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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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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Sweet Home- 비가 새는 초가집일지라도

 


헨리 비숍 경이 펴낸 <Home, Sweet Home> 악보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꽃피고 새 우는 집 내 집 뿐이리/오 사랑 나의 집/즐거운 나의 벗, 내 집 뿐이리(Home, Sweet Home)’

 

 언제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 노래는 영국의 저명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헨리 비숍(1786~1855) 경이 작곡한 곡조를 미국의 배우 겸 극작가 존 하워드 페인(John Howard Payne , 1791-1852)이 1823년 오페라 ‘클라리, 밀라노의 아가씨’(Clari, or the Maid of Milan)에 극음악으로 차용한 것이다. 가사는 페인이 지어 붙였다.

 

 원래 가사는 이렇다.

Mid pleasures and palaces though we may roam/Be it ever so humble, there's no place like home/A charm from the skies seems to hallow us there/Which, seek through the world, is ne'er met with elsewhere/Home! Home! sweet, sweet Home!/There's no place like Home!/There's no place like Home!

 

‘환락과 궁궐 가운데를 방황할지라도/초라하지만 나의 집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네/하늘나라의 매력으로 우리를 유혹할지라도/세상 끝까지 찾아봐도 어디서도 만날 수 없네/나의 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집/나의 집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네/나의 집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네…’

 

 집과 가정의 소중함을 이처럼 절절히 노래한 페인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결혼도 해보지 못하고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집도 없이 떠돌다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기 전 이런 편지를 남겼다. "이상한 얘기 같지만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가정의 기쁨을 자랑스럽게 노래한 나 자신은 아직껏 내 집이라는 맛을 모르고 지냈으며 앞으로도 맛보지 못할 것이오."

 

 혼자서 외롭게 세상을 떠돌아 다닌 그였기에 새삼 가정의 소중함을 절감했는지 모른다. 그는 편지를 쓴 1년 뒤 고향인 미국 워싱턴의 한 공동묘지에 이장돼 영면에 들었다.

 

0…미국 남북전쟁(1862) 당시 한창 전투가 치열할 때 양 진영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양쪽 군악대는 매일 밤 음악회를 열었는데, 어느날 밤 북군의 밴드가 ‘Home, Sweet Home’을 연주하자 남군 군악대도 같은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그 순간 남북의 모든 군인들은 텐트 밖으로 나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상대가 적이라는 것도 잊고 뛰어나와 서로 얼싸안고 환호했다. 그로 인해 양쪽 군사들은 전쟁을 중단하고 24시간 휴전을 했다. 이 노래 하나로 잠시나마 전쟁은 잊혀지고 오직 조국과 동포애만 남았다.

 

 전쟁에 지친 군인들이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눈에 그린 것은 언젠가는 돌아갈 가족의 따뜻한 품과 집이었다. 가족의 따스한 온기가 흐르는 집은 생각만 해도 살벌한 전쟁터도 부드럽게 녹여주는 존재였다.

 

0…집이란 근본적으로 가족의 삶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다.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와 가족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은 후 두 다리 쭉 펴고 편히 쉬는 것처럼 행복한 시간이 어디 있을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공간이자 휴식처인 집. 그런데 이 집이란 것이 시대가 변하면서 주거생활의 개념보다 재산을 불리는 이재(理財) 수단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좀 더 크고 화려한 집을 찾기 시작했고 가능한 많은 집과 땅을 사들이려고 애썼다. 집과 땅은 세월이 흐르면 가격이 오르기 마련이라 사두면 재산이 된다. 이래서 투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곳 이민사회에도 수시로 집을 옮겨가며 재산을 증식하는 분들이 많다.

 

 이재에 밝지 못한 나같은 사람은 그저 편안한 삶을 선호하다 보니 이사를 별로 안했다. 결혼생활 35년 동안 한국에서 두 번, 캐나다에서 세 번 밖에 이사를 안했다. 재산이 늘어날 리가 없다.

 

0…지난 십수년 동안 토론토의 집값 상승이 엄청났다. 내가 이민 온 2000년만 해도 노스욕의 집값은 지금의 10배 이하였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10배 이상으로 올랐다. 집이야말로 아주 효율적인 재산증식 수단임이 입증됐다.

 

 하지만 부동산에는 사이클(주기)이라는 것이 있다. 2017년 4월 당시 펄펄 끓던 토론토 주택시장이 외국인 투기세를 부과한다는 정부 발표 한마디에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그런 추세가 한동안 지속됐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가 터지면서 갈 곳 없는 돈이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몰리면서 미친듯이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집 내부도 살피지 않고 무조건 오퍼를 던졌다. 이건 누가 보아도 정상이 아니었다.

 

 급기야 금리가 급격히 오르면서 상황이 다시 변했다. 지금은 토론토 등 각 도시 주택시장이 동면 상태다. 어쩌면 이제야 시장이 제정신을 차렸다고 보면 될 것이다.    

 

0…집과 가정은 인간의 근원적인 행복의 샘터이다. 재산이 아니라 나와 가족의 소중한 보금자리다.

 

‘비가 새는 작은 방에 새우잠을 잔데도/고운 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오손도손 속삭이는 밤이 있는 한/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내일은 해가 뜬다…’ (‘사노라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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