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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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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세상

Editor’s Note

-어떤 경우에도 변치않을 우정을

 

 

 중국 한시(漢詩)에 이런 구절이 있다. ‘꽃이 피면 꽃가지에 나비가 가득하나 꽃이 시들면 나비는 날아가 버린다. 오직 옛 둥지를 잊지 않은 제비만 주인이 가난해도 변함없이 찾아온다.’ (花開蝶滿枝(화개접만지) 花謝蝶還稀(화사접환희) 惟有舊巢燕(유유구소연) 主人貧亦歸(주인빈역귀).

 내가 한창 부귀와 영화를 누릴 때는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지만 권세가 시들고 나면 모두가 떠나버리는 경박한 세상인심을 비유한 시다.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이다. 영어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When good cheer is lacking, our friends will be packing. 맛있는 음식이 없으면 친구들은 떠날 것이다.

 

0…이런저런 한인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느끼는 점이 있다. 소위 귀빈(VIP)이란 사람들을 위한 상석이 앞줄에 놓이고 공관장과 한인단체장들이 당연한 듯 그 자리에 앉는다. 대부분의 한인행사 참석자는 장년층  이상이건만 동포사회 원로 등 고령자들은 뒷전이다.

 이 분들은 혼자 조용히 앉아 있다 갈 뿐, 그 분들께 다가가 말을 거는 사람은 별로 없다. 참석자들은 서로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끼리 모여 얘기를 나누느라 바쁘다. 필요한 사람에게 눈도장이라도 찍어두려는듯 좌석 사이를 오가며 부지런히 수인사를 하는 사람도 많다.

 이럴 때 그야말로 ‘한물 간’ 원로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원로들은 행사 전.후에 무료한 듯 앉아 있기 일쑤다.

 

0…최근 어느 한인행사장. 혼자 우두커니 앉아 계신 어르신이 눈에 들어왔다. 좀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 그분께 다가가 말을 붙였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하고 인사를 드렸더니 무척 반가워하신다.

 “심심하지 뭐. 이런 행사나 있어야 외출하는데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후 “건강이 최고이니 체력관리 잘 하세요”라고 돌아서는 마음이 왠지 짠해왔다. 

 

0…지난주 성황리에 마친 노스욕 한인대축제. 연 사흘간 6만5천 명이라는 엄청난 인파 속에 한인보다 비한인(non-Korean) 관객이 훨씬 더 많은(80: 20) 빅이벤트였다. 새삼 K-culture의 위력을 실감하며 가슴이 뿌듯했다.

 그런 한편으로 이제 한인 노년층은 갈수록 설자리가 더 없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각종 프로그램이나 객석의 분위기가 노년층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혼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한 원로는 나를 보고 반색하며 “사람은 북적거리는데 막걸리 한잔 할 사람이 없구먼”이라며 “나같은 늙은이들은 어딜 가도 환영을 못받는것 같애”라고 쓸쓸히 웃었다.    

 

0…현역 단체장이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 등 ‘이용가치’가 있는 인사들 곁에는 사람이 많이 모이지만 평범한 교민이나 연로한 분들 주변은 쓸쓸하기 짝없다. 세상인심이 그런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실세로 군림하다 감옥에 간 인사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門前成市)이지만 정승이 죽으면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말이 실감난다. 무심한 세상 인심에 한숨만 난다.”

 김영삼 정부에서 정보기관 고위직을 지내다 역시 감옥에 간 인사는 같은 감옥에서 만난 전직 금융계 인사에게 “알고 지내던 1만 명 중 1명이 찾아왔다”고 하니까 한때 금융계 황태자로 통했던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 정도면 인생을 잘 산 것이다. 나는 10만 명 중 1명이 찾아왔다.”

 

0…사람은 환경이 어려워지면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잘 나갈 때는 간이라도 빼줄 듯 다가오던 사람들이 내가 현직에서 물러나면 하루아침에 등을 돌리는 모습을 흔히 본다. 그럴 때는 어려운 상황 자체보다 무상한 인간관계가 더 견딜 수 없다.

 특히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이 돼줄 줄 알았던 사람이 막상 그런 상황에서 나를 외면할 땐 엄청난 배신감과 실망감을 느낀다.

 

0…가까운 측근이라고 생각해 온갖 정을 쏟은 사람이 갑자기 슬그머니 돌아서는 모습을 보면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이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현직에 있을 때 별로 잘해 준 기억이 없는 이들이 가끔 전화를 걸어 안부라도 물어오면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도 이런 경험을 겪고 있다. 한국에서 나름 잘 나갈 땐 회식모임이 빼곡했지만 막상 그 직책에서 물러나니 하루종일 전화 한통 없는 날이 이어졌다.

 

0…불이 나게 전화를 하며 접근해오던 사람이 이상하게 순식간에 연락을 뚝 끊는다. 알고보니 며칠 사이에 나에 대한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다.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했더니 똑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꽤 있었다.

 공직이나 기업체에서 은퇴한 분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나의 직책을 보고 접근한 것이었지 내가 좋아서 온 것이 아니었다’.

 이래서 누군가가 접근해오면 그가 진정 나를 위해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활용가치’를 보고 그러는 것인지 재보는 습성이 생겼다. 특히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진정으로 나를 도와줄 사람인지를 먼저 생각해보게 됐다.

 

0…사람은 누구나 물러나게 마련이다. 물러난 후에도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모이게 하려면 평소 많이 베풀고 인간적으로 많은 사람을 사귀어야겠다.

 인생의 들녘에 쓸쓸히 앉아 있는사람들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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