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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기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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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256327
8045
2025-01-16
시조 배우기=K 문화사랑방

 

지난 연말 어디에선가 광고를 보았다. 내용은 K-문화사랑방 강의를 노스욕 시니어센터에서 한다는 거다. 강사는 내가 잘 알고 있는 권천학 시인이었다. 가뜩이나 글 하나 쓰려면 버벅대고 있는 내 자신에게 뭔가 자극이 필요한 때였다. 신문을 보면 다른 분들은 멋지고 공감 가는 글을 거침없이 쓰고 있는데, 나는 짧은 문장 하나 쓰려 해도 영 진도가 못 나가고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기를 여러번 그래서 글을 못 보낸 적도 많다.

권천학 시인께 카톡을 보내 안부를 묻고 혹시 내가 내일 강의에 참석해도 되느냐고 여쭤보았다. 반가워하시며 대환영이라고 다음날 만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고, 또 운동 삼아 매일 걷고 있으니 집에서 걸어 노스욕센터까지 갔다. 센터에 들어가자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K-문화사랑방은 잠시 후에 시작하니 기다리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센터 안에 사람들이 꽉 차있었고, 노스욕 시니어센터 개관 50주년 행사라 특별히 많은 프로그램들이 준비된 날이었다.

노스욕시니어센터는 예전에 변장엽, 변수자님 부부께 춤을 배울 때 다녀 영 낯설지는 않다. 댄스 클래스가 지하실에 있었고, 그때 많은 스탭을 배웠는데 한 10여 년 춤을 안 추다 보니 이젠 스텝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 몸이고 머리고 지속적으로 써야 유지가 되는 거다. 특히 노년의 나이에는.

잠시 후에 교실에 들어가라는 안내를 받고 들어가 맨 앞자리에 앉았는데 내가 제1착이었고, 잠시 후에 권 시인님과 몇몇 분들이 들어와 인사를 나누었다. 어느 부부는 저 멀리 트랜튼에서 이 강의를 듣기 위해 달려왔다는데, 내가 예전에 벨빌에 살았기에 낮설지가 않았고, 우리 누나도 그쪽에 살아 친분이 있는 관계라고 한다. 반가웠다. 10여명이 참석하였고, 권 시인님의 시조 강의가 시작되었다.

슬라이드로 시조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고, 클래스에 계신 분들이 직접 지은 시조를 가지고 공부를 했다. 아마추어들이 만든 시조도 감칠맛 나게 어떻게 그걸 그렇게 절묘하게 표현을 하는지 감탄이 나오기도 한다.

시조를 보면 한국말이 음율의 숫자와 비슷하게 가기에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시인님께 ‘저도 다음주까지 시조 한번 지어보겠습니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연말이라 바빴고, 조국에서 정신 사나운 일이 생기고 하니 영 마음의 갈피를 못 찾아 원래 없기도 했지만 시적인 감정이 일어나질 않았다. 시조는커녕 한 글자 쓰는 것도 너무 어려웠다.

차일피일 시간을 보내다 연초에 시인님의 카톡을 받았다. K-문화사랑방 줌 수업을 다음날 오전에 한다고 했다. 수업은 7명이 참석해서 새해 첫 수업이니 인사 나누고 수업은 연도표기 BC, AD 가 BCE, CE 로 표기된다는 설명 등이 있었고, 작품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숙제로 ‘꾸꾸꾸’로 삼행시를 지으라고 했다. 이제는 밀린 숙제가 시조에 삼행시까지 겹쳤구나. 이런 걸 엎친 데 덮쳤다고 하나?

나는 글 쓰는걸 배운 사람도 아니고,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 쓰려면 머리를 쥐어 짜야 한다. 예전 아폴로가 있을 때 서로의 감정이 풍부했었기에 아폴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썼었다. 그리고 손주들이 태어나 또 그들의 이야기도 꽤 썼다. 그런 사랑의 관계, 애증의 관계가 정서적으로 사람의 감정을 풍부하게 하는 것 같다.

2011년부터 부동산캐나다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인들이 돌아가시면 추모사 등을 쓴 글들이 약 300여 편 정도 된다. 어쨋든 종이와 연필을 가지고 한참을 다니다 어설프게 한 수 지어보았다. 앞으로는 더욱 열심히 정진할 것을 다짐하면서.

 

꾸꾸꾸란 삼행시를 숙제로 받았는데

꾸물꾸물 대지말고 열심히 머리굴려

꾸준히 하다보면 좋은결과 나오겠지

 

꾸역꾸역 밀어넣은 여러가지 생각들을

꾸준히 갈고닦아 좋은작품 만들며는

꾸중은 듣지 않고 굿보이라 하실려나?(2025. 1. 14)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akim
김재기
229240
8045
2025-01-09
2025년 화이팅!

 

 

지난 2일 한인회 신년하례회에 다녀왔다. 약 200명 정도의 동포들이 모여 덕담과 친교를 나누었다. 행사는 인사말부터 간결하게 단 두명이 했고, 공연 프로그램도 다른 때와는 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신선한 감이 느껴졌다. 한인회에서는 떡국을 점심으로 준비해 동포들을 대접했다.

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 비행기의 커다란 사고가 일어났다. 현존하는 운송수단 중 가장 안전하다는 항공기가 착륙 도중 새떼와 충돌했고, 이 때문에 엔진고장을 일으켰다고 한다. 비행기는 동체착륙을 했고, 바로 콘크리트 구조물에 충돌하며 폭발하고 만다. 181명중 179명이 희생되고 단 2명이 구조되었다.

만약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니였다면 비행기의 활주거리가 늘어나면서 속도가 천천히 줄어들고 결국은 섰을 텐데, 그러면 179명보다는 훨씬 적은 인명피해가 났을 텐데, 도데체 왜 비행기 속도가 가장 높을 수밖에 없는 곳에 그런 무시무시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웠을까?

