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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순자 수필

    한순자

    경기도 여주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도 광수중학교 근무, 1992년 캐나다 이민, 캐나다문인협회 수필 부문 입상, 2006년 해외동포문학상, 작품집 <인생에 실패는 없다 다만 또 다른 삶이 있을 뿐이다>, <나이만큼 행복한 여자>, <밀리언 달러 티켓 나도 한장>,<행복이라는 이름의 여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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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으로 먹지요

 
 

 이민을 온지 3년 만에 서울에 나갔다. 한국을 다녀온 사람들이 그 동안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입을 모으는 것을 보았기에 우선 궁금한 것이 찬거리였다. 서울에 도착해 그 다음날인가 신설동엘 갈 일이 있었다. 내 눈에 뜨인 것은 리어카에 실려있는 자반고등어를 비롯해서 오이, 풋고추, 솎음배추 등이었다. 


나는 너무 반가워서 가격을 물어보니 내가 떠나기 전 가격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캐나다에선 쉽게 만날 수 없는 뱃자반을 우선 한 손 사고 나머지도 주세요, 해서 검은 봉지에 줄레줄레 들고 보니 그 봉지를 들고 볼일을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반가워서 잔뜩 산 것까지는 좋은데 도리 없이 다 포기하고 택시를 타고 친정 집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이상하게도 똑 같은 음식인데 서울과는 다른 맛인 듯하다. 가장 생각이 많이 나는 것은 자반고등어와 꽁치였다. 하긴 어디 그뿐인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봄이면 딸기를 위시해서 여름이면 은천참외라고 하는 금싸라기 참외나 무주구천동에서 왔다는 산 수박, 껍질이 술술 벗겨지는 백도의 맛이나, 신고 배, 가을이면 으레 선을 보이는 햇밤, 노랗고 굵직하니 먹음직스럽게 생긴 단감, 아닌 게 아니라 단감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이곳에서도 단감을 보면 으레 친구의 얼굴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손이 가곤 한다. 


겨울이면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땅콩이나 군고구마의 맛이나 붕어빵, 지난번엔 서울을 나갔더니 예전에 먹던 술빵이라는 밀가루로 반죽을 해서 넓적하게 생긴 빵이 옛날의 추억과 같이 너무 먹음직스러워 하나 사먹어 보았더니 맛은 별로 없었으나 그 또한 추억을 되살리며 먹을 만하지 싶었다. 


 우리는 살면서 음식에 얽힌 추억이나 맛 또한 잊을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음식이란 먹어보지 않던 새로운 음식보다도, 그 동안 입에 맞고 익숙해진 것을 찾기가 십상이어서 옛날 맛,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던 그 맛을 찾을 때도, 그 맛의 추억에 잠길 때도 많다. 


 난 지금도 서울엘 가면 재래시장을 둘러보기를 좋아하는데 시장 구석구석을 다니다 보면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가장 친근감 있게 느껴진다. 시장을 구경하다 보면 적은 돈 가지고 고향의 맛을 십분 즐길 수 있는 것이 있어 사기도 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 처음 몇 년은 캐나다 슈퍼마켓에서는 볼 수 없었던 빨래비누나 물건 살 때 사은품으로 주는 것이 눈에 띄면 나도 모르게 손이 가곤 했다. 


 그때 서울을 나갔다가 캐나다에 들어와서도 쓸 수 있고 고향의 맛에 젖기도 하겠지 싶어 아닌 게 아니라 빨래 비누를 몇 장 사 가지고 들어갔다. 친정 올케가 보더니 그곳엔 빨래 비누도 없느냐고 조금은 실망스럽고, 그렇게 살려고 이민을 갔더란 말이냐는 한심한 표정을 짓더니, 캐나다 들어갈 때 가지고 가라면서 말 그대로 빨래비누 한 보따리를 사온 것을 보고는, 내 이런 심중을 다 설명할 수도 없어 나야말로 조금은 언짢기도 한심한 생각까지 들기도 한 적이 있다. 


