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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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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한인사회의 종합시사전문지 <부동산캐나다>는 지난 2003년 5월 1일, 주로 한인사회의 부동산 및 경제 뉴스를 다루는 부동산경제 전문지로 창간됐습니다...동포여러분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 주시길 바라며, 기사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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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3
에어비앤비(Airbnb)

 

 유대계 미국인 브란이언 체스키(Brian Joseph Chesky)는 1981년 8월 뉴욕주에서 출생했다.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26살의 나이에 백수생활을 하던 2007년 당시 대학동창 친구(조 게비아)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무작정 이주한다. 체스키는 게비아의 아파트에 머물며 디자인 회사를 창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둘 다 무직자 신세인 그들은 아파트 월세도 내지 못해 쫓겨날 처지에 몰렸다. 


 그때 궁여지책으로 떠오른 생각이 바로 자신들처럼 가난한 디자이너들에게 싸게 방을 빌려주고 월세를 벌자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서블렛(sublet) 개념이었다. 체스키는 그때 마침 열릴 예정인 미국 산업디자인 컨퍼런스에 참석할 디자이너들이 샌프란시스코의 비싼 숙박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두 사람은 침대 매트리스 3개를 구해 거실의 숙소를 빌려주는 임대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컨퍼런스 참여자 3명으로부터 각각 80불씩을 받고 에어베드(고무제품에 바람을 넣어 침대로 사용)와 아침식사를 제공했으며, 이때 ‘이거 잘하면 돈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세계 최대의  숙박공유기업 에어비앤비(Airbnb)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그 이름은 방을 함께 쓰며 에어베드에 아침식사(Air Bed and Breakfast)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많은 기업의 창업사(創業史)가 그렇듯이 에어비앤비도 평범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그후 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앱을 개발하고, 사업모델을 가다듬어 투자자들을 찾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신생기업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에 참여해 고객 입장에서 사업을 대하고 문제점을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체스키는 숙박업 참여 의사를 보인 집들을 일일이 방문, 사진을 찍어 앱에 올렸고, 특히 집 주인이 나온 사진을 게재해 안전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이같은 노력 끝에 에어비앤비는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기업가치는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에어비앤비는 2년 전 매출액이 이미 세계 최대 호텔체인인 힐튼을 넘어섰으며, 이제는 에어베드와 공유 공간에서 집 전체와 아파트, 성, 보트 임대 등 다양한 개념으로 확대되고 있다. 창업자 체스키는 올해 35세의 젊은 나이에 재산 10억 달러 이상 '억만장자클럽'에 합류했다. 


0…빈털터리 백수청년이던 체스키는 27살이던 2008년 8월, 다른 2명의 친구 동업자와 함께 에어비앤비를 창업함과 동시에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고, 이 회사는 이제 미화 260억달러 가치의 세계적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세 명의 미국 청년들이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방에 놓인 싸구려 매트리스와 시리얼로 사업을 시작한 지 8년 만에, 에어비앤비는 전 세계 투자자들이 군침을 흘리는 매력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집도 절도 없는 밑바닥 삶으로 시작해 에어비앤비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낸 체스키는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무주택자’로 남아있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집이 없이 에어비앤비를 통해 아파트를 예약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 서비스 향상을 위해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으며 소비자들이 최상의 경험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다. 


 에어비앤비는 현재 전 세계 190여개국, 4만여 도시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누적 여행객은 1,800만명을 돌파했고 등록된 숙박정보는 160만 개에 달한다. 에어비앤비는 사이트와 앱을 통해 이뤄지는 예약 건당 수수료 3%와, 예약확정시마다 이용고객에게 받는 6~12%의 서비스 수수료로 수익을 창출한다. 높은 성장률을 거듭하는 에어비앤비는 오는 2020년엔 매출이 1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에어비앤비는 차량공유서비스 우버(Uber)와 함께 미래산업인 ‘공유경제(sharing economy)’를 이끄는 쌍두마차로 꼽힌다. 하지만 에어비앤비가 세간의 찬사를 받는 것만은 아니다. 에어비앤비는 우버와 함께 공유경제가 만들어낸 거품 혹은 기존산업 생태계의 파괴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비판자들은 최근 이런 신생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며 이런 기업이 얼마나 오래갈지 의문이라고 진단한다.


0...에어비앤비는 일단 좋은 호스트(집주인)를 만나면 저렴한 가격으로 호텔보다 넓고 편안한 곳에 방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배낭여행자들 사이에 특히 인기가 높다. 그러나 갈수록 문제점이 노출되면서 고객을 뺏긴 기존 숙박업체들은 "에어비앤비 대부분이 무허가 영업으로 안전•세금 등 각종 규제에서 벗어나 있다"며 불법 논란을 제기하고 나섰다.


 각국의 행정규제도 까다로워지고 있다. 뉴욕주는 거주자가 집을 비울 경우, 30일 미만 기간 동안엔 집을 빌려주지 못하게 한다. 한국에서는 1년 6개월 전 에어비앤비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토론토시도 에어비앤비 등 단기 숙박업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을 추진 중이다. 2년여 전부터 캐나다에선 에어비앤비를 통해 약 1만 건 이상의 숙박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은 전문적으로 숙박업을 하면서 세금도 내지 않고 호텔에 적용되는 규제도 받지 않는 등 일종의 블랙마켓을 형성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최근 토론토 노스욕에서는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던 중국계 집주인에게 1만 달러의 벌금폭탄이 떨어졌다. ‘7일 이하 단기숙박 금지’를 명시한 시 조례를 위반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는 많은 한인들이 단기 민박업을 하고 있는 곳이라 주의가 요망된다. 룸렌트 등 숙박업을 하려면 시에 자격신청을 해야 하는데 그 절차가 꽤 복잡하다. 


 에어비앤비의 수익성이 높고 세금 회피 가능성이 높다는 정보가 알려지면서, 호텔사업체가 개인 사업자를 가장해 불법영업을 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또한 부동산 소유주들이 세를 주는 것보다 에어비앤비가 더 수익성이 좋다는 것을 알고 세입자를 내쫓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0…남아도는 재화를 서로 나눠씀으로써 자원낭비를 막고 환경을 보호하는 한편, 공동체 정신에도 부합하는 ‘착한경제’ 공유경제. 그러나 사회가 공유경제의 새 패러다임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기존 제도와 새로운 것 간에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사장)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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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3
한국인, 한국말

 

 



 지난 11일(토) 오전, 본한인교회에서는 한인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제21회 ‘우리말 잘하기대회’가 열렸다. 쌀쌀한 주말 아침인데도 일찍부터 어린이와 학부모들이 나와 행사를 기다리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한국말로 발표를 하는데 어쩜 그렇게 예쁘게 잘 할 수 있는지 정말 놀랐다. 


 특히 이곳에서 태어난 유치원, 초등생 어린이들이 어디서 그런 뛰어난 어휘력이 나오는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한인사회는 앞으로도 대(代)가 끊기는 일 없이 면면히 이어져 갈 것이며 미래 역시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타리오한국학교협회와 본 <부동산캐나다>가 격년제로 개최하는 전통의 이 대회는 유치원부터 고교까지 한인동포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행사 후원자로서 당연히 참석해야 할 총영사관 교육원 관계자의 모습은 이날 보이지 않았다. 같은날 비슷한 행사를 만들어 개최하면서 그는 그리로 갔던 것이다. 


