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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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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5
왜 조성훈(Stan Cho)인가?(2)

 

 

 지난해 가을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한 온타리오 보수당(PC) 노스욕 윌로데일 선거구 후보 경선이 마침내 28일(일) 투표로 판가름 나게 됐다. 이번 경선에는 당초 이 지역에 많이 사는 이란계 및 이탈리아계와 조성훈(Stan Cho.39) 후보를 비롯한 한인 3명 등, 모두 5~6명이 출발했으나 도중에 절반이 포기하면서 결국 한인후보 2명이 맞대결을 벌이게 됐다. 


 이에 따라 투표결과가 어떻든 한인이 지역구 후보가 되는 것은 틀림 없게 됐다. 이번 경선은 캐나다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에서 한인끼리 맞붙은데다 투표장소 또한  한인교회인지라, 온전히 한인사회의 이벤트가 됐다.     


 특정 정당의 지역구 후보 자리를 놓고 한인끼리 경선을 벌이는 것은 캐나다 한인이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대결구도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경선이 다자(多者)구도라면 선호도 투표 방식을 통해 한인끼리 서로 제휴도 가능하지만 양자대결은 어차피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특히 한인동포들도 양측 후보 중 어느 한쪽을 전적으로 밀어주기가 곤란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좁은 한인사회에서 두 후보 모두에게 친분과 안면이 있는 분들은 어느 편을 지지할지 입장이 곤란해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3년여전 같은 지역에서 벌어진 조성용(Sonny Cho)씨의 연방자유당 경선 때는 전 한인사회가 힘을 모아 그를 밀어주었지만 지금은 여론이 양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누군가 한 명만 선택해야 한다면 후보자의 인물 됨됨이와 정치적 역량, 향후 성장 가능성 등을 종합해서 평가해보고 냉정하게 선택해야 함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조성훈 후보는 한마디로 정직하고 능력있고 추진력이 뛰어나다. 이런 사람이 지역구 대표로 나서야 내년 온주 총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내년 총선의 상대는 4선 경력의 자유당 현역의원(데이빗 지머)이다.  


 그동안 한인동포들이 직접 보아왔듯, 조성훈 후보는 다음과 같은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다. 


▶첫째, 정직하다. 그는 결코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다. 거짓말을 쉽게 하는 사람을 지역사회 대표로 뽑아서는 절대로 안된다.  

 
▶둘째, 정치적 능력이 뛰어나다. 특히 대중을 설득시킬 영어연설이 탁월하다. 그가 연설을 하면 청중이 압도된다. 세대를 막론하고 그처럼 연설에 뛰어난 한인을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연설실력은 정치인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아무리 식견이 풍부해도 대중을 설득시킬 언변(言辯)이 모자라면 정계에선 소용이 없다.  


▶셋째, 업무 추진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일단 마음을 먹으면 과감하게 밀어부치는 타입이다. 그는 윌로데일 지역사회를 확 바꿔놓을 사람이다.     


 조 후보는 인간적 깊이가 있고 친구간 우정과 의리가 돈독해 주변에 사람이 많다. 그의 이같은 역량을 알아본 보수당 공천심사위는 그가 후보신청서를 낸지 일주일도 안돼 바로 예비후보 승인을 내주었다(Green Light). 후보신청을 해도 중대한 결격사유가 있거나 역량이 모자라다 싶으면 당에서는 승인을 내주지 않거나 차일피일 미루며 스스로 판단을 내리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0…조 후보는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동포2세이다. 그러나 그가 단지 한인이라 해서 무조건 밀어주자는 것이 아니다. 한인에게 민족의식이 없다면 동포사회와 관계도 없다. 그런데 조 후보는 민족의식이 투철하며 진심으로 한인들을 위할 인물이다.


 그는 특히 자라면서 커뮤니티 파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한인들이 주류사회에서 대우를 못 받는 것은 정치적 힘이 약하기 때문이며, 소수민족의 권익은 바로 정치를 통해 이룩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영어가 편하지만, 한국말로 의사소통하는 데도 지장이 없다. 그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한국말을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어르신들에 대한 예의범절도 깎듯한 그야말로 진정으로 동포들 권익을 보호하고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제 목소리를 낼 인물이다.


 나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조 후보에 대한 지지 호소 글을 써왔다. 그런데 누구를 지지할 경우 그것이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그런 것도 가능하다. 그를 곁에서 지켜볼 때 참 올바른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고 그래서 이런 사람이 바로 지역사회 대표로 나서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 속으로 절감한다.    


 솔직히, 이번 캠페인 과정에서 상대후보 진영에 아쉬운 점도 많았다. 페어플레이를 다짐해놓고 SNS에 허위사실을 유포시키는 등 정도(正道)를 벗어난 행태를 보여줬다. 그러나 조 후보는 이를 다 덮어두고 묵묵히 페어플레이를 펼쳐왔다. 이런 사실을 아시는 동포는 다 아실 것이다.