그 구조물을 세울 때는 분명 그 구조물을 세워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구조물이 거기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기상천외한 대답을 만들어 내는 천재적인 대한민국 국회위원들은 무어라고 답변을 할까?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이 이 사태를 어떻게 이용해야 자기들에게 유리한지 머리를 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에게 나라는 내가 이용해야할 대상이고 국민이 아닌 백성은 필요할 때만 써 먹는 장기판의 졸이다.

대한민국이 탄핵의 광풍으로 온 나라가 뒤집어질 것 같다. 지금 북한의 꼴이 나라답지도 않고 싸울 여력이 없으니 망정이지, 어느 정도 여력이 있었던 40~50년 전만해도 쳐들어 내려왔을 확률이 많다. 역사에 보면 나라가 망할 때는 내부에서 다툼이 치열할 때 많은 나라들이 그랬다. 로마제국이 그랬고, 막강했던 고구려가 그랬고, 조선이 그랬다.

나라가 잘 되는 방향으로 서로 의견을 내고 토론을 하고 대립을 하더라도 해야 하는데, 대한민국은 상대가 무엇을 하겠다고 하면 무조건 반대다. 자기들이 얼마 전에 찬성했던 것도 상대가 찬성하면 별 희한한 이유를 들어 반대다. 그것이 정의로운가? 공의에 부합하는가? 하는 것은 별개다. 답은 정해져 있다. 무조건 “나는 너와 무조건 반대다.” 

경부고속도로를 만들겠다고 하자 ‘국토를 두 개로 나눈다’고 하면서 공사판에 들어누었고, 포항제철을 만들겠다고 하자, ‘비료나 사서 농사를 지어 국민들 배불리 먹이라’고 했다. 지금은 계엄령을 했으니 국민에게 총을 겨눴다고 한다. 계엄선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계엄해제 요구는 국회의 고유권한이다. 계엄 선포 후 국회가 계엄해제를 요구했을 때 대통령이 수용하여 계엄을 해제했다. 여기에 무슨 내란혐의가 있다는 말인가? 오천 만이나 되는 국민 중에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한명도 없는데 어떻게 국민에게 총을 겨눈 것인가.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국대통령으로 트럼프가 취임하면 또 세계는 난리를 칠 것이다. 대한민국 여야가 진심으로 국가를 위하여 머리를 맞대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이제 마주 앉는 것조차 어색하게 됐으니 참 큰일이다. 대한민국의 앞날은 어떻게 될것인가?

웬만하면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꼴을 보면 아무 말도 안하고 있을 수가 없다. 지금 세상은 잠깐 한눈 팔면 저만큼 뒤떨어지는 세상인데 매일 수십만의 국민들이 동원되어 싸움을 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정권을 잡은들 당사자 또한 그렇게 당할 것인데 그때는 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쨋거나 한인회의 2025년 첫 행사부터 깔끔하게 시작되었으니 경제도 좀 풀리고, 주위에 아프신 분들도 많은데 좀 더 건강해 지셨으면 좋겠고, 무안공항 사태도 잘 해결이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치판도 좀 정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토론토 동포사회와 대한민국, 모두 화이팅!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akim
김재기
209055
8045
2024-12-31
고독한 노인

 

성탄절 오후, 차 한대가 우리집으로 들어선다. 조카 마이클이 엄마(나의 여동생)와 자녀 둘을 데리고 왔다. 곧 뒤따라 딸네가 들어서고, 다른 사람들도 와서 모임이 시작되었다. 올해는 제법 눈도 많이 쌓였고 날씨도 쌀쌀해 성탄절 기분은 난다. 사람들이 다 모이자 조카 마이클의 기도로 식사가 시작되었다. 아내의 수고가 가득 들어간 음식을 먹으며 그동안 못 만났던 사촌들 끼리끼리 뭉쳐 앉는다. 좁은 집안이 19명의 사람들로 꽉 찼다.
노인의 고독사가 한국에서 큰 사회문제라고 한다. 젊었을 때는 성취하고자 하는 일이 있고, 해야 할 일도 많아 고독할 틈이 별로 없다. 이제 골목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다 노인들이다. 딱히 할 일도 없지, 불러주는 데도 없으니 지하철 공짜로 타며, 공원들도 공짜 입장이 가능하니 돌아다니고 있다.

 

저녁 때 집에 돌아와 차가운 밥 한 덩이를 먹고는 할 일이 없다. 이제 밥도 한번 하면 너댓끼 정도를 먹는다. 아내가 있었을 때는 밥도 금방 한 따뜻한 밥을 먹었었는데 혼자 살면서는 아무래도 혼자 먹다 보니 입맛도 없어 2인분을 해도 너댓끼를 먹게 된다. 반찬도 장에서 사온 반찬 몇 가지 놓고 먹게 되고, 아무래도 귀찮으니 빵이나 치킨 등 있는 것으로 대충 먹게 된다.
예전에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고깃집에서 소주 한잔하던 생각, 뒷뜰에서 식구들끼리 바베큐하던 생각, 아내와 함께 여행지에서 있었던 재미난 일 등 지난날 아무리 새겨봐야 현실에서 벗어나는 데는 아무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내를 보내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으니 아들도 딸도 들여다 보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은퇴자금이 좀 있었을 때는 아들도 딸도 가끔씩 들여다 보았고, 명절 때는 옷가지 등등을 사오기도 했었는데 그 후 돈이 떨어지자 점점 왕래가 줄어들더니 급기야 전화 통화마저 힘들어졌다.
오랜만에 전화를 한다고 해도, 하도 이야기한 지가 오래되어 잘 있었냐? 외에는 별로 할말이 없어 통화가 짧아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통화를 꺼리는 것 같았다. 가끔 전화하면 바쁘다며 다음에 전화주겠다고 하고는 감감무 소식이다. 나와의 통화를 꺼린다는 걸 알고부터는 내가 전화를 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마지막 전화통화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위의 이야기는 실제가 아니고 내가 그냥 한국에 있는 노인들의 실상을 상상해 본 거다.
성탄절날 우리집에 모인 19명의 연령대 분포는 다음과 같다. 3~7살까지 꼬마들 5명, 10대 청소년
2명, 30후반~50대 중반까지 중년 7명, 60대 중반 이상 노년 5명. 식사가 끝나고 끼리끼리 모여서 담소를 하는데 나는 낄 데가 없었다. 꼬마들은 지들끼리 뛰어노느라 바쁘고, 처조카네 가족은 자기들끼리 앉아 이야기하느라 바쁘고, 조카들인 중년층은 지들끼리도 오랜만에 만났으니 뭔 할말들이 많은지 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노년층은 여자분만 4명이 이야기를 하고 있어 집주인인 나는 그야말로 앉을 자리도 없었다. 과거에는 남자들도 몇 있었는데 몇 년 새 다 돌아가시고 나 혼자 남게 되었다. 내 집에서 집주인인 나는 여기저기 떠도는 떠돌이가 되었다.
멋쩍으니 괜히 카메라 들고 애기들 뛰어 노는 동영상이나 찍는 척, 나도 바쁜 척 하고 있었다.
말동무가 얼마나 필요한지 절실히 느낀 하루였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했나? 주위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나는 어울리지 못하고 그 속에서 홀로
고독함을 느낀다는 거지. 성탄절날 우리집에서 있던 디너 모임에 내가 느꼈던 것이 바로 군중속의 고독이었다. 그 군중들이 나의 혈육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독을 느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와 즐겁게 놀았고, 서로서로 선물을 하며 훈훈한 모습에 마음이 따듯한 하루였다. 딸이 사준 따뜻한 셔츠를 입어보곤 그저 흐뭇한 웃음을 지어보았다. 고독 따위는 가라, 나에게도 셔츠를 사주는 딸이 있다.
그래 얘들아, 군중 속에서 외로워도 좋으니 내년에도 크리스마스는 우리집에서 하자꾸나. 열심히
잘 살아줘서 고맙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jakim
김재기
180892
8045
2024-12-19
아내의 웃음