 교육원은 이날 낮 12시 토론토대 한국학연구소와 함께 ‘2017 토론토 한국어 말하기, 퀴즈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는 비한인 대학생을 대상으로 11회째 열리는 것인데, 올해는 특히 교육원장이 한인 2세를 포함한 ‘고교생 말하기대회’를 신설하고, 부상으로 한국 대학교 연수 등의 특전을 내걸며 행사에 주력했다. 이러다 보니 ‘우리말 잘하기대회’에는 자연히 고교생의 참여가 저조하게 됐고, 결국 단 3명만이 참가했다. 


 이에 대해 한인교육계에서는 교육원이 전통의 우리말 행사와 겹쳐 ‘맞불행사’를 여는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앞으로 이를 재고해야 한다는 불만을 제기했다. 아무리 순수한 의도였다고 해도 이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동포학생 한국어교육을 담당하는 주무 공무원이 비슷한 행사를 만들어 정작 중요한 행사엔 얼굴도 안 비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다.  


0…이민생활에서 모국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요즘 온주 보수당 윌로데일 선거구 경선을 앞두고 조성훈(Stan Cho) 후보가 한국말 연습에 몰두하는 모습이 무척 진지하다. 그는 캐나다에서 태어난 2세다. 당연히 영어가 편하다. 그런데 이 선거구에는 한인동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그 분들의 표가 당락에 큰 역할을 하게 돼있다. 따라서 한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한국말 구사가 절대 필요하다. 조후보의 영어연설은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뛰어나지만 한인 유권자들, 특히 연세드신 분들께는 모국어로 말해야 훨씬 설득력이 있다.   


 조후보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한국말이 서툴었으나 요즘은 밤잠을 줄여가며 노력한 덕분에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주 한인방송사와 인터뷰 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만 더 노력을 계속하면 한국말로 대화하는데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영어연설이 탁월한 그의 언어재능을 보면 한국말 연설도 곧 잘하게 될 것이다. 아무쪼록 최초의 한인2세 주류정치인이 탄생하도록 동포사회에서 적극 성원하고 격려해주면 좋겠다.  

                 
0…17년 전 이민 온 우리는 집에서 주로 한국말을 써온 덕분에 두 딸이 모두 한국말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특히 5살 때 온 작은딸은 한국말이 서툴법도 한데 그렇질 않다. 이민 초기에 한국친구가 한명도 없는 곳에서 학교를 다녔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말을 잊어버리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물론 한자단어나 요즘 새로 만들어지는 어휘 등은 떨어지지만 일상의 대화는 거의 온전하게 한국말을 한다. 


 우리 딸들은 민족의식이 투철해서인지(?) “엄마 아빠도 영어 좀 늘게 영어로 대화하자”고 하면 몇마디 하다가 “어색해요. 한국사람이 한국말로 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아요?”하며 이내 한국말로 돌아오고 만다. 그러니 우리 부부의 영어실력은 한국에서보다 오히려 더 퇴보하는 느낌이다(이민 온다고 나름으로는 열심히 영어공부를 했었다). 


 그렇다고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딸들과 한국말로 대화를 하기에 이민생활에서 흔히 겪는 부모 자식간의 의사소통 문제는 해당사항이 없다. 가끔 의견이 맞지 않거나 저희들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해서 충돌이 일어나도 한국말로 차근차근 설명하면 대개는 수긍하고 자연스럽게 의견이 조정된다. 적어도 우리집에선 ‘말이 안통해’ 답답한 경우는 없으니 다행이다.   


0…이민생활을 하다 보면 부모 자식간에 갈등을 겪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가족 간에 말이 안통하기 때문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한국에서 영어에 한이 맺힌(?) 부모들은 아이가 이곳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금방 영어가 늘면 무척 대견해하며 집에서도 영어로만 대화하려 한다. 그러나 자칫하면 그것이 화근이 된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 의견이 틀려 언쟁이 벌어지면  해결방법이 없어진다. 영어로 논쟁을 하는데 부모가 자식을 완벽하게 설득시킬 수 있는가. 결국 자식에게 두손을 들고 만다. 이처럼 자녀의 유창한 영어에 감격한 나머지 한국말을 잊어버리도록 방치했다 후회하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 


 어린 자녀가 영어 잘한다고 흐뭇해하는 부모들은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나중에 자식들로부터 서러움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국말 잊어버리지 않게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이 이젠 세계적 강국이 됐기에 더더욱이나 한국말을 잊어버리면 엄청난 손실이다. 못사는 다른 민족들이 한국말 배우려 기를 쓰는 판에 제 모국어를 잊어버린다면 말이 되는가. 


 한국인이 한국말을 못한다면 현지사회에서도 인정을 못 받는다. 한국사람에게 한국말은 선택 아닌 필수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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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6
인생 수업-지금 이 순간을 살라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따라서 너무 늦을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된다. 죽어가는 이들은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최근 곰곰히 되새겨가며 읽은 <인생수업> (Life Lessons)은 나에게 여러 생각을 갖게 한다. 

 

 


 2006년에 첫 출간된 이 책은 20세기 최고의 정신의학자이자 호스피스(hospice: 말기 환자 보호치료)의 선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ubler Ross)와 그녀의 제자 데이빗 케슬러(David Kessler)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인터뷰해, 삶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을 정리한 책이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연구에 일생을 바친 엘리자베스는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20세기 100대 사상가’에 선정된 바 있다. 192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세 쌍둥이 중 첫째로 태어난 그녀는 취리히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미국인 의사와 결혼하면서 뉴욕으로 이주한다. 이후 미국 각 병원에서 말기환자들의 정신과 진료와 상담을 맡는데, 의료진들이 환자의 신체기능에만 관심을 가질 뿐 환자를 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것에 충격을 받는다. 


 이에 그녀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세미나를 열고 세계 최초로 호스피스 운동을 일으킨다. 그리고 죽어가는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어떻게 죽느냐는 삶을 의미있게 완성하는 중요한 과제라는 깨달음에 이르고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그 중 <인생수업>은 2004년에 타계한 엘리자베스의 마지막 책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것을 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크든 작든 질병에 걸렸을 때 이 병만 나으면 못할 것이 없을 것처럼 느낀다. 이 몸만 나으면 주변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아내나 남편을 위해 잘해줄 것이며 멀리 여행도 갈 것 같다. 욕심 안 내고 매사에 순응하며 살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몸이 낫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런 각오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또다시 현실에 연연해 아둥바둥 살게 된다.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병이 심각하다면 그동안 하고 싶어도 못했던 것을 실컷 해보고 싶은 욕망은 더욱 클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몸이 말을 안 들으니 할 수가 없다. 몸이 성할 때 하고 싶은 일을 실컷 할 걸, 하고 후회한들 때는 늦었다.    