0…노스욕에 거주하시는 유권자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이번 일요일(28일) 오후 가든교회에서 실시되는 경선투표에 꼭 참여하시어 어느 후보가 과연 한인사회를 위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일할 능력이 있는지 판단하시어 그에게 투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바로 기호 1번 Cho, Stan 입니다. 투표용지 상단에 있는 Cho, Stan에게 체크 표시를 해주세요. 부디 조 후보를 도와 캐나다 한인역사상 최초의 2세 정치인을 탄생시켜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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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9
사랑도 명예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임을 위한 행진곡’)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따라 부른 것은 지금부터 꼭 30년 전인 1987년 이맘때, 그러니까 이른바 6월 항쟁을 앞두고 전국에 한창 민주화운동 바람이 불 때였다. 당시 ‘넥타이 부대’로 상징되는 민중항쟁을 맞아 직장생활을 하던 나도 종로와 광화문 일대를 누비며 소극적이나마 시위대열에 참여했다. 그때 어느 자리에선가 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처음 듣는데, 서사시 풍의 가사와 함께 선율에 비장미(悲壯美)가 감돌아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특히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라는 대목에선 웬일인지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군에도 다녀왔지만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민주화 열망이 그만큼 컸던 시기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재야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를 소설가 황석영이 다듬어 가사로 만들었으며,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전남대생 김종률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진압에 희생된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1981년 작곡했다. 윤상원은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마지막 날 전남도청에서 숨졌으며, 박기순은 들불야학 교사로 일하다 희생됐다. 


 이 노래는 1982년 음반(넋풀이- 빛의 결혼식)에 수록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시민사회단체와 노동.학생단체 집회 등에서 널리 불리게 됐다. 그러나 이 노래가 세상에 빛을 보기까지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금은 외국의 운동권에서도 이 노래를 개사해 부를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여기까지 오기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0…‘임을…’은 5.18을 상징하기에 군부정권 시절인 80년대에는 금지곡으로 지정됐고 일부 보수단체는 노랫말 속 '임'이 북한 김일성을, '새 날'은 사회주의 혁명을 지칭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보수단체는 특히 노래의 원곡이 북한이 5.18을 주제로 만든 영화 ‘임을 위한 교향시’의 배경음악이고, 작사자 황석영은 불법으로 월북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복역한 반체제 인사라며 이 노래는 종북세력이나 부르는 것이라고 비난을 가했다. 


 그러다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1997년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정부주관 공식행사로 치러졌고, 행사의 마지막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마쳤다. 즉, 이때부터 2008년까지는 별 논란 없이 그저 '운동권 노래' 정도로 간주됐다. 2004년 참여정부 당시 거행된 5.18 기념행사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가사도 안 보고 이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2009년부터 이명박 정부는 5.18 행사에서 이 노래를 ‘제창’ 대신 ‘합창’으로 바꿔 논란이 일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지금까지도 제창이냐 합창이냐는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이 노래에 대한 퇴출 논란이 거세졌고 그 중심에서 국가보훈처가 혼란을 부채질했다. 보훈처는 이 노래를 대체할 새로운 노래를 만들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정부 행사에서 아예 이 노래를 제외한다고 발표했다가 거센 반대여론에 부딪치는 등 갈팡질팡했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파면당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마침내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이 노래를 제창으로 부를 것을 지시해 올해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임을…’ 노래의 선율이 흐르게 됐다. 이에 앞서, 독불장군식 행동으로 국회에서 두차례나 해임촉구까지 받은 보훈처장은 새 대통령 취임 직후 가장 먼저 사표가 수리됐다. 노래 하나 갖고 이처럼 곡절을 겪은 예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 노래는 최근 대통령 탄핵정국을 거치면서 기존의 민주화운동 세대는 물론, 노래 자체가 다소 생소했던 20~ 30대에게까지 전파되면서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노래가 되었다. 


0…'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민주화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창'이냐 '합창'이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며 시간을 허비한 것은 참으로 씁쓸한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제창(齊唱)은 애국가처럼 참석자 모두가 (의무적으로)부르는 것이고, 합창(合唱)은 부르고 싶은 사람만 부르면 된다. 행사장에서 '제창'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그 노래가 단순히 배경 음악이 아니라 모든 참석자들이 노래를 부름으로써 그 노래를 통해 행사의 뜻을 되새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제창이라 하더라도 강제성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즉, 행사 참석자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법적 처벌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창이냐 합창이냐는 논란은 다분히 감정적 측면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오랜 진통 끝에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임을 위한 행진곡’. 이는 종북과는 상관이 없으며 출처 또한 종북과 무관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젠 변하는 시대와 함께 우리들의 사고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새 날이 올 때까지…’ 나의 카톡 화면에 적힌 문자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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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6
문재인 편견 깨기

 

 사람은 한번 밉게 보기 시작하면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나쁘게만 보이는 법이다. 반대상황도 있긴 하다. 한번 좋게 보면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무조건 감싸주는 그런 것.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가 그렇겠다. 사람에 대한 편견은 인간의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왜곡된 모습만 보이게 만든다. 편견은 올바른 인간관계를 차단하는 치명적 장벽이다.     

 

 


 지난해부터 한국을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은 탄핵정국이 문재인 대통령 탄생으로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그러나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가 이 험난한 상황을 잘 극복해갈 수 있을까. 한국인 중에는 여전히 그를 종북좌파 세력일 뿐이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세인들이 갖고 있는 이같은 편견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지.   


 나는 사실 문재인이라는 인물을 잘 알지 못했다. 그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했던 핵심 참모 정도로만 알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도 죄익종북분자라고 욕을 해대기에 대체 어떤 사람인가 자료를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그는 학창시절 수재 소리를 듣고 군(특전사)에서는 모범병사 표창도 받는 등 꽤 괜찮은 인물이었다. 정의감과 의리도 깊고, 무엇보다 나같은 ‘흙수저’ 출신인지라 서민들의 애환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0…문재인은 1953년 1월 경남 거제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점심 싸올 형편이 못돼 학교 근처 성당에서 배급을 타먹어야 했고 이때 급식을 나눠주던 수녀님들의 천사같은 모습에 감화돼 천주교 신자가 됐다. 어머니의 연탄배달 일을 돕다 리어카와 함께 길가에 처박힌 일은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고 한다.


