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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영 시

young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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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유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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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7
호박죽 연가

 

아까 먹은 호박죽이 입안에서 맛의 여운으로 울린다. 
이 호박죽을 끓이고 나서 보니 금빛이 인상적이다. 
이는 마음 속으로 지난번에 역시 
내가 끓인 호박죽 색과 비교하니 그럴 것이다. 
이번 호박 크기도 속 살 색깔도 지난번 것과 아주 비슷한데, 
지난번에는 찹쌀가루를 5숟갈 넣었고, 이번에는 3숟갈 넣었다. 
지난번 것은 밋밋한 맛이 고요한 여운이었다면, 
이번 것은 맛의 울림이 고즈넉한 풍경 소리, 
처마에 걸린 풍경이 스치는 바람에 한 번 울리며 멎어가는 여운이랄까? 
한참이 지났는데도 그 맛이 입안에서 그런 여운으로 울리고 있다. 
지난 것 보다 더 달아서 그런가? 
한 번 더 먹어야겠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oung2017
유길영
121266
9196
2024-11-18
그해 여름 그날

 

그해 여름에 내가 본 것은 
투명한 조약돌이었다. 
그것은 심연의 바다에서 주워 올린  
심연의 빛과 어둠을 담고 있는 
투명한 조약돌이었다. 
그날, 
수평선 위의 파아란 하늘에는 
흰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내 가슴에도 
흰구름이 두둥실 떠 있었다. 
투명한 돌이 흰구름 처럼 떠 있었다 
푸른 하늘에.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oung2017
유길영
121076
9196
2024-11-11
<섬/가정 Island/Home>감정에서 감수성으로



아침커피를 내리며 레몬즙을 짜내다가 레몬의 씨앗이 부엌 마루 위로 튀었다. 그 씨앗이 떨어져 마루바닥에 부딪치며 나는 소리가 마치 얼음장 위에 떨어지며 부딪치는 소리 같았다. 그 옛 어릴 적 겨울날 얼어붙은 미나리깡에서 팽이 치는 나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미나리깡에 동네 우물가에서 사시사철 쓰고 남은 허드렛물이나 빨래하고 남은 물을 막아놓고 미나리를 심어 채소처럼 길러 먹는 것이다. 얼음장 밑에는 푸른 미나리가 얼음 속에 함께 얼어붙어 있다. 

 

팽이는, 무딘 톱으로 울타리 기둥 마른 소나무를 자르고 정지칼로 다듬어 그 뾰쪽한 중심에 헌 못 하나 찾아서 박으면 팽이가 되는 것이다. 그 시절 시골에서는 헌 못 하나도 귀하게 여기며 쓰던 시절이었다. 길쌈하며 자투리로 남은 모시 끈을 꼬아서 마른 소나무 가지에 매어 채를 만들어 얼음 위에서 팽이를 치는 것이다. 얼음 위에서 치는 팽이가 마른 땅 위나 학교 교실 마루바닥에서 보다 그 중 제일 잘 돈다. 

 

