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역할은 평등을 회복하는 것”
"Some people are born on third base and go through life thinking they hit a triple."(어떤 사람들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신이 3루타를 친 줄 알고 살아간다.)
미국의 유명한 미식축구 감독인 베리 스위처(Barry Switzer)가 1986년 언론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우리 사회엔 이런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상태를 그대로 놔두면 불평등은 심화되고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된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쓴 <법고전 산책>을 감명깊게 읽었다. 이 책은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부터 임마누엘 칸트의 <영구 평화론>까지 14명의 저자가 쓴 15권의 고전들을 소개하는데, 이들 저서는 근대 국가는 물론 한국을 포함한 현대 국가들의 통치철학과 구성 원리의 바탕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근대와 현대를 주조(鑄造)한 정신들을 만난다는 것이고, 지금의 대한민국이 이룬 성취와 이뤄야 할 과제들을 숙고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거대한 사상가들을 강의를 통해, 또한 책 한권에 담았다는 자체가 대단히 놀랍다.
책의 내용이 워낙 중후하기에 끝까지 정독(精讀)을 요한다. 하지만 위대한 사상가들의 주옥같은 담론들을 군데군데 인용하는 자체도 공부를 하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에 <법고전>의 핵심내용들을 인용해 소개한다.
국민과 인민
우선 용어정리부터 확실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자칫 오해를 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인민’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루소의 인민주권론에서 조국 교수는 말한다.
“루소의 ‘사회계약’ 사상은 ‘인민주권론’, 인민의 “자기 계약을 통한 권위와 국가의 형성”이라는 관념을 제시한다. 여기서 ‘인민’이라는 단어에 움찔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이 남쪽에서 사용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남북이 분단되고 북쪽에서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하지만 남쪽에서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영향이 커지면서 이 단어를 쓰지 않고 ‘국민’이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다.
그런데 둘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영어로 인민은 People, 국민은 Nation으로 엄격히 구분해 사용한다. 국민에서 국(國)은 특정 국가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반면 ‘인민’은 국가 이전에 존재한다. 루소가 말하는 ‘사회계약’은 국가가 있기 전이다. 나라가 없으니 국민이 없다. 나라 이전에 존재하는 인민이 있고 이 인민이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에서 합의를 하여 나라를 만들자”라고 계약을 했다는 의미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 라고 말한 적이 없다. 소크라테스는 애초부터 자신의 사상과 소신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각오했던 것이다. 자신에게 사형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되는 재판에서 배심원보다 ‘신을 따르겠다’고 선언한다. 여기에 ‘악법도 법이다’라는 메시지가 들어 있나?
“특히 권위주의 정권에서 이러한 허구의 이야기를 강조했다. 국민들이 각종 반민주 악법에 대해 비판하고 개폐를 요구하면 정부와 지배집단은 “소크라테스도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악법이라 하더라도 지켜야 한다” 라고 강변했다.”
“우리 사회의 학문적 두께가 얇은 상태에서 이러한 주장에 대한 반박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뭔가 아닌거 같은데…’ 하면서도 <소크라테스의 변명(The Apology of Socrates)>을 읽어볼 수 없었기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법의 역할은 평등의 회복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그것을 남용하기 마련이다.'(몽테스키외)
"몽테스키외는 특정인의 도덕성을 믿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부처님, 예수님이 권력을 잡아도 남용한다는 얘기다. '사람이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게 하려면, 권력이 권력을 저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몽테스키외 주장의 핵심이다. 권력 문제를 체계적 관점에서 본 것이다. 그는 권력을 쪼개서 권력끼리 감시하도록 해야 서로가 조심한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법의 역할'은 무엇인가? 조국 교수는 루소에게도 영향을 미쳤던 몽테스키외의 세계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로 이 문장이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분명히 평등한 것으로 태어났다. 사회는 평등을 잃게 만든다. 그리고 인간은 법에 의해서만 다시 평등해진다."
요컨대 법의 역할은 평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평등이란 무엇인가.
"참된 평등 정신은 극단적인 평등정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모든 사람이 지배를 하거나, 아무도 지배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동배(同輩)에게 복종하고 동배를 지배하도록 하는 데 있다. 그것은 지배자를 전혀 가지지 않을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동배만을 가질 것을 구한다."
"평등이란 '모두가 똑같다'는 말이 아니다. 이를테면 대통령은 우리 세금으로 제공하는 방탄차를 탄다. 국회의원도 특권을 누린다. 이유가 뭔가. 그 사람이 나와 동배 즉 동료시민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나는 그 사람에게 복종하고 지배를 받겠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나와 동배가 아니라면 루소식으로 얘기하면 계약을 깨는 거다."
"우리가 생각하는 애국심과는 완전히 다르다. 존재하는 나라를 좋아하고 찬양하는 것, 즉 '우리나라 만세', '우리나라 최고'라는 것은 몽테스키외에게는 애국심이 아니다. 그는 '평등에 대한 사랑이 진짜 애국'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치에 관심 갖지 마라?
“정치에 관심 갖지 마!˝라는 윽박지름과 함께 ˝정치가 너와 무슨 상관이야?˝라는 어리석은 질문도 있다. 루소는 이렇게 답한다. 누군가가 나랏일에 관해 ˝그게 나랑 뭔상관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그 나라는 끝장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나라의 주인이 나랏일에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는 것이다.
정치는 한 나라의 운명과 주권자 국민의 삶의 방향을 좌우한다. 예를 들면 정치는 납세자, 즉 우리에게서 얼마의 세금을 걷을지 결정한다. ‘슈퍼리치(super rich)로 불리는 ‘초(超)부자’들을 대상으로 증세를 할지 감세를 할지 정한다. 부동산 문제가 심각한데, 다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를 유지할지 아니면 폐지할지도 정한다. 이런 일에 무관심하라?
0…조국 교수의 <법고전 산책>은 자유와 평등이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대한민국을 향한 담대한 제안이자, 주권자들에게 그런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자는 간곡한 호소다.
법고전의 사상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법과 제도 속에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