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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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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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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kim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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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30
고 김성기님의 영전에

 

 김성기 형, 오늘 이 순간 내가 그대와 마지막 작별을 하는 조사를 드리는 자리에 섰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질 않습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조국을 떠나와 산전수전을 다 겪고, 이제 편할 날만 남았는데 우리 곁을 떠났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요. 며칠 전만해도 서로 만나 골프를 치고 웃고 얘기하던 그대가 오늘은 손발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으니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인명은 재천이라지만 이것이 하늘의 장난이라면 너무 심한 장난이요, 하늘의 질투와 심술이라면 너무 가혹한 심술입니다. 지금 이 순간 삶과 죽음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뼈저리게 느낍니다.

자식들은 모두 성가하여 양 어깨의 무게를 덜어주어 편안하게 살고 있는데 흐르는 세월은 안타깝게도 인생의 마지막 아름다운 설계를 하는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군요.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을 만납니다. 내가 김형을 알게 된 것은 1965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꼭 56년 전 독일에서 힘들게 일하던 때입니다. 캐나다 이민도 같은 시기에 왔고, 토론토 시청에서의 결혼식 증인으로 서명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습니다.

나이로 보면 나보다 5살 아래이지만 그대는 인생의 여러 면에서 단연코 나의 인생 선배였습니다. 해병대 출신답게 용감하게 도전했던 색소폰 연주, 구수한 재치와 소박한 인간미, 모든 면에서 열심히 살려는 그 건실한 생활 태도, 그대는 너무나 열심히, 착실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돌보다 강한 정신과 신체를 가졌던 사랑했던 친구여, 세상을 공포 속에 몰고 있는 코로나 유행병도 잘 참아내더니 무엇이 그리도 급해서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뒤에 두고 어떻게 그리 무정하게 떠났소.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가령 부부와 부모자식 지간이라 해도 말하지 않는 이상 서로의 마음을 알 길이 없죠. 세상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한 번도 털어놓고 이야기해보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 앓으면서 살다 가는가. 그렇게 건강하던 친구가 하루아침에 작별인사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나간 것인가.

 김형의 소천은 주위 친구들에게는 전혀 예상되지 않는 일이었소.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섬뜩해지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죽은자를 통해서만 나 자신의 현재를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나 자신에게 소홀하게 살아왔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은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소.

 하느님의 크고 신비한 섭리와 지난 날의 만남, 삶과 이별 그리고 세상의 인연도 별것이 아닌바, 그리스도인들은 지상의 삶이 끝나면 하늘에서 영원한 삶이 시작된다는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삶과 죽음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성현들의 말입니다.

 김성기 형, 이승의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 부디 편히 쉬소서. 그대의 명복을 빌면서. (2021.06)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onghokim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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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0
고 이완식 님의 추모일에

 

 여보게, 친구여!

 오늘은 2020년 12월 11일, 그대가 이승을 하직한 지가 오늘로 꼭 2년이 되는 날이요, 오고 가는 것이 세월이고 계절이라고는 하지만 형제같이 사랑하던 친구가 떠난지 벌써 두 해가 흘렀으니 나도 모르게 탄식의 소리가 터져 나온 건 무엇 때문일까.

그래 금년도 속절없이 다 가버렸으니 아쉬움과 허전함 때문일까. 사람 살아 가는 것이 항상 그렇듯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잃어버린 친구와 세월에 대한 한탄 때문일 것이다.

 신의 저주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간 세상에 수 많은 고통을 주고 있는 코로나 전염병의 위험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늘 그대가 한때 사랑하고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이 자네 곁에 모였어. 그대와의 추억만은 가슴속에 남아 지워지지 않고 있는 오늘내일 곧 팔순을 바라보는 순한 친구들이오.

하지만 세월은 물이 그렇듯이 가는 세월이 있으면 또 뒤이어 오는 세월도 있기 마련, 더구나 지금은 가버린 세월과 사랑을 슬퍼하고 가슴 아파할 그런 젊음의 순수와 열정으로 몸이 달 시기도 아니지 않는가.

 삶과 죽음의 거리는 슬픔을 줄이기에는 불가항력, 측정도 불가항력인 이승과 저승 간의 거리다. 그래서 결코 가깝다고도 멀다고도 정의할 수 없다. 인식의 거리로도 이쪽과 저쪽의 공간이나 존재를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말 한 번 나눌 수 없는 거리, 물리적으로 가깝다고도 멀다고도 정의할 수 없는 곳, 그래서 닿을 수 없는 먼 곳이라며 체념하고 마는 거리다.

 친구여 우리의 역사는 긴 세월을 향하고 있었네. 그칠 줄 모르던 바둑알과의 투쟁, 골프 공을 잔디 위 직선으로 날리는 피나는 그 노력, 여행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앞장섰던 용기, 한 잔의 술 그리고 보약이라면 진시황도 못 따라올 실력을 가졌지. 자네 집의 숟가락 숫잔들 몇 개인지 모르겠나. 서로 우리 편인데, 흉허물이 어디 있겠나.

 자네는 마음도 여리고 고왔지만 젊은 날엔 꽤 시비 가리는 걸 좋아했지. 불의에 목소리를 높일 줄도 알았지. 지금 생각해 보니 손에 잡힐 듯 세상을 바꿀 기세도 있었던 것 같네.