0…우리는 흔히 내일을 걱정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오늘을 희생한다. 그러나 내일은 오늘 이 순간이 이어지는 것에 불과하다. 내일과 훗날을 미리 걱정하며 지금 이 소중한 시간을 맥없이 보낸다면 오늘 이 순간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따라서,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지금 당장 하라. 죽어가면서 온갖 것을 후회하고, 하고 싶어 몸부림 쳐도 때는 늦었다.         


 누구나 생의 어느 시점에서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다.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그런데 비극은 인생이 짧다는것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너무 늦게 깨닫는 것이다. 죽음을 앞둔 이들은 거듭 말한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지 말라'.


0…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 여기며 사는 것이다. 별에 이를 수 없는 것은 불행이 아니다. 불행한  것은 이를 수 없는 별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이 지상에 남아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지금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기간엔 행복하라는 것 외에는 다른 숙제가 없다. 행복은 우리가 지상에 존재하는 이유다. 이번 생과 같은 생을 또 얻지는 못한다. 이런 부모, 이런 가족, 이런 친구들을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한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자. 지금 그들을 보러 가자.


 우리는 어떤 특정한 일이 일어나면 행복해질 것이라 말하며 미래의 나라에서 살려고 한다. 새 일을 시작하면, 나에게 꼭 맞는 짝을 찾으면, 아이가 다 크고 나면... 하지만 기다리던 일이 일어난 후에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실망한다. 그래서 또 다른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낸다. 승진하고 나면, 첫아이를 갖고 나면, 아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그러나 이런 식으로 얻는 기쁨은 오래 가지 않는다. 미래보다는 지금의 행복을 선택해야 한다. 행복해야 할 때는 지금 이 시간이다. 미래에 행복할 수 있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행복할 수 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 앞에서 인생의 무상과 함께 바른 삶을 생각한다. 그러나 삶은 생각보다 짧다. 사랑할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 그때다. 

 

 이제 밖에서 행복을 찾는 일은 그만 하자. 이미 갖고 있는 것에서 삶의 의미와 진정한 부를 발견하자. 그러면 더 이상 내일만 기다리며 오늘을 희생하는 삶은 살지 않을 것이다.


0…나는 매우 특별한 존재다. 백만 년이 흘러도 나와 똑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 어느 누구도 나와 똑같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그만큼 소중하다.  


 인생에서 실패하고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 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정말 나에게 중요한게 무엇인지, 그리고 잃은 것만큼 얻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삶에는 배워야 할 것들이 있고, 한번의 삶으로 전부 배울 수는 없지만, 진정으로 살아 보기 전에는 죽지 말아야 한다. 살고(Live), 사랑하고(Love), 웃으라(Laugh). 그리고 배우라(Learn)’(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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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4
야학(夜學)을 아십니까


 
 ‘…장소가 좁다는 이유로 오는 아이를 쫓을 수는 없다. 영신은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 하는 찬송가 구절을 입속으로 부르며 '오냐, 예배당이 터지도록 모여 오너라, 여름만 되면 나무 그늘도 좋고, 달밤이면 등불도 일없다.’ 하고 들어오는 대로 받아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젊은 사람들의 응원을 얻어…' 

 


 일제시대 농촌계몽운동을 다룬 심훈의 소설 ‘상록수’를 읽으며 채영신과 박동혁 같은 애틋한 사랑을 한번 해보았으면 하고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소설에 나오듯, 일제강점기에 많이 운영됐던 야학(夜學)은 대학생 등 젊은 지식인들이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밤에 공부를 가르치던 비정규 학교였다.

야학은 해방 후에도 근로청소년과 극빈아동 등을 대상으로 운영돼왔으며 지금도 도시 저변계층에서 일부가 남아 맥을 이어가고 있다. 


 청년시절 나는 직접 야학에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여러 면에서 인연이 깊다. 아내를 만나 정이 깊어진 것도 바로 야학을 통해서였다. 아내는 대학생 시절 인천의 한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졸업 후에도 그 일을 계속했다. 나는 아내 될 사람이 야간학생들을 가르칠 정도의 인성이라면 평생을 함께 해도 되리라는 믿음이 갔다. 

 

 


 어느 여름날 밤, 아내 될 그녀는 나에게 꼭 소개해드릴 분이 계시다며 허름한 교회 교실로 나를 안내했다. 모깃불을 피워놓은 그곳에선 대학생 교사들이 어린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뒤에서 누군가 인사말을 건넸다. 돌아보니 훤칠한 키의 미남형인 교장선생님이 계셨다. 열 한살 차이인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타향인 인천에서 교장선생님은 나의 친형님 이상이 돼주셨다. 우리는 죽이 맞아 종종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형님도 보통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었으나 어쩌다 떠맡게 된 야학과 어린 학생들을 버리고 돌아설 수가 없었다. 그러다 결국 누구도 알아주는 이 없는 고난의 길을 걷게 됐다. 


0…내가 인천에서 기자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는 이곳저곳 아는 분들을 야학 후원자로 연결해주곤 했다. 그나마 세상인심은 따뜻해 주변에서 후원의 손길을 내밀어주긴 했으나 그것이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웠다.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일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정된 교실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교회나 독지가들이 빈 건물을 내주긴 했으나 일정 기간이 지나면 나가야 하니 툭하면 교실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했다. 그 와중에도 주경야독으로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하는 경사도 있었다. 정규학교를 다닐 형편이 못되는 어려운 환경 속에도 밝은 얼굴을 한 학생들 모습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0…온갖 역경 속에도 야학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교장선생님 뒤에서 궂은 일을 묵묵히 견뎌내며 뒷바라지를 해낸 부인이 계셨기 때문이다. 사모님은 밖에서 한푼도 벌어오지 못하는 가장(家長)을 절대로 탓하지 않으셨다. “이것이 천직 아닌가요?”라며 웃어 넘기셨다. 사모님은 곤궁한 살림에도 대학생 교사들을 초대해 밥상을 차려주시곤 했다. 


 궁핍한 환경에서도 교사들과 함께 여름캠핑을 다녀온 추억들이 아름답게 남아 있다. 


 친형제 이상으로 형님과 정이 깊어갈 무렵 나는 ‘이민병’에 걸려 고국을 등지게 됐다. 우리가 떠나오던 날, 어느 과수원 평상에 펼쳐진 송별회에서 나는 친구들에게 “교장선생님을 잘 보살펴 드려다오” 하며 울음을 터뜨렸고 모임자리는 순식간에 눈물바다로 변했다. 공항까지 배웅나오신 형님 내외분이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시던 모습이 선하다. 


 그러나 캐나다 정착 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다 보니 형님과 소식이 뜸해지기 시작했고, 언젠가부터는 이내 연락이 뚝 끊겨버렸다. 그러다 9년만에 고국을 가게 됐고 이때 가장 먼저 찾아뵌 분이 바로 형님 내외분이셨다. 두 분은 여전히 궁핍한 삶을 살고 있었으나, 사모님은 멀리서 온 ‘시동생’에게 맛난 음식을 해주고 싶다며 바삐 움직이셨다. 그때 내온 얼큰한 김치찌개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40대 중반에 결혼한 두 분은 외동딸을 하나 두었는데 우리가 이민을 떠나오고 소식이 뜸해지자 그 딸이 우리딸과 SNS를 통해 교신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우리 큰딸은 최근 사모님이 폐렴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나와 아내는 걱정은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수시로 전해오는 소식이 별로 안 좋았다.

