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TV가 역사 속 유물로 사라질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 이번 주 구글이 유튜브 TV라는 새로운 라이브 TV 서비스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물론 유튜브 TV가 기존의 방송 서비스들과 차별화 되기 어려울 것이며, 가격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시장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
구글은 유튜브 TV가 거점 시장들을 시작으로 '곧' 서비스를 개시해 점진적으로 지원 도시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 설명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유튜브 TV는 미국 시장만을 타깃으로 하는 서비스다)
어떤 도시들이 1차 런칭 지역으로 선정됐고, 서비스 개시일이 언제인지에 관해서는 아직 정확한 설명이 없는 상태지만, 설령 1차 런칭 지역으로 선정되지 못했어도 괜찮다. 미국 내 사용자라면 가입 시 요구되는 거주 도시 정보를 설정하는 것 만으로도 어느 지역에서나 즉시 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 지역 방송 편성은 사용자의 실 거주지가 아닌 선택한 해당 지역의 기준을 따르게 된다.
유튜브 TV는 얼핏 보기에 그리 특별할 것 없다는 인상을 준다. 월 35달러의 가족 요금제를 신청 시 여섯 개의 계정에서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수 개월 내 이뤄질 정식 런칭에 합류할 채널은 ABC, CBS, NBC, 폭스(Fox), the CW, ESPN, USA, 브라보(Bravo), E, MSNBC, 폭스 뉴스, 디즈니 채널(Disney Channel), FX, 그리고 지역 방송사들을 포함해 총 40여 곳 가량으로 예정돼 있다(쇼타임(Showtime), 폭스 사커 플러스 등의 채널은 추가 가입을 통해 시청 가능할 예정이지만, 그 요금 수준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CNN, HBO, AMC, MTV, VH1, ET, 코미디 센트럴(Comedy Central), 디스커버리(Discovery), 카툰 네트워크(Cartoon Network), 니켈로디언(Nickelodeon), TNT, PBS, TBS, 더 푸드 네트워크(The Food Network) 등이 빠져 있는 것은 의아하다.
유튜브 TV는 iOS 및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태블릿 전용 앱에서 재생할 수 있으며 tv.youtube.com 웹사이트 상에서도 시청 가능하다. 크롬캐스트 지원이 내장된 TV이거나, 35달러의 크롬캐스트 동글이 있다면 풀 스크린 TV로 스트리밍해서 시청할 수도 있다. 올 해 말이면 거의 모든 TV와 TV-스트리밍 기기 및 게이밍 콘솔에서 유튜브 TV를 지원할 것이라고 구글은 밝혔다.
또 하나, 유튜브 TV에서는 광고 없이 즐기는 구독 서비스 유튜브 레드(YouTube Red)와 구글 플레이 뮤직 콘텐츠를 함께 누릴 수 있다.
유튜브 TV 시청을 위해서 별도의 계약이나 약정을 맺을 필요도 없으며, 언제든 수수료 없이 서비스를 취소할 수 있다. 중간에 서비스를 잠시 중단할 수 있음은 물론, 신청된 집주소에서 세 달 이상 로그인 한 기록이 없을 경우 자동으로 서비스를 중단시켜준다. 따라서 예를 들어 매월 35달러를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다가 6개월 동안 이를 정지시켜두고, 그 후에 다시 서비스를 재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또한 등록된 집 주소에서 3개월 이상 로그인을 하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과금이 중단된다. 서비스를 다시 이용하기 시작하면 계정도 재활성화 됨은 물론이다.
유튜브 TV, 왜 케이블 보다 더 나은가유튜브 TV는 뭐든지 케이블 TV의 ‘절반’만큼 한다. 비용도 절반 수준이고, 방영 채널 수도, 광고도 일반적인 케이블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이런 단순 숫자 비교만 해서는 케이블 TV가 갖는 단점과 유튜브 TV만의 장점을 온전히 알기 어렵다.
과거에는 TV 플러그가 연결돼야만 우리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합법적으로, 그리고 양질의 서비스를 통해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디렉티비 나우(DirecTV Now), 플레이스테이션 뷰(PlayStation Vue), 슬링 TV(Sling TV), 그리고 유튜브 TV 등 다양한 인터넷 기반 TV 서비스를 통해 별도의 케이블 서비스 없이도 온라인으로 대부분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됐다.
