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mhail

    김하일 칼럼

    한국서 LG 근무
    1999년 캐나다이민
    벤처사업(FillStore.com), 편의점,
    현재 반(Vaughan) 지역에서 한국라면 전문점(Mo Ramyun) 운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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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한수

 

 일본식 돈가스 전문점에 가면 자그마한 손절구에 통깨를 담아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필자도 과거에 일본라멘 전문점을 하면서 돈가스를 그렇게 내었었다. 부끄럽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내게 가게를 양도한 전임자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리해야 하는 줄 알고 따라 했었다. 

 

 

 


 손님 입장에서는 직접 깨를 갈아 소스를 만드는 재미도 있으니 좋고 통깨를 바로 갈아 풍미도 살리니 꽤 괜찮은 것 같았다.


 최근에 읽던 책에서 그 유래를 알고는 ‘바로 이런 것이 신의 한수, 초고수의 경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아직 멀었네’하는 자책에 빠지기도 했다.


 일본에서 최초로 이를 시도한 사람은 1966년에 신주쿠에서 시작하여 현재 450개의 매장을 가진 일본 정통 돈가스 전문점인 ‘돈가스 신주쿠 사보텐’의 창업주인 다누마 후미조 라는 사람으로 그는 늘 “상식적인 맛에 연연하지 마라”라고 설파했다 한다.


 당시 돈가스 전문점들의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몹시 힘들던 시기에 고급 고기를 쓸 수는 없고 해서 생각해낸 아이디어로 손님의 관심을 고기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전략이었다고 한다.


 질이 조금 떨어지는 고기라도 깨를 직접 갈면서 그만큼 고기에 신경이 덜 가게 되므로 맛있게 느낄 수 있다. 깨를 직접 갈면서 재미를 느끼고 갓 갈아 넣은 깨의 향이 고기의 안 좋은 냄새를 잡아주어 굳이 비싼 고기를 쓰지 않아도 되니 음식값을 낮출 수 있었다 한다. 


 물론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당시야 전반적으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싼값에 많이 먹고 싶어하는 손님들의 욕구가 높을 때이니 비싸고 질 좋은 재료로는 경쟁에서 이겨낼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좋은 재료가 흔하고 경쟁은 날로 치열해져가니 최상급의 재료를 사용하고, 그 사실을 손님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림으로써 오히려 체감하는 맛을 상승시키는 전략을 주로 쓰는 집들이 많다. 


 손님이 음식 맛에만 집중하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전략이다. 사람은 미각으로만 맛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미지, 다른 사람의 평가, 분위기, 친절도 등이 모두 합쳐져 맛에 대한 평가를 내리게 된다. 


 특히 무서운 것은 ‘기대치’이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맛’이라는 평가를 듣고 찾았을 때는 그럭저럭 평범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더라도 그 실망감 때문에 더 형편없이 느껴질 수도 있다.


 삼겹살을 손님상에 불판과 함께 내어주고 직접 구워 먹도록 한다. 사실 그러려면 가격을 좀 깎아 주어야 이치에 맞다. 직원들이 해주어야 할 일을 손님이 직접 하고 있으니 절감되는 인건비만큼 손님에게 되돌려 주어야 마땅한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 불평을 하는 손님은 아무도 없다. 아니 오히려 주방에서 구워 내주는 집은 장사가 되지 않는다.


 “음식점에서 맛이나 재료 자체가 차지하는 상품력은 33퍼센트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맛 이외의 것, 즉 맛있게 느껴지는 식감이나 이미지다.”라고 일본의 유명 푸드 컨설턴트 오쿠보 카즈히코는 말한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때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당연히 맛 이지만 맛이 잡혔다고 그냥 내어 놓아서는 다른 집의 그 음식과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런 음식이 되고 만다. 적어도 하나 이상의 차별화 요소, 특별함을 담아야 한다.


 색다른 재료를 첨가한다든지, 특별한 향을 추가하거나 하다못해 그릇 하나만 신경써도 체감하는 식감은 달라진다. 여러가지 재료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음식에서 마지막에 색깔 있는 재료를 집게로 집어 위로 올리기만 해도 느낌은 달라진다.


 음식위에 뿌리던 소스를 접시 바닥에 뿌리고 젓가락으로 줄 몇 개만 그어도 사진찍기 좋은 음식이 된다. 마무리로 음식위에 파슬리 가루나 송송 썬 파, 깨 등을 올리는 것은 조금 센스 있는 주부들도 하는 일이다.


 요즘은 평범한 음식으로는 손님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요리가 거의 창작, 예술의 수준으로 간다. 상상을 뛰어넘는 기발한 재료들의 조합으로 만드는 창의적인 음식들이 환영 받는다.


 하얀 짜장면, 빨간 짜장면, 노란 짜장면이 나오고, 초밥에 돈가스도 올라가고 양념된 불고기도 올라간다. 심지어는 초밥에 삼겹살을 올리는 집도 있다.


 허공에 떠있는 국수를 바라보며 먹기도 전에 행복해 하고 김밥 말듯 말아 주는 아이스크림은 그 맛에 특별함이 없어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 맛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은 누구나, 어느 식당이나 평균적인 맛은 다 낸다. 안 그러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단지 살아남는 것이 목표가 아니고 남보다 번창하는 식당이 되려면 맛 이외에 무언가 신의 한수가 더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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