 공자는 일찍이 “삶을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라고 했다. 또한 죽고 나면 인간의 오욕칠정도 부귀도, 영화도, 꿈도, 희망도 모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은 골프 시즌이 끝나 문을 닫았지만 그대가 좋아하던 로링 힐 골프장에는 인디언 섬머가 지나가고 눈이 내리고 있다. 친구여, 그대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가. 이승의 모든 인류가 죽으면 반듯이 가야만 된다는 천국, 먼저 가본 저 세상에는 천국이 있던가. 주일이면 교회에서 열심히 드리던 기도가 그곳으로 가는 길에 도움은 되었는가.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골프도 치고 술도 한 잔씩 나누며 이승의 우리들이 화제거리가 되기는 하는가?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고 마는 이 세상 인연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구려, 우리도 머지않아 그대 뒤를 따를 것이니 편히 쉬구려, 그대의 명복을 빌면서. (202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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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kim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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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섬나라 쿠바에서 겨울 휴가를

 

 

새해가 밝았다. 2019년이 아쉽고, 아프고 쓰라린 기억들을 뒤로 하고 경자년 새해 2020년 새 희망을 그려본다. 한 해의 삶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부분 한 해를 주기로 새롭게 삶을 시작하고 맺기를 거듭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3일 겨울 휴가를 떠났다. 토론토에서 바라데로까지 4시간 비행하여 날씨가 좋은 쿠바를 찾았다. 이번 여행은 관광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긴 겨울철을 피한 단순 휴가여행이었다. 


바라데로는 유럽인이나 캐나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유명한 휴양지로, 깨끗한 에메랄드 빛 바다와 고운 모래를 가진 해변이 자랑거리이다. 도시 전체가 리조트로 이루어져 있어서 다른 쿠바 지역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다. 


아름답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쿠바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굉장히 이질적인 곳이다. 쿠바는 “카리브해의 진주”로 불리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화려한 시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머나먼 섬나라의 낯선 풍경으로만 기억되어 왔다.


 북미 캐나다의 눈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겨울 휴가라고 하겠지만 그곳에는 무더운 여름이었다. 새하얀 눈이 내리는 것을 보면서 토론토를 떠났는데 불과 4시간 동안의 비행인데 어느새 여름이 되어 있었다. 


세상은 이처럼 기묘하고 아름답다. 카리브해를 바라보며 즐기는 망중한, 낭만적이며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눈부신 자연 휴양도시 바라데로를 찾는 가장 큰 이유다.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는 음악, 살사 춤, 음식, 골프, 일광욕, 해변산책, 뱃놀이, 낚씨, 수영, 낭만적인 풍경 등 어떤 취향을 가졌건 여행자를 흥분시킬 요소로 가득하다. 


 1960년대 초 미국과의 수교가 단절된 이후 쿠바는 그 상태 그대로 멈춰버렸기에 흔히들 “시간이 멈춘 나라”라고 한다. 변화의 시계가 멈춰버린 쿠바, 혁명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먼지만 날리는 사막처럼 바스러져 가던 섬나라에, 2014년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다녀간 이후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는 쿠바였는데, 미국의 새로운 정책으로 여전히 옛모습을 상당히 많이 간직하고 있는 쿠바를 여행하는 것 자체가 과거로의 여행이다. 


휴양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폭격을 맞은 거 마냥 낡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구 시가지의 건물벽들을 보고 놀라고, 1950년대에 생산된 미국의 낡은 차들이 여전히 도로를 종횡무진 하고 있으며, 인력거가 아직도 성황리에 영업 중인 것에 또 놀란다.


 쿠바는 카리브해에서 가장 큰 나라이며 덜 상업화된 섬이며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공산주의 보루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쿠바의 정치적인 고립은 관광객이 지나치게 들끓는 것을 막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온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쿠바인들은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준다. 


“삶은 가까이서 본다면 비극, 멀리서 본다면 희극이다” 라는 말은 여행에서 종종 느끼는 필자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말이다. 쿠바 경제는 관광산업에 많이 의존하지만 쿠바의 상당 부분은 가축들을 방목하고, 사탕수수, 커피, 담배 등을 재배하는 비옥한 평지로 구성되어 있다.


 몸과 마음에 휴양을 안겨줄 쿠바의 휴양도시 바라데로(Varadero), 340개의 객실을 갖춘 리조트 Melia Las Americas Golf and Beach Resort에는 합리적인 가격에 숙박비, 하루 세끼 식사, 무제한 골프, 술, 비치타월 및 선베드 대여료 모두가 포함되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신선놀음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여행자들이 머무는 휴양지 내에는 천국이겠지만 이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현지인들은 미국의 경제제재로 경제난과 물자부족에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


 필자의 경험으로 섬에서는 소낙비가 오고 그치는 일이 흔히 있는 일로 지난 밤에 비가 내리더니 아침에 일어나니 언제 비가 내렸었냐는 듯 아주 쨍쨍하다.


 호텔 뒤 모래사장에는 세계에서 몰려온 선남선녀들이 아침부터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야자수 나무 아래에서 한가하게 낮잠을 자는 것이 조금 사치스러운 것 같지만 너무 더워 그늘을 찾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대양에서 쉴새 없이 밀려오는 흰 파도와 시원한 해풍에는 작열하는 태양열도 한풀 꺾인다. 한 라운드의 골프가 끝나고 마시는 한 잔의 쿠바맥주는 갈증을 덜어주는 꿀맛이었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설레고 흥분되기 마련이다.


 바라데로의 바다색은 너무 맑아 보고만 있어도 황홀하고, 아침부터 해변 선베드에 누워 잠도 자고, 술도 마시고, 책도 읽고, 바둑도 두고, 세상 돌아가는 국제정치 논쟁 등, 중간중간 물놀이를 하다 보면 어느덧 해가 지는 천국,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정열의 라틴, 항상 유쾌하고, 행복한 사람들이 있는 그곳의 분위기에 취해서 사랑에 빠진다.


