윌로데일 지역구 보수당 후보를 뽑는 경선인지. 공교롭게도 두 선거가 비슷한 시점에, 그것도 같은 인물이 두 선거를 위해 뛰고 있어 더욱 그렇다.    


 이기석 회장은 한인회장 출마와 온주보수당 윌로데일 지역구 후보 경선 출마를 공언한 상태인데, 이 점이 이해가 안된다. 만약 이 회장이 한인회장에 연임된 상태에서 올 봄으로 예정된 보수당 후보까지 선출된다면 그는 둘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이 회장이 주류정계에 진출하고 싶다고 말해왔던 점에 비추어 보면, 아마도 한인회장 자리를 내려놓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 회장은 한인회장을 하다가 보수당 후보를 거쳐(후보로 선출될 경우) 내년 6월에 실시될 온주의원까지 당선된다면 한인회장 자리는 그만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럼 한인회장 선거를 다시 치를 것인가. 아니면 부회장 체제로 반년 이상을 끌어갈 것인가. 


 이는 전례도 없거니와, 10만 동포를 대표하는 토론토 한인회장 자리가 그렇게 값싼 자리인지, 이 회장에게 묻고 싶다. 해보다가 더 좋은 자리가 생기면 미련없이 접고 그리로 옮기겠다는 뜻인지. 


 이것은 아니다. 이 회장은 현 시점에서 동포들에게 분명히 밝혀야 한다. 토론토 한인사회를 위해 앞으로 주어진 2년 임기동안 성실히, 끝까지 봉사할 것인가. 아니면 본인이 이미 선언했듯, 주류정계 진출에 더 뜻이 있는 것인가. 둘 다를 갖겠다는 것은 과한 욕심이 아닌가. 그것을 인정한다면 어느 한쪽은 내려놓는 것이 상식 아닌가.   


 거듭 묻지만, 이 회장은 한인회장과 온주의원, 둘 중에 하나만 택하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동포들을 진정으로 생각하고 존중한다면 명백한 선언이 있어야 할 것이다. 둘 다를 취하려는 것은 본인으로서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을지 모르나 동포들을 위해서는 별로 득 될게 없다.


 지금 한인사회에 할일이 태산인데, 한인회장직을 사이드 잡(side job) 정도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러다간 ‘죽도 밥도 아닌’ 꼴이 될 것이다. 이 회장은 어느 한쪽을 택해 그쪽으로 매진하는 것이 한인사회를 위해서도, 또 본인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특히 한인회 같은 자선단체의 장이 특정 정당에서 활동할 경우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정부에 비영리 자선단체로 등록된 토론토한인회는 연방국세청(CRA) 규정에 따라 정치활동이 엄격히 금지돼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자선단체 지위를 박탈당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이 회장의 행보를 보면 조마조마하다. 


 1965년 창립된 토론토한인회는 이듬해 자선단체로 등록됐으나 82년말 그 지위를 상실했다. 이유는 회계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 그 후 다시 그 지위를 회복하기까지 무려 7년이 걸렸다. 이런 상황이 다시 오면 어쩌겠는가. 그럴 경우 수십만 달러의 재산세를 다 물어내야 한다. 


 이 회장은 한인행사에서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분명히 현역 공인이다. 공식직함이 없는 일반동포와는 다르다. 그가 한인회장 재선을 위해 그런다면 어느정도 이해도 되지만 지금은 한인동포끼리 보수당 지역구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이 회장은 동포사회에 얼굴이 알려진 인물이기에 많은 동포들이 알아본다. 그런 ‘현역 프리미엄’ 때문에라도 더욱 겸손하고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  


 이 회장의 주변에는 동포 원로들도 많이 포진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런 분들은 이런 중요하고도 상식적인 조언들을 안해주시는지 궁금하다.  


 한인회의 오늘에 대해 동포들의 책임도 없지 않다. 평소 사석에서는 한인회에 대해 수근거리고 불만을 토로하다가 정작 기회가 주어지면 고개를 돌려버리는 현실에서 바른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회장 후보가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인사회에 그렇게도 인물이 없는가.  


 토론토한인회는 캐나다 동포사회의 대표단체다. 따라서 그 리더는 상식과 원칙을 지키고 제반 규정을 준수하는 등 타 단체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금 동포들에게 비치는 한인회는 그렇질 못하다. 이를 바로잡을 주체는 바로 한인들 자신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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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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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우탁 선생 ‘탄로가(嘆老歌)’)


 요즘따라 한인사회에 잇달아 원로들과 지인들의 부고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이민 역사 반세기를 맞은 캐나다 한인사회. 이제 어르신들이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다. 생전에 유명했던 분이나 조용히 평범하게 지내시다 가신 분이나 그들이 있었기에 한인사회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다. 


 40년 이상을 이 땅에 살아오신 분들에 비하면 이민 온지 16년 밖에 안된 나는 아직 청소년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여러 어르신과 원로들의 타계 소식을 접했다. 무정한 세월은 그렇게 흐르고 있다.  


0…지난 설날, 한인사회의 정신적 지주이셨던 이상철 목사님이 향년 93세로 별세하셨다. 이 분이야말로 토론토는 물론, 캐나다 전 한인사회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큰 별이셨다는데 이의(異意)가 없을 것이다. 동포행사에 목사님이 나타나시면 그 자리는 일단 중후해졌다. 눈부신 백발에 도사처럼 멋진 수염을 지니신 고인의 카랑카랑하던 목소리가 귓전에 생생하다. 연세가 들어서도 사려분별이 분명하시어 동포사회나 고국의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올바른 말씀을 들려 주셨다. 