레몬 씨알이 마루에 떨어져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옛날을 회상하기 전에 요새 마무리한 아상블라주, <섬/가정 Island Home> 이라고 이름 지은 작품을 생각하고 있었다. 
왜 그런 이름을 붙였을까? ‘가정 home’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은 전에 사용된 구성 물품들이 가정에서 쓰인 것이기에 ‘가정’이라는 단어가 맴돌았었다. 지붕 같은 두 판의 사진에서 보는 왼쪽 부분은 전에 침대 부분으로 그리고 오른쪽 부분의 서재의 책장으로 쓰인 것이다. 그리고 가정의 부엌에서 쓰는 ‘섬 island’ 같은 ‘독립도마’와 바닥으로 쓰인 판이 마치 집을 지을 때 쓰는 바닥 재료 같은 것들이 ‘가정집’을 형성할 때 쓰이는 사물들이기에 ‘가정’이라는 감정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왼쪽 기둥과 벽 역할을 하는 나무는 라일락나무의 군집이며, 둥그런 나이테들은 모과나무와 뽕나무이다. 이 나무들이 다 우리 정원과 이웃들의 정원을 기르고 가꾸며 가지치기나 잘라낸 나무들이며, 나는 이것들을 보고 수집할 때 일어나는 생각들로 그런 모양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색칠한 것들이 대부분 모과나무인데, 우리집 마당에서 자라는 모과나무 한 그루는 토질과 옆에 가깝게 자라는 나무들과의 영향 때문인지 가는 줄기가 수없이 나 자라는 것이다. 마치 한 나무가 숲이나 이루려는 듯이 줄기줄기가 나와서 자라서 어느 날 나는 가지치기를 하여 버리려다, 문득 이 길다랗고 낭창낭창한 가지로 둥그런 원을 만들면….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낭창낭창’한 느낌의 감정이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새로운 뭔가로 이끄는 감성이 마음에서 일어나 둥그런 원의 형상을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느끼는 감정에서 일으키는 감수성으로(in sense to sensibility)’ 발현해 나아가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시작과 끝이 있는 선(線, line)으로 있던 나뭇가지가 시작과 끝이 없는 원(圓, circle)으로 태어나서 시작점과 끝점이 없이 끊임없이 돌고 도는 선으로 존재하는 한 원으로 태어난 것이다. 내가 원을 만들 때 느낀 또 하나는 내가 그 나뭇가지를 구부려 휘게 할 때 가지가 아프겠다는 아주 조금이지만 스쳐가는 감정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 아픔의 감정은 뽕나무 껍질을 벗길 때 조금 더 많이 들었다. 껍질이 벗겨진 허연 가지는 마치 몸의 살갗이 벗겨지는 아픔과, 깨끗한 느낌의 순수 감정이 교차하는 것이다. 그것을 구부리며 그 가지에서 벗겨진 껍질을 끈으로 삼아 원을 만들며 느끼는 그런 감정은 미세하지만 새로운 지각(知覺, perception)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경험이었다.  

 

또 하나, 거의 마무리 되어가는 중에 내가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섬 아일랜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섬ㅡ태어나면서부터 거기에서 바람과 파도, 구름과 비와 빛을 받으며 바람이 전해주는 세상 이야기를 고독하게 들으며 서 있는 섬, 그래서 섬이며, ‘가정(home)’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느꼈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의 제목을 <섬/가정>이라고 붙여 보았다. 

 

섬/가정ㅡ 우리들 하나하나는 하나의 섬이며 가정의 본원적 시작이며 항상 가정인 것이다. 혼자이며 한 사람 가정이고, 한 사람 이상이라면 그대로 또 가정이다. 
가정ㅡ 낳고 떠나고 돌아오는(그것이 하루만의 일이든, 긴 시간이든) 집이며 가족과의 삶이며 또는 요즈즘 시대에 혼자 이루는 '혼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가정이다. 
가정은 외로운 섬이며, 따뜻한 섬이며, 때로는 고독한 섬이다. 그래서 가정은 섬이기도 한 것이다. 

<섬/가정 Island/Home>은 침대 부분, 책장 부분, 부엌의 섬 도마, 라일락나무 줄기와 가지, 뽕나무 가지, 뽕나무 껍질 새끼줄, 모과나무 가지들의 조합으로 구성된 물건들의 지난 용도에 내재해 있는 그 사물들의 역사(history)ㅡ그 사물들이 피어나고 자라며 또는 만들어지고 쓰여진 관계나 상황ㅡ와 함께 그것들의 색이나 형을 순간순간 느끼며 조합해 나아가며 감정에서 감수성(sense to sensibility)으로 나아감을 말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young2017
유길영
120772
9196
2024-10-30
그때도 지금도 가을이 가고 있다

 

 

그때도 지금도 가을이 가고 있다.
햇살이 내 마음속까지 비추고 있다.
파아란 하늘에 어리는 노오란 잎새들이 내 마음을 휘어감는다.
'그래 가을이지!'
무한한 파아란 하늘이 나를 안아주며
노오란 잎새 선물을 한아름 안겨준다.
가을,
이런 가을이 그때도 지금도 가고있는 것이다.
변화이고 흐름이다.
차겁고도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
내 마음에 안긴 잎새들을 뚝 뚝 떨어뜨린다.
푸른것은 푸른것데로
붉은것은 붉은것데로
내 마음의 가을에서 뚝 뚝 떨어진다.
가을이 가고 있다.
이제 곧 하얀 눈이 내리고
산 아래 대지에 하얀 눈이 쌓일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가을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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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유길영
120402
9196
2024-10-15
오늘의 작문연습

 


오늘 아침의 작문연습이다. 
맑은 아침, 바람 한 점 없이 내리는 맑은 빛을 바라보며, 나는 뒷마당 바깥마루(deck) 위에서 랖탑 컴퓨터를 키고 이 글을 쓴다. 