 


아내가 나를 보며 웃고 있다. 며칠 전 새벽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 걸으려고 집을 나섰다. 칼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혹독한 추위가 내려온 거다. 얼굴은 암만 추워도 다른 부위에 비해 추위에 강하다. 문제는 목덜미로 들어오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을 맞으니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 도로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주방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있는데 그때 안방에서 내려온 아내의 웃음을 본 거다.
모든 한국인들이 그렇지만 이민 초기에는 나도 한식 외에는 거의 먹지 못 했었다. 직장 다닐 때는 어머니께서 샌드위치를 양상추를 넣고 맛있게 만들어 주셨어도 밀가루 냄새가 싫어 몇 입 먹질 못 했다. 일 끝나고 와서야 밥을 국에 말아 한 그릇 먹어야 직성이 풀렸다. 혹시 어디 양식당에 가서 스테이크라도 먹으면 집에 와서 꼭 라면을 끓여서 먹어야 직성이 풀렸다.

 

음식은 문화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보다 문화가 발달된 나라는 세상에 별로 없을 거다. 그 좁은 나라에 동네마다 자랑하는 음식이 다르다. 해운대갈비, 춘천닭갈비, 청진동해장국, 안동칼국수, 전주비빔밥, 제주도 흑돼지, 부산돼지국밥 등등. 동네마다 문화가 다르다. 해운대 갈비가 유명하다면 ‘해운대갈비집’ 간판 옆에, ‘진짜해운대갈비집’, 길 건너에 ‘원조해운대갈비집’ 등등 기상천외한 간판들이 줄지어 있다.
TV를 틀면 온통 먹는 방송이거나 음식 만드는 방송이다. 한국인들이 음식 먹는 방송을 보면 그 음식을 정말로 먹고 싶어진다. 한 여름날에 뜨거운 삼계탕을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 모습에 침이 입 안에서 호수를 이룬다. 해변가 마을에서 생선구어 먹는 방송을 보면 당장에 한국도 가고 싶다.
지난번 남대문시장에서 먹은 갈치조림과 생선구이 싸고 맛있었지.

 

음식을 만드는 방송을 한 번 보자. 음식 만드는 요리사가 있고, 여러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는 패널들이 있다. 깔끔하게 셋업된 부엌에 여러 재료들이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방송을 이어나가며 음식을 만든다. 음식이 다 되면 패널들에게 닭 모이 주듯 조금씩 먹여준다. 아, 얼마나 맛이 있겠는가. 나를 패널로 좀 쓰면 안되나? 맛있는 것도 먹고, 돈도 좀 받으면 인생 말년에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텐데. 
무엇보다도 나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줄 수가 있다.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고 “잭키,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너의 모습을 보면 난 정말 행복하단다”고 이야기 했던 필리핀 여인 지니의 말이 지금도 귓속에 맴돈다. 음식을 했는데 너무 맛있게 먹어 주니 정말 좋단다.

 

캐나다의 TV는 스포츠나 다큐멘터리, 연속극 등 외에 음식방송, 소위 ‘먹방’이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캐나다의 음식은 토론토, 밴쿠버, 에드먼튼, 핵리팩스 등 어디를 가나 비슷비슷하다. 닭고기, 스테이크, 랍스터, 햄버거 등등 무엇을 먹었네, 어디서 먹었네 하는 차이는 있지만 ‘어디 가서 특별한 무엇을 먹었다’고 하는 일은 없다. 
캐나다인들에게 먹는 것은 단지 살기 위해 먹는 거다,
토론토에서 한국을 방문하러 가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이번에 가서 맛있는 것 실컷 먹고 와야지.” 굶주리던 북한사람들이 남한에 와서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먹는 것이 남아 돌아가는 캐나다에서 무언가 실컷 먹으러 한국에 간다? 좀 이해가 쉽지는 않지만 저급문화에서 고급문화를 탐방한다면 이해가 될 거다.