넷플릭스, 로쿠(Roku), 훌루(Hulu), HBO, 아마존 파이어 TV(Amazon Fire TV)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들 역시 가격과 퀄리티가 일취월장 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모두 기술 개발이라는 전통적 방식을 통해 서비스를 개선해왔다. 이번 주 인공지능을 이용해 장면을 기반으로 비디오를 인코딩하는 기술을 발표한 넷플릭스가 그 좋은 예이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스마트폰 상에서 보는 영상 퀄리티가 훨씬 좋아질 뿐 아니라 시청에 방해가 되지 않게끔 선택적으로 비디오 퀄리티와 대역폭 사용을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신기술은 5개월 내로 출시될 예정이다.)
이 모든 사례가 말해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고화질, 고퀄리티 TV 쇼는 케이블 TV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제 케이블 TV가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라이브 방송을 볼 수 있다는 것뿐이다.
실제로 몇몇 프로그램들은 녹화 방송보다 라이브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다. 오스카상 시상식, TV 시리즈나 시즌 피날레(지난해 왕좌의 게임 시즌 피날레가 그 좋은 예이다), 정치 토론, 뉴스 속보, 주요 스포츠 중계 등 고 퀄리티의 라이브 방송을 케이블 TV가 아닌 다른 서비스로 시청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이런 방송들은 방영 후 소셜 미디어 상에서 화제가 되고, 이와 관련된 수많은 트윗과 포스팅이 쏟아져 나온다. 다음날 출근을 해도 모두가 그 이야기뿐이다. ‘본방사수’ 하지 못한 자의 최후는 스포일러를 당하거나, 소외감을 느끼는 것뿐이다.
연중 내내 열리는 스포츠 경기는 특히 문제다. 스포츠 팬이라면 응원하는 팀이 뛰는 모든 경기를 라이브로 보고 싶은 마음이 당연하다. 물론 종목에 따라서는 케이블 TV가 없어도 라이브로 볼 수 있는 것들이 없지 않다. 스트리밍 서비스들도 ESPN이나 폭스 스포츠 채널 정도는 지원하기도 하고, 미국 미식축구 채널을 볼 수 있는 곳도 있다. 유료 결제 시 야구나 농구, 하키, 축구경기 중계를 스트리밍 해주는 곳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옵션들은 스포츠 팬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메이저 채널에서 잘 중계해주지 않는 대학 팀 경기나, 마이너한 종목의 경기는 더욱 그렇다.
물론 래빗 이어(rabbit ear) 안테나를 설치해 지상파 방송을 시청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개중에는 케이블 TV 서비스를 신청한 지인으로부터 방송 프로그래밍을 ‘빌리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방법들은 일반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유튜브 TV는 스포츠 중계를 포함한 거의 모든 라이브 방송을 제공한다. 유튜브 TV가 지원하는 채널만 있으면 오스카 시상식, 주요 정치 소식 및 긴급 속보, 올림픽 경기 등을 모두 라이브로 볼 수 있다. 스포츠 경기 중계도 부족함 없이 볼 수 있고, 몇몇 채널에서는 대학 운동경기 중계까지 상당한 범위로 커버하고 있다. 유튜브 TV에는 ESPN뿐만 아니라 ESPN2, ESPNU, 빅 텐 네트워크(The Big Ten Network), SEC 네트워크, CBS 스포츠 네트워크, NBCSN, FS1, 폭스 스포츠 네트워크, 컴캐스트 스포츠넷(Comcast SportsNet)등 다양한 채널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즉, 유튜브 TV가 제공하는 ‘채널’은 케이블의 절반 밖에 안 될지 몰라도, 케이블 TV가 전달하는 ‘가치’는 빠짐 없이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유튜브 TV는 케이블이 갖지 못한 장점도 가지고 있다. 구글 홈(Google Home) 지원과 프로그램 추천 기능이 그것이다. 구글이 자신의 특기인 알고리즘을 이용한 추천과 검색 테크놀로지를 십분 활용한 것이다.
패밀리 멤버십 하나로 각기 다른 기기에서 한 번에 최대 세 가지 프로그램을 재생할 수 있으며, 최대 여섯 개의 클라우드 DVR 계정에 녹화가 가능하다. (녹화 용량은 무제한이고, 최대 9개월까지 저장된다.)