 

주홍빛 가을꽃 사이에서 날으는 벌 한 마리를 보았다. 온통 푸르고 푸른 녹색의 향연에서 주홍빛 가을꽃들이 말없이 나를 관조 하고 있는듯하다. 이제 한자락 바람이 불고 주홍빛 가을꽃들이 살며시 움직이더니 다시 고요에 정좌하고 있다. 멀리 기적이 울고 이내 주위의 소음들이 내게 속삭인다. 귀뚜라미 소리 같은 것이 내 귀에서 길게 울리고 있다. 이것은 내게서 울려오는 소리 같다.  이 소음이 있는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보아야겠다. 소리는 담지 못하겠지만. 

 

사진 찍고 보면 그 결과에 거의 항상 만족하지 못한다. 
빛이 마음에 안 들거나, 엉뚱한 곳에 초점이 맞추어 지기도 한다.  내 카메라를 자동 모드에 놓고 쓰다 보니 사각틀(frame) 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어 내가 관심을 가졌던 그것이 이 사진에서  ‘아무것이’ 되어 버린다. 
자동의 특색을 잘 알아서 색과 형의 구성을 결과를 예상하며 셔터를 눌러야 한다. 그렇게 주의 하지 않고 찍은 사진을 어쩌다 실수로 저절로 찍힌 사진만 못하다. 가끔 저절로 찍힌 사진을 보며 놀라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무심함에서, 그러니까 의도 없이 찍힌 사물에 서려있는 그 무심함의 극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자락 서늘한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맑게 빛나는 이 시월의 아침에 앉아서, 
시월이 노래하는 시월의 노래를 듣는다. 
시월이 노래하는 빛의 노래, 
바람의 서늘한 노래, 
가을꽃 주홍빛 노래,  
이 노래는 무언(無言)의 노래이다, 
시월에 시월이 부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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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유길영
119092
9196
2024-10-04
어제의 일이 오늘에 살고

 

어제 산행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만난 줄기차게 내리는 비는 내가 운전하면서 처음 경험하는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였다. 비가 얼마나 세게 앞 차창유리를 때리는지 먼지지우개가 빠른 속도로 내리며 부딪치는 빗물을 좌우로 치워도 치워도 앞이 안보일 정도였다.  많은 차들이 비상등을 깜박이며 달리고, 속도측량기를 보니 내 차는 시속 60km 로 달리고 있었다. 집에 도달할 거리는 한 5-6km 남았을까. 


아내가 집에 있는 둘째에게 전화를 하여 비가 많이 오니 창문들을 다 닫아라 하니, 둘째는, 여기 비가 아니온다 하며 하늘이 시커멓게 곧 비가 올것 같다 한다. 


산행 중에는 비가 내리지는 안았다. 산행 끝 무렵에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여러번 들려왔다. 숲속이라선지 한낮이라선지 번개 치는 모습을 보지는 못하였다. 산행 가기 전에 본 일기예보는 그 시간쯤에는 벌써 비가 지나가고 해가 뜨는 시간이었지만 조금 늦어지는 듯 했다. 가뭄 끝이라서 비가 내리기를 은근히 바라며, 나는 비가 내리면 맞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가뭄에 타는 메마른 잔디를 보면 마치 나의 어느 곳이 말라가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기에 그런지 나는 산행 중에 비가 내리면 비를 나는 비를 맞겠다고 생각한 기억이 난다. 


그런데 산행 후에라도 비가 왔으니 마음이 시원하였다.