 필자는 쿠바식 사회주의에 먼저 질문을 던진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으로 평등한 사회를 표방하고 있는 그들은 “가난한 평등”에 의문을 가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쿠바인이 살아가는 태도는 특별하다. 현실을 극복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니라 즐기기 위한 것 같다. 쿠바의 화끈한 밤의 젊음이 불타는 매일 밤 펼쳐지는 호텔 내의 공연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을 만하다.


 쿠바 여행자에게는 피나 콜라다와 헤밍웨이가 즐겼다는 바로 그 칵테일 모히토 체험이 유명한 과제다. 쿠바의 상징으로 불리는 모히토는 박하잎과 럼주, 설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시원하면서도 단맛과 알콜기가 적절히 조화를 이뤄 오늘날까지도 당연 최고의 소비량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피나 콜라다는 럼과 코코넛 밀크, 파인애플 주스, 설탕, 잘게 부순 얼음을 넣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음료에 가까운데 열대지방의 표준이 되는 칵테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여행자들은 시원한 해풍을 맞으면서 성난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가와 모래사장을 즐기면서, 그리고 그 옆에 야자수 잎으로 덮은 오두막으로 만들어진 바, 햇볕 아래 누워 마시는 한잔의 트로피칼 칵테일로 남국의 정취 물씬 나는 코코넛 향을 음미하면서 더위를 물리친다.


 10일간의 휴가는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렸다. 잘 있거라 카리브해여! 캐나다에서 4시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섬나라, 내년 겨울 휴가를 기다리면서 눈이 내리는 캐나다로 돌아오는 하늘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202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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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kim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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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6
모로코 (Morocco) (하)

(지난 호에 이어)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주요 항구인 탕헤르에서는 여행의 피로를 풀어주는 아랍의 향미 박하(민트)차를 마시며 바다 경치를 감상하고 과거 술탄 궁에 자리잡고 있는 카스바 박물관(Kasbah Museum)을 구경한다.

우리들은 도시 중앙과 교외를 버스를 이용하여 구경했다. 오래된 건물들이 퇴색되어 가고 있었고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부유한 나라 사람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큰 저택을 지어 살고 있단다.

 아프리카의 북서부 끝에 있는 모로코는 그만큼 아프리카, 이슬람, 유럽문명이 공존하는 다채로운 문화를 가진 독특한 나라이다. 유럽, 중동, 아프리카의 다양한 문화가 혼합된 곳이라기에 그 독특함과 다양한 볼거리를 기대하고 떠났는데, 뜻하지 않게 사하라 사막에서 완전 감동을 받는다. 지금까지 다녀본 나라 중 가장 비현실적인 공간과 시간을 경험하고 왔다.

그 중에서도 마라케시는 사하라 사막이 광활하게 펼쳐지기 직전 오아시스처럼 자리잡은 도시다. 마라케시에서 사하라 사막으로 갈 때 아틀라스 산맥(해발 4165m)을 거쳐가게 되는데 해발고도가 높은 곳이다 보니 한 겨울을 방불케 하는 맹추위를 경험한다.

그리고 사막의 일교차는 굉장히 큰 편이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는 얇은 반팔을 입고 활동을 하다가도 밤에는 두꺼운 외투를 겹겹이 껴입어야 했다.

 낙타의 발걸음 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일 수 있는 낙타 트래킹, 사막 캠핑장에서 베두인들의 전통 음악을 들으면서 먹는 모로코 전통요리, 캠핑장 야외 돗자리 위에서 다국적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 쏟아지는 별을 보면서 잠드는 밤, 이른 새벽 사구 정상에서 바라보는 장엄한 일출… 사하라 사막에서는 이 모든 게 가능하다. 사하라 사막은 역시 살면서 꼭 한 번은 가볼 만한 낭만적인 곳이었다.

 모로코는 전 국토가 북위 23도-36도에 있어 온대기후에 속하는데 북부는 지중해성 기후, 중부는 대륙성기후, 남부는 사막기후 등으로 지역별로 특성이 있다. 강우량을 기준으로 크게 우기와 건기로 구분된다. 우기는 11월-4월로 날씨가 따뜻하고 습도가 높으며 평균기온이 섭씨 15도이다. 건기는 5월-10월로 덥고 건조하며 평균기온이 28도이다.


 ▲모로코 Casablanca

모로코인의 주식인 쿠스쿠스와 타진을 먹다보면 속이 느끼해서 한국음식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들이 자랑하는 타진은 쿠스쿠스와 비슷한데 생선이 추가되고 쿠스쿠스는 양고기, 소고기 등 육류와 당근, 콩 등 각종 채소를 넣고, 밀가루를 비벼 만든 알갱이를 넣은 뒤, 푹 쩌낸 북아프리카의 전통 요리다.

우리들의 기호에는 잘 맞지 않는데 그들에게는 특별한 음식인 모양이다. 그러나 모로칸식 민트 티는 부드럽고 달콤하고 향긋하게 다가왔다. 식당을 빠져나와 좁은 시장골목을 지나는데 가는 곳마다 손을 내미는 안타까운 광경을 본다.

 아프리카와 유럽대륙의 서로 다른 문화와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오묘하게 섞여 있고,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함께 평화롭게 살고 있는 모로코 왕국은 이국적인 오색 빛깔의 실과 화려한 문양의 수로 장식된 카펫 같은 국가이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슬람 국가 모로코에서는 기독교인들의 무덤은 지상에 묻혀지고 이슬람인의 묘는 땅속에 묻힌다는 이해하기 힘든 종교를 체험하기도 하며 현저한 문화의 차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느끼는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잘사는 나라들, 빛나는 문화, 경제적 부와 사회적 안정을 누리는 나라들에 비하면 이곳은 아직도 빈곤의 어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힘겨운 숨소리가 안타깝게 들려오는 것 같다.