 고인은 캐나다 한인이민사 50년을 대표하는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생을 인권운동과 목회활동에 힘써 오셨다. 목사님은 연합교회 총회장을 지내는 등, 캐나다 교단(敎團)의 거물로 추앙 받으셨다. 그러나 생전에 지녔던 그 많은 직함이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사회정의와 약자 편에 섰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돌아가시기 앞서 새해 1월 1일 한인회관에서 있었던 신년하례식 때만 해도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으시고 참석하셨는데,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됐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때 아쉬운 점이 있었다. 사람들이 인사를 주고 받으러 주욱 줄을 서는데 목사님은 서 계실 힘이 없으셨는지 혼자 덩그러니 한쪽 테이블에 앉아 계셨다.

그때 누구 하나 목사님께 다가가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모습은 전에도 수차례 목격했던 터이다. 원로분들을 평소엔 잘 모시지 않다가 막상 돌아가시면 너도나도 은근히 고인과의 친분을 내세우며 회고담을 늘어놓는 세태가 씁쓸하다.  


 또 한가지. 목사님 같은 분이라면 예우를 갖추어 ‘토론토한인사회장(葬)’으로 치렀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아쉬움이다. 이런 분을 그저 평범하게 보내드리는 것은 웬지 허전하다. 한인회를 비롯한 그 많은 단체들은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기나 했을까. 제 앞가림에 급급해 정작 할일은 뒷전이 아닌가 하는 쓸쓸함이 느껴진다.

 
 이에 앞서 2년여 전(2015년 4월 5일) 89세에 돌아가신 작곡가 안병원 선생은 한인사회 최초로 ‘한인사회장’으로 치러졌으나 처음이라 미숙한 점이 많았었다. 


 3년여 전에는 초대 토론토한인회장(1966~70년)을 지낸 윤여화 선생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별세했다(향년 87세). 선비풍의 고운 모습이셨던 고인 역시 한인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셨다. 


 이런 분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이민사회는 자연스럽게 세대가 교체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원로 어르신들이야말로 아무런 기반도 없던 황무지 같은 이민사회를 이 정도까지 성장시킨 주역들이다. 이들이 떠나고 나면 후세들이 그 자리를 메워갈 것이다. 남은 후손은 어떻게 슬기롭게 그 유산들을 계승 발전시켜나갈 것인지. 


0…장년의 70대 아들이 96세 노모의 영정 앞에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한인회 마라톤 행사 때,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아들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탄 채 걷기대회에 참여했던 할머님이 돌아가셨다. 이제 가을철 그때마다 할머니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고인은 16년 전 내가 이민와 신문사에 근무할 때, 먹음직스런 인절미를 빚으시어 아들(박남석 본보 필자) 편에 보내주시곤 하셨다. 


 96세라면 웬만큼 수(壽)를 누리신 것이란 생각도 들건만 아들 심정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조금만 더 사셨더라면 백수(白壽)를 누리실 수 있었을 텐데… 제대로 준비도 못한 조사(弔辭)를 즉석에서 읽으면서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간간히 목이 잠겼다.  


 지난주엔, 한인사회를 위해 팔 걷어부치고 봉사활동을 해오신 신복실 여사의 부군도 78세의 연세에 세상을 뜨셨다. 부인의 이름이 빛나도록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부군의 외조 덕일 것이다. 고인이 부인께 바친 ‘마지막 편지’가 가슴을 적신다.      

        
0…백년도 못 살면서 천년 후의 일을 근심하는 것이 인간이다(생년불만백(生年不滿百) 상회천세우(常懷千歲憂)). 하지만 장차 이 동포사회가 어떻게 굴러갈지 걱정이 안들 수 없다. 아쉽게도 현재의 한인사회 모습에선 비전이 잘 보이질 않는다. 흐르는 세월에 순응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 그나마 우리들의 소임이 아닐는지. 


‘한번 흘러가면 다시 오지 않을 덧없는 세월에 마음까지 따라가지 말자. 세월은 언제나 우리의 삶에 무거운 짐만 싣고 오지 않았던가/무거운 짐  빨리 벗어 버리려 애쓰지 말자. 세월은 우리 곁을 떠나갈 때도 그 무게를 짊어지고 가지 않던가//무심하게 흐르는 세월에 마음 뺏기지 말고 훈훈한 마음으로 세월을 이끌고 가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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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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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8
고독한 특종

 

 

 기자를 일컬어 ‘무관(無冠)의 제왕’이라 했다. 비록 정식 관직은 없지만 국가의 모든 영역에 걸쳐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때론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세상에 전해야 하기에 어쩌면 왕 못지않은 영향을 사회에 끼치기 때문이다. 기자는 한자로 ‘기록할 기(記)’ ‘놈(者)자’를 쓴다. 즉, 사회 전 분야의 여러 사실들을 진실 그대로 상세하게 기록해 전하는 것이 임무요, 사명이다.


 이러다 보니 기자는 때론 권력집단이나 이해 당사자들과 갈등을 빚거나 원한의 표적이 되기 쉽다. 그래서 기자의 삶은 대개 고독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진위(眞僞)를 분별해 바른말을 전하는 전통이 있어 왔다. 하나는 사헌부와 사간원을 중심으로 한 언관(言官), 다른 하나는 춘추관과 실록청을 중심으로 한 사관(史官)의 전통이 그것이다. 이 전통은 고려시대부터 존재했다. 