    
0…지난주말, 한인여성회 갈라 행사에 참석해 친교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카톡에 슬픈 사연이 떴다. “사모님이 돌아가셨데요…”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 계시던 친지분이 왜그러냐고 묻는데 설명하자면 길어질 듯해 “한국에 아시는 분이 돌아가셨데요” 하고 짧게 대답하고 말았다. 그 후 행사 내내 기분이 우울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사모님이 즐겨 부르시던 ‘그 겨울의 찻집’을 들으며 눈시울이 뿌옇게 흐려졌다. 


 60반 평생을 고생만 하시며 남편 뒷바라지를 해오다 이제 겨우 딸내미가 취직을 해서 곧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릴 즈음에 당신은 생을 마감한 것이다. 


0...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인연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된다. 마음만 굴뚝 같지 이어가지 못하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마지못해 억지로 꾸려가는 인연도 있다. 야학 교장선생님 내외분과는 온갖 정이 들어 이별을 아쉬워했는데 이민 와서는 모든 것이 끊어졌다. 

 이민의 삶을 살면서 야학 사모님처럼 그렇게 조건없이 베풀어주시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이른 아침의 그 찻집/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외로움을 마셔요…’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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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7
나는 ‘진보’다- 피곤한 이민살이

 

 최근 어느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인들 모임에서 흔히 보듯, 그날도 예외없이 한국정치 얘기가 나와 논쟁이 치열한 와중에, 가만히 듣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 물었다. ‘당신은 보수냐, 진보냐.’ 나는 서슴없이 외쳤다. “나는 진보다”. 그랬더니 많은이들이 의외라는 눈초리로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나는 한마디  덧붙였다. 나는 ‘진짜 보수’, 즉 줄여서 ‘진보’다… 그랬더니 그제야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출신성분상(?) 누가 봐도 보수성향일 것이라고 분류되기 때문이다.   

 

 


 요즘 한인모임 어딜 가나 한국정치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또한 모임마다 어느 한편으로 갈라져 대통령 탄핵 찬반논쟁이 치열하다. 그러다 자칫 언쟁으로 비화되고, 이러다 보면 서로 얼굴을 붉히며 갈라서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민감한 정치 이야기는 가능한 피하려 노력한다. 나의 생각과 소신을 피력한들 상대방이 이해할 리 없으며, 괜히 속마음만 비치다 자칫 인간적으로 가까운 사람과도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번 굳어진 사람의 생각은 쉽사리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의 현명한 처세술은 ‘침묵이 곧 금’이 됐다.  


 0…나는 왜 이민을 왔는가. 좀 엉뚱한 얘기 같지만, 걸핏하면 소모적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세월을 보내는 조국의 현실을 견디기 어려워서였다. 그런데, 이민사회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좌, 우, 진보, 보수 등 이데올로기 편견이 여전히 사람들의 머릿속에 짙게 배어 있다. 이념이 대체 무엇이길래  이민사회에서까지 서로를 못 믿게 하는지.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사안의 본질은 사라지고 엉뚱한 사상논쟁으로 비화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럽다. 무능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어떻게 북한추종으로 해석되는지. 대통령 탄핵과 좌빨, 종북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더 큰 문제는 동포들이 해외에 나와서까지 사상적으로 어느 한쪽에 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 같은 세대는 직접 겪지 않았으나 해방 전후의 사상논쟁이나 6.25 한국전 당시 상황이 이러했다. 좌나 우, 어느 한편에 서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회주의자나 회색분자로 몰렸다. 사상이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또다른 문제는, 한인들에게 이곳 현지 이야기는 관심대상이 아니란 것이다. 실제 살고 있는 현실이 중요하건만 현지 정치 등은 흥미가 없다. 오로지 모국 뉴스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이러니 그야말로 한인 게토(ghetto)에 갇힌 꼴이다. 모두들 어떻게 그렇게 고국 소식에 해박한지, 한국 사정을 어느 정도는 알아야 동족간 대화에 낄 수가 있다. 이러니 이민살이가 더 피곤하다.  

    
 0…요즘따라 태극기가 왜 이렇게 섬찟해보이는지. 이민 와서 보기만 해도 가슴 뭉클했던 태극기. 월드컵 한일전 당시 펄럭이는 모습만 보아도 눈물이 흐르던 그 태극기가 지금은 어이없는 이념의 올가미가 씌어진 채 분열의 상징이 됐다. 


 촛불도 더 이상 낭만이 아니다. 학창시절 캠핑 가서 촛불을 밝히고 친구들과 밤을 지새며 이야기를 나누던 감미로운 추억거리가 아니다. 이런 아름다운 이미지를 망친 사람이 밉기만 하다.   


 해외에 나와서까지 이데올로기에 집착해 핏대를 세우는 사람을 보면 존경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모든 것은 상식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지나치게 어느 한편에 서면 사단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자중하자. 누구를 향한 외침인가. 이곳 광장에서 시위를 벌인다 해서 무슨 영향이 있을까. 현지인들에게 고국의 누추한 모습만 드러내는 꼴 아닌가. 


 한인사회에서 한발짝만 벗어나도 쩔쩔 매면서 무슨 고국 걱정까지 하는지. 고국을 생각하는 것은 순수하고 당연하지만 정도를 지켜야겠다. 또한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남을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 이민자는 현지에 적응해 사는 것이 중요하다. 고국 문제를 여기까지 와서 들추어내며 촛불을 밝히고 태극기를 흔든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참 씁쓸한 풍경들이다. 


 언젠가 멜라스트맨 광장에서 중동 출신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벌이는데, 지나가는 시민들이 우습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을 보았다. 자기네 민족 문제를 대외에 호소하는 것도 보편 타당성이 있어야 설득력이 있다. 대통령 탄핵 문제는 국내 문제다. 여기서 외쳐댈 사안이 아니다. 


0…어쨌든 대통령 탄핵은 가부간에 빨리 결론이 나야 한다. 시간을 끌수록 민족간 갈등도 더 깊어갈 것이다. 나라를 온통 혼란으로 몰고갔을 뿐 아니라, 해외에서 고생하는 애꿎은 이민 동포들까지 분열시킨 대통령은 그 죄만 해도 엄청 크다. 나라와 국민을 통합시켜 일사분란하게 끌고 가도 모자랄 판에 국론을 분열시키고 자기 변명에만 급급해하는 모습이 딱하다. 


 모두들 힘든 타국생활을 하면서 조국의 못난 민낯에 너무 흥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이곳에서 동포정치인 등 유력인을 배출하기 위해 힘을 모을 때다. 부디 우리 동포사회가 이 땅에서 튼튼히 뿌리 내리고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자. 고국에 대한 사랑은 그저 가슴 속에 간직하고 차분히 지켜보면 좋겠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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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3
왜 조성훈(Stan)인가

 
 
 동포 2세 조성훈(Stan Cho)씨가 2018년 6월로 예정된 차기 온타리오 주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우선 온주보수당(PC) 노스욕 윌로데일 선거구 후보 경선에 나섰다. 주총선에 나서려면 먼저 당의 지역구 책임자(후보)로 선출돼야 한다.  