멀고먼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북쪽 한 모퉁이에 불과한 모로코의 여행은 부유한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보는 것과는 달리 나에게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생각하게 한 무겁지만 값있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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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kim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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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4
모로코 (Morocco) (상)

 인구 약 3610만의 모로코는 아프리카의 서북쪽에 있는 나라로서, 라바트(Rabat)를 수도로 하고 있다. 1975년부터 서사하라의 영유권을 스페인으로부터 이양받았으며, 지금도 이 영유권을 보유하고 있다. 서쪽과 북쪽으로는 대서양과 접하고, 동쪽으로 알제리, 남쪽으로 모리타니 등과 국경을 접한다. 전통적인 이슬람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카사블랑카(Casablanca)는 최대 경제도시이다.

 원래 모로코 종족은 베르베(Berber) 민족이며 6세기 경 아랍 침입자들이 회교문화를 들여왔으며, 20세기 초까지 프랑스와 스페인의 지배를 받었으며 1956년 독립되었다. 세계은행은 저소득층 개발국가로 분류하고 있으며 모로코는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인산광물(인광)이 생산되며 농업과 어업, 광산산업이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GDP가 낮은 편이며 국민의 거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아프리카 땅에 발을 들여 놓는다는 부푼 가슴을 안고 스페인의 그래나다에서 새벽 일찍 출발했다. 지브랄타로 가는 해안도로를 따라 목축업과 넓은 평원에 재배되고 있는 농작물의 끝없는 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스페인 최남단의 항구도시 타리파(Tarifa)에서 아프리카 대륙 모로코의 항구도시 Tangier(탕헤르, 탠지어)까지는 페리로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유럽과 가까워 아프리카 중에서도 가장 유럽적인 색채를 띄면서 아프리카 고유의 강렬한 색채와 이슬람 문명이 공존하는 모로코는 길게 뻗은 해안가, 활성화된 항구와 어시장, 푸르게 우거진 오아시스와 높은 아틀라스 산맥따라 트레킹 및 등산코스, 열사의 사막, 만년설 덮인 고산지대, 모로코의 해안지방과 시골마을 등 수많은 관광자원은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제공하며,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유럽대륙에서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거리여서 여행하기에 아주 친근하고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미지의 검은 대륙 아프리카가 멀리 보이는 유럽 최남단, 아름다운 지브랄타 해협에 도착했다. 지중해의 물과 대서양의 물이 만나는 지브랄타 해협에는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탕헤르는 모로코 북부지방에 있는 인구 약 95만으로 지브랄타 해협에 면하며, 스페인에서 27km 떨어져 있는 항구도시다.

예로부터 아프리카와 유럽을 연결하는 곳으로 중요시 되었다. 스페인의 타리파에서 모로코의 탕헤르를 오가는 페리를 타고 지브랄타 해협을 건너게 되는데 이것은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간다는 뜻이다.

페리가 출발하자마자 창 밖으로 이베리아 반도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갔다. 아프리카 대륙이 가까워질수록 부드러운 지중해의 해풍은 설레는 승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고대 항구도시 탕헤르에 도착했을 때는 무더운 여름 날씨였다. 드디어 아프리카 땅에 첫발을 내려 놓았다.

 북아프리카 산지의 베르베 종족의 신화에 의하면 고대도시 탕헤르는 노아(Noah)의 성에서 돌아온 비둘기의 발에 묻혀온 흙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비행기가 없었던 시대에는 지리적으로 아프리카에서 동양과 유럽으로 오고 가는 유일한 문 역할을 했던 곳이므로 세계의 유명인사, 작가, 예술가와 여행자들이 찾았던 항구도시이다.

모로코는 넓은 초원에 야생 동물들이 뛰노는 그런 이미지의 아프리카와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신비감으로 온통 뒤덮힌 곳이다. 모로코의 신비는 도시건 사막이건 산이건 어느 곳을 가든지 결코 여행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경이로움으로 나타난다.

모로코는 야생해변, 눈 덮인 산과 광활한 사막지역을 갖춘 북아프리카의 이국적인 국가이다. 바다와 사하라 사막의 사구 사이에 위치한 모로코의 도시에는 화려한 고대 건축물, 현대식 고층건물과 시장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골목길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Camels 캐러밴 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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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kim
김종호
7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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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6
스페인(Spain) (2)

  

 (지난 호에 이어)
 두 번째의 도시 코르도바. 이슬람교 왕국의 수도로 크게 번성한 코르도바에는 300여 개의 모스크가 있었다고 한다. 또 40만 권 이상의 장서를 자랑하는 유럽 최고의 대학이 있었고, 인구도 50만-100만 명을 헤아릴 정도로 유럽의 중심 도시였다.


산 허리를 잘라 만들어진 고속도로에서 내려다 보이는 지중해를 끼고 즐비하게 늘어선 휴양지, 파란 하늘과 푸른바다, 언덕위에 자리잡은 하얀 별장들과 바다에 떠 있는 하얀 배들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평화스러워 감히 지상천국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이다. 


겨울날씨가 유럽에서 가장 온화한 곳이므로 많은 유럽사람들이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는 곳이며, 연중 휴양객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오는 명소이다. 비옥한 땅으로 거대한 농장과 공업단지, 주요산업은 석유, 올리브, 오랜지, 보리, 포도주 등 농업이라고 한다. 


