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고달픈 현실에 활력소
전차가 다니던 예전 마포종점 거리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강 건너 영등포엔 불빛만 아련한데/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하나/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주변 어르신의 권유로 시작한 색소폰. 어설프긴 하지만 즐겨 부르는 애창곡 몇 곡은 불 줄 안다. 썩 훌륭하지는 못하지만 누구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저 혼자 즐기려는 것이니 상관없다.
내가 색소폰으로 자주 부르는 노래 중 하나가 마포종점이다. 이 곡을 부르노라면 옛 청춘시절에 찾았던 마포의 모습이 꿈결인냥 떠오른다. 허름한 대폿집 목로에서 기울이던 막걸리와 돼지갈비.
0…마포종점 노래는 1967년 은방울자매(박애경·김향미)의 목소리에 실려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노래의 배경이 사뭇 서글프다. 작사자인 정두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긴 바 있다.
“1960년대 마포는 아직 시골 냄새가 났다. ‘땡 땡 땡’ 소리와 함께 전차종점으로도 유명했다. 궂은 비가 내리는 밤, 마지막 전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 중에는 가난한 대학생 연인도 많았다.
어느 날 설렁탕집 주인으로부터 마포종점에 살던 두 연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마포종점 부근에 허름한 사글셋방을 얻었다.
그런데 남편은 공부를 더 한다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이국땅에서 너무 과로한 나머지 뇌졸중으로 쓰러져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졸지에 남편을 잃은 여인은 늦은 밤이면 신혼 때처럼 마포종점에 나갔다. 그곳을 미친 듯 배회하며 남편을 기다렸지만 한 번 간 남편이 돌아올리 없었다. 여인은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다 언젠가부터 그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1966년 여름, 정두수는 궂은비를 맞으며 마포종점에 나가 마지막 전차를 기다리고 있었고, 여기서 영감을 얻어 애절한 두 연인의 사랑을 담은 마포종점 가사를 썼다.
0…마포 하면 떠오르는 분이 계시니 고(故) 장왕록 교수님이다.
나는 대학졸업 후 한때 시사영어출판사에 근무할 당시 원고 청탁할 일이 많아 교수님들 연구실과 자택을 방문하는 일이 있었다. 그 중 한 분이 원로 영문학자 장교수님이었다.
어느날 원고를 받으러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교수님 댁에 들렀는데, 그리 크지 않은 한옥에 아늑한 서재가 꾸며져 있고 책장엔 각종 책들이 꽉 차 있었다.
고서(古書) 냄새가 은은한 서재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아련하다.
교수님은 저명한 학자였으나 말씀하시는 모습이 사춘기 소년처럼 해맑고 순수하셨다. 지금도 그때 서재 생각을 하면 정다운 곰팡이 냄새가 나는 듯하다.
0…당시 나는 결혼날짜를 잡고 주례 봐주실 분을 물색하고 있었는데, 언젠가 교수님을 다시 만났을 때 무심코 그런 말씀을 드리니 교수님께서는 “괜찮으면 내가 해도 되겠냐”고 하셨다.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모교 스승님들께는 죄송했지만 졸업 후 한번도 못 뵙다가 불쑥 나타나 부탁드리는 것보다 차라리 자주 뵙고 진정 존경하는 분을 모시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덕망 높은 학자의 주례 아래 우리는 꿈같은 결혼식을 올렸다. 그 후 나는 신문사로 자리를 옮겼고, 먹고 사는데 바빠 찾아뵙지도 못하고 가끔 결혼식 사진이나 보며 “잘 계시나” 하는 정도였다.
그러던 중 1994년 여름 어느 날, 교수님께서 속초에서 휴가를 보내시던 중 수영을 하시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신문기사가 났다. 참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왜 좀더 자주 인사도 드리지 못했는지…
0…인연이란 묘한 것이다. 내가 아직 출판사에 다니고 있을 때 아버님에 이어 따님도 영어 저널에 기고를 하게 됐다.
장왕록 교수님의 따님 장영희 교수를 처음 만나던 날의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어느 봄날 신촌의 찻집에서였다. 그녀가 장애인용 차에서 내리는데 내가 어찌 거들어야 할지 모르고 쩔쩔 매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괜찮다”고 했다.
그 후 나는 원고를 받으러 마포에 있는 서강대를 종종 방문했고 장영희 교수님은 커피를 주시면서 영문학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어 주셨다.
0…세월이 흘러 나는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왔고 장교수님에 대해서도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수년 전 그녀가 암에 걸려 사경을 헤맨다는 기사를 보고 깜작 놀랐다.
멀리서 너무도 아타까워 이메일을 띄웠더니 즉답이 왔다. “이선생님 안녕하세요. 세월이 흘렀지만 기억이 나는군요. 아마 헤밍웨이 원고를 놓고 얘기를 했지요. 이민 가셨다니 새로운 세계에서 행복하세요.”
교수님은 투병 중에도 문학칼럼집을 펴냈고 이를 정성스레 포장해 보내줬다. 난 그 책을 받아들고 한동안 여러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라며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그녀는 결국 57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그녀가 재직하던 캠퍼스 연구실은 지금 누가 주인이 돼있을까.
0…때론 아련한 추억에 잠기는 것도 고달픈 현실을 녹여주는 청량제 역할을 한다. 비 내리는 날 마포종점을 부르면 밤 전차가 딸랑거리며 다가오는 듯하다.
‘저 멀리 당인리에 발전소도 잠든 밤/하나둘씩 불을 끄고 깊어가는 마포종점/여의도 비행장에 불빛만 쓸쓸한데/돌아오지 않는 사람 생각한들 무엇하나/궂은비 내리는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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