 

 

 


 조성훈씨가 주류 정계에 진출해야 하는 당위성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다. 하나는 그의 개인적 자질과 역량이 뛰어남이요, 다른 하나는 한인사회 측면에서 보아 그렇다. 


 우선, 그의 능력이다. 그는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위 동포2세다. 그가 단순히 한인2세라 해서 무조건 밀어주자는 것이 아니다. 민족의식이 없다면 동포사회와 별 관계가 없다. 그는 선거 때만 동포들에게 굽신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진정으로 한인들을 위할 인물이다.


 그는 고교시절 학생회장을, 대학(토론토대학)땐 럭비부 주장을 지냈다. 그래서 그런지 리더십이 뛰어나다. 고교시절 일화가 있다. 한 한인학생이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엔 학교에 한인학생이 별로 없던 때여서 만만해보였나 보다. 이때 조씨는 교내 방송을 통해 전교생들에게 경고했다. 한인학생을 더 이상 괴롭히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 후로 백인학생이 한인학생을 우습게 보는 일이 없어졌다. 


 그는 이처럼 어려서부터 같은 핏줄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금도 그는 동포 2세로서 동족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며, 어르신들에 대한 예의범절도 깎듯하다.


 그는 매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특히 대중연설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 그가 연설을 하면 장내 청중이 압도되고 확 빨려 들어간다. 세대를 막론하고 나는 그처럼 연설에 뛰어난 한인을 본 적이 없다. 연설 실력은 정치인이 지녀야 할 필수조건 중 하나다. 


 그는 캐나다에서 태어나 영어가 훨씬 더 편하지만, 한국말로 의사소통하는데도 큰 지장은 없다. 그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지금도 한국말을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0…그는 부동산으로 성공한 아버지(조준상)의 후광 덕도 있지만, 거기에 의지할 사람이 아니다.  대부분의 이민 1세들이 그러했듯, 그도 부모들이 하루종일 일만 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이에 그는 부모들이 자신의 삶을 희생해가며 자녀들을 키워온데 대해 그 은혜를 되돌려 드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그리고 이민자의 후손으로서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한인커뮤니티 등 소수민족은 주류사회에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정치적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포 2세인 조씨가 나선 것이다. 그는 이런 현실을 바꿀 적임자이며, 동포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제 목소리를 낼 인물이다.


 그는 대학졸업 후 부친의 뒤를 이어 부동산업계에 뛰어들었으며, 2011년부터 부동산회사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한인사회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되면서 조성준 의원 선거 캠페인에 참여하고, 노스욕 한가위축제와 한인회 평화마라톤 등 각종 동포행사에서 사회를 맡아 강렬한 인상을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특히 비즈니스계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동시에 이상주의적 면모도 갖췄고, 특히 커뮤니티 파워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정치경력은 없지만 소수민족의 권익신장은 바로 정치를 통해 이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강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그는 다짐한다. “동포 1세 여러분께서 쌓아오신 반세기의 찬란한 이민 역사를 더욱 계승 발전시키겠다.” 


0…그런데, 이번 보수당 후보 경선에는 공교롭게 조성훈씨를 비롯해 한인 3명이 동시에 뛰고 있다. 이러다 보니 한인끼리 경쟁을 벌이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한인사회가 자칫 분열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4년 9월 30일 연방자유당 윌로데일 지역구 후보 경선에 조성용씨가 나왔을 때는 전 한인사회가 일치단결해 힘을 모았었다. 승리 직전에 아쉽게 무너졌지만 한인들의 저력을 한껏 과시한 한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한인끼리 경쟁을 벌이게 됐다.  


 그러나 차선책으로, 지역구 후보를 뽑는 ‘선호도 투표 방식'을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즉, 1명의 한인후보가 첫 개표 때 과반을 넘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다수 출마로 표가 갈릴 경우 한인후보 지지자를 1번, 2번 순으로 복수 투표를 해야 한인후보가 선출될 수 있다. 


 2년여 전 조성용씨가 1차 개표에서 타후보들을 크게 앞서고도 3위 후보에게 3차 개표에서 9표차로 역전패한 것은, 첫 개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어 최하위 후보를 탈락시키고 그 후보 용지의 2순위 해당 후보에게 득표수를 더해주는 경선방식 때문이었다. 따라서 어차피 한인끼리 경쟁한다면 이 제도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0…윌로데일은 온주에서 한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다. 총인구는 약 11만 명, 유권자는 7만4천 명이다. 이중 영주권자를 포함한 한인인구는 1만 명으로 추산되며 한국계 유권자는 5,500명 수준이다. 


 그러나 이것은 본선 얘기이고, 당원 가입 및 지역구 후보 경선 투표는 영주권자는 물론, 14세 이상 한인은 누구나(사업체 운영, 유학생 등 일시체류자 등)가능하다. 이들을 모두 합하면 8천여 명  정도가 된다. 따라서 한인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으면 경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한인들이 조성훈씨를 돕는 방법은 온주 보수당(PC) 입당서류에 사인 후 경선일이 정해지면 그때 투표소에 나와 조후보에게 투표를 하는 것이다. 온주보수당(PC) 후보 경선은 4~5~월 경에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현역 위주로 공천을 해나가기에 조성준 의원은 이미 결정이 됐다.


 당원 가입은 누구를 통해서 하든 상관없다. 다만 앞으로 캠페인 기간동안 유심히 관찰해보고 누가 과연 한인사회를 대표할 사람인지 잘 판단해 그에게 표를 몰아주면 1차 투표에서 아주 깔끔하게 마무리 될 것이다. 아마 이란계도 3명이나 나온다니 이번 경선은 민족간 대결이 될 것 같다.  


 한인유권자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과 실천적 행동을 간곡히 당부드린다. 부디 조성훈씨를 도와 캐나다 한인역사상 최초의 2세 정치인을 탄생시키자. 이제 1세와 2세 한인 정치인이 나란히 탄생하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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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0
둘 다 먹겠다?-이기석 한인회장에게

▲지난 2015년 3월 28일 치러진 토론토한인회장선거에서 당선된 이기석 후보팀 

 

 

 동포들의 기대를 모았던 제35대 토론토한인회장 선거는 이기석 현 회장 외에는 다른 후보가 없어 이변이 없는 한 이 회장의 연임이 확실한 분위기다. 그동안 이런저런 인사들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먹고 사느라 바쁘다’는 이유 등으로 서로 눈치만 살피다 결국 현 회장에게 다시 대권이 주어지는 모양세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고 있으면서도 공개적으로 꺼내기를 주저하는 의문이 하나 있다. 그것은 이 회장이 한인회장과 온타리오 주의원(MPP)을 다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이 회장이 한인회장 자리와 온주 의원 둘 다를 갖는 것이 가능한가.

 

 사실, 이런 말은 사석에서 많이들 하면서도 누구 하나 나서서 직언하는 사람이 없는 현실이 이상하다. 아마 그것은 (이 회장과)개인적인 감정을 쌓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이기석 회장에게 공개질의를 해본다.(이 회장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 따위는 없으니 오해 없기 바라며, 귀담아 들어주길 바란다.)