고속도로 양편 언덕으로 오랜지 농장과 올리브 나무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새까맣게 가지에 매달린 올리브 열매들이 아침 이슬이 잔뜩 배어 있는 안개꽃처럼 산뜻해 보였다. 평균 70-100kg의 올리브를 한 나무에서 수확한다고 하니 세계시장에 공급하는 양을 짐작하고도 남을만 하다.


 마벨라로 가는 도로는 너무나 험준한 산을 넘어감으로 산 아래로 보이는 깊은 계곡이 아슬아슬하게 보이고 겁이 났다. 스페인 내란(1936-1939)을 배경으로한 험준한 산맥을 우리들은 넘고 있었다. 


어느 나라이던 그 나라의 역사를 보면 전쟁이 없는 곳이 없었던 것처럼 스페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페인의 내란은 1931년 혁명의 여파로 발생한 사건이며 직접적인 원인은 진보적인 정부군에 대립해서 보수파인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1936년에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내란의 당초는 극히 국내적인 대립이었으나 마침내 독일과 이탈리아가 반란군에 가담하고 정부군은 소련이 지원하는 형태가 되고말아 내란은 그 양상이 완전히 일변하고 만다. 3년 동안 계속된 내란은 카톨릭 교회의 지원을 얻은 프랑코 총통군의 승리로 끝났으며 전쟁의 결과 경제는 피폐해졌으며 사망자 수는 10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수 세기가 지난 오늘날의 스페인은 전쟁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평화롭고 부강한 나라로 변해있다.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이곳에서 집필했다는 여인의 도시 론다, 피카소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 스페인 최고의 휴양도시 말라가 등은 스페인이 여행객들에게 주는 최고 선물의 도시들이다.


 우리들은 지중해의 아름다운 해변, 멋진 해안선과 최고의 리조트 휴양지, 스페인 말라가의 마벨라에서 휴가를 즐겼다. 지중해가 내려다 보이는 산중턱에 자리잡은 Los Arqueros 골프장에서 유럽사람들과 어울려 라운딩을 즐길 수 있었다. 산과 골프코스 전체가 새까맣게 매달린 올리브 나무들로 싸여 있어 매우 인상적이었다. 


도시 이름 “마벨라” 라는 단어는 아름다운 바다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곳의 전통적인 스페인 스타일의 메뉴에도 생선류와 조개류 등의 해산물이 많다. 이곳에서 먹어보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요리 파엘라(Paella), 마늘과 양파로 향을 낸 후 닭고기, 홍합, 새우, 조개 등을 볶아 쌀 위에 넣어 밥을 지은 것으로 샤프란 향료를 뿌린 것인데 스페인 하면 지금도 그 향이 기억에 남아있다.

 

 

 
 

▲알함브라(Alhambra) 궁전

 

 

 

 마벨라에서 3시간 거리에 있는 780년 동안 회교왕국으로 번성했던 도시 그래나다 관광은 우리들의 이번 스페인 남부지역 여행의 종착점이 된다. 이슬람 문명을 느끼게 하는 안달루시아 지역은 이슬람 건축의 기하학적인 건축기술과 정교하고 섬세한 스타일의 심미주의 향기에 취하는 곳이다. 


스페인에 간다면 “안달루시아로 가라” 할 만큼 안달루시아는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동시에 녹아있는 문화와 예술의 지방이다. 그 중에서도 알함브라 궁전은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이었던 나스리드 왕조(1237-1492)의 궁전이며 그래나다의 상징이고 유럽에 현존하는 이슬람 건축물 중에서 무어예술의 최고 걸작품에 꼽힌다. 한때 스페인 남부를 지배했던 이슬람 무어인들의 색깔이 짙게 남아있는 곳이다. 알함브라는 아랍어로 붉은 성을 뜻한다고 한다.


 그래나다는 스페인 반도에서 제일 높은 산 Mulhacen(해발 3481m)의 하단에 자리하고 있다. 서기 711년 무어족(Moors: 모로코에 사는 회교인종)들이 지브랄타 해협을 건너와 비옥한 대평원이 있는 이 도시의 알함브라 언덕위에 왕국을 건설하고 8세기 동안 아랍문화가 번성했다고 한다. 


회교왕국은 1492년에 천주교 군주들에 의해 함락되고 멸망한다. 언덕위에 세워진 회교왕국의 성은 지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당시의 찬란했던 문화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설산으로 변해가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배경으로 맞은 편 언덕 꼭대기에 알함브라 궁전이 손에 잡힐 듯하다. 전세계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이 궁전을 보기위해 방문하며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스페인에는 약 백만 명의 집시들이 살고 있다고 하며 그래나다에 5만 명의 집시들이 살고 있는데 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정겨운 산동네 언덕에 땅굴을 파서 그 속에서 산다고 한다. 현대문명의 혜택을 받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집시들의 생활은 그 사회에서 버림받은 인간, 아니 2등 국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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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kim
김종호
75270
9204
2019-09-08
스페인(Spain) 여행기

 
 

 여행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 바로 예술과 낭만, 태양과 정열의 나라 스페인, 플라멩코와 투우, 이슬람 문화의 추억과 고풍스러운 건물들, 그리고 따뜻한 햇빛을 머금은 지중해의 낭만까지 스페인은 가는 곳마다 매력이 넘쳐나는 곳이다. 


유럽의 현관인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스페인은 반도의 84%를 차지하고 있으며, 북동쪽은 피레네 산맥을 사이에 두고 프랑스와 접해 있고, 북서쪽은 대서양, 동쪽으로는 지중해에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서쪽은 포르투갈과 접해 있고, 남쪽은 지브랄타(Gibraltar)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대륙을 건너다 보고 있다.