어제 산행에서 다시 만난 내가 좋아하는 구간을 걸으면서, 그 곳을 걸을 때마다 생각해온, 내가 영화를 하나 만들면 그건 Love Story이며 내가 좋아하는 그 구간을 꼭 이 영화 넣고 싶다는 생각을 또 했다. 이 곳은 푸른 상록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으며, 특히 눈 쌓인 겨울 풍경이 아름다운 숲속이다. 이 구간은 오르막 길을 오르고 나서 경사가 없어지는 곳이다. 산 중턱에 거의 수평으로 지나가는 숲길 왼쪽은 상록숲 오르막이며 오른편은 상록숲 내리막에 끝에는 숲속의 시냇물이 흐르며, 우리는 이 길을 지나가며 물 흐르는 소리를 듣게 된다. 우리가 오름 길에서 상쾌한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힘겹게 올라와서 편하게 걸어갈 수 있는, 그리고 아직 씌어지지 않은 Love Story의 대사와 인물들을 상상하며 지어내는 일이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그런 길이 이 구간이다. 내가 영화를 만들게 되면, 아마도 이 영화의 시작이 이 구간이며, 끝도 이 구간이며, 진실로 사랑의 문이 열리는 순간도 이 구간을 걷는 것이며, 오름길에서 사랑의 갈등이 표출되는 곳이며, 등등을 상하게 되는 곳이다. 


‘여기가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에 꼭 넣고 싶은 길이야.’ 라고 아내에게 말하니, 

웃으며 ‘언제 만들 건데?’ 라고 말하는 뉘앙스에 담긴 것은, ‘만들 수 있겠어?’ 라고 하는 것 같이 들린다. 

옆에 같이 가던 커플도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우리가 힘들어 올라왔기에 편한 이 지점에서 잠시 쉬엄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저 아래에서 들려오는 시냇물소리가 시원하다. 우리는 다시 걸어간다.   


어제의 일이 기억에서 오늘에 살고 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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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유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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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8
오늘의 작문 연습

 

 

나는 뒷마당 바깥마루(deck)에 파라솔을 펴놓고 야외책상 위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의 작문연습이다 


비가 내릴 참 인가보다. 

아니, 이미 내리고 있다가 그치고 있다. 

처마물 소리가 톡 톡 톡 드린다. 

일기 예보를 보건데 오늘 오후 황혼녘까지는 비가 오락 가락 내리다 말다 할 것 같다. 


마당의 분홍빛 가을꽃 더미에 벌들이 분주히 날으는 것을 보면 구름 짙은 하늘이지만 금방 비가 내릴 것 같지 않다. 


들깨꽃이 피고 있다. 냄새들 중에 들깨 냄새만큼 나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때가 연중의 이맘때이었다. 나는 막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였고, 우리는 그 무거운 M1 소총을 들고 훈련화 발 밑에서는 먼지가 풀석풀석 일어나는 황톳길을 뛰면서 훈련장으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저 만큼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서 한 농부가 들깨단을 뒤집어 놓는 일을 하고 있는데, 풍겨오는 그 들깨 냄새에 나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왜 눈물이 주르르 났을까? 지금은 다만 기억에 그저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나왔다는 기억뿐이지만, 아마도 집 생각, 어머니 생각, 아니 그 순간에 무거운 총을 들고 뛰는 것이 힘들어서 주르르 흘린 눈물이었을 것이다. 헉헉거리며 한 발도 뛰기 싫은 순간 순간에, 뛰어가라는 명령을 어길 수 없어서 전우들과 함께 뛰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전우들과 함께 뛰어가고 있기에 주저앉지 않고 뛰었을 것이다. 혼자라면 도저히 뛰지 못했을 것이다. 


파라솔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운치 있게 들린다. 거기에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소리와 참새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멀리 차 지나가는 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루어 들린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소리는 처마 홈통을 고쳐야 한다는 신호이다. 홈통에서 물이 새며 떨어지는 소리이다. 