 언관과 사관은 권력자의 언행을 낱낱이 기록해 후세에 전하는 역할을 했다. 대상은 왕도 예외가 아니었다. 때문에 많은 언관과 사관들이 정언(正言)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며, 나라가 허튼 길로 가지 못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 기능을 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대한민국의 기자 정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나타내주는 대목이다. 기자가 기사를 쓰는 자체가 시대에 간언하며 역사를 남기는 작업인 것이다.


0…한국을 일대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은 대통령 탄핵 정국. 아직 미완이긴 하지만 그나마 여기까지 이르기에는 여러 언론과 기자들의 고독한 발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은 뜻밖의 계기로 시작됐다. 지난해 한 화장품 회사 대표의 변호사 폭행 사건을 계기로 법조계의 고질적 비리가 고구마 줄기처럼 엮여져 나왔고 인맥으로 사법체계를 우롱하는 전관예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촉발됐다. 


 캐도 캐도 끝이 없는 비리에 민심이 폭발하기 시작했고, 화살은 결국 고위직 인사 검증을 맡는 청와대(민정수석)로 향했으며, 이어 각 언론들이 잇달아 이와 관련한 대형 특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여기엔 보수 언론사까지 가세해 특종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국면은 걷잡을 수 없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여러 고비마다 자칫 그냥 묻혀버릴 진실이 많았으나 <한겨레> 등의 고뇌어린 보도로 불씨가 지속됐다. 특히 이 신문은 다른 메이저 매체와 달리 주요 취재원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오로지 '발품 팔이' 취재로 금싸라기 같은 특종들을 잇달아 캐냈다. 그러나 수많은 특종보도에도 불구하고 다른 언론사들은 후속 보도를 내지 않았다. 평소 특종을 놓친 언론들이 너도나도 취재경쟁에 뛰어드는 것과는 달랐다. 


 이때 국면을 완전히 반전시킨 언론이 종편채널 <JTBC>다. 이 방송사는 태블릿 PC 분석을 비롯한 최순실 관련 보도를 이어가며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이를 계기로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0…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이르기까지 언론 보도는 민심을 모으는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특히 열악한 장비와 인력에도 집회 과정을 생중계한 소규모 매체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특히 종편채널 JTBC의 역할은 갈수록 눈부시다. 이 방송사는 한국최고의 권력집단이라 할 수 있는 삼성그룹과의 특수관계에도 불구하고 종횡무진 성역없이 파헤치고 있다. 여기에는 손석희라는 스타 기자의 역할도 큰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그 많은 언론이 모두 그러한 것은 아니다. 고독하게 진실을 파헤쳐나간 언론과 기자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라도 왔다. 지금 언론 연대가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언론이 함께 보도하지 않으면 힘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자칫 진실을 보도한 언론사만 보복을 당하기 쉽다. 


 그러나 언론사는 체질상 연대를 잘 하지 않는다. 혼자서 특종과 단독보도를 터뜨리려는 욕심이 강하기 때문이다. 다른 언론에서 특종을 터뜨리면 함께 추적하려 하기 보다 이를 만회할 다른 기사거리를 찾는 습성이 있다. 이때문에 이번 사건도 자칫 묻힐 뻔했다. 


0…중국 역사서의 대명사이자 동양 최고의 명저 중 하나로 꼽히는 <사기(史記)>. 그러나 저자 사마천은 역사를 사실대로 쓰다가 한무제로부터 궁형(宮刑-남성 거세)까지 당한다. 궁형은 치욕의 형벌이라 형을 받기보다 자결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사마천은 자신의 일생의 과업으로 삼은 <사기>를 마치기 위해 치욕을 감수했다. 


 사마천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극형을 받고서도 살아남으려 한 것은 이 저술 때문이다. 책이 완성돼 보관되고 각지의 선비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면 나의 치욕도 씻겨질 것이다. 설사 이 몸이 산산히 부서진들 무슨 후회가 있겠는가.”


 '워터게이트' 특종을 터뜨린 <워싱턴포스트> 기자 칼 번스타인은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진실(the best obtainable version of the truth)을 제공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라는 말을 남겼다. 


 강추위 속에도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는 수많은 국민은 한국 언론의 존재 의미를 다시금  묻고 있다. 연인원 1천만을 넘긴 촛불 민심, 그것이 과연 할일 없어 놀러나온 사람들의 불장난인가. 사실을 진실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정말로 일부 언론의 선동인가.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水能載舟 亦能覆舟)’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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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6
반기문 코스프레

 

▲자신이 턱받이를 한채 누워있는 환자에게 죽을 떠먹이는 반기문 전 총장 

 


 요즘 ‘코스프레’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는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를 줄인 Cosplay라는 영어단어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즉 Costume(복장)과 Play(놀이)의 합성어로, 굳이 해석을 하자면 ‘복장놀이’, ‘의상놀이’ 정도가 되겠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에 나오는 주요 캐릭터의 의상을 입고 모여서 노는 놀이로, 슈퍼맨, 스파이더맨, 배트맨 등도 그 대상이다. 