 지금 한인사회 상황을 보면 무슨 선거를 하고 있는지 헷갈린다. 토론토 한인회장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인지, 온타리오 주의원에 나올 윌로데일 지역구 보수당 후보를 뽑는 경선인지. 공교롭게도 두 선거가 비슷한 시점에, 그것도 같은 인물이 두 선거를 위해 뛰고 있어 더욱 그렇다.    


 이기석 회장은 한인회장 출마와 온주보수당 윌로데일 지역구 후보 경선 출마를 공언한 상태인데, 이 점이 이해가 안된다. 만약 이 회장이 한인회장에 연임된 상태에서 올 봄으로 예정된 보수당 후보까지 선출된다면 그는 둘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이 회장이 주류정계에 진출하고 싶다고 말해왔던 점에 비추어 보면, 아마도 한인회장 자리를 내려놓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 회장은 한인회장을 하다가 보수당 후보를 거쳐(후보로 선출될 경우) 내년 6월에 실시될 온주의원까지 당선된다면 한인회장 자리는 그만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럼 한인회장 선거를 다시 치를 것인가. 아니면 부회장 체제로 반년 이상을 끌어갈 것인가. 


 이는 전례도 없거니와, 10만 동포를 대표하는 토론토 한인회장 자리가 그렇게 값싼 자리인지, 이 회장에게 묻고 싶다. 해보다가 더 좋은 자리가 생기면 미련없이 접고 그리로 옮기겠다는 뜻인지. 


 이것은 아니다. 이 회장은 현 시점에서 동포들에게 분명히 밝혀야 한다. 토론토 한인사회를 위해 앞으로 주어진 2년 임기동안 성실히, 끝까지 봉사할 것인가. 아니면 본인이 이미 선언했듯, 주류정계 진출에 더 뜻이 있는 것인가. 둘 다를 갖겠다는 것은 과한 욕심이 아닌가. 그것을 인정한다면 어느 한쪽은 내려놓는 것이 상식 아닌가.   


 거듭 묻지만, 이 회장은 한인회장과 온주의원, 둘 중에 하나만 택하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동포들을 진정으로 생각하고 존중한다면 명백한 선언이 있어야 할 것이다. 둘 다를 취하려는 것은 본인으로서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을지 모르나 동포들을 위해서는 별로 득 될게 없다.


 지금 한인사회에 할일이 태산인데, 한인회장직을 사이드 잡(side job) 정도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러다간 ‘죽도 밥도 아닌’ 꼴이 될 것이다. 이 회장은 어느 한쪽을 택해 그쪽으로 매진하는 것이 한인사회를 위해서도, 또 본인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특히 한인회 같은 자선단체의 장이 특정 정당에서 활동할 경우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정부에 비영리 자선단체로 등록된 토론토한인회는 연방국세청(CRA) 규정에 따라 정치활동이 엄격히 금지돼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자선단체 지위를 박탈당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이 회장의 행보를 보면 조마조마하다. 


 1965년 창립된 토론토한인회는 이듬해 자선단체로 등록됐으나 82년말 그 지위를 상실했다. 이유는 회계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 그 후 다시 그 지위를 회복하기까지 무려 7년이 걸렸다. 이런 상황이 다시 오면 어쩌겠는가. 그럴 경우 수십만 달러의 재산세를 다 물어내야 한다. 


 이 회장은 한인행사에서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분명히 현역 공인이다. 공식직함이 없는 일반동포와는 다르다. 그가 한인회장 재선을 위해 그런다면 어느정도 이해도 되지만 지금은 한인동포끼리 보수당 지역구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이 회장은 동포사회에 얼굴이 알려진 인물이기에 많은 동포들이 알아본다. 그런 ‘현역 프리미엄’ 때문에라도 더욱 겸손하고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  


 이 회장의 주변에는 동포 원로들도 많이 포진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런 분들은 이런 중요하고도 상식적인 조언들을 안해주시는지 궁금하다.  


 한인회의 오늘에 대해 동포들의 책임도 없지 않다. 평소 사석에서는 한인회에 대해 수근거리고 불만을 토로하다가 정작 기회가 주어지면 고개를 돌려버리는 현실에서 바른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회장 후보가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인사회에 그렇게도 인물이 없는가.  


 토론토한인회는 캐나다 동포사회의 대표단체다. 따라서 그 리더는 상식과 원칙을 지키고 제반 규정을 준수하는 등 타 단체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금 동포들에게 비치는 한인회는 그렇질 못하다. 이를 바로잡을 주체는 바로 한인들 자신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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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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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우탁 선생 ‘탄로가(嘆老歌)’)


 요즘따라 한인사회에 잇달아 원로들과 지인들의 부고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이민 역사 반세기를 맞은 캐나다 한인사회. 이제 어르신들이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다. 생전에 유명했던 분이나 조용히 평범하게 지내시다 가신 분이나 그들이 있었기에 한인사회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이처럼 발전할 수 있었다. 


 40년 이상을 이 땅에 살아오신 분들에 비하면 이민 온지 16년 밖에 안된 나는 아직 청소년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여러 어르신과 원로들의 타계 소식을 접했다. 무정한 세월은 그렇게 흐르고 있다.  


0…지난 설날, 한인사회의 정신적 지주이셨던 이상철 목사님이 향년 93세로 별세하셨다. 이 분이야말로 토론토는 물론, 캐나다 전 한인사회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큰 별이셨다는데 이의(異意)가 없을 것이다. 동포행사에 목사님이 나타나시면 그 자리는 일단 중후해졌다. 눈부신 백발에 도사처럼 멋진 수염을 지니신 고인의 카랑카랑하던 목소리가 귓전에 생생하다. 연세가 들어서도 사려분별이 분명하시어 동포사회나 고국의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올바른 말씀을 들려 주셨다. 


 고인은 캐나다 한인이민사 50년을 대표하는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생을 인권운동과 목회활동에 힘써 오셨다. 목사님은 연합교회 총회장을 지내는 등, 캐나다 교단(敎團)의 거물로 추앙 받으셨다. 그러나 생전에 지녔던 그 많은 직함이 문제가 아니라 언제나 사회정의와 약자 편에 섰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돌아가시기 앞서 새해 1월 1일 한인회관에서 있었던 신년하례식 때만 해도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으시고 참석하셨는데,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됐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때 아쉬운 점이 있었다. 사람들이 인사를 주고 받으러 주욱 줄을 서는데 목사님은 서 계실 힘이 없으셨는지 혼자 덩그러니 한쪽 테이블에 앉아 계셨다.

그때 누구 하나 목사님께 다가가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모습은 전에도 수차례 목격했던 터이다. 원로분들을 평소엔 잘 모시지 않다가 막상 돌아가시면 너도나도 은근히 고인과의 친분을 내세우며 회고담을 늘어놓는 세태가 씁쓸하다.  