 그는 자서전 <운명>에서 “돈이라는 게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지금의 내 가치관은 오히려 가난 때문에 내 속에 자리 잡은 것이다. 아마도 가난을 버티게 한 자존심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런 가치관은 살아오는 동안 큰 도움이 됐다”고 술회했다. 그는 지금도 자전거를 못 탄다. 어린 시절 자전거를 살 돈도, 배울 시간도 없었던 탓이다. 


 이런 현실에도 그는 당시 부산경남지역 최고 명문교로 꼽히던 경남중.고교를 수석으로 입학했다. 중학교 때 그는 부유한 친구들을 보며 세상의 불공평을 느꼈고, 이 시절부터 독서에 빠졌다. 학교 도서관에 남아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성적은 좋았지만 극도로 가난한 자신의 처지에 낙담해 술•담배에도 손을 대며 방황하다 서울대 입시에 실패했다.


 이에 명문학원으로 불리던 종로학원 시험을 쳤고 여기서도 수석을 하며 학원비를 면제받고 재수를 했다. 그후 경희대 설립자이자 총장이던 조영식 박사가 '4년 전액 장학금'을 약속해 문재인은 경희대 법대에 또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러나 군사정권 시절, 반정부 집회를 주도하다 구속돼 제적당했고 출소 후 군에 강제 징집돼 특전사 공수여단에서 복무했다. 군복무 중엔 여단장(전두환)으로부터 최우수 표창도 받았다. 전역 후 법대를 졸업한 그는 전두환 정권에 항거하다 다시 수감됐고 조영식 박사의 신원보증 아래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 후 극적으로 석방됐다.


 사법연수원에선 동기였던 고 조영래 변호사, 박원순 서울시장, 박시환 대법관, 고승덕 변호사 등 쟁쟁한 동기들이 즐비했지만 차석으로 수료했다. 연수원  최고상(법무장관상)도 탔지만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성적이 차석으로 밀리고 판사 임용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대형 로펌의 영입 제의를 거절하고 고향(부산)으로 낙향, 여기서 노무현과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졌다.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인권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두 사람에게 인권, 시국, 노동 사건이 몰렸다. 그는 <대한민국이 묻는다>라는 저서에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간 것은 변호사가 단순히 밥벌이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적었다.


 변호사 활동 중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이 부산시장 출마를 권유했으나 '나는 참모용'이라며 고사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문재인은 '변호사 업무에 복귀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0…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 집권 초기, 치아를 10개나 뽑을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다. 업무시간 외에는 직접 차를 몰고, 비행기나 기차는 늘 일반석을 이용하는 등 관행화된 특혜를 내려놓았다. 그러다, 과로에 당의 총선 출마 요구를 견디지 못해 민정수석을 1년도 못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휴식은 길지 않았다. 청와대를 떠나 네팔 히말라야를 산행하던 중 노무현의 탄핵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 변호인단을 꾸렸으며 이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민정수석, 정무특보 등을 거쳐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그는 청와대 시절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해내는 스타일을 보였다. 학교동문에 대해서도 사사로운 눈길을 주지 않았으며,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식사나 환담 자리도 갖지 않았다. 노무현은 이런 문재인에 대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라고 평가했다.


0…문재인의 인생은 그의 자서전 제목처럼 '운명'과도 같다. 학생운동 전력 탓에 판사임용이 좌절돼 변호사의 길로 들어선 것도, 홀로 계신 노모를 모시러 부산행을 택했다 노무현을 만난 것도, 노무현의 타계로 정치에 입문한 것도, 그에겐 운명이었다. 특히 권력욕이 없고 순수한 그가 보여준 절제력과 의연함이 국민들에게 각인되면서 정치인으로서 제2의 인생을 사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기쁨도 환희도 잠시 뿐이다. 앞에 놓인 짐이 무겁기만 하다. 갈가리 찢긴 민심을 한데 모아야 하고, 어려운 경제와 사드(THAAD) 문제, 북한의 도발 위기 등 그 무엇하나 간단치가 않다. 그야말로 집권 후가 더 걱정이다. 국민들도 이제는 그에 대한  편견을 깨고 난국 돌파에 힘을 합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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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7
조성훈(Stan Cho)을 위하여,첫 동포2세 정치인을 만듭시다

 

Editor’s Note

 

조성훈(Stan Cho)을 위하여

 

-첫 동포2세 정치인을 만듭시다-

 

 

 한인 2세 조성훈(Stan Cho.39)씨가 온타리오 보수당(PC) 노스욕 윌로데일 선거구의 경선 주자로 밤낮없이 뛰고 있다. 그는 1년여 전까지만 해도 한인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동안 워낙 부지런히 곳곳을 누비다 보니 이제 웬만한 한인들은 대번에 그를 알아본다.   

 

 조 후보는 내년 6월에 실시될 온타리오 주의원 총선에 출마할 예정이며, 그러기 위해 먼저 1차 관문인 당의 지역구 후보 경선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주류정계에 진출해야 하는 당위성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다. 하나는 개인적 역량이 뛰어남이요, 또 하나는 동포사회 측면에서 보아 그러하다.

 

 무엇보다 조 후보는 정치적으로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다.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인데다 특히 대중연설에 뛰어나다. 그가 연설을 하면 청중이 압도되고 분위기가 확 고조된다. 세대를 막론하고 그처럼 연설에 뛰어난 한인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연설실력은 정치인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아무리 지식이 풍부해도 대중을 설득시킬 언변(言辯)이 모자라면 정계에선 소용이 없다. 

