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인연 맺으면 끝까지 가야
예수는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며 의혹의 눈초리로 서로를 쳐다본다. 그리고 속으로 말한다. “누구야? 어떤 녀석이야? 감히 스승님을 배반하다니.”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자신이 그런 운명에 처할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며 다들 예수를 향해 외친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0…오래 전부터 제자직을 떠나 있던 유다. 그래서 겉으로만 제자였던 유다 역시 시치미를 떼고, 그러나 차마 스승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보지 못한 채 주눅 든 목소리로 말한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음에도 끝까지 속이고 끝까지 딴 길을 가는 유다의 인생이 불쌍했던 예수는 슬픈 눈동자로, 다시 한번 돌아왔으면 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유다를 바라본다.
그러나 유다는 끝내 예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고 만다. 은화 30세겔에 스승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살을 택한다.(마 27:1-10)
0…배신의 죄책감에 스스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 유다의 자살은 누군가로부터 선택받은 자의 죽음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 세상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도 살다보면 유다와 베드로가 걸었던 그 배신의 세월을 수시로 체험한다.
중국 역사에서 두고두고 훌륭한 재상이요 충성스런 신하의 모범으로 꼽히는 제갈량. 그가 당대는 물론 후세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것은 자신을 발탁해준 주군을 위해 대를 이어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사심없이 충성을 다했기 때문이다.
초야에 묻혀 살던 제갈량을 점찍은 유비의 사람 보는 눈도 그렇지만, 자신을 알아준 주군을 위해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그에 보답한 충신이었기에 그 이름은 영원히 빛난다.
0…인간사 고통 중 가장 큰 하나는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다. 영원히 충성하고 함께 하겠노라 다짐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 흑심을 품거나 딴짓을 하고 있음이 들통났을 때, 당하는 사람의 가슴은 미어 터지는 충격을 받는다.
이래서 이병철 같은 사람은 신입사원 면접을 할 때 관상을 보게 한 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했다 한다. 장차 회사를 배신할 사람인지 아닌지를 중요한 항목으로 판단해 인물을 뽑았기에 삼성에서는 배신한 간부들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치도 모를 인간의 속마음. 어찌 한번 인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사람이란 오랜 세월을 두고 보아야 올바른 판단이 서지 않을까.
0…한국 제1 야당 대표의 수난 시리즈를 보면서 새삼 인간의 속마음을 헤아려 본다. 자신에 대한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무더기로 반란표가 나오는 장면을 목격할 때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 압도적 부결이 나와도 시원찮을 판에 보란듯이 거침없는 배신행위가 자행되는 상황에 심약한 사람은 자진(自盡)하고 말지도 모른다.
명분이 옳든 그르든, 같은 정치적 지향점을 갖고 모였다는 사람들이 이럴 수는 없다. 더욱이 지금은 한국 민주주의의 누란(累卵) 위기 아닌가. 이런 판국에 리더의 등에 칼을 꽂다니.
적전분열 이적(利敵)행위를 저지른 집단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이런 식으로 가면 내년 총선에서 의회권력까지 다 넘겨줄 판이다. 지금 대일(對日) 굴욕외교로 민심이 들끓고 있는 매판(買辦) 집권세력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을까.
0…이재명의 최측근으로 꼽히던 사람들도 잇달아 등을 돌렸다. 확실하지도 않은 사실까지 더 보태 검찰 앞에서 술술 불어댔다. 이재명의 '넘버3'로 통했던 한 사람은 "(이재명을) 천천히 말려 죽일 것"이라는 섬뜩한 예고까지 했다.
과거에도 전직 대통령 등이 측근 관리 실패로 발목이 잡힌 예가 수두룩하다. 이명박의 '영원한 비서관'으로 불렸던 전 청와대 부속실장, '집사'와 '금고지기'를 자청했던 이들이 줄줄이 주인에게 등을 돌렸다.
노태우의 (육사)후배이자 하나회 회원인 전 청와대 경호실장은 검찰에 자진출석해 "노태우가 재임 중 조성해 사용하다 남은 통치자금"이라며 비자금의 실체를 폭로했다.
0…일개 검사에서 일약 한국의 대통령 자리를 거머쥔 윤석열. 한때 한직(閑職)을 떠돌던 그를 발탁한 사람이 바로 문재인이다. 文이 아니었다면 尹은 그때 검찰을 떠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뇌어린 배려는 칼이 되어 되돌아왔다. 文은 사람을 잘못 보았다. 그는 처절한 배신감에 치를 떨며 밤잠을 설칠 것이다. 돌고 도는 수레바퀴 같은 인생사, 이래서 사람 보는 눈이 중요하다.
한번 인연을 맺고 동지를 맹세했으면 끝까지 함께 가야 한다. 그것이 인간적 도리요 본분이다. 배신하려면 애초부터 나쁜 일에 가담하지 말았어야 한다.
0…백범 김구 선생은 배신행위가 얼마나 뼈에 사무쳤으면 이런 말을 남겼을까. “나에게 한 발의 총알이 남아 있다면, 왜놈보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배신한 매국노 변절자를 백번 천번 먼저 처단할 것이다. 왜? 왜놈보다 더 무서운 적이니까.”
사람을 신뢰하기 위해선 그의 행동을 꾸준히 관찰해야 한다. 그리하여 함부로 정 주지 말되 한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간직해야 한다. 나 역시 행여 누군가에게 상처주는 일은 없었는지 스스로 자문도 해본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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