 또 한가지. 목사님 같은 분이라면 예우를 갖추어 ‘토론토한인사회장(葬)’으로 치렀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아쉬움이다. 이런 분을 그저 평범하게 보내드리는 것은 웬지 허전하다. 한인회를 비롯한 그 많은 단체들은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기나 했을까. 제 앞가림에 급급해 정작 할일은 뒷전이 아닌가 하는 쓸쓸함이 느껴진다.

 
 이에 앞서 2년여 전(2015년 4월 5일) 89세에 돌아가신 작곡가 안병원 선생은 한인사회 최초로 ‘한인사회장’으로 치러졌으나 처음이라 미숙한 점이 많았었다. 


 3년여 전에는 초대 토론토한인회장(1966~70년)을 지낸 윤여화 선생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별세했다(향년 87세). 선비풍의 고운 모습이셨던 고인 역시 한인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셨다. 


 이런 분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이민사회는 자연스럽게 세대가 교체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원로 어르신들이야말로 아무런 기반도 없던 황무지 같은 이민사회를 이 정도까지 성장시킨 주역들이다. 이들이 떠나고 나면 후세들이 그 자리를 메워갈 것이다. 남은 후손은 어떻게 슬기롭게 그 유산들을 계승 발전시켜나갈 것인지. 


0…장년의 70대 아들이 96세 노모의 영정 앞에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한인회 마라톤 행사 때,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 아들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탄 채 걷기대회에 참여했던 할머님이 돌아가셨다. 이제 가을철 그때마다 할머니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고인은 16년 전 내가 이민와 신문사에 근무할 때, 먹음직스런 인절미를 빚으시어 아들(박남석 본보 필자) 편에 보내주시곤 하셨다. 


 96세라면 웬만큼 수(壽)를 누리신 것이란 생각도 들건만 아들 심정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조금만 더 사셨더라면 백수(白壽)를 누리실 수 있었을 텐데… 제대로 준비도 못한 조사(弔辭)를 즉석에서 읽으면서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간간히 목이 잠겼다.  


 지난주엔, 한인사회를 위해 팔 걷어부치고 봉사활동을 해오신 신복실 여사의 부군도 78세의 연세에 세상을 뜨셨다. 부인의 이름이 빛나도록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부군의 외조 덕일 것이다. 고인이 부인께 바친 ‘마지막 편지’가 가슴을 적신다.      

        
0…백년도 못 살면서 천년 후의 일을 근심하는 것이 인간이다(생년불만백(生年不滿百) 상회천세우(常懷千歲憂)). 하지만 장차 이 동포사회가 어떻게 굴러갈지 걱정이 안들 수 없다. 아쉽게도 현재의 한인사회 모습에선 비전이 잘 보이질 않는다. 흐르는 세월에 순응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 그나마 우리들의 소임이 아닐는지. 


‘한번 흘러가면 다시 오지 않을 덧없는 세월에 마음까지 따라가지 말자. 세월은 언제나 우리의 삶에 무거운 짐만 싣고 오지 않았던가/무거운 짐  빨리 벗어 버리려 애쓰지 말자. 세월은 우리 곁을 떠나갈 때도 그 무게를 짊어지고 가지 않던가//무심하게 흐르는 세월에 마음 뺏기지 말고 훈훈한 마음으로 세월을 이끌고 가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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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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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8
고독한 특종

 

 

 기자를 일컬어 ‘무관(無冠)의 제왕’이라 했다. 비록 정식 관직은 없지만 국가의 모든 영역에 걸쳐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때론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세상에 전해야 하기에 어쩌면 왕 못지않은 영향을 사회에 끼치기 때문이다. 기자는 한자로 ‘기록할 기(記)’ ‘놈(者)자’를 쓴다. 즉, 사회 전 분야의 여러 사실들을 진실 그대로 상세하게 기록해 전하는 것이 임무요, 사명이다.


 이러다 보니 기자는 때론 권력집단이나 이해 당사자들과 갈등을 빚거나 원한의 표적이 되기 쉽다. 그래서 기자의 삶은 대개 고독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진위(眞僞)를 분별해 바른말을 전하는 전통이 있어 왔다. 하나는 사헌부와 사간원을 중심으로 한 언관(言官), 다른 하나는 춘추관과 실록청을 중심으로 한 사관(史官)의 전통이 그것이다. 이 전통은 고려시대부터 존재했다. 


 언관과 사관은 권력자의 언행을 낱낱이 기록해 후세에 전하는 역할을 했다. 대상은 왕도 예외가 아니었다. 때문에 많은 언관과 사관들이 정언(正言)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며, 나라가 허튼 길로 가지 못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 기능을 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대한민국의 기자 정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나타내주는 대목이다. 기자가 기사를 쓰는 자체가 시대에 간언하며 역사를 남기는 작업인 것이다.


0…한국을 일대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은 대통령 탄핵 정국. 아직 미완이긴 하지만 그나마 여기까지 이르기에는 여러 언론과 기자들의 고독한 발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은 뜻밖의 계기로 시작됐다. 지난해 한 화장품 회사 대표의 변호사 폭행 사건을 계기로 법조계의 고질적 비리가 고구마 줄기처럼 엮여져 나왔고 인맥으로 사법체계를 우롱하는 전관예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촉발됐다. 


 캐도 캐도 끝이 없는 비리에 민심이 폭발하기 시작했고, 화살은 결국 고위직 인사 검증을 맡는 청와대(민정수석)로 향했으며, 이어 각 언론들이 잇달아 이와 관련한 대형 특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여기엔 보수 언론사까지 가세해 특종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국면은 걷잡을 수 없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여러 고비마다 자칫 그냥 묻혀버릴 진실이 많았으나 <한겨레> 등의 고뇌어린 보도로 불씨가 지속됐다. 특히 이 신문은 다른 메이저 매체와 달리 주요 취재원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오로지 '발품 팔이' 취재로 금싸라기 같은 특종들을 잇달아 캐냈다. 그러나 수많은 특종보도에도 불구하고 다른 언론사들은 후속 보도를 내지 않았다. 평소 특종을 놓친 언론들이 너도나도 취재경쟁에 뛰어드는 것과는 달랐다. 


 이때 국면을 완전히 반전시킨 언론이 종편채널 <JTBC>다. 이 방송사는 태블릿 PC 분석을 비롯한 최순실 관련 보도를 이어가며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이를 계기로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0…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이르기까지 언론 보도는 민심을 모으는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특히 열악한 장비와 인력에도 집회 과정을 생중계한 소규모 매체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특히 종편채널 JTBC의 역할은 갈수록 눈부시다. 이 방송사는 한국최고의 권력집단이라 할 수 있는 삼성그룹과의 특수관계에도 불구하고 종횡무진 성역없이 파헤치고 있다. 여기에는 손석희라는 스타 기자의 역할도 큰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그 많은 언론이 모두 그러한 것은 아니다. 고독하게 진실을 파헤쳐나간 언론과 기자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라도 왔다. 지금 언론 연대가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언론이 함께 보도하지 않으면 힘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자칫 진실을 보도한 언론사만 보복을 당하기 쉽다. 


 그러나 언론사는 체질상 연대를 잘 하지 않는다. 혼자서 특종과 단독보도를 터뜨리려는 욕심이 강하기 때문이다. 다른 언론에서 특종을 터뜨리면 함께 추적하려 하기 보다 이를 만회할 다른 기사거리를 찾는 습성이 있다. 이때문에 이번 사건도 자칫 묻힐 뻔했다. 