 스페인은 광대한 크기만큼 지리적으로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북부스페인은 습기가 많은 녹지대이며, 내륙 지방에는 끝없는 평원이 펼쳐져 있다. 바라만 봐도 기분 좋은 오랜지 나무, 레몬 나무, 그리고 올리브 나무! 뜨거운 햇볕이 쨍쨍한 여름보다 가을이나 겨울이 더 여행하기에 매력적인 스페인의 남쪽 끝 지중해와 맞닿은 안달루시아, 지중해 지방은 일조량이 많고 비옥하며, 안달루시아 지방은 덥고 건조하다. 

 

 

 

 

 

 스페인은 전세계를 무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바다를 뚫고 머나먼 세계를 돌아다니며 항로를 개척하고 탐험과 무역에 나서면서 당대 최고의 문화와 번영을 이룩했다. 전 세계적 패권을 이룩한 최고의 제국 스페인은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19세기까지 그 영토가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까지 이르렀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이탈리아, 독일과 프랑스 일부까지 스페인의 영토에 속해 있었으니 그야말로 광대한 제국이 아닐 수 없었다. 오늘날 스페인어가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이 쓰이는 언어이며, 멕시코, 중앙아메리카, 필리핀 등 세계 각지에서 무려 3억 명이 넘는 인구가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스페인의 화려했던 과거를 짐작할 수 있다.


 스페인은 문화를 테마로 하는 관광지인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역사를 테마로 하는 세비야, 그래나다, 톨레도 등 유명 도시가 많고 13개의 도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지중해 연안을 끼고 있는 스페인 남부지역 안달루시아(Andalusia) 지대에는 토론토에서 출발하는 직항로가 없기에 포르투갈의 Faro 공항을 경유하게 되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우리들이 보내는 두번째로 계획한 겨울 휴가지다. 


 포르투갈의 국경도시인 Tavira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이른 새벽 스페인을 향했다. 이곳 전설에 의하면 그리이스 신 Zeus의 아들 Hercules는 지브랄타 해협을 중심으로 유럽대륙을 아프리카에서 분리 시키면서 지중해가 생성되었다고 한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진화된 인류가 신석기 시대 때 처음으로 유럽으로 들어왔던 곳이 스페인의 남부지역이었다고 한다.


 안달루시아 지역은 유럽에서 가장 따뜻한 겨울날씨, 긴 황금빛의 모래사장, 돌이 많은 높은 산들과 평원이 있는 지방으로 아프리카와 유럽의 두 대륙을 연결하는 정점이기에 세계의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강 하나를 두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국경인데 표시판만 보일 뿐 여권을 검문하는 곳도 없고 모든 차량들이 정지 하지도 않고 통과하는 너무나 자유롭게 오고 가는 것을 보니 세계 모든 나라들이 이렇게 평화로웠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들은 스페인 땅에 첫발을 들여 놓은 것이다.


 흔히 “정열의 나라, 스페인” 이라고 할때 이는 다분히 안달루시아 지방을 이미지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로는 코르도바(Cordoba)를 비롯해 세비야(Sevilla), 그래나다(Granada) 지역 등을 들 수 있다. 이슬람 문화가 발달하여 유럽대륙에서 이슬람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원래 안달루시아란 말은 반달 족이 살고 있는 곳이란 뜻의 “AL Andalus” 에서 왔다. 반달 족은 409년 이베리아 반도를 침입해 427년 지브랄타 해협을 건너 카르타고까지 진출한 종족이다. 이 반달 족이 점령한 곳이 바로 알 안달루스, 지금의 안달루시아가 되었다. 


1492년 북부의 크리스챤 왕국이 회교도의 마지막 거점 그래나다 회교도의 남부왕국을 점령하고 거대한 스페인이 통합된다. 스페인 인구 약 4천7백만, 수도 마드리드 310만, 전체 인구의 94%가 로만 카톨릭으로 구성된 스페인은 서유럽에서 프랑스 다음으로 두번째 큰 나라다.


 우리들의 목적지 스페인의 남부지방 최남단에 위치한 마벨라(Marbella)로 가는 길에 첫번째 도착한 도시 사비야는 안달루시아의 최대의 도시로 정열의 집시 춤 “플라멩코(Flamenco)”의 본고장이며 “카르멘”, “세비야의 이발사”, “돈 조반니” 등 오페라의 무대가 되는 예술의 도시이다. 


세계 3대 성당으로 알려진 세비야 대성당은 대충 돌아보는데만도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어마어마한 규모와 화려한 은빛 제단에 놀란다. 거리를 장식하는 종려나무와 발코니의 꽃들이 세비야의 아름다움을 한껏 발산하며, 플라멩코와 투우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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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kim
김종호
75201
9204
2019-09-01
헝가리 Hungary(하)

 


 (지난 호에 이어)
 헝가리 초대 국왕이자 로마 카톨릭교회 성인인 성 이슈트반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성 이슈트반 대성당(St. Stephen`s Basilica)은 부다페스트를 찾는 여행객들은 꼭 들리는 곳으로, 가는 길은 세계에서 모여든 인파들로 인산인해였다. 


그 중에도 한국에서 온 그룹들이 많이 보였다. 이번 여행중 비엔나와 프라하에서도 느꼈지만 이제 세계 곳곳에 한인 관광객들이 붐비는 것 같았다. 대성당 위쪽 전망대에서 부다페스트 도시 전체를 감상할 수 있다. 