구글 포토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녹화 용량은 다른 경쟁 서비스들을 압도해버리고도 남을 구글만의 큰 강점이다. “우리 기업에게 클라우드 DVR은 혁신 그 자체였다”라고 최근 슬링 TV의 CEO 로저 린치(Roger Lynch)는 말했다. 슬링 TV 역시 클라우드 DVR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최대 녹화 가능 시간이 100시간으로 한정되어 있고, ABC, 디즈니 및 ESPN 네트워크의 방송은 녹화할 수 없다.
유튜브 TV의 등장, 왜 케이블 TV의 종말을 의미하는가구글은 그 어떤 TV 및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들보다도 라이브 TV 서비스에서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기업이다.
우선 사용자에 대해 케이블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으므로 광고료를 훨씬 비싸게 받을 수 있다.
실제로 광고주들은 유튜브 라이브 TV가 현실이 되기만을 수 년간 기다려 왔다. 유튜브는 업계 최고의 타겟팅을 보장할 뿐 아니라 가장 폭넓은 젊은 연령대의 시청자 시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광고 예산이 한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유튜브가 다른 케이블보다 비싼 광고료를 요구해 온다면 결과적으로는 케이블에 들어가던 광고 예산이 유튜브 TV로 전환될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TV 시청 트렌드도 구글에 우호적이다. 30세 이상 시청자들은 ‘TV’라는 단어를 들으면 거실에 커다란 TV를 놓고 케이블 서비스를 신청해 시청하는 무언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보다 젊은 연령대 시청자들은 이보다는 유튜브나 스마트폰을 통한 시청을 더욱 선호한다. (최근 파이퍼 제프리(Piper Jaffray)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10대 청소년의 26%는 유튜브를 매일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성향을 지닌 젊은 세대가 앞으로 3,40대가 되면 어떨까?
이들도 나이가 들면 유튜브 업로더들이 만든 아마추어 영상보다는 좀 더 전통적인 TV 프로그램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유튜브 TV는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기인 스마트폰을 통해 전통적 TV 프로그램 시청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자녀가 있는 가정을 생각해 보자. 유튜브 TV는 그야말로 수지 맞는 선택이다. 월 35달러 가족 요금제 하나로 대학생 자녀의 TV 콘텐츠 뿐 아니라 부모 자신과 그 밑에 있는 동생들의 TV요금까지 다 해결되니 말이다.
유튜브 TV뿐만 아니라 유튜브 그 자체도 상당한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지난 달 유튜브는 이용자들의 하루 총 유튜브 시청 시간이 10억 시간을 넘는다고 밝힌 바 있다. 5년 전에 비해 10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지난 해 구글은 유튜브 광고 수익으로만 30억 달러를 벌었다.
유튜브 TV가 출시된다면 유튜브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큰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유튜브 레드 오리지널스(YouTube Red Originals)는 유튜브 스타들, 그리고 전통적 의미의 TV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함께 만든 쇼이다. 유튜브 TV 서비스가 출시되고, 거기에 유튜브 레드가 포함될 경우 시청자 층을 넓히는 효과를 가져올 뿐 아니라 더 독창적이고 배타적인 유튜브만의 컨텐츠를 제작할 기반을 마련해 줄 것이다. 유튜브가 ‘하우스 오브 카드’나 ‘왕좌의 게임’과 같은 퀄리티, 스케일의 컨텐츠를 생산해 내는 것도 이제 그저 시간 문제일지 모른다.
유튜브 TV의 출시는 안 그래도 시청자를 잃고 있는 케이블 TV 업체들에겐 사형 선고나 다름 없다. 미국 내 케이블 TV 업체들은 작년 한 해 동안만 170만 명의 구독자를 잃었다고 모펫네이선슨(MoffettNathanson)의 애널리스트 크레이그 모펫은 말했다.
유튜브 TV는 유동적이고 이동성 있는 라이브 TV 프로그램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이미 유튜브에 친숙해진 시청자들에게 손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광고주의 입장에서는 케이블 TV에서 유튜브 TV로 광고를 옮기고 싶도록 만드는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케이블 TV의 종말이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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