 

한국인들은 아침을 먹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점심 때는 무엇을 먹을까’ 하고 생각한다. 점심을 먹으면서는 ‘오늘 저녁은 어디 가서 무엇을 먹을까’ 관심을 둔다. 마찬가지로, 저녁을 먹으면서는 내일은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나는지 논의를 한다. 한국인들은 먹기 위해 산다.
나도 캐나다에서 살기 위해 먹고 살면서 식성이 많이 변했다. 이제는 밥을 하루에 한 술도 안 뜰 때가 많고, 김치도 며칠 안 먹어도 견딜 만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 한 잔에 집에 있는 여러 가지 넣고 샌드위치 만들어 먹거나, 계란 후라이에 스프나 한 캔 따서 데워 먹거나, 코스코에서 사온 치킨을 먹고 만다. 저녁도 대충대충 때우는 날이 많다. 내 식성이 변하니 아내가 편하다. 음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많고 대충 줘도 탱큐하고 먹는다. 내가 대충 만들어 먹는 모습을 보면 몸이 편하니 좋겠지.
아내의 웃음을 보기 위해 내 식성이 바뀌었나 보다. 202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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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139624
8045
2024-12-04
노란 단풍나무

 


12월이다. 밖에 나가보니 빨간 단풍들은 다 떨어진 지 오래고 이제 노란 단풍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주말에 폭설이 내린다고 했는데 다행히 토론토에는 눈이 피해갔고, 북쪽에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한다. 
토론토에 첫 발을 디뎠을 때의 그 엄청난 눈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눈은 가장 멋있을 때가 펑펑 내릴 때이고, 아름다울 때가 산야에 수북하게 쌓여 평온함을 줄 때이다.
거기에 동물이나 사람들의 발자국 몇 개가 찍혔을 때는 그야말로 우리의 존재감도 나타나고, 평화를 읊을 만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도 많은 발자국들이 엉켜지며 거기에 흙탕물이 튄 데다 쓰레기마저 섞이면 아름다움과 평화는 지저분함과 무질서로 변한다. 눈이 녹기 시작하면 흰색은 줄어들고 지저분한 색들이 더욱 짙어간다. 아름다운 눈이 무질서하게 바뀌어가는 모습은 우리들의 삶이고 투쟁의 역사이다. 깨끗한 상태로만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올해는 더욱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정초부터 알던 분들이 한 분씩 한 분씩 돌아가셨고, 여름에도 안 좋은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왔다. 가을이 되니 더욱 많은 분들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의 부고 소식도 들었지만, 나보다 약간 위 연배거나 같은 나이의 분들도 꽤 많이 타계하셨다. 
같이 단체 활동을 하셨던 분들도, 동포사회에 많이 알려진 분들도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고 추억 속의 인물들이 되었다.

 

골프시즌이 끝나갈 때쯤, 아는 선배와 골프를 치고 있었다. 요 몇 달 사이에 자기가 아는 후배 3명이 유명을 달리 했단다. 그런데 그 3명을 나도 나름 잘 아는 분들이었다. 
“야, 이거 뭐, 올해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는 거야?”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나를 포함한 주위의 사람들 모두가 점점 ‘죽음의 연령대’에 진입을 한 거다.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오래 전에 이민 와서 과일가게에, 컨비니언스에, 세탁소 등을 운영하며 열심히 열심히 살아왔다. 열심히 살다가 집도 장만했고 이제 골프나 치며 유유자적한 은퇴생활이나 하려고 했는데 그만 몹쓸 병마가 덮쳐 일찍 우리 곁을 떠났다.

 

며칠 전 그날따라 열심히 일하다 집에 돌아오니 바깥에 불이 환하다. 둘이 사니 바깥에 불을 켜 놓을 이유가 없는데, 어쩐 일일까? 
주차장에는 아내 차 밖에 없는데, 누가 왔나? 하며 들어가는데 문을 열고 나오는 건 작은 손녀 라이언이었다. 
아이고 세상에 이게 왠 떡이냐, 뜻밖에 손녀를 다 보다니.
큰 손녀가 댄스 클라스에 간 사이에 작은 손녀를 할머니에게 잠깐 동안 맡겨 놓은 거다. 잠시 후에 딸이 큰손녀와 같이 와 작은 손녀를 데리고 갔다. 
가기 전에 내 뺨에 뽀뽀 한번씩 해 주고. 
아이들이 돌아가고 나서도 힘든 하루가 다 녹는 것 같았다. 찰나 동안 손녀들을 봤고 그들이 떠났는데도 집안에 활기가 도는 것 같다.
그래 맞다. 아이들이 활기차게 커 나가는 것은 눈이 펑펑 내리는 아름다운 모습과 같다. 아이들이
자라나며 하나, 둘 알아가고 지식을 채워 가는 것은, 산야에 깔린 눈 위에 하나 둘씩 발자국이 찍혀가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발자국이 점점 많아지며, 흙탕물마저 섞이는 것은 우리가 이 험난한
삶에서 열심히 투쟁하는 거다. 하얀 눈이 녹으며 지저분한 것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우리에게 과도한 욕심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다 낙엽처럼 지는 게 우리네 인생인데…

 

눈처럼 아름답게 왔다가 지저분한 상태로 소멸하는 우리네 인생.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분들 중 이 순간까지 돌아가신 분들은 낙엽으로 떨어진 빨간 단풍이라면, 이제 남아 있는 우리는 노란단풍들이다. 
불리우는 그날까지 남은 인생 열심히 살다가 후회없이 세상을 떠나야 할 텐데.
노란 단풍나무야, 아직 우리를 놓지 말아다오. 2024.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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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121299
8045
2024-11-19
현충일 그리고 공산당

 

지난 한 주는 여기저기 행사 다니느라 바빴다. 캐나다의 가을을 만끽하기에 더 없이 좋은 날씨였고 낙엽이 완전히 떨어진 것이 아니고 일부는 나무에, 상당수는 길에 떨어져 세차게 부는 바람에, 달리는 차에 휩쓸려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가을의 풍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역시 캐나다는 가을이 너무 아름답다.  

