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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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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가 주는 교훈-형식은 내용에 직.간접 영향

 

 -사람세상엔 일정한 격식도 필요  

 


장엄하게 거행된 찰스3세 영국 국왕의 대관식

 

 “형식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고,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다.”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용과 형식의 조화 및 일치를 강조한 것이다.

 

 이것이 현대에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로 자주 쓰인다. 일부에서는 형식의 중요성만 과장되게 강조하기도 한다. 요는 내용의 진정성이 형식에 반영돼야 한다는 점이다.

 

0…종갓집이었던 우리는 어릴 때 제사(祭祀)가 많았다. 그런데 제사를 낮에 지내면 좋으련만 왜 굳이 캄캄한 밤에 지내는지 모르겠다며 우리 형제들은 투덜대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밤 12시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초저녁에 일찌감치 한잠을 자고 난 후 졸린 눈으로 제사상 앞에 절을 올리곤 했던 기억이 선하다.

 

 그때 어린 나는 이런 형식적인 것을 왜 하나 툴툴거리곤 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절을 올린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던 것이다.

 

0…서울에서 학창시절과 직장생활을 할 즈음엔 추석과 설 명절에 꽉 막힌 고속도로를 헤치고 죽을 고생을 해가며 고향에 내려가야 했다.

 

 이때도 역시 차례(茶禮)를 지내고 첩첩산중에 모셔진 조상님들 산소를 찾아 성묘하면서 조상님들은 왜 이렇게 후손들을 고생시키시나 불평을 늘어 놓았다.

 

 도대체 지하에 계신 조상님들은 우리를 알아보시기나 하실까, 돌아가셨으면 그만이지 어떻게 우리를 알겠나, 이 모든 형식이 그저 시간낭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

 

0…그러던 것이 나이를 먹고 철이 들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의 조상님들과 뿌리는 영원히 잊혀지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적어도 제사상 앞에서 큰절을 올리는 시간만큼은 상상으로나마 조상님들을 생각하게 되며, 이런 형식적인 의례(儀禮)도 필요하겠구나 라고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낭비요 허례허식으로만 보였던 제사가 나름 의미가 있는 격식이라는 인식으로 바뀌면서 다른 의식(儀式)들 보는 시각도 변하기 시작했다.  

 

0…이를테면 군인이 제복을 입고 제식훈련을 하는 것은 단체의 단결과 소속감을 부여하고 조직의 일체감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집단원으로서 자부심과 사기도 올라간다.  

 

 종교행사도 마찬가지. 성당 주일미사에서는 신부님의 강론만 달라질 뿐 다른 예식은 매주 똑같다. 그럼에도 그것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행위 자체가 엄숙하고 경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간세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형식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우리가 입는 의복도 그렇다.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으면 생각도 행동도 바르게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0…지난주 영국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coronation)이 거행됐다. 금세기 들어 가장 화려한 행사 중 하나로 기록될 대관식은 장엄한 광경 속에 전체 행사가 세계로 방송되며 수억 명이 시청했다.

 

 세찬 빗줄기 속에 밤을 세워 기다린 국민들 사이로 찰스 국왕 부부는 말 8마리가 끄는 황금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으로 들어갔다. 수천 명의 군 병력이 국왕을 호위하며 지상 최대의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찰스 국왕이 쓴 왕관은 순금 틀에 루비, 자수정, 사파이어 등 보석 444개가 박혔으며 무게가 자그마치 2.23kg에 달한다. 그러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까.

 

0…이 행사를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21세기 최첨단 문명의 시대에 웬 시대착오적인 군주제인가. 나라의 재정상태도 엉망인데 천문학적 예산을 탕진해가며 황금마차를 타고 입성하는 군주라니.

 

 캐나다는 왜 덩달아 예포를 쏘아대고 축제를 벌이며 난리법석인지. 찰스가 현재 우리의 삶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영국 왕실이 갖고 있는 상상초월의 재산을 전세계 빈민층 돕기에 나눠주고 깨끗이 해산하면 어떨까.   

 

 영국 국민들, 특히 젊은층에선 압도적으로 많은 이들이 군주제와 왕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들을 갖고 있다. 이런 여론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군주제가 언제까지 존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0…하지만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간세상이 굴러가기 위해서는 일정한 외적 형식도 필요하다는 논리도 있다.

 

 미 코네티컷 대학의 디미트리스 시갈라타스 교수에 따르면, 국가적 행사의 화려함은 단순히 금박을 입힌 마차나 왕관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의례: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방법'을 저술한 시갈라타스 교수는 말한다.

 

 “대관식 규모가 쓸데없이 크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행사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국왕은 의례적 역할 외에는 정치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관식의 화려함과 격식에는 나름 역할이 있다. 의례는 사람들 마음 속에 인과관계에 대한 직관을 활성화시킨다.”

 

0…특정 의례를 거치는 사안에서 의례를 생략하면 그것이 달성됐다는 느낌이 약화될 수 있다. 전 세계 학생들이 코로나로 졸업식을 치르지 못했을 때 큰 상실감을 느꼈다는 연구결과가 일례다.

 

 결혼식은 왜 하는가. 실제 필요한 것은 의례가 아닌 법적문서에 서명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결혼식의 상징성과 화려함은 그 행위를 공식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지금 영국 왕실은 존폐 기로에 서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관식은 왕실의 입지를 유지하려는 안간힘으로 보인다. 그러니 일단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아주자. 어차피 군주제는 자동 소멸할 것이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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