 이민을 와서 살며 재래시장이 못 견디게 그리워질 때가 있다. 가게마다 수북하게 쌓아 놓은 풋고추, 멸치, 풍성한 열무 단, 고구마 줄거리, 김이 무럭무럭 나는 순대나 옥수수, 갖가지 떡을 해놓고 파는 떡집 등. 어쩌면 난 한국의 그런 맛, 그런 것들에 목말라 다시 가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밀려 올 때도 있다.


 명절 때, 여름 피서가 끝나갈 8월 말경부터 마음에선 이미 추석 맞을 준비에 들어가곤 한다. 그 즈음이 일 년 중 내가 가장 즐기는 시기이기도 하기에 그 순간을 놓칠세라 마음껏 만끽하며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추억이 있다. 결혼해서 몇 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살림에 익숙하지 않은 솜씨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한껏 떠올리며 거의 2주 전에 경동시장을 들러서 추석에 필요한 몇 가지 재료와 까지 않은 도라지를 사다가 깊어가는 가을 밤 그것을 까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때도 있었다. 


 그 해 따라 송편을 만들 것이라며 떡쌀을 준비해 놓기도, 빈대떡까지 부치느라 추석을 즐기는 마음이 아니고 일에 지쳐 나중에는 빈대떡을 부치며 몇 번을 물러앉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 후로는 빈대떡은 부치되 송편은 사는 식으로 몸이 많이 부대끼지 않으면서 추석을 즐길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오곤 하였다. 


 내가 집에서 추석을 준비하고 즐기는 것 외에도 추석이면 ‘명절 대이동’이라고 할 만큼 국민 대다수가 고향을 찾아, 가족을 찾아, 손에는 선물꾸러미 보따리들을 들고 오가는 그들을 지켜보는 것만도 일 년 중 가장 즐기는 풍경이었다. 이곳에 이민 와서 살며 그런 맛, 그런 풍경을 감상할 수 없고 느껴볼 수 없어 추석 때가 가까워 오면 가슴 저리는 향수에 젖기도, 가고 싶어 돌아가고 싶어, 애절하게 그리워지는 그런 심정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서울에 살며 고기보다도 생선을 그 중에도 자반고등어와 꽁치를 그릴에 지글지글 구워 따끈하게 먹었던 기억에 캐나다에서 이따금 시도를 해봐도 서울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어서 아쉬워할 때가 많다. 


 어디 그뿐이랴. 피서 철에 각 휴게소에서 먹는 김밥, 우동, 호두과자, 커피나 아이스크림까지. 강원도 지방을 가면 이따금 운 좋게 걸리는 따끈따끈한 찰옥수수 맛은 그야말로 잊을 수 없는 향수 가운데 하나다. 


 꽤 오래 전 미국을 여행하며 휴게소에 들를 때마다 무언가 분위기도 즐기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있으려나 찾아보았지만 그나마 후렌치 후라이가 제일 입맛에 맞았다. 왜 그 때는 커피 맛도 서울에서 마시는 것만큼 맛이 나지 않는지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뉴욕에 갔을 때 꽤나 큰 한국 슈퍼가 있어 이것저것 구경하며 확실히 캐나다보다 교민이 많아 좋구나 싶어 신문도 사 가지고 와서는 오랫동안 버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슈퍼 옆의 간이식당에서 호떡과 뻥튀기도 팔고 있었다. 그래서 반 봉지씩 사가지고 차에 타며 역시 뉴욕은 한국 맛이 더 나는 것 같아 좋다며 호떡은 금세 하나씩 먹어 치우고는, 뻥튀기는 아이들이 잘 먹지 않아 나 혼자 앞자리에 앉아 아작아작 먹고 있었다. 


그러자 그렇게 맛이 있느냐며 남편과 아이들이 묻기에, “이게 무슨 맛이 있어 먹나요? 그냥 추억으로 먹고 재미로 먹지요”하며 그 한 봉지가 개수로도 꽤나 많았는데 며칠을 두고 차에 타기만 하면 하나씩 입에 물었다. 그러면서 그 동안 여행을 다니며 즐겁고 재미있었던 추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이번 여행 중에 얻은 꽤나 크고 좋은 수확이었다며 만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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