 전형적인 일본식 조어(造語)라 대중적으로 잘 쓰이지 않았으나 언젠가부터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코스프레에 필요한 가발이나 가방, 옷 따위를 전문으로 파는 가게도 생겼다. 그런데 ‘의상연출’, ‘의상연기’라는 의미의 이 말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야릇하게 변질되더니 이제는 누구를 ‘흉내낸다’는 뜻으로 더 널리 쓰이고 있다. 그것도 왠지 어설프고 어쭙잖게 누구를 흉내낸다는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다.  


 최근 국회에서 한 야당의원은 직무정지 중인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대통령권한을 대행하고 있는 황교안 총리에 대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인사권을 행사하고 황제급 의전을 요구하면서 대통령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0…12월 대선을 앞두고 모국에서는 대권주자들의 행보가 국민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중 단연 화제의 중심에 선 이가 바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다. 최근 귀국한 그는 대권도전 의지를 공식 선언하고 광폭행보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를 보는 언론과 국민들의 시선이 생각보다 그리 따스한 것 같지가 않다.

   
 귀국행사에서부터 비판적 시각이 잇따르더니 갈수록 그의 설익은 ‘코스프레’가 냉소를  받고 있다. 반 전 총장은 엊그제 자신의 고향인 충북 음성군의 사회복지시설 ‘꽃동네’를 방문했다. 그는 여기서 한 할머니 환자에게 죽을 떠먹이는 코스프레를 연출했는데 그 모습이 어색하기 짝없고 서툴렀다. 특히 죽을 흘릴까봐 턱받이를 해야 할 사람은 할머니인데, 엉뚱하게 반 전 총장이 이를 목에 두르고 있는 모습이 네티즌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누워있는 환자를 일으켜 세우지 않고 그냥 음식을 먹일 경우 자칫 질식할 우려도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이에 한 유명 작가는 "반기문의 어이 없는 서민 친화 코스프레"라 비판하며 "정치인들의 거짓말과 속임수에 진력이 났다. 제발 국민들에게 진실을 보여주라"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반 전 총장은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선거유세장을 방불케 하는 ‘귀국 퍼레이드’를 벌여 비판을 받았다. 당시 반 전 총장의 경호원들이 시민들을 마구 밀어내는 등 강압적 태도를 보였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현장에 있던 한 사진기자는 “건달처럼 보이는 사설 경호원들이 막말을 쏟아내며 시민들을 밀쳤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친서민 행보를 하겠다며 개인차량이 아닌 공항철도 열차를 타려 했으나 7500원짜리 열차표를 사는 과정에서 무인발매기에 1만원권 2장을 동시에 쑤셔넣는 모습도 논란을 낳았다. 그는 표 구입이 익숙하지 않은 듯 무인발매기 앞에서 5분가량 헤매다 결국 주변의 도움을 받아 승차권을 구했다. 누리꾼들은 이를 두고 ‘서민 코스프레’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그런가 하면, 공항측에 특별의전을  요구했다 퇴짜를 맞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0…반 전 총장은 불과 반년 전만 해도 현실정치 참여설을 일축했었다. 동생들에게 “나는 대선에 나가거나 정치할 생각이 없다. 절대로 그런 일 안할 테니까 너희들도 말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던 그가 왜 생각이 바뀌었을까. 이는 아마도 그를 둘러싼 주변의 조언자 그룹 탓이 클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입장이 확고해도 주변에서 어떻게 조언을 하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평소 주변에 참된 조언을 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반 전 총장 역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주변에서 끊임없이 대선출마를 진언(進言)하면서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의 행보에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찮다. 특히 진정으로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그렇다.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고 인격적으로 훌륭해도 일단 정계에 발을 담그면 인간의 속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마련인데, 그가 굳이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하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예를 숱하게 목격해왔다. 순수한 학자로, 기업인으로 남았더라면 길이 추앙받았을 사람들이 험난한 정치판에 발을 잘못 디뎠다가 추락해간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0…반 전 총장에 대한 해외언론의 평가도 냉혹하다. 일각에선 한국이 유엔 총장을 배출한 것 자체가 후진국, 약소국이란 사실을 입증한 것이라는 냉소적 견해도 있다. 


 반 전 총장이 실제 대선에 나서면 검증과정에서 대내외의 비판 수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러면 그의 ‘신비주의’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민망한 모습만 보여질지 모른다. 사람은 어느정도 베일에 쌓여있을 때 아름답다.    


 반 전 총장의 나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는 1944년 6월생으로 올해 만 73세가 된다. 만약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취임하는 내년에는 74세가 되고, 5년 임기를 채울 경우 79세가 된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영광스러운 그 이름 석자로 길이 남을 수는 없을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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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chiman
김치맨/임윤식
2017-01-25
저는 유엔사무국(United Nations Secretariat)의 수장 Secretary-General 을 동양3국에서 '사무총장'이라 번역한 걸 부적절하다 봅니다. Secretariat을 '사무국'으로 번역하면서, 그 책임자는 '사무총장'? '사무국장'이라 해야 논리에 맞지 않겠어요? 반기문 전임 유엔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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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3
이런 얼굴을 보고 싶다

 

▲2017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메릴 스트립

 

 

“우리는 누구이며 할리우드는 무엇인가? 바로 다양한 사람들의 집단이다. 할리우드는 아웃사이더, 외국인들과 함께 나아가고 있다. 만일 그들을 내쫓는다면, 여러분은 예술이 아닌 풋볼이나 격투기 말고는 볼 게 없을 것이다...”


 할리우드의 명배우 메릴 스트립(67)이 최근 열린 제74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이는 그녀의 생애 아홉번째 골든글로브 수상이자, 할리우드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상이었다. 