 

 그는 토론토대학교 졸업 후 부친의 뒤를 이어 부동산업계에 뛰어들었으며, 2011년부터 현 부동산회사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그는 특히 비즈니스계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동시에 이상주의적 면모도 갖췄다. 고교시절 학생회장, 대학 땐 럭비부 주장을 지내 리더십도 뛰어나다.

 

 고교시절 일화가 있다. 한 한인학생이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학교엔  한인학생이 별로 없던 때여서 만만해보였나 보다. 이때 그는 교내 방송을 통해 전교생에게 경고했다. 한인학생을 더 이상 괴롭히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 후로 백인학생이 한인학생을 얕보는 일이 없어졌다.

 

 조 후보는 또 정직하고 우직하다. 부정이나 불의와 타협할 사람이 아니다. 옳다고 생각하면 소신껏 밀고 나간다. 친구간의 우정과 의리도 돈독해 주변에 사람이 많다.   

 

 조 후보의 역량을 금방 알아본 보수당 공천심사위원회는 그가 후보신청서를 낸지 일주일도 안돼 바로 예비후보 승인을 내주었다(Green Light). 경선후보 신청을 해도 결격사유나 결함이 있으면 당에서는 승인을 해주지 않는다. 현재까지 예비후보 승인을 받은 사람은 조 후보와 이란, 이탈리아계 각 1명 뿐이다.      

 

 조 후보는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동포2세다. 그러나 그가 단지 한인이라 해서 무조건 밀어주자는 것이 아니다. 한인에게 민족의식이 없다면 동포사회와 관계도 없다. 그런데 조 후보는 민족의식이 투철하며 진심으로 한인들을 위할 인물이다.

 

 부동산으로 성공한 아버지(조준상)의 후광도 있지만, 그는 그런 배경에 의지할 사람이 아니다. 대부분의 이민 1세들이 그러했듯, 그도 부모들이 하루종일 일만 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는 부모들이 자신을 희생해가며 자녀들을 키워온데 대해 그 은혜를 되돌려 드릴 때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는 자라면서 커뮤니티 파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한인 등이 주류사회에서 대우를 못 받는 것은 정치적 힘이 약하기 때문이며, 소수민족의 권익은 바로 정치를 통해 이룩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한인사회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조성준 주의원 선거 캠페인에 참여하고, 한가위축제와 평화마라톤 등 동포행사에서 사회를 맡아 강렬한 인상을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동포들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이런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는 영어가 편하지만, 한국말로 의사소통하는 데도 지장이 없다. 그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한국말을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어르신들에 대한 예의범절도 깎듯하다. 조 후보는 진정으로 동포들 권익을 보호하고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제 목소리를 낼 인물이다.

 

 이번 보수당 경선에는 조 후보를 비롯해 한인 3명이 출발했다가 한명은 중도에 꿈을 접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한인 2명이 뛰는 상황이다. 이러다 보니 한인사회에서는 어느 한쪽을 전적으로 밀어주기가 곤란한 처지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끝까지 한인끼리 경쟁을 벌이게 된다면  ‘선호도 투표 방식'을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즉 첫 개표 때 과반으로 승리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복수로 출마할 경우 한인후보를 1번, 2번 순으로 기표하면 된다. 2년여 전 연방후보 경선에서 조성용씨가 1차 개표에서 타후보를 크게 앞서고도 3차 개표에서 9표차로 역전패한 것은 바로 이 개표방식 때문이었다. 따라서 어차피 한인끼리 경쟁한다면 이 방식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윌로데일은 온주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다. 총인구는 약 11만, 유권자는 7만4천여  명이다. 이중 영주권자를 포함한 한인인구는 1만 명으로 추산되며 한국계 유권자는 5,500명 수준이다. 그러나 이는 내년 총선 얘기이고, 당원 가입과 지역구 후보 경선투표는 영주권자는 물론, 14세 이상 한인은 누구나(사업체 운영, 유학생 등)가능하다. 이들을 다 합하면 8천 명 정도가 된다. 따라서 동포들이 적극 참여해주면 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동포들이 조 후보를 돕는 방법은 먼저 온주보수당(PC) 입당서류에 사인한 후 28일(일) 투표소에 나와 그에게 기표하면 된다. 투표장소는 한인들에게 친숙한 노스욕 가든교회이다. 당원 가입은 누구를 통해서 하든 상관없다. 다만 누가 과연 한인사회를 대표할 사람인지 잘 판단해 그에게 표를 몰아주면 깨끗이 승리할 수 있다. 부디 조 후보를 도와 캐나다 한인역사상 최초의 2세 정치인을 탄생시키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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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a
한미라
2017-05-13
Stan Cho를 주의회로!

캐나다 연방정부와 온타리오주의 정치형태는 의원내각제이다.
연방정부 수상이나 온주 주수상을 별도로 선출하지 않고 정부를 이끌어갈 연방의원(MP), 주의원(MPP)을 선출하여 그 다수당이 내각(Cabinet)을 구성하고 그 다수당의 당수가 내각수반인 연방수상(Prime Minister) 또는 주수상(Premier)에 취임한다.

4년마다 실시되는 온주 주의원선거는 내년 6월 7일로 예정돼 있다. 온주인구 1,280만명인데 122명의 주의원을 뽑는다. 인구 10만명에 주의원 1명꼴이다. 옛날 한국에서 들었던 ‘10만 선량’ 이 바로 주의원이다.