 

 

 

 

 

체인 다리 (일명 사자다리)로 다뉴브 강을 건너 구 시가에는 아름답게 채색된 거리, 장식 많은 교회 그리고 유명한 어부의 요새 등이 있다. 뾰족한 지붕과 아기자기한 느낌의 성벽이 아름다운 어부의 요새는 헝가리 애국정신의 한 상징으로 일컬어지는데, 19세기 시민군이 왕궁을 지키고 있을 때, 다뉴브 강의 어부들이 강을 건너 기습하는 적을 막기 위해 이 요새를 방어한 것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요새에서는 다뉴브 강을 앞에 두고 부다페스트 시내 전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일곱 개의 빛나는 포대(9세기 카파시안 저지대에 들어온 일곱 개의 마자르 족을 상징하는)와 말을 타고 있는 스테판의 동상이 있다. 


구 시가 바로 서쪽이 왕궁이다. 부다 지구와 겔레르트 언덕, 다뉴브 강 크루즈 승선, 로맨틱한 다리 혹은 강가를 산책하는것, 많은 온천 중 한곳에서 “물맛보기” 등이 부다페스트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부다패스트의 야경은 매우 볼 만하다. 다뉴브 강을 따라 부다페스트의 명소인 국회의사당, 부다성, 마치시 교회, 세체니 다리 등이 있는데, 밤이 되면 조명을 켠다. 도시 전체가 동일한 색의 조명을 사용해서 다뉴브 강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운치를 더해준다. 저녁 노을처럼 붉게 물든 저녁하늘을 배경으로 보이는 다뉴브 강의 다리와 중세 성들이 빚어내는 밤의 휘황찬란한 풍광이 일품이며 가히 환상적이다.


다뉴브(도나우) 강, 동유럽을 다 아우르는 큰 강이기에 나라에 따라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도도하게 흐르던 이 강이 헝가리에 와서는 두나(Duna) 라는 이름으로 수도의 한복판을 가로질러 부다와 페스트로 양분하면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유명한 왈츠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An der schoenen, blauen Donau)” 그 강이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 일행을 위해 전세를 낸 크루즈 선박이 있는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해가 산마루에 걸려 넘어가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푸른 물결이 달빛과 더불어 유유히 흐르는 다뉴브 강에서 즐기는 환상의 밤 뱃놀이, -하늘이 붉다 못해 검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휘황찬란한 조명을 받은 건물들과 다리들- 강에 비치는 황금빛 반영과 함께 국회의사당, 부다페스트의 민주화를 기념하여 명명된 푸른 불빛의 자유의 다리, 황홀하기까지 했던 멋진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여행 중에는 언제나 그 나라의 음식을 맛보게 되는데 헝가리 음식이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 맞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맵고 짜고 얼큰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이, 그것도 아시아가 아닌 유럽에서 가장 아쉬운 건 뜨거운데도 속이 시원하고 매운데도 속이 풀리는,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국물”이라는 것인데, 그 국물과 비슷한 음식이 있는 곳이 바로 헝가리다. 반세기가 넘게 외국에 살고 있는 필자도 아직 국물이 없으면 식사를 한 것 같지 않으니 그 뿌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헝가리 대표음식, 굴라쉬가 바로 그것인데 소고기에 파프리카를 많이 사용하여 푹 끓인 스튜의 일종으로 우리나라 육개장 같으면서 우리 입맛에 잘 맞는 편이다. 빵과 함께 먹으면 이것만으로도 한끼 식사가 된다. 헝가리인은 우리나라의 고추와 비슷한 파프리카를 많이 사용하여 매운 음식을 즐기는 편이다. 


해질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의 생음악이 연주되는 다뉴브 강가의 노천카페에서 보내는 부다페스트의 마지막 날이다. 헝가리 수도와 다뉴브 강이 뿜어내는 현란한 광경, 육중한 부다페스트를 벗어나는 것은 여행자들에게도 일종의 설렘이다. 정말 인상 깊고, 아름다운 도시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20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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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kim
김종호
75094
9204
2019-08-24
헝가리 Hungary

 

 

 새벽 일찍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나섰다.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봄기운을 가득 담은 공기가 얼굴을 스친다. 하루 종일 흐리겠거니 했지만 높은 알프스의 산길에서 평야지대로 내려오는 동안 금새 파란 하늘이 군데군데 비치고 가랑비는 그쳤다.


 슬로바키아의 타트라 산장 호텔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 230km, 약 5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부다페스트로 가는 길은 1차선으로 산과 계곡의 들판에는 봄이 오고 있었다. 동유럽 전체가 그렇듯이 헝가리도 농업, 목축업이 주산업이었다.


 헝가리는 유럽의 중앙에 자리잡은 나라로 일곱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기본적으로 세 개의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큰 강인 다뉴브와 티짜 강이 국토를 삼등분하며, 발라톤 지역에는 곳곳에 온천수가 흐른다. 

 

 

 

 

 

 공산화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개방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나라 헝가리는 리스트, 루카차를 비롯하여 음악, 철학과 사상 분야에 있어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이들을 배출한 곳이라 곳곳에서 이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부다페스트 시의 아름다움, 오래된 역사 유적과 온천은 많은 관광객들을 부르고 있다.


 국토 전체가 평원이며 부다페스트를 가로 지르는 다뉴브 강을 비롯해, 티짜 강이 주요 강이다. 중요한 국제 수로인 다뉴브(도나우) 강은 볼가 강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강이며 유럽의 주요 강 중 유일하게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독일 바덴에서 발원하여 약 2850km의 거리를 남동쪽을 향해 흘러 오스트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세르비아 등 10개 국의 영토를 지나 루마니아의 다뉴브 삼각주 지대에서 흑해(Black Sea)로 흐른다.