 그런데 시상식장에서 스트립은 매우 인상적인 수상소감을 발표했다.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고,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며 무슬림 입국을 전면 금지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반이민 공약을 이와 같이 에둘러, 그러면서도 통렬하게 비판한 것이다. 


 스트립은 "배우의 임무는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가 그들이 어떻게 느끼는가를 관객들이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올해 배우들의 큰 성과가 있었지만, 한가지 사건이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고 소감을 이어갔다. “지난해 내가 깜짝 놀란 순간이 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자리를 추구하는 남성(트럼프)이 특권과 권력이 없다고 본 장애인 기자를 흉내 내는 걸 봤을 때 가슴이 무너졌고 지금도 고개를 들 수 없다.”


 이는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중이던 2015년 11월, 트럼프가 어느 유세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뉴욕타임스 기자의 신체장애를 조롱했다 논란이 된 사건을 말한다. 트럼프는 당시 선천성 관절 질환을 앓고 있는 해당 기자 앞에서 오른쪽 팔을 치켜든 채 손목이 흔들리는 시늉을 하며 “이 불쌍한 사람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못한다”고 말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스트립은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마음 아프고 도저히 잊을 수 없다. 권력을 가진 공인이 다른 사람의 장애를 조롱하는 것은 모두에게 '그렇게 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스트립이 "혐오는 혐오를 낳고,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며 수상소감을 마치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졌고, 한 흑인 여배우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할리우드와 소셜미디어에서는 스트립을 향한 찬사가 쏟아졌다.  


 0…메릴 스트립은 지적인 외모와 연기 열정으로 은막인생 40여년을 살아온 할리우드의 대표적 여배우다. 한국 영화팬들에게도 친숙한 스트립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맘마 미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철의 여인’ 등 수 많은 히트작을 냈다. 예일대 드라마스쿨을 나온 그녀는 이론과 실전경험이 겸비된 보기 드문 명배우다. 


 할리우드의 수많은 미녀배우들과 달리 스트립은 외모상 별로 미인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기다란 얼굴선에 약간 구부러진 매부리코를 갖고 있으며, 키도 168cm로 다른 여배우들에 비해 글래머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외모적 특징은 오히려 그녀만의 개성있는 캐릭터로 승화돼 고유의 연기영역을 형성하게 됐다. 


 스트립이야말로 외형만 화려한 뭍한 배우들에 비해 내면이 꽉 찬 연기자이며, 그래서 인기도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특히 그런 그녀이기에 세상을 바로 볼 줄 아는 안목도 있고, 올바른 목소리를 낼 줄도 아는 것이다.    


 0…메릴 스트립의 수상 연설을 보면서 속은 텅 빈 채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한국의 모습이 떠올라 씁쓸했다. 특히 대통령까지 나서 얼굴 뜯어 고치기에 혈안이 돼있는 풍조에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다. 


 수일 전, 한국의 가요프로그램을 보다가 참 씁쓸한 장면을 목격했다. 분명히 예전에 인기있던 여자가수이긴 한데 얼굴모습이 웬지 부자연스러워 긴가민가 했다. 나와 아내는 어리둥절하다가 화면의 자막을 보고서야 그가 K가수인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내 나이와 견주어 봐도 대략 70대 중반은 됐을 나이인데 그 나이의 얼굴 치고는 너무도 피부가 팽팽하고 잔주름 하나 없는데 가만히 보니 소위 무슨 주사를 맞은 흔적이 역력했다. 우리 부부는 옛노래를 들으며 향수에 좀 젖어보려던 기분이 싹 가시고 말았다. 


 최근 한국에 갔다온 한 여성을 만났는데, 전보다 웬지 활기차고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그런데 언뜻 얼굴을 보니 예전의 얼굴이 아니었다. 피부가 팽팽해지고 눈도 좀 커진 것 같았다. 코도 좀 높아진 것 같고… 


 한결 자신만만해진 것은 좋으나 속으로 무척 씁쓸했다. 자기 얼굴 좀 봐달라는 표정이 너무도 가식적이어서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그럴 땐 한마디 해주고 싶다. 그런다고 원판이 달라지나. 뜯어고친 외모는 유전도 안되니 부모와 자식간에 이질감마저 생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아내복 만큼은 엄청 큰 것 같다. 어디 하나 손댈 곳 없이 생긴 내 아내는 나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으니 그 또한 얼마나 다행인가…)      


 한국에선 취업면접에서도 실력보다 외모를 중시한다. ‘외모는 곧 돈’이라는 인식에 젖다 보니 예뻐지기 위해 서슴없이 얼굴에 칼을 들이댄다. 성형의 메카로 불리는 서울 강남에만 성형외과 수가 400여개에 달한다. 이러다 보니 의료사고가 나는 경우도 많다. 외모지상주의는 특히 젊은이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젊은 나이에 노력은 않고 겉멋만 들어 천박한 외형에 치중하게 되니 말이다. 


 0…솔직히 요즘처럼 모국 대통령의 얼굴 보기가 역겨운 적도 없다. 민낯도 그 정도면 좋은데, 왜 굳이 가식을 덫칠해서 구설에 오르는지. 물론, 대통령도 한 인간으로서 예뻐지고 싶은 마음은 같을 것이다. 그러나 꽃다운 학생들이 침몰하는 배에 갇혀 절박하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에 국가원수로서 어떤 일을 했는지, 진짜로 미용시술을 하고 있었는지 의혹을 밝힐 책임이 있기에 참담한 것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성형을 해대니 전 국민이 안할 도리가 있을까.