“떨어지는 낙숫물소리”에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서려있다. 군대 제대하고 난 후 시절이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친구 강ㅇㅇ가 “길영아, 오늘 ㅈ대 ㅎㅅ이 강의 듣는데 가자!” 하여 우리는 그 강의실에 갔다. 그런데 그 강의시간에 학생들의 시 발표가 있었고, 그 중의 하나가 “떨어지는 낙숫물소리”였을 것이다. 요지는 ‘낙수소리”라고만 해도 되는데 왜 구태여 “떨어지는”이나 “물”이 들어가도 괜찮을까?였을 것이다. 교수님의 말씀에 그것이 괜찮은 것은 그 시(詩)에서는 운율이 중요시 되기 때문이라고, 하신 것 같다. 하여튼 그런 식으로 내 기억 남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학교 앞 어느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그때 그렇게 친구들과 어울렸던 그 시절이 금조각 보다 더 귀한 보석으로 내 추억의 보고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 가만히 젖어보는 그 시절의 바람에 실려오는 들깨 내음, 최루탄 냄새, 그리고 낙숫물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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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유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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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추석 추억



안개 낀 아침이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다. 
어제 낮에 분홍빛 가을꽃 무더미 사이사이로 날아다니던 그 호랑나비가 안개 속에 날으는 듯하다. 
어제의 기억이 오늘에 살며 날으는 것이다. 

 

내일 모레면 추석이다. 
추석이면 아직도 내 몸 속에서 서늘하게 실려오는 나도 모르는 그리움이 맴돈다. 
그리고 눈감으면 고향의 누우런 황금빛 물결이 넘실거리는 들판,  
이런 아침이면 누런 벼이삭 위에 내린 아침 이슬이 더 무겁게 보이고 그 위에 기운 없이 붙어 있는 메뚜기가 이제 가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옛날, 추석이면 선산에 성묘를 갔었다. 
그러니까, 내가 국민학교 5-6 학년 때일 것이다. 거의 반 세기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말목장터에서 남쪽으로 한 2km쯤 떨어진 화랑골에서 아버지와 형 그리고 나, 오정리 당숙님과 아제들이 독대동에서 만나, 버스를 두 번 타고 정읍쪽에서 내장사 들어가기 전 내장저수지 한참 아래서 내린다. 풍경이 우리 들판 동네와는 완전히 다르다. 산중(?)에서 누렇게 고개 숙인 벼들이 한자락 강하게 부는 바람에 황금 물결을 이루고, 그 끝에서 솟아오르는 산들이 앞으로 뒤로 있고 맑은 물이 흐르고 작은 강둑 위를 걸어서, 밭둑길을 걸어서 간다. 

 

지금 같은 시절에는 차로 선산 아래까지 바로 가겠지만 그 시절에는 그렇지 못했다. 형과 아재들이 목기와 음식과 술을 나누어 들고 강둑과 밭길을 갔었다. 나도 뭔가 하나 들고 갔을 것이다. 

 

아버지와 당숙이 걸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간다. 이제 조금은 경사가 진 고구마 밭, 콩밭길을 걸으면 거기에서 밭 가운데 서 있는 한 열녀비(列女碑)를 맞는다. 처음 보던 그 해에 그 비는 참 인상적이었다. 지금 우리가 지나온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는 그 비는 밭 가운데 잔디가 좀 있는 곳에 서있다. “남양홍씨 열녀비”를 그 비문(碑文) 속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몇 년 전에 선산에 성묘를 가면서 그 비를 눈으로도 찾아보고 내 동생에게 물어봐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가 그곳에 가지 못한 오랜기간 동안에 길은 좀 달라졌어도 그 비는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는 선산에 오른다. 한참 올라가서 고조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 제단에 짊어지고 온 목기를 내려놓고 가져온 음식과 실과를 그 위에 놓고 목기 술잔에 술을 따른다. 절을 두 번씩 하고 술을 묘지 위에 아버지가 붙는다. 아버지와 당숙께서 음복으로 술을 조금 마시고, 우리는 음복을 한다. 음복은 밤, 대추, 곶감, 그 중에 하나를 먹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아래 증조부모 묘소 제단에 이와 같이 차려놓고 절하고 음복을 한다. 지금은 다 선산 한 곳에 모셨지만, 그때 할아버지 할머니는 우리 동네 근처에 묻혀 계시기에 우리는 여기 오기 전에 이미 성묘를 하고 온 것이다. 