 

지난 11월 9일, 토요일 오전 무궁화사랑모임(회장 이정훈)이 제임스공원에서 주최한 현충일(Remembrance day)행사에 다녀왔다. 
6.25 한국전쟁때 희생되신 캐나다군 516명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하여 무궁화나무에 516개의 예쁜 리본을 달며 그분들의 희생을 추억하는 자리였다. 햇볕은 쨍쨍나고 기온도 좋아 행사 치르기에 더 없이 좋았다. 많은 낙엽이 깔려 있어 아름다운 캐나다 가을 정취를 느끼기에도 더 없이 좋은 날이었다. 앞으로 6.25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은 없어야 한다.
그 행사가 끝나고 오후에는 본한인교회로 달려갔는데 거기서는 북한인권협의회(회장 이경복)가 주최하는 인다만(인차 다시 만나요) 행사에 참여했다. 인차는 북한 말로 곧이라는 뜻인데, 북한의 감옥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는 그만 그 약속이 못 이루어지는 슬픈 탈북민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11일, 월요일 OK노인대학(학장 강신봉)으로 달려가 현충일기념식과 박정희대통령 탄신 107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왔다. 
16일, 토요일 토론토한인회 대강당에서 열린 민주평통 토론토협의회(회장 유건인)가 주최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자유평화통일 대토론회’에 참석했다. 
네 행사 모두 동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YouTube 에서 ‘토론토김재기’를 치면 다 나온다. 
현충일은 1918년 11월 11일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기념으로 전쟁에서 희생된 군인들을 기억하며 전쟁의 참혹상을 알리자는 데 있다. 1차 세계대전은 공산국과의 싸움은 아니였는데, 이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의 전쟁은 거의 자유민주국가와 공산국가의 대결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처럼. 그러므로 위의 모든 행사가 공산국가와 관련이 있는 행사다. 특히나 미치광이 공산국가 북한을 머리에 이고 있는 우리 한국에게는 모든 행사가 공산당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며칠 전 뜻밖의 글을 보았다. H신문의 Twitter 에 선가? 언뜻 보고 깜짝 놀랐다. 내용인즉 “왜 공산당을 죽여야 한단 말이냐. 4.3사태 때 공산당을 왜 죽였는가? 일본을 보라, 공산당 가만 나둬도 국회의석 단 몇개 얻었을 뿐 그 나라가 망했는가?” 
이거 웬 정신 나간 소리인가. 4.3사태가 끝난지 1년도 안 되어 김일성이의 불법남침으로 대한민국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리며 그야말로 퐁전등화 나라가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행히 우방국들의 신속한 도움으로 전세를 뒤집어 기사회생하기는 했지만 무려 300만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천만명의 이산가족이 생겨났는데, 6.25전쟁의 시작은 공산당의 남침으로 시작된 것이다. 일본이 공산당에게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우리 한국도 공산당을 놔둬야 한다고? 그럼 지금 대한민국이 이고 있는 핵폭탄은 공산당이 아닌 누가 가지고 있단 말인가. 북한 2500만을 굶주리게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한반도 반절을 망하게한 김정은이 일파는 공산당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 사람은 북한이 주장하는 북침설을 신봉하는가?
공산당을 찬양하거나 공산당이 좋은 사람은 공산진영에 가서 살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절대로 그곳에 가서 살 생각이 없다는 거다. 일본의 조총련의 경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을 뽑아 북한에 보내면서도 간부 지들은 북한에 안 간다고 한다. 마치 반미주의자가 자기 자식은 미국으로 유학보내고, 이민 보내는 것과 거의 마찬가지다.
그들도 안다, 공산주의는 사람을 굶어죽인다는 것을. 1930~40년대에 소련의 공산당은 수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을 포함하여 엄청난 수의 자기 국민을 굶어 죽였으며, 1950~60년대에 중공은 대약진운동 때 4천만 명 정도를 굶겨죽였고, 북한은 1990년대에 300만 명 정도가 굶어 죽였다. 
공산당을 안 죽이면 내 국민이 죽는다. 공산당은 국민들의 목숨을 담보 삼아 싸운다. 그들 틈에 끼어 국민들은 죽던말던 비열하게 그 안에서 싸우기 때문에 민간인의 희생이 늘어난다. 그걸 싸우는 상대편에 뒤집어 씌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무찌르가 공산당, 멸공만이 살길이다. 
20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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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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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3
내가 조심했던 3가지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살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보았고, 많은 것을 접했다. 과거에는 무슨 예시를 들면 그것이 내가 행하는 쪽의 나이였는데, 어느 날 보니 이제는 당하는 쪽의 나이가 되었다.
과거에는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살아라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제는 내가 내 자식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줘야 되는 나이가 되었다.
세상에는 해야 할 일도 많고, 하지 말아야 할 일도 많다. 거창한 일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쉽게 빠질 수 있는 그러나 그것이 한 개인이나 그 가족에게 파멸을 줄 수 있어 내가 살면서 특별히 조심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내 자녀들에게 몇 번이고 강조한 이야기들이다.

 

첫째는 마약 즉 Drug 이다. 어릴 때 연속극에서도 많이 보아온 장면이 일제시대 때 잘 사는 집안의 아들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돌아왔을 때는 아편에 중독되어 폐인이 되어가는 것을 보았다. 
공부는 많이 했으나, 일제가 다스리는 나라의 식민지 청년이니 출세하기도 힘들고 해서 그 도피 행각으로 마약을 한 것 같은데 어쨌거나 그때부터 나는 마약을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중국역사에서 아편전쟁이 있다. 어릴 때 읽은 어떤 소설에서 그 당시 중국의 아편가게를 묘사한 부분이 있었는데, 멀쩡한 사람들이 와서 돈 내고 아편을 하고, 한 방에서 추욱 늘어져 잔다는 것이었다. 하나같이 눈은 퀭하고 침은 질질 흘리고… 그걸 보면서 정말로 마약은 개인의 파멸뿐 아니라 나라도 파멸로 이끄는 아주 무서운 병기임을 깨달았다. 지금 한국에서도 마약이 무서운 속도로 퍼진다는데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다행히 내 주위에서 마약은 보이지 않았다.