 한국인들이 유독 외모에 신경 쓰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스스로 못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인지도  모른다.

내적인 아름다움이 쌓이면 자연히 아름다운 외모가 형성된다. 겉멋만 들고 속은 텅 빈 사회에 희망이 있을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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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1
천년의 사랑

 

▲필리핀에서 의료선교활동을 펴고 있는 박누가 선교사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마치 한토막 밤과도 비슷하나이다.../당신이 앗아가면 그들은 한바탕 꿈/아침에 돋아나는 풀과도 같나이다.../아침에 피었다가 푸르렀다가/저녁에 시들어서 말라버리나이다...’(가톨릭 성가). 


 새해부터 허무한 말이지만, 인생은 흐르는 강물과 같아 참으로 무상하다. 천년의 세월도 창조주의 눈에는 한갓 어제에 불과하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그에 비례해 시간이 빨리 흐르는 느낌을 갖는다. 10대 때는 시속 10킬로, 20대는 20킬로...그러다 50, 60을 지나면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한다. 열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1년은 생의 10분의 1이지만, 쉰 살의 어른에게 1년은 인생의 50분의 1밖에 안 된다. 살아온 삶과 살아갈 날의 길이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달라지는 것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시간이 훨씬 짧은 노년에는 세월의 속도를 더 빠르게 느낀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나이에 따라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기도 하고 영원할 것처럼 늘어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왜 빨리 흐르는 걸까. 1912년 노벨의학상을 받은 알렉시스 카렐은 이렇게 비유했다.

“시계에 표시되는 물리적 시간은 강물처럼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 청소년기엔 강물보다 빠른 속도로 강둑을 달릴 수 있다. 그러나 중년을 넘어 노년이 되면 심신이 지치면서 강물 속도보다 뒤처지고, 그렇다보니 강물이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 


 어린아이에게 하루는 짧고 1년은 길지만 어른에게 하루는 지루하게 길고 1년은 짧다. 어렸을 때는 매일이 새롭고 모든 것이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지만 성인의 경험은 반복적이고 일상적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이 인상적인 기억의 연속인 반면, 단조로운 어른의 시간은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하지만 일어난 사건이 많을수록, 새로운 경험이 많을수록 시간은 길게 느껴진다. 즉, 늙어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삶에 변화를 줘서 기억할 거리를 만들어야 노년의 시간도 길어질 수 있다. 세월은 무상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歲月不待人). 


 0… "내가 아파 보니까 그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게 됐지요. 내가 아픈만큼 남들을 더 사랑해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지난 연말 감동적인 휴먼 다큐 한편이 수많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필리핀 오지에서 의료선교활동을 펴고 있는 박누가(58) 선교사. 그는 남을 위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박 선교사는 췌장암과 두 번의 위암 수술, 그리고 간경화에 당뇨 판정까지 받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환자다. 그는 병마와 싸우며 자신의 몸 하나도 가누기 어려울만큼 기진맥진한 상태지만 의료혜택이 없는 필리핀 등 동남아의 오지를 찾아 의료선교를 펼치고 있다. 동료 의사들은 그런 그를 만류하며 얼마남지 않은 생을 쉬면서 지낼 것을 권하지만 그는 고통이 심할수록 이렇게 다짐한다. '죽으면 죽으리라'.


 고 이태석 신부에 이어 ‘제2의 울지마, 톤즈’로 불리는 박누가 선교사. 그는 학창시절 동료 의대생들과 함께 동남아지역 의료 단기선교를 다녀온 다음 졸업 후 다시 신학을 공부했다. 당시 여러 선배들이 현지인들에게 베푸는 헌신적인 사랑을 보고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시련이 찾아왔다. 대학시절 학생운동권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시국사범 수배가 내려져 오갈 곳 없이 숨어 지내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 때부터 그는 한국에서 잘 나갈 수도 있는 직업의사의 길을 버리고 오지에서 헌신하는 제 2의 인생을 살게 된다.


 외과의사인 박 선교사는 2012년 초부터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필리핀 사람들을 찾아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오지를 누비는 그는 다른 이들의 건강보다 자신의 건강을 더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장티푸스, 콜레라 등 오지를 다니며 수많은 질병을 앓았던 그는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복수까지 차올랐음에도 불구, 산간벽지 등의 많은 어린이들을 찾아 진료하며 혼신을 다하고 있다. 힘든 하루일과를 마치고 녹초가 돼 누운 그의 모습에 눈물이 절로 흘렀다.


 그는 특히 어머니와 큰 누나, 그리고 큰 형까지 모두 암과 간경화 등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터라  그의  누나들은 동생마저 암으로 잃게 될까봐 발을 구르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서 항암치료를 받자마자 곧바로 필리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0…‘묵은 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妄道始終分兩頭)/겨울 가고 봄 오니 해 바뀐듯 하지만(冬經春到似年流)/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試看長天何二相)/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을 노닐뿐(浮生自作夢中遊)’-학명선사(1867-1929)의 선시(禪詩) ‘세월’. 