 헝가리는 중부 유럽에 있지만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배경으로 하며, 문화와 역사의 여러 부분에서 동양적 요소를 볼 수 있어 한층 더 흥미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부다페스트 (Budapest)


 부다페스트의 아침, 밝은 햇볕과 청명한 하늘은 우리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인구 220만을 품고 있는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다뉴브 강가에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앉아 있다. 이 곳은 헝가리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시작되는 곳이자 끝나는 곳이다. 


언덕 위의 부다(Buda) 지역과 아래 평야 지역인 페스트(Pest) 지역이 합쳐져 만들어진 도시 부다페스트,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다뉴브 강(Danube River)과 두 지역을 연결하는 체인 다리(Chain Bridge)가 인상적이며 이 도시를 돋보이게 하는 진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넓은 길, 공원, 여러 건축 형태의 조화 등으로 인해 “동유럽의 파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리스트, 프란츠의 부드러운 선율처럼 로맨틱한 “다뉴브의 진주” 낭만이 살아있는 예술도시이며, 서유럽 국가들 못지않게 많은 유적들과 화려한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 많다.


 부다페스트는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수도의 전성기였던 대부분의 도시가 건설된 그 과도기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도시는 잘 정비되어 있고 관광객을 제외하면 복잡하지 않아 걷기에 아주 좋다. 벽으로 둘러쳐진 성 지구는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기념물과 박물관이 소재한 곳이다. 두 개의 독특한 지역으로 나뉘는데, 중세에 평민들이 살았던 구시가, 13세기 성이 지어졌던 곳인 왕궁이 그것이다. 


 개방의 열풍에 아랑곳없이 다뉴브 강변의 부다지구는 합스부르크 왕가와 건물들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그 중 부다왕궁은 13세기 때 왕궁이 지어진 뒤 외세의 침입을 숱하게 받고 파괴와 재건설이 수 백년 동안 반복된 곳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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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hokim
김종호
75037
9204
2019-08-15
슬로바키아(Slovakia) 여행기(하)

 

 

  

 

 

 

브라티슬라바의 도심은 다뉴브 강을 중심으로 나뉘는데 동유럽의 오래된 도시일수록 구시가, 신시가에 대한 경계선은 명확하다. 구시가지 안은 헝가리 통치 시절의 고풍스러운 건물과 유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4세기에 세워진 미카엘스 탑은 브라티슬라바의 관문이었으며 성 위에서는 구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브라티슬라바 성은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어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까지 내려다 볼 수 있다. 과거 황제의 거처였으며 나폴레옹 전쟁 때 소실됐다가 2차 대전 후에 복구됐다. 지금은 슬로바키아의회와 시립박물관 건물로 사용되고 있어 슬로바키아의 역사, 문화, 예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구시가지에 위치해 있는 성 마틴 대성당은 브라티슬라바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 카톨릭 대성당이다. 브라티슬라바 사람들의 정신적 혼이 담겨 있는 마틴 대성당은 주위의 다른 건물들과 어우려져 있어 평범한 성당처럼 보이지만 역사적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다. 


마을의 방어요새이자, 헝가리왕의 대관식이 치러졌고, 베토벤의 장엄미사가 첫번째로 연주된 성당이라고 한다. 브라티슬라바에서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상징적인 곳으로 카톨릭 신자가 아니라도 주변의 다른 명소들과도 가까워 함께 둘러보기에도 좋은 곳이다.


 

 

 

 

 슬로바키아의 자연에는 바다와 빙하는 없지만 모든 것이 다 있다. 평야가 적고 산악지형이 대부분인 나라의 풍광은 쉴새 없이 변화하는 파노라마 형상이다. 총 9개의 국립공원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타트란스키 국립공원이다. 


동유럽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카르파디아 산맥은 알프스의 동쪽 줄기로 슬로바키아의 국토 2/3를 차지한다. 2000m가 넘는 고지로 이어지는 하이 타트라와 그보다 낮지만 더 다채로운 자연을 품고 있는 로우 타트라로 구성되어 다양한 액티비티의 무대로 되고 있는 산군들이 다이내믹하다.


 슬로바키아인들이 자랑하는 하이 타트라의 총면적은 342평방킬로미터인데 그중 260평방킬로미터가 슬로바키아에 속하고 나머지는 폴란드와 체코에 속한다. 스키, 트레킹 등 다양한 레포츠의 무대로 이용되고 있으며 타트라 주변으로는 맑은 호수들이 많아 휴양지로도 이름이 높다. 


이곳에서는 “공기가 맛있다”는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온다. 들이마신 숨을 다시 내쉬어야 하는 것이 안타까울 만큼 꼭꼭 눌러 담아오고 싶었던 공기, 그 깨끗한 자연이 눈을 감으면 다시 떠오르곤 한다. 


 우리들은 저녁 때를 맞추어 알프스 산속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유황온천에서 여행 중 쌓였던 피로를 풀고 한잔의 맥주와 산양고기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했다. 캐나다의 맥주는 알콜함유량이 5%인데, 이곳 슬로바키아 맥주는 12%의 알콜을 함유하고 있고 가격도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저렴해서 여행객들의 주머니를 편하게 했다.


 아침 7시가 되어서야 해가 올라오고 만년설을 이고 있는 육중한 알프스의 얼굴이 드러났다. 밝은 산의 고고한 자태가 우리들 앞에 나타난 상쾌한 아침이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하고 슬로바키아를 떠나올 때는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들의 환송을 받으며 인간의 능력으로는 창조해 낼 수 없는 만년설을 이고 있는 알프스의 그 장엄한 자태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20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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