온주에는 PC/Ontario PC Party 가 있다. 이는 Progressive Conservative of Ontario의 약칭으로 직역하면 ‘진보적 보수당’이겠다. 중도우파 성격의 정당이다. 내년 6월에 실시될 온주총선을 앞두고 각 당들에서는 지금 후보공천작업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우리 한인동포들이 많이 모여사는 토론토의 윌로데일 선거구에서는 4-5명의 예비후보들이 온주보수당 공천을 받고자 경쟁하고 있다. 그 중 이민 2세인 조성훈(Stan Cho)가 오는 5월28일에 실시될 지구당 후보공천 경선(Nomination Meeting)을 앞두고 열심히 뛰고 있다.

윌로데일의 인구는 약 11만 명, 유권자는 7만4천 명이다. 이중 영주권자를 포함한 한인인구는 1만 명으로 추산되며 한국계 유권자는 5,500명 수준이다. 윌로데일(Willowdale) 은 캐나다 한인타운 중 그 규모가 가장 큰 코리아타운(Korea Town)이다.

여기는 1945년 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이민 온 유태인들이 많이 모여 살던 유태인타운이었다. 그런데 60년대 말부터 밀려들오기 시작한 코리언 이민자들의 상당수가 이 지역에 정착했다. 머리 좋고 명당론(입지선정이론)에 밝은 한국인들 아닌가? 그 당시엔 토론토 다운타운의 북쪽 변두리지역이던 노스욕이다. 그러나 동서로 펼쳐진 토론토의 중앙위치에 있는 Young St. 주변이며 Hwy 401에 가까워 동서남북으로 교통의 요지이다. 특히 80년대에 투자이민케이스로 이민 온 동포들은 자녀교육을 위해 너도 나도 강남8학군이란 별명을 지닌 노스욕에 정착했다. 공천 신청자들은 보수당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매우 까다로운 후보적합도 심사에서 합격해야만 예비후보(Certified Contestant)로 후보경선에 나설 수 있다.

보수당에서는 내년 총선 때 윌로데일 선거구에서 보수당을 대표하고 보수당 깃발 앞세우고 나서서 주의원이 될 자격을 갖춘 후보를 당원투표에 부쳐 뽑게된다. 공천신청은 당원이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만약 어느 신청자가 결격사유가 있다거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면 사전심사에서 가차없이 탈락시킨다. 현재 여러 신청자(Contestant) 중 조성훈(Stan Cho)과 이란계 1명이 경선에 나설 예비후보로 승인을 받았다. 가까운 시일 내에 예비후보들이 확정돼서 3명 내지 4명의 예비후보 중에 오는 28일(일)에 그 지구당 당원투표에 의해 후보가 결정된다. 김치맨은 지난 3월 7일, 나이아가라 웨스트 선거구 온주보수당후보 경선대회에 구경갔었다. 19세의 젊은 나이에 주의원에 당선돼 언론들의 주목을 받은 샘 우스터호프에게 도전장을 던진 당원이 있었다. 1:1의 2파전으로 전개된 경선투표에 1,216명의 당원들이 참가했다. 개표결과 우스터호프 주의원이 903표를 받아 75%의 지지율로 압승했다.

그 과정을 지켜본 김치맨은 이번 윌로데일 선거구에서는 2파전 아니면 3파전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2014년 김근래씨가 보수당 예비후보로 나섰을 당시에는 지금처럼 열기가 뜨겁지 않아 417명 당원들이 투표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적어도 2천명 이상의 당원들이 경선투표에 참가할 걸로 예상된다. 윌로데일 경선투표는 이달 28일(일) 오후 2시-6시 사이에 노스욕 가든교회(260 Yorkland Blvd.)에서 실시된다. 조성훈 선거캠프에서는 오는 6일(토) 오전 10시-오후 6시 까지 그 같은 장소에서 ‘조성훈후보 당선을 위한 후원행사 겸 모의투표’를 실시한다. 이번 경선은 우리 코리언 대 이란계외의 맞대결이 될 걸로 예상한다. 많은 동포들이 보수당에 가입하고 오는 28일 경선투표에 참석해서 Stan Cho (조성훈)를 지지합시다. 그가 보수당 후보가 돼서 내년 총선에서 자유당후보를 누르고 온주 한인사회를 대변하는 자랑스러운 주의원 Stan Cho, MPP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세 정치인 Stan Cho를 주의회로 보냅시다! Go Stan, Way to Go! 필승! (2017.05.02) .........김치맨님의 글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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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7
쉽게 돈 버는 직업(?)

 

Editor’s Note

 

쉽게 돈 버는 직업(?)

 

 반세기 캐나다한인이민사에서 전통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직종은 편의점이었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과 함께 소형 가게들은 대형 몰에 밀려 갈수록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한때 3천여 이상의 회원을 거느렸던 온타리오한인실업인협회가 지금은 1천여 명 남짓으로 급감했다.

 

 

 지금 한인들이 가장 많이 종사하는 직업은 무엇일까. 단연 부동산 중개인일 것이다. 최근 5~6년 사이 광역토론토의 부동산시장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다 보니 한인들의 관심도 부동산에 많이 쏠려 있고, 이에 따라 부동산 중개인 수도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토론토스타에 난 기사를 보면, 현재 토론토의 부동산 중개인은 4만8천여 명으로 5년 전(3만4천 명)에 비해 41퍼센트나 증가했다. 온타리오 전체의 중개인은 8만여 명으로 5년 전보다 26% 증가했다.

 

 

 한인중개인은 어떨까. 한인업소록에 따르면 지난해 토론토를 중심으로 온타리오에는 총 420여 명의 한인중개인이 올라 있는데, 이 숫자는 일부에 지나지 않고 모두 합치면 800~ 1천 명은 될 것이라는게 업계 분석이다. 요즘은 한인 2세들까지 잇달아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드는데, 이들은 한인업소록에 잘 등재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종사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주변에 널려있는 것이 부동산 중개인이다.