 새해니 지난해니 하는 것도 모두 인간들이 지어낸 것일 뿐,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만 사람의 마음이 달라질 뿐. 세월이란 것도 인간세계에서나 통할 뿐 삼라만상은 그저 자연 그대로 굴러가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그 한정된 시간 속에 얼마나 보람있고 남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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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7
암수술실에서

 

▲두경부암 수술의 세계적 권위자 조나단 아이리쉬 박사와 함께. 오른쪽은 조성준 온주 의원

 


 세모가 가까운 지난 12월 13일(화) 저녁, 토론토의 몇 한인인사분들과 함께 토론토종합병원(Toronto General Hospital)내 프린세스마가렛 암센터(Princess Margaret Cancer Centre)를 탐방해 암수술을 위한 최신 시설을 견학하는 매우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는 웬만해선 체험 못할 값진 기회였다고 생각된다.  


 이날 수술실 투어는 유건인 스카보로 닛산 대표가 주선했는데, 그는 2년여 전 바로 이 병원에서 침샘암(Salivary gland cancer) 수술을 받고 죽음 직전에서 되살아난 분이다. 유 대표는 자신의 기사회생을 계기로 이런 의료시설에 대한 한인사회의 관심과 후원을 당부하기 위해 병원측과 협의해 투어를 주선했다. 


 투어에는 조성준 온주의원, 조준상 한인부동산 대표, 김명규 한국일보 발행인, 이장성 얼TV 회장, 이진수 전 한인회장 등이 참여했고, 나는 미디어 종사자 자격으로 동참하는 행운을 누렸다.


 우리는 수술실 입실에 앞서 병원직원의 안내에 따라 상하 수술복(scrubs)으로 갈아입고 위생 캡(cap)도 썼다. 수술복을 입고 보니 우리는 마치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신성한 의무의 의사 같다는 엄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수술실로 들어갈 때는 긴장이 되고 으스스 떨려왔다. 그 시간에도 병실 여러 곳에선 장기이식 등 생명이 촌각에 달린 수술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히 이번 투어는 암 수술의 세계적 권위자인 프린세스마가렛 암센터의 조나단 아이리쉬 박사(Dr. Jonathan Irish)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일행을 안내해 첨단기법의 암수술 과정에 대해 친절하고 자상하게 설명해줬다.  


 수술실 내부는 최첨단의 수술장비가 질서정연하게 설치돼 있는데, 특히 로봇을 이용한 암수술 시연이 인상적이었다. 조나단 박사는 로봇을 이용한 암수술에 대해 설명하며 “2013년 신설 이래 임상실험 차원에서 200여 명의 환자가 여기서 수술을 받았고, 이 기술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우리의 목적은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최소침습수술(minimally invasive surgery)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기술이 표준화되면 수술 부위가 복잡한 암 치료나 눈에 보이지 않는 종양 제거도 간편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0…나는 이번 투어에서 특히 조나단 박사의 겸손한 처신에 절로 존경심이 우러나왔다. 그는 혼자서 미리 병원 로비에 나와 우리 일행을 기다렸고 수술실도 일일이 자신이 직접 안내했다. 


 그의 이력을 보면 그는 분명 나같은 사람보다는 한수 위다. 그는 1984년 토론토대 의대 졸업 후 미국 UCLA 등을 거쳐 1992년부터 토론토의 대학병원네트워크(University Health Network)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특히 머리와 목 부분에 발생하는 두경부암(head and neck oncology) 수술의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그는 권위의식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매너의 조나단 박사는 너무도 소탈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일행의 투어를 안내했다. 그는 25년째 의술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미 수백 명의 생명을 구한 사람이다.


 조나단 박사는 특히 로봇을 활용한 첨단 암수술 기법을 발전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노력하고 있는 존경받는 의사다. 이번 투어를 주선한 유건인 대표는 침샘암 치료를 위해  2년 전 조나단 박사로부터 턱뼈를 제거한 후 다리뼈로 다시 재건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유 대표는 이날 감회가 새로운듯 “이 분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특히 “암 정복을 위해 우리 한인사회도 프린세스 마가렛 재단의 기금모금 사업에 적극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수술실 투어 후, 우리 일행과 병원직원들은 인근 유건인 대표 소유의 일식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겨 함께 식사를 하는데, 조나단 박사는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한인들 이야기를 경청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런 모습에서 참으로 진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병원직원들의 진지한 모습을 보며 한인사회도 이젠 이런 뜻깊은 사업에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런 투어를 한인들에게 제공하는 것도 그만큼 한국의 위상이 올라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0…병원 탐방 다음날 출근한 나는 깜짝 놀랐다. 조나단 박사에게서 온 이메일엔 “어제 방문해주어 고마웠습니다. 앞으로 암 정복을 위해 한인사회도 관심을 갖고 저희들을 지원해주세요. 나는 우리 병원의 시스템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이런 발전적인 대화를 누구와도 나눌 준비가 돼있습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세계적 권위의 의사가 일일이 방문감사 메일을 쓴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한국의 유명 의사들 같으면 이랬을까.  


 한국에서는 여성 대통령의 피부미용을 위해 청와대 안방까지 주사약을 반입했느니 안했느니 왈가왈부하며 지지리도 못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조나단 박사를 보면서 진정한 의술이 걸어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조나단 박사 같은 의사가 많이 나오고 수술 기법도 개선돼 마침내 암을 완전 정복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길 고대해본다.(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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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16
광화문 추억

 

‘북악무심오천년(北岳無心五千年)/한수유정칠백리(漢水有情七百里)’(북악산은 오천년 동안 백성들의 고통에 무심하였지만, 한수(한강)는 민초들의 애환을 싣고 칠백리 유정하게 흐르고 있다)-(신영복 교수의 서예작품 중). 