 

둘째는 도박 즉 Gambling 이다. 나도 신혼 초까지는 도박을 좋아했었는데 어느 순간 도박을 딱 끊었고, 그 후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주위에 도박으로 패가 망신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도박으로 모든 것을 잃고 목숨을 버린 사람도 많다. 참으로 어렵고 힘들게 살 때는 도박으로 돈을 좀 따면 형편이 필 것 같으나, 따기도 힘들뿐더러 한번 딴다고 해서 구조적인 재정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한번 따기도 힘든데 두 번, 세 번 연속으로 딴다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되는 일이다.
요즈음 Youtube를 보면 일명 타짜라는 사람들의 기술을 보여주는 것들이 있다. 뻔히 눈 뜨고 있으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들과 겨뤄봤자 절대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기계와 하는 것도 마찬가지. 기계는 내가 넣은 돈의 반 정도만 상금으로 내어주니 일시적으로 딸 수는 있어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 돈이 그리로 흘러가는 것은 정한 이치이다. 카지노의 운영자금이며 그 많은 직원들의 인건비며 정부의 수익금은 어디서 나오겠는가. 적은 돈으로 복권을 사는 건 애교로 봐줄 수가 있지만 적극적인 노름은 개인과 사회를 피폐하게 만들뿐이다. 오죽하면 난봉꾼은 사위로 맞이할 수 있지만, 노름꾼은 사위로 맞이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있겠는가. 심심풀이 오락으로도 카지노 출입은 하지 않았다.

 

셋째는 음주운전 즉 Drinking driving 이다. 내가 리치몬힐에서 가게할 때 나보다 약간 위 연배의 남자 손님이 하나 있었다. 퇴근 때가 되면 가게에 들려 필요한 식품을 매일 사갔다. 항상 혼자서 걸어서 왔고 걸어서 갔다. 그러기를 한 2년? 그가 어느 날 차를 타고 가게를 들렀다. 반갑게 맞이하며 “너 운전하는 것 처음 본다” 하고 말했더니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술을 좋아했었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몇 년 후에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다 음주운전에 걸렸단다. 면허정지를 2년 먹었고 자동차 메커닉인데 직장이 뉴마켓이고 운전을 못하니 얼마동안 출근을 못했다고 한다. 수입이 끊기고 나니 부인이 집을 나가면서 이혼을 했고, 자기의 인생은 거기서 종쳤다고 한다. 그리고 술을 끊었고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고, 어제 정지가 풀려 처음으로 운전을 한다면서 아주 속상한 표정이었다. “I ruined my whole life.” 그가 했던 말이다. 나도 가끔은 모임에서 약간의 술을 마시고 운전할 때가 있다. 극도로 조심해서 최소한만 마시려고 노력했다.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약간의 일시적인 쾌락을 위해서 내 삶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가 있다. 잠시 동안만 참으면 될 일인데 그걸 못 참고 일을 저질러 인생을 종치지 안 된다고 생각을 했고 그렇게 행동을 해왔다.
올해에도 그러고 앞으로도 별 일 없이 한해, 한 해를 보내고 싶다. 20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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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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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6
아마추어와 프로- 월드시리즈 5차전을 보고


정말 어처구니없이 끝났다. 지난주 월드시리즈 5차전은 마치 프로와 아마추어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LA 다저스와 뉴욕 양키즈, 세기의 스타 쇼헤이 오타니와 아론 져지, LA 다저스가 아무리 강호라고 해도 미국 프로야구의 대명사는 뉴욕 양키즈다. 그런데 그들은 아마추어도 잘 하지 않는 실수로 다 이긴 게임을 말아먹고 말았다.
필자도 야구를 무척 좋아했었고, 80년대 동포사회에는 OB 소프트볼 리그가 있었다. 운동은 하고 싶은데 받아주는 팀이 없어 몇 명이 팀을 만들어 출전한 적도 있었다. 팀의 유니폼을 양키즈와 같이 줄무늬 유니폼으로 맞추었다. 그리고 10여 년 전, 아는 후배가 야구협회장을 할 때 자문위원을 맡아 달라고 해서 맡은 적이 있었다. ‘김재기 부동산’ 어린이야구단을 창단해 한 1년 정도 하다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지속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다 야구에 소홀하게 됐고, 이제 다시 야구에 취미를 가져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올해는 뭐니뭐니해도 오타니 쇼헤이의 50-50달성으로 야구계가 바짝 달아올랐고, 아론
져지 또한 아메리칸리그의 홈런왕으로, 이들의 대결에서 여러 가지 재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두 번째 게임부터 TV 앞에 앉았다. 2차전 게임은 LA에서 열린 일방적인 LA 의 승리였다. 업치락뒤치락 하며, 베이스를 훔치고 상대편의 빈틈을 파고드는 뭐 이런 재미 요소는 모두 삭제된 그래서 괜히 잠도 못 자고 이걸 보았나 하는 생각이었다. 
뉴욕에서 열린 세 번째 게임도 LA 의 일방적인 우세로 끝나 뉴욕으로써는 이제 세 게임을 연속으로 졌으니 한 게임만 더 지면 그냥 떨어지는 판국이었다. 4차전 게임은 LA 의 투수진이 부족해 포기한 경기로 뉴욕이 가져왔다는 데 나는 게임 도중 잠에 골아 떨어졌다.

 