 

 

0…중개인이 왜이렇게 인기가 높을까? 간단히 말해 다른 일에 비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사실 일년에 단 몇 건의 큰 딜만 성공시켜도 웬만한 월급쟁이보다 소득이 높다. 특히 요즘엔 워낙 집값이 높다 보니 중개 커미션도 자연히 높아졌다.

 

 

 자격증 취득도 비교적 수월하다. 웬만한 사람은 대략 2,500달러의 교재비를 들여 6~10개월 정도 공부하면 시험에 무난히 통과한다. 

 

 

 폭설이 내리는 겨울철 같은 때는 굳이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해도 되고(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 누구의 간섭도 안받으니 이처럼 자유로운 직업도 없을 것이다. 그래선지 요즘은 4년제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도 너도나도 중개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전에는 연봉 10만불이면 많다고 생각됐는데, 이 일은 잘만 하면 일년에 수십만 달러를 챙기는 중개인도 있으니 자연히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개중에는 다니던 직장이나 가게를 그만두고 중개인으로 변신하는 사람도 적지 않고 중개인 코스 강좌에는 항상 수강생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 부동산중개인은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돈을 벌 수있는 꿈의 직업인가. 현실은 꼭 그렇지도 않다. 많은 사람이 자격증만 따면 쉽게 돈을 벌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 비즈니스는 전형적인 승자독식(勝者獨食) 세계다. 상위 10~20퍼센트가 전체 시장의 80~90퍼센트를 독식한다. 나머지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한다.

 

 

 개중에는 1년에 단 1건도 거래 못하는 중개인도 많다. 시 외곽의 커머셜 거래는 시간만 잔뜩 투자하고 소득은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푼도 못 벌면서 광고비, 라이선스 유지비 등 고정비용은 적잖게 든다. 차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고급차를 몰아야 한다. 실적이 없으면 이런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 그래서 시험에 합격한 사람 중 수년 후에는 절반 정도만 남게 된다.

 

 

 특히 요즘엔 중개인들 간에 수주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아예 처음부터 커미션에서 얼마를 떼주겠냐(inducement)물어오는 고객도 많다. 많이 벌면 그만큼 많이 써야 고객을 유지할 있어 그야말로 외화내빈(外華內貧)이다.

 

 

0…부동산중개인을 하려면 무엇보다 성격이 맞아야 한다. 쾌활하고 적극적이며 특히  인간관계(relationship)가 좋아야 한다. 콘도 분양 현장에서 소위 Walk in(예약없이 방문하는) 손님이 들어 오는데 소극적이고 수줍은 사람은 말도 제대로 못 붙여보고 머뭇거리다 손님을 잃으니 이런 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유명 콘도 빌더들도 평소 친분관계가 있고 실적이 뛰어난 중개인에게만 좋은 유닛을 준다. 그래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독하게 마음먹지 않으면 이 업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중개인이 많다보니 경쟁이 치열해지고 인간관계가 엉크러지는 사례도 허다하다. 한인 숫자는 갈수록 줄어드는데 중개인은 많아지니 자연히 다른 중개인의 손님을 끌어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여기서 인간적인 갈등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 쉽게 돈 버는 직업이 있을까. 다 나름대로 애환이 있을 것이다. 요즘은 부동산 중개인이 많아지고 개중엔 부정직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기에 정부 등 일각에서는 중개인을 무슨 야바위꾼 취급하는 시각도 있다. 이러다 보니 중개인이라는 직업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래서 중개인이라는 직업이 고소득과 함께 사회적으로 존경받기 위해서는 중개인들 스스로 양심과 도덕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에서도 부동산 진정 대책과 함께 중개인 관련 규정을 강화할 방침이다.

 

0…돈 잘 버는 중개인들은 일반 월급쟁이를 우습게 볼지도 모른다. 몇만불의 월급 갖고 어떻게 사느냐며… 이러다보니 중개인 일을 하다가 다른 일은 하지를 못한다고 한다. 누군가는 그래서 이 일을 ‘막장직업’이라 부르기도 한다.

 

 토론토에 콘도 붐이 일면서 고객을 연결만 해주면 커미션이 나오던 호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시장흐름을 잘 알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국제경제 전반까지 파악해야 한다. 고객은 이미 상당한 수준까지 파악하고 접근하는데 중개인이 기본지식도 없이 머뭇대다간 얕잡아 보이기 십상이다.

 

 

 특히 우선 당장 눈앞의 이익만 챙기려고 얕은 수를 썼다간 바로 탄로가 난다. 그런 관계는 오래 갈 수도 없다. 정부의 부동산규제조처로 당분간 시장이 얼어붙을 경우 중개인들이 고전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럴 때일수록 중개인들은 원칙과 양심에 충실함으로써 고객과 흔들리지 않는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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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7
내 인생의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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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봄날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 ‘봄날은 간다’)

 

 오가는 차 안에서 홀로 이 노래를 듣노라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해지고 아련한 옛날의 추억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처연하고 구성진 곡조도 그렇거니와, 가사 또한 빼어난 서정시 못지 않아 어느땐 코끝이 찡해진다.    

 

 수년 전 한국의 시인 100명에게 자신의 애창곡이 뭐냐고 물었더니 이 ‘봄날은 간다’를 제일 많이 꼽았다고 한다. 어떤 시인은 “이 노래만 부르면 괜스레 목이 멘다”고 했다. 정선(精選)된 단어만을 골라 쓰는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로 예전 대중가요 가사를 선정한 것은 그만큼 이 노래가 품격이 있다는 뜻이리라. 