 

성묘는 고조부모 까지만 하고, 그 윗대 어른들은 문중제사로 한다. 어쩌면 내가 9-10살 쯤이었을까, 할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문중제사에 한번 따라 간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내가 만들어낸 기억(?)으로 그런 이미지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날 상당히 높은 산 중턱의 조금은 넓직한 곳에서 수많은 하얀 두루마기 자락을 한 어른들, 허연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들이 화강암 제단 위에 음식을 차려 놓고 절하고 묘지 위에 술을 붙고 그 묘지 앞에서 축문을 읽는 장면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 어른거리겠는가. 유세차(維歲次)로 시작되는 축문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어떤 기억은 자신의 삶을 의미롭게 치장하기 위하여 크든 작든 간에 어떤 이미지를 생성하기도 할 것 같다. 

 

아, 그 시절에 성묘는 남자들만 갔었다. 

 

이제 안개가 걷히고 있다. 
안개 속에 묻힌 것 같은 아득한 옛날이 아렴풋이 떠오르다 사라져 간다. 
멀리 가는 기차소리가 들려오고 내 귀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다. 
내 앞에 있는 분홍빛 가을꽃 무더기 사이로 벌들이 날으고 있다. 
어제 날으던 호랑나비가 오늘도 찾아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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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유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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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6
아름다운 것은

 

어제 준비한 빈 캔버스에 오늘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그렸지? 
아마도 하늘과 땅, 그리고 그사이에 사는 나무. 
여기서 나무가 상징하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인가? 
그리고 그 존재들의 아름다움?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언어를 통해 소통한다는 것이다. 

그 표현이 이 그림에서는 전경(하단의 마치 어미새와 새끼들 같은 형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이 소통의 아름다움을, '극렬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해 본다. 

나는 생(生)이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며 몸이 있기에 느끼고 인지하고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전생(前生)이나 내생(來生)을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지만,  
지금 살아가는 금생(今生)이 중요하고, 고귀하다고 느끼며 살아간다. 
그래서 '극렬한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렇게 내가 말하는 것은 위 그림의 해석이 아니고 내가 그림과 생(生)에 대한 생각을 이 그림을 보이며 말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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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2017
유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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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6
2024-08-28
<나무들의 시간>

 

화창한 아침이다. 
커피 한잔을 듣고 뒷마당에 나간다. 
아침 햇살에 짙은 녹색의 상록수들이 커피향을 맡기라도 한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햇살 향기 인사를 건낸다. 
그렇게 느껴진다. 

 

우리 견공 로이께서 내가 던지면 공을 받을듯이 뛰어나가 잔디 위에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지금 공놀이 할 마음이 없다. 
이제 그는 그냥 가까이 와서 무궁화 나무 밑에 앉는다. 
그가 지금은 공놀이는 체념한듯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저런 모습을 사진에 담아야 하는데,' 생각하고 있는데, 
"아유 이뻐라." 아내가 로이의 그런 자세를 보고 말한다. 

 

저기에 분홍빛 가을 꽃이 피고 있다. 
9월에 피는 꽃이 벌써 피고 있다. 
엊그제 서늘 하였던 한 주일이 저 꽃에게 '이제 가을이야,' 라고 속삭였는지 모른다. 
허기사 닷세만 있으면 9월이다. 
9월이란 말만 입에 담아도 ,여름이 벌써 가버린 것인가?' 라고 서운한 생각이 든다. 
겨울이 길고 봄은 눈 깜짝할 사이에 가버리는 이곳의 기후와 탓이라고 말해야 하리라. 

 

그리고 저기에서 아침 햇살에 <나무들의 시간>이 빛나고 있다. 
<나무들의 시간>은 나무들이 다 각기의 장소에서 자신들의 시시간간을 아침과 저녁 어제와 오늘 그리고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는 시간을 개념적으로 표현한 나의 작품이다. 이를 보노라면 나무들이 또 다른 생에서 그들의 삶을 노래하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또 저기에는 달맞이꽃 줄기와 잎들이 몸으로 '가을이여 어서 오라,'는 듯이 몸으로 발갛게 노래하는 듯 하다. 

 

그리고 작은 벌새가 분홍꽃송이에 앉았다가 날아간다. 
그 꽃송이가 가볍게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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