0…중국 역사서의 대명사이자 동양 최고의 명저 중 하나로 꼽히는 <사기(史記)>. 그러나 저자 사마천은 역사를 사실대로 쓰다가 한무제로부터 궁형(宮刑-남성 거세)까지 당한다. 궁형은 치욕의 형벌이라 형을 받기보다 자결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사마천은 자신의 일생의 과업으로 삼은 <사기>를 마치기 위해 치욕을 감수했다. 


 사마천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극형을 받고서도 살아남으려 한 것은 이 저술 때문이다. 책이 완성돼 보관되고 각지의 선비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면 나의 치욕도 씻겨질 것이다. 설사 이 몸이 산산히 부서진들 무슨 후회가 있겠는가.”


 '워터게이트' 특종을 터뜨린 <워싱턴포스트> 기자 칼 번스타인은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진실(the best obtainable version of the truth)을 제공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라는 말을 남겼다. 


 강추위 속에도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는 수많은 국민은 한국 언론의 존재 의미를 다시금  묻고 있다. 연인원 1천만을 넘긴 촛불 민심, 그것이 과연 할일 없어 놀러나온 사람들의 불장난인가. 사실을 진실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정말로 일부 언론의 선동인가.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水能載舟 亦能覆舟)’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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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6
반기문 코스프레

 

▲자신이 턱받이를 한채 누워있는 환자에게 죽을 떠먹이는 반기문 전 총장 

 


 요즘 ‘코스프레’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는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를 줄인 Cosplay라는 영어단어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즉 Costume(복장)과 Play(놀이)의 합성어로, 굳이 해석을 하자면 ‘복장놀이’, ‘의상놀이’ 정도가 되겠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에 나오는 주요 캐릭터의 의상을 입고 모여서 노는 놀이로, 슈퍼맨, 스파이더맨, 배트맨 등도 그 대상이다. 


 전형적인 일본식 조어(造語)라 대중적으로 잘 쓰이지 않았으나 언젠가부터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코스프레에 필요한 가발이나 가방, 옷 따위를 전문으로 파는 가게도 생겼다. 그런데 ‘의상연출’, ‘의상연기’라는 의미의 이 말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야릇하게 변질되더니 이제는 누구를 ‘흉내낸다’는 뜻으로 더 널리 쓰이고 있다. 그것도 왠지 어설프고 어쭙잖게 누구를 흉내낸다는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다.  


 최근 국회에서 한 야당의원은 직무정지 중인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대통령권한을 대행하고 있는 황교안 총리에 대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인사권을 행사하고 황제급 의전을 요구하면서 대통령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0…12월 대선을 앞두고 모국에서는 대권주자들의 행보가 국민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중 단연 화제의 중심에 선 이가 바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다. 최근 귀국한 그는 대권도전 의지를 공식 선언하고 광폭행보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를 보는 언론과 국민들의 시선이 생각보다 그리 따스한 것 같지가 않다.

   
 귀국행사에서부터 비판적 시각이 잇따르더니 갈수록 그의 설익은 ‘코스프레’가 냉소를  받고 있다. 반 전 총장은 엊그제 자신의 고향인 충북 음성군의 사회복지시설 ‘꽃동네’를 방문했다. 그는 여기서 한 할머니 환자에게 죽을 떠먹이는 코스프레를 연출했는데 그 모습이 어색하기 짝없고 서툴렀다. 특히 죽을 흘릴까봐 턱받이를 해야 할 사람은 할머니인데, 엉뚱하게 반 전 총장이 이를 목에 두르고 있는 모습이 네티즌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누워있는 환자를 일으켜 세우지 않고 그냥 음식을 먹일 경우 자칫 질식할 우려도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이에 한 유명 작가는 "반기문의 어이 없는 서민 친화 코스프레"라 비판하며 "정치인들의 거짓말과 속임수에 진력이 났다. 제발 국민들에게 진실을 보여주라"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반 전 총장은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선거유세장을 방불케 하는 ‘귀국 퍼레이드’를 벌여 비판을 받았다. 당시 반 전 총장의 경호원들이 시민들을 마구 밀어내는 등 강압적 태도를 보였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현장에 있던 한 사진기자는 “건달처럼 보이는 사설 경호원들이 막말을 쏟아내며 시민들을 밀쳤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친서민 행보를 하겠다며 개인차량이 아닌 공항철도 열차를 타려 했으나 7500원짜리 열차표를 사는 과정에서 무인발매기에 1만원권 2장을 동시에 쑤셔넣는 모습도 논란을 낳았다. 그는 표 구입이 익숙하지 않은 듯 무인발매기 앞에서 5분가량 헤매다 결국 주변의 도움을 받아 승차권을 구했다. 누리꾼들은 이를 두고 ‘서민 코스프레’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그런가 하면, 공항측에 특별의전을  요구했다 퇴짜를 맞았다는 보도도 나왔다. 


0…반 전 총장은 불과 반년 전만 해도 현실정치 참여설을 일축했었다. 동생들에게 “나는 대선에 나가거나 정치할 생각이 없다. 절대로 그런 일 안할 테니까 너희들도 말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던 그가 왜 생각이 바뀌었을까. 이는 아마도 그를 둘러싼 주변의 조언자 그룹 탓이 클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입장이 확고해도 주변에서 어떻게 조언을 하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평소 주변에 참된 조언을 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반 전 총장 역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주변에서 끊임없이 대선출마를 진언(進言)하면서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의 행보에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찮다. 특히 진정으로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그렇다.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고 인격적으로 훌륭해도 일단 정계에 발을 담그면 인간의 속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마련인데, 그가 굳이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하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예를 숱하게 목격해왔다. 순수한 학자로, 기업인으로 남았더라면 길이 추앙받았을 사람들이 험난한 정치판에 발을 잘못 디뎠다가 추락해간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0…반 전 총장에 대한 해외언론의 평가도 냉혹하다. 일각에선 한국이 유엔 총장을 배출한 것 자체가 후진국, 약소국이란 사실을 입증한 것이라는 냉소적 견해도 있다. 


 반 전 총장이 실제 대선에 나서면 검증과정에서 대내외의 비판 수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러면 그의 ‘신비주의’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민망한 모습만 보여질지 모른다. 사람은 어느정도 베일에 쌓여있을 때 아름답다.    


 반 전 총장의 나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는 1944년 6월생으로 올해 만 73세가 된다. 만약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취임하는 내년에는 74세가 되고, 5년 임기를 채울 경우 79세가 된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영광스러운 그 이름 석자로 길이 남을 수는 없을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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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chiman
김치맨/임윤식
2017-01-25
저는 유엔사무국(United Nations Secretariat)의 수장 Secretary-General 을 동양3국에서 '사무총장'이라 번역한 걸 부적절하다 봅니다. Secretariat을 '사무국'으로 번역하면서, 그 책임자는 '사무총장'? '사무국장'이라 해야 논리에 맞지 않겠어요? 반기문 전임 유엔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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