 

 ‘봄날은 간다’는 요즘같은 계절에 딱 어울리거니와, 한층 더 시적(詩的)인 2절 가사를 나는 특히 좋아한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노랫말이 어쩌면 한 폭의 그림이요, 가슴 뭉클한 서정시다. 이처럼 아름다운 대중가요를 누가 감히 ‘딴따라’라 비하하겠는가. 국민가요라 불러도 손색없는 이 노래는 6.25전쟁 직후인 1953년 백설희씨에 의해 발표된 이후 60여 년 이상을 한국인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중장년층 사이에서 주로 불리던 이 노래는 가왕(歌王) 조용필과 이미자, 장사익, 심수봉 등이 잇달아  리메이크 하기도 했으며, 동명(同名)의 영화와 악극으로 만들어져 히트하기도 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이 노래를 즐겨 불렀던 기억이 선하다. 시대(군사정권 시절)가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청년기의 허무주의에 빠져 그랬는지 모르지만, 애상(哀傷)적인 곡조가 가슴을 촉촉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차 안 같은 데서 혼자서 흥얼거리곤 한다. 

 

 이 노래가 특히 아린 것은 십수년 전 이맘때 어머니와 큰형님을 1년 간격으로 잇달아 저 세상으로 보낸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봄은 환희보다는 아련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이 노래를 부른 백설희씨도 7년 전 이즈음 세상을 떠났다. 이름처럼 맑고 고운 목소리를 가졌던 고인은 이 노래를 비롯해 '물새 우는 강 언덕' ‘가는 봄, 오는 봄’ '청포도 피는 밤' 등 수많은 히트 곡을 발표했고,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 등 여러 편의 영화에도 출연하는 등 50~60년대를 풍미한 당대 최고의 연예인 중 한 명이었다.

 

0…4월은 목련과 함께 핀다. 목련 중에도 백목련이 제격이다. 단아한 기품의 백목련은 잎보다 꽃이 먼저 피며 그래서 꽃이 추락하는 모습은 처연하다. ‘나무에 피는 연꽃’인 목련(木蓮)은 초봄의 전령사이며, 송이가 크고 향기도 좋아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래선지 이름도 다양하다. 난초 같은 나무라 해서 ‘목란’, 옥 같은 꽃에 난의 향기가 있다 해서 ‘옥란’, 옥처럼 깨끗하고 소중한 나무라 해서 ‘옥수’, 꽃봉오리가 북쪽을 향했다 해서 ‘북향화’, 붓끝을 닮았다 해서 ‘목필’ 등...

 

 목련과 함께 찾아왔던 봄이 어느새 낙화(落花)되어 지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듯, 봄은 오는 듯 마는 듯, 존재하는 듯 마는 듯하다 가버리기에 더욱 아쉽다. 순간처럼 왔다 속절없이 지고 마는 짧은 생명이 인간사 모습과 닮았다. 흐드러진 벚꽃도 미처 깨닫기도 전에 지고 말았다. 

 

 지고 마는 것이 어디 세월뿐인가. 인간사 모든 기억들도 세월 따라 흘러가고 만다. 불과 한 두달 전만 해도 대한민국을 온통 소용돌이 치게 했던 혼란스런 정국도 이제 서서히 세인들 뇌리에서 잊혀지고 있다. 대형 사고 앞에서 도저히 못 살듯 울부짖던 사람들도 이내 일상으로 돌아와 사소한 일에 목숨 걸고 싸우며 살아간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아주 잠깐이더군//그대가 처음/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잊는 것 또한 그렇게/순간이면 좋겠네…’ (최영미 ‘선운사에서’)

 

0…우리는 흔히 근심걱정 없이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가 봄날이었다”고 한다. 봄날은 그렇게 포근하고 감미롭고 근심 걱정이 없는 계절이다.

 

 내 인생의 봄날은 언제였을까. 혼자 있을 때 가만히 옛날을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아련한 봄날처럼 느껴진다. 밭일 하시는 어머니를 따라가 시냇가에서 개울 치고 가재를 잡던 어린시절, 이상과 꿈도 많던 사춘기 시절을 거쳐 청춘이 만개(滿開)했던 대학시절, 예쁜 아내를 만나 달콤한 사랑에 빠져 지낸 신혼시절… 이제 그런 날들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비록 물질적으론 빈한했지만 그것이 별로 불편하거나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았고 마음이 평화로웠던 시절.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하면 부족할게 별로 없건만 끝없이 욕심을 내면서 스스로를 불만족 속으로 몰아넣는다.    

 

 생각해보면 그리 특별하지도 않은 추억들이 가슴 아리게 그리운 것은 그런 날들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내 인생의 봄날은 언제나 지금이다. 힘들고 어려운 지금 이 순간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모든게 그립고 ‘그때가 봄날이었다’고 회상하게 될 것이다.

 

‘나 찾다가/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예쁜 여자랑 손잡고/섬진강 봄물을 따라/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김용택 ‘봄날’)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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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6
책을 치우며(2)

 

책을 치우며(2)

 

 요즘 봄철을 맞아 집안청소를 하면서 서재의 책장(冊欌)도 정리를 하게 됐다. 이 책장은 결혼 당시 아내가 장만해온 혼수품 중 하나였으니 그럭저럭 30여년을 우리 부부와 함께 지내온 셈이다. 이민 올 때도 컨테이너 짐 속에 고이 모셔 왔으니 자연히 애착이 가는 물건임에 틀림 없다.