그래도 뉴욕이 1승을 챙겼으니 다섯 번째 게임을 보기로 하고 TV 앞에 앉았다.
시작하자마자 홈런 세 방으로 5대 0으로 달아나는 뉴욕,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그래도 양키즈인데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거다’라고 생각했다. 야구는 확률게임이다. 월드시리즈 역사상 첫 3게임을 연속으로 진 팀이 2게임을 내리 이겨서 6번째 게임까지 간 적이 없단다. 그러면 뉴욕이 질 확률이 100%다. 
그런데 양키즈의 투수 게릿 콜은 자기팀 타자들이 4점 이상 득점을 해주면 이기는 확률이 98% 라고 한다. 지금 100% 의 확률과 98%의 확률이 대척점에 서 있고 과연 어느 것이 맞을까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러니까 다저스가 이길 확률이 100%, 뉴욕이 이길 확률이 98%. 나는 양키즈를 응원했다. Game 6, 7을 보기 위해서.
4회 초 아론 져지가 거의 홈런이 될 뻔한, 최소 2루타는 확실한 타구를 높이 점프해 펜스에 부딪히면서 받아내는 멋진 플레이로 온 야구장이 난리가 났다. 우리 인간은 바로 한치 앞도 못보니까.
이제 어처구니 없는 5회로 가보자.
5회 초 평범한 플라이볼을 져지가 놓쳐버린 것이다. 이런 실수는 아마추어도 잘 하지 않는다. 바로 전 회의 그 멋진 점프를 지워버리는 큰 실수였고, 다음 장면은 타자가 친 땅볼을 잡은 유격수가 3루 송구를 땅바닥으로 던져 무사 만루가 되었다. 그리고 양키즈 투수의 멋진 투구로 투 스트라이크 아웃이 됐다.
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2사 만루에서 타자가 친 땅볼을 1루수가 잡았는데 투수가 베이스커버를 하지 않아 점수를 주었고, 바로 2루타 두 방을 맞아 순식간에 동점을 내줬다. 단 한 회에 실수를 3개나 해버린 것이다. 한 게임에 에러가 3개면 많은 것인데 한 회에 3개나 해 버렸으니, 어렵게 얻은 5점을 바로 헌납했다.

 

뒤에 나온 양키즈 투수는 타자를 상대하지 않고 주자 신경을 쓰다 몇 개의 볼넷으로 만루를 만들기도 했고, 주자에게 견제구는 두 개 밖에 못 던지는데 3개를 던져 1루 주자에게 2루를 허용하는 등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계속 저질렀다. 아마추어인 내가 봤을 때 쓸데 없는 실수 다섯 개로 다 이겨놓은 게임을 말아먹었다. 100%의 확률이 98%의 확률을 눌렀다. 양키즈는 아마추어처럼 행동했고, 다저스는 진정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준 게임이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잘 나가다가 사소한 실수 하나로 힘들게 이룬 것을 날리기도 한다. 조금만 정신을 바짝 차렸으면 손쉽게 지나갈 일을 어렵게 만들고 꼬이기도 한다. 조그만 더 전력 질주 했더라면, 눈을 크게 뜨고 집중했더라면 LA 에서의 6번째 게임을 재미있게 볼 수 있었을 텐데…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더 눈을 크게 뜨고, 더 열심히 마무리를 해야겠다. 
그나저나 이제는 뭘로 소일할거나. 서서히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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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김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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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3
빨간나무와 같이 익어가기

 


방금 밖을 걷고 들어왔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밖으로 나선다. 오전에 7,500보를 걷고 하루를 시작하는데, 생활하면서 걷는 것과 합해 저녁 때가 되면 보통 1만1,000 보 정도를 걷게 된다. 걷고 나면 무릎이 좀 불편할 때도 있는데, 그래도 꾸준히 걷고 있다. 골프를 치러 가도 그린피에 카트가 포함이 되어 있지 않으면 항상 걷는다. 18홀을 끝내고 나면 평균 1만3,000~1만5,000보 정도를 걷게 된다.
오늘은 아침에 걸으며 공원 중간에서 조그마한 사슴 한 마리를 만났다. 아스팔트 길 위에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 처음 보는 사람인데, 선하게 생겼구만” 하는 모습이다.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았고 이 공원을 수백 번 걸었는데 사슴을 본 건 처음이다. 너구리도 코요테도 간혹 봐 왔지만 사슴은 처음이라 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는데 오늘따라 카메라 앱을 못 찾고 한참을 버벅거리다 간신히 찾았을 때에는 아뿔싸 사슴이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 아스팔트 길 위에 있는 모습을 찍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 좋은 장면은 놓쳤다.

 

몇 년 전에 당뇨가 있다고 했고, 약을 먹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운동 삼아 매일 걷기 시작했는데 당 수치가 상당히 좋아졌다. 그러다 하루, 이틀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자주 빼먹게 되었고 그러기를 석 달. 그러다 보니 당 수치가 상당히 높아졌다. 닥터가 “이제 어떻게 할거냐?”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보란다. 나의 Samsung Health 를 보여주며 “사실 걷는 것을 몇 개월 간 소홀히 해서 그렇다. 다시 열심히 걷겠다”고 약속했다.
당뇨가 있으면 먹는 음식을 조심해야 하는데, 나나 아내나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맛있는 흰쌀밥, 빵과 과자 등을 좋아하니 먹는 것으로 당을 치료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걷기를 열심히 하는데 문제는 열심히 걷다 보니 얼굴이 마르고 주름이 생겨 더 늙어 보인다는 거다. 그래서 아내는 내가 너무 많이 걷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늙은 남편과 살고 싶은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걸으며 가장 아름다운 때가 지금 이때인데 가을이 익어가는 것을 하루하루 느낄 수가 있다. 초록의 나무들이 노랗고 빨갛게 익어가는 모습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좀 더 있으면 공원 초입의 첫 번째 고개를 올랐을 때 눈앞에 펼쳐진 빨간나무의 멋진 자태를 볼 수 있겠지. 작년의 그 모습을 다시 보여줄 수 있을까? 이런 걸 지켜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다.
3개월 거의 매일 열심히 걷다 피검사를 하고 닥터에게 갔다. 당 수치가 많이 좋아졌단다. 무엇을 어떻게 했냐고 물어본다. 열심히 걸었다고 했더니 엄지척 보여주고 계속 그렇게 하란다. 그리고 또 3개월을 또 열심히 걷고 피 검사를 한 후 닥터에게 갔더니 별 진전이 없다고 한다. 걷기만으로는 효과가 거기까지니 음식도 조심하라고 한다. 그런데 이 음식은 나만이 아니고 아내가 협조해야 하는데, 어쨌든 알겠다고만 하고 나왔다. 어떤 걸 먹든 바로 죽기야 하겠나.

 

살다 보니 내 나이도 이제 6학년 종점에 도착을 했고,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어떻게 살아왔냐고 하면 ‘열심히 살려고 노력은 했지만 별 성과는 못 보았다’는 생각이다. 한때는 몸이 아파 한 1년간 투병생활도 했고, 스키 타다 팔이 부러져 고생도 좀 했지만 그 외에는 건강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거울을 보면 웬 추레한 노인이 측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고, 동영상을 찍어보면 내가 찍힌 부분을 통편집하게 된다.