 


 서울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광화문을 내가 처음 대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방(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을 다니기 시작할 무렵, 당시 시골출신 대학생이 흔히 하던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 위해 광화문 인근에 있는 D신문사에 들렀다. 신문에 가정교사(입주) 구직광고를 낸 후 신문사 문을 나와 걸어보는 광화문 네거리는 시골청년에겐 그저 낯설고 넓어만 보였다. 그만큼 나 자신은 한없이 왜소해 보였다. 


 다행히 다음날 바로 입주가정교사 자리가 생겨 나의 ‘미아리 생활’도 시작됐다.  

 
0…그러다 차츰 서울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광화문은 특히 누구나 찾기가 쉬워 친구들간의 약속장소로 자주 애용됐다. 광화문 골목길에 몰려 있는 선술집에서 대폿잔을 기울이며 정담을 나누던 옛 친구들은 지금 다 어디서 무엇들을 하고 있을까. 담배연기 자욱한 선술집에서 우리는 무엇에 그리도 분노하고 열변을 토했던지…
 

종로(계동)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광화문 골목엔 내가 자주 찾던 허름한 해장국집이 있었는데, 퇴근길에 친구를 불러내 순대국에 소주 한잔 하던 기억이 무척이나 그립다. 오늘 같이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그날 그 포근했던 장면들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광화문 네거리는 내가 2000년 여름에 이민 떠나오기 직전까지도 늘상 지나다녔으며,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이곳을 찾아오려나 하는 마음에 가슴 한켠이 허전해지기도 했다. 낙엽 지던 가을날, 경복궁 돌담길을 지나 삼청동 주변 한옥마을을 산책하던 추억이 삼삼하다. 지금쯤 그 길엔 흰 눈이 덮여 있을 것이다.     


 수년 전, 이민생활 9년여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길에 다시 둘러본 광화문은 청년시절처럼 무척이나 낯설었다. 600년 굴곡의 역사를 간직한 광화문 광장은 이전보다 훨씬 넓어지고 이순신 장군 동상 뒤에는 세종대왕상이 자리를 잡고 계셨다. 한때는 최루탄 가스로 뒤덮였던 그 광장엔 시민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낭낭했다. 그러나 내가 즐겨 찾던 허름한 선술집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0…광화문은 경복궁의 남문이자 조선의 왕들이 드나드는 정문이었다. 광화문(光化門)의 이름 뜻은 '국왕의 큰 덕(德)이 온 나라와 백성을 비춘다'는 의미다. 태조 4년인 1395년 9월에 창건된 경복궁은 창건 당시에는 특별한 이름이 없이 궁제에 따라 그냥 '오문'으로 부르다가,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 정도전에 의해 사정문(四正門)으로 명명되었으나, 세종 8년(1426)에 경복궁을 수리하면서 집현전에서 '광화문' 이라 지어 올려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조선시대 광화문 밖은 정치와 행정의 중심축인 육조거리로 이어져 있었고, 그 육조거리는 다시 경제의 중심축인 종로와 맞닿아 있었다. 광화문은 조선의 도읍지였던 한양의 정치와 경제가 만나는 곳에 위치함으로써 왕조사회에서 궁궐이 갖는 위엄을 보여주는 상징성도 매우 컸던 것이다.


 한편으로 광화문은 한민족 수난사의 상징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소실됐으며 그후 270여 년 간이나 중건되지 못하다가 1864년(고종 1년)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으로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어 광화문은 또다시 큰 수난을 겪게 된다. 일제는 광화문 뒤편 흥례문 일대를 없애고 1926년 조선총독부 청사를 완공하는 한편, 총독부 청사 앞을 가로막고 있는 광화문을 없애려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심의 극심한 반대여론에 부딪혀 마지못해 이듬해 경복궁의 동편 건춘문(建春門) 북쪽으로 옮겨 놓고 만다.


 해방 후 광화문은 또다시 한국전쟁의 와중에 폭격을 당해 석축만 남고 문루가 완파되는 고난을 겪는다. 그 후 광화문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된 것은 1968년 박정희 대통령 대에 이르러서다. 박 대통령은 파괴된 문루를 다시 짓고 광화문을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그러나 광화문의 비극은 여기서도 끝나지 않았다. 새로 재건한 광화문은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졌으며, 재건 당시 광화문의 축을 경복궁의 중심축에 맞춘 것이 아니라 당시 중앙청으로 쓰이던 구 조선총독부 청사의 축에 맞춘 결과 본래의 축과 어긋나게 틀어지고 말았다. 


 그후 우여곡절 끝에 2006년 말부터 광화문 복원 및 이전공사가 시작됐고, 2009년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광화문에 10미터 높이의 황금색 세종대왕상이 설치됐다. 


0…이처럼 민족의 영광과 애환이 서려있는 광화문 광장이 이제는 그 의미가 바뀌었다. 이 역사의 무대가 올해부터 촛불집회의 성지가 된 것이다. 사상 최대 인파가 운집해 도도한 민심의 목소리를 토해내는 현장이 됐다. 찬란한 촛불과 거대한 민중의 함성에 절로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이 거센 물결을 어이 막을까.  

 
 그러나 이젠 혼돈의 시간들이 어서 정리돼 평온이 깃들였으면 좋겠다. 노래가사처럼 광화문이 낭만과 추억이 흐르는 감미로운 장소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광화문 연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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