 

 

 문제는 그 안의 내용물들인데, 지금 살펴 보니 책의 종류가 꽤 다양한 것이 새삼스럽다. 문학류에서부터 역사, 철학, 사상, 교육, 종교 등에 이르기까지, 나와 아내의 젊었던 시절 손때가 묻은 책들이 빼곡히 차 있다. 빛 바랜 사진들이 들어있는 앨범도 10여권이나 꽂혀 있다. 그런데 책 중에는 우리 부부가 학창시절에 읽었던 것들이 많고, 그 후론 거의 손을 대지 않은 것들도 많다.

 특히 중국 근대사니, 러시아 혁명사, 제3세계론, 교육철학 같이 주제가 너무 무겁고 거창한 것도 있고, 변증법적 유물론 따위의 머리 아픈 것들도 섞여 있다. 이제 이런 책들은 골치가 아파 더 이상 못 읽을 터인데, 그냥 버리기엔 아까워서 보관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과감히 정리를 하기로 했다.

0…사실 요즘 읽는 책은 주로 책상에 쌓아놓고 손에 잡히는대로 읽지, 굳이 책장 안에 넣어두지는 않는다. 책장 안의 책은 대체로 소장(所藏)용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개중엔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두툼한 ‘전주 이씨’ 족보도 눈에 띄어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나의 혈통이 새겨져 있는 이런 자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책을 정리하면서 보니 젊은 시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중에는 저자가 친필 사인을 해준 것들도 있는데, 우리 부부의 주례를 서주신 영문학자 장왕록 교수님의 <가던 길 멈추어 서서>와 당신의 따님이신 장영희 교수님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보니 가슴이 찡하다. 이들 부녀(父女) 영문학자는 청년시절 내가 가깝게 지내며 존경했던 분들이다. 비록 이승에 안 계시지만 그분들이 남긴 따스한 문향(文香)은 두고두고 내 가슴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이민 후엔 이곳 토론토에서 만난 문인들이 책을 출판하면서 친필사인을 해주신 것들이 꽤 많아졌고, 지금 내 책상 위엔 이런 책이 적잖이 쌓여있다. (그중에도 ‘출판의 달인’ 이동렬 교수님의 수필집은 예닐곱 권이나 된다.)         

0…지방(대전) 출신인 내가 서울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가장 큰 소망 중 하나는 나만의 사색공간인 서재(書齋)와, 책을 넉넉히 꽂을 수 있는 책장을 가져보는 것이었다. 하숙집이나 아르바이트 하는 집에서는 대개 너절한 이불 위에 누워 책을 보니 산만해서 집중이 되질 않았고, 책꽂이도 변변찮아 그냥 책상이나 방바닥에 되는대로 책을 쌓아 놓았었다.        

 결혼을 하고 나선 작으나마 나만의 서재를 갖게 됐으나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조용히 앉아 책 볼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았다. 밤늦게 귀가하는 생활이 반복되면서 점점 책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그러나 그동안 사두었던 책들은 버리기가 아까워 서너번 이사를 하면서도 죽어라고 싸들고 다녔다. 이민 올 때도 그 무거운 것들을 박스에 채곡채곡 쌓아왔다.     

 그러다 3년 전, 집수리를 하면서 마침 쓰레기 수거 빈(bin)이 왔길래 주섬주섬 헌책들을 모아보니 다섯 박스 정도가 됐다. 그중엔 대학시절 영시선집(anthology)에서부터 ‘창비’(창작과 비평) 전집류, 대하소설, 문학전집 등이 있었다. 또한 ‘운동권 서적’도 꽤 있었는데 이런 책은 평소 손에 잡기가 어렵지만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운 것들이었다. 나의 청춘시절 숨결이 곱게 묻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1차 집수리를 하면서 꽤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보니 아직도 버려야 할 책들이 많이 나왔다.

 예전엔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지만 요즘엔 사실 그렇질 못하다. 명색이 언론에 종사한다는 사람이  이처럼 재충전에 소홀한다면 말이 되는가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요즘엔 특히 온갖 지식과 정보가 인터넷에 넘쳐나고 있기에 책장을 넘기며 사색에 잠길 여유를 누리기가 점점 더 어렵게 돼가고 있다. 머리엔 그야말로 잡식(雜識)만 가득한 셈이다.

0…나는 누구의 집을 방문하면 주인장의 서재부터 살피는 습관이 있다. 서재와 책장을 보면 대충 그 사람의 지식수준과 취향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서재와 책장을 일종의 전시용 공간으로 꾸며놓은 사람도 있다. 고급 책장에 책이 빼곡히 꽂혀 있다 해도 그것이 정말로 읽힌  것들인지, 아니면 그냥 허세로 그리한 것인지는 대충 알 수 있다. 깨끗한 장서류 같은 것은 십중팔구 전시용이기가 쉽다. 

 어쨌든, 커피 한잔을 들며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서재에 앉아 여유롭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행복한 삶일 것이다. 책은 인생에서 삶의 좌표를 잃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치유해준다.

 그러나 책은 이사할 때 가장 큰 두통거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버리자니 아깝고 갖고 다니자니 그 무게가 버겁다. 읽지도 않을 책이면서 그냥 버리기는 아깝다. 비워야 채워지는 것이 세상 이치임을 알면서도 그게 잘 안 된다. ‘채우려 하지 말기/있는 것 중 덜어내기/다 비운다는 것은 거짓말/애써 덜어내 가벼워지기/쌓을 때마다 무거워지는 높이/높이만큼 쌓이는 고통…/’ (이무원 시인 ‘가벼워지기’)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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