 

재산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절반을 잃은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라고 한다. 맞다. 아무리 권력과 돈이 많아도 아프면 아무 소용이 없고 만사가 다 귀찮아 지는 것이다. 아직도 내 발로 걸어 다닐 수 있고, 골프채 휘두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앞으로도 열심히 걸으며 공원의 빨간 나무처럼 아름답게 오랫동안 익어가고 싶다. 202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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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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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7
손주들과 아폴로



어제 저녁 집에 잘 도착했다. 쓰레기통은 고맙게도 누가 집 안쪽으로 조금 밀어놨고 문을 열면서 “아폴로, 아폴로” 불러도 아무 대답이 없다. 집은 내가 지난주 놓고 간 그대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짧은 여행이라도 이제는 서서히 기력이 달리는구나.
지난 9월 29일은 손녀딸의 돌이었다. 며느리가 몇 장의 돌잔치 사진을 보내주었다. 잔치라기 보다는 자기들끼리 생일을 축하해주는 그런 자리였다. 아내의 골프 스케줄이 정리 되고 지난주 일요일 새벽에 집을 떠나 공항에 갔는데 웬일로 Air Canada 정시에 출발, 순조롭게 에드먼튼에 도착했다.
아들이 마중 나와 H-Mart에 들러 점심을 먹고, 장을 보고 집에 들어갔다.

 

차고에서 내가 제일 먼저 나왔는데 아폴로가 집 밖에서 햇볕을 쬐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어, 뭐지? 어디서 본 사람인데’ 하더니 잠시 후에 알아보고 껑충껑충 뛰고 난리가 났다. 한번 번쩍 뛰었다가 저쪽으로 뛰어가고 돌아와서는 또 번쩍 뛰었다가 이쪽으로 뛰어가길 두어 번 그때 아내가 차고에서 나오는걸 발견하고는 또 한바탕 난리를 치뤘다. 누가 나를 그리고 우리를 그렇게 반기겠는가?
그리고 우리보다 앞장을 서서 집안으로 안내했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며느리와 손자, 손녀가 반겼다. 지난 7월보다 꽤 많이 컸구나. 너희들은 지금이 제일 쑥쑥 자랄 때지. 우리는 천천히 늙었으면 좋겠다. 짐을 풀고 올라가니 손자가 가만히 나에게 오더니 내 다리를 잡고 포옹을 한다. 지난 여름 우리집에 왔을 때는 나를 보고 가까이 오지 않더니 이제 ‘우리 할아버지인가?’ 라고 인식 되나 보다. 그래 이제 세상은 우리를 거쳐 너희 부모에게로 넘어갔고 너희는 이제부터 너희 부모에게서 세상을 제대로 받을 궁리를 해야 한다. 앞으로의 세상은 더욱 더 어찌될지 모르니 열심히 공부하거라.

 

손녀딸은 나를 보고 활짝 웃고 전혀 낮을 가리지 않는다. 이제 돌이 바로 지났으니 무엇인가를 잡고 일어나 다니기는 하는데, 적극적으로 일어나려고 하지는 않는다. 아기를 안고 거실에 있는 거울을 보니 손녀는 뽀얀 피부에 눈도 큼직한 것이 참으로 보기가 좋았는데 내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손주가 넷인 할아버지’ 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손주가 넷… 철없던 재기가 손주가 넷이라면 우리 어머니가 웃으실 텐데…
아내의 고교동창 미현씨네가 초대를 해줘 그 집에서 술 한잔을 하며 옛이야기들을 했다. 우리는 1981년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에드먼튼으로 왔었다. 친구네 집에서 한 이틀 있었는데, 우리를 위해 손님도 초대해 잔치도 베풀어주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리고 차를 빌려 캘거리와 록키마운틴을 관광한 후 에드먼튼으로 돌아와 토론토로 복귀했다.

 

미현씨네가 우리 리치몬힐 살 때 온 가족이 우리집에 한 일주일 왔다가 돌아간 적 있었고, 우리가 에드먼튼에 갈 때면 공항픽업도 해주고, 작년에는 같이 자스퍼도 놀러 갔다 오곤 했다. 아내의 50년지기 친구 덕에 좋은 추억 많이 만들었다.
나는 매일 동네를 걷는데 다니는 차도 별로 없고 아주 한적한 시골 같은 느낌이다. 단풍은 토론토보다 더 들었고, 떨어진 낙엽도 상당하다. 매우 평화로운 모습인데 그와는 달리 에드먼튼은
범죄율이 상당히 높은 도시다. 게다가 홈리스 셀터가 아들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생겨 아들이 걱정을 많이 한다. 사람이 사는 곳에 다 범죄가 있고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니 어찌하겠나, 다만 더욱 조심을 할 뿐이지.

 

 

밖을 돌아다니다 집 앞에 내려 창문을 보니 아폴로가 창문에서 햇볕을 쬐며 자고 있었다. 장난기가 발동해 창문을 톡톡 두드리니, 그래도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그래서 두드리는 강도를 좀 높이고 “아폴로, 아폴로” 불러도 대답이 없다. 지난해에 왔을 때는 벌떡 일어나 우렁찬 목소리로 컹컹 짖었었는데… 한참을 두드리니 부시시 일어나서는 두리번두리번거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제서야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그래 이제 아폴로도 늙은 거다. 2012년 10월 8일 생이니 12살, 인간 나이로는 12x7=84살이니 이제 잘 듣지를 못하는 거겠지. 뿐만 아니라 걷는 것도 귀찮아서 안 걸으려고 한다. 삶의 의욕이 많이 빠졌다. 내 손주들은 활기차게 커가고 있으니 너와 나는 곱게 서서히 늙어가자꾸나. 우리가 가방 싸 들고 나가니 씨무룩하게 쳐다봐 마음이 짠 했는데 ‘그래. 다음에 볼 때까지 우리 잘 지내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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