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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억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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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성경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진지한 사색과 탐구를 통해 완성한 대하 성경해설서 <성경에 나타난 전쟁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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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김대억
120646
9195
2024-10-25
흔들바위(1)

 

설악산을 오르다 보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바위 하나가 있는데, 이름하여 흔들바위라 한다. 밴 트럭 정도 크기의 이 바위는 이름 그대로 누가 밀어도 흔들거린다. 여럿이 밀어붙이면 밑의 절벽으로 굴러 떨어질 것처럼 심하게 기울어졌다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다.

 

등산객들이나 관광객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 바위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 번씩 밀어보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원래 어떤 폭풍우가 몰아치고 심한 눈보라가 몰려오더라도 요동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는 것이 바위인데, 이 바위는 누가 밀어도 흔들거리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마치 개가 사람을 물면 있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흥미진진한 뉴스거리가 되듯이 말이다.

 

떠나온 지 반세기도 더 되었고,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 있는 조국의 한 산 중턱에 놓여있는 바위 돌 하나가 불현듯 생각난 것은 며칠 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옛날 사진들을 정리하던 중 그 바위 앞에서 찍은 사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때 대학 3학년이던 나는 친구 두 명과 함께 동해안 지역을 무전여행 하고 있었다.

 

설악산 밑 낡은 민가에 방을 정한 다음날 산을 오르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던 흔들바위가 있는 근처에 도달하자마자 난 그 바위로 달려가 밀어 보았다. 놀랍게도 바위는 밑으로 굴러 떨어질 듯이 쉽게 움직였다. 하지만 밀던 팔에서 힘을 빼는 순간 그 큰 바위는 곧 제자리로 되돌아 왔다. 밀면 절벽 쪽으로 기울고, 손을 놓으면 다시 원 위치로 돌아오는 신기한 바위를 여러 번 밀어붙이면서 흔들바위에 관해 들은 말이 사실인 것을 확인한 후 그 앞에서, 옆에서, 또 바위를 미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오십 년도 더 된 그 사진들을 들여다보면서 지나간 날들을 생각해 보기보다는 굳게 서 있어야 할 바위가 적은 외부의 힘에 의해서도 움직이는 사실이 들려주는 인생의 교훈을 생각해 보았다. 주위 환경이 어떻게 변하여도 조금도 영향 받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바위요, 산이다. 그런데 사실은 바위나 산보다 더 굳건히 서서 어떻게 주위 환경의 변화에도 조금도 흔들림 없이 마땅히 걸어야 할 인생의 길을 초연히 걸어가야 하는 존재가 우리들 인간들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알렉산더 포프가 “Whatever is, is right"(모든 사물은 그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고 믿어진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재 가치를 무엇일까? 인간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인생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 그가 존재해야 할 이유이며, 따라서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이 그의 존재 가치를 살리며 인생의 경주를 달리는 길인 것이다.

 

수많은 우리 인생의 선배들이 이 사실을 깨닫고 어떤 시련과 난관을 만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걸음으로 인생의 경주에서 승리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거세지 않은 물결에도 떠내려가는 부끄럽고 얄팍한 삶을 살다 갔으며 또 지금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기만 한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들려오는 근거 없는 소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드려 주위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의리나 신의 같은 건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자신의 적은 이익을 위하여 친구를 배신하는 이들이 그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라 말해 잘못은 없을 것이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고 그에게 유리한 일이라면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를 잠재우고 부정과 불의에 동조하는 이들도 흔들바위 같이 이리 저리 흔들리며 인생길을 가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그네들 보다 더 불행하고 위험한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난 이들이다. 역사상 하나님을 떠난 사람치고 보람되고 성공된 인생을 산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 없는 삶은 진리라는 반석 위에 설 수 있기에 적은 유혹에도 무릎 꿇고 하잘것없는 인생의 파도에 떠내려가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위에 인생의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은 지축을 흔드는 인생의 폭풍우가 불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인생의 풍랑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여 지기를 바라는 자”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서 그의 뜻에 따라 살아가야 함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저작권자(c) Budongsancanada.com 부동산캐나다 한인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daekim
김대억
120472
9195
2024-10-17
다윗의 생애 (12)

- 하나님께 범죄 하는 인간 다윗 -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 샀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더라. 저녁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지를 자기에게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음으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삼하 11:1-5)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으로서 이스라엘의 최대의 성군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죄 앞에 무력한 인간이었기에 이생의 정욕 앞에 무릎 꿇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이스라엘이 암몬을 쳐서 멸하고, 랍바를 포위하고 혈전을 벌릴 때 일어났다. 그 전투의 지휘관은 요압 장군이었다. 그때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다윗은 해질 무렵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 올라가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그녀의 관능적인 미에 현혹된 다윗이 사람을 불러 알아보니 그녀는 그가 아끼는 장수 중의 하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다. 

다윗은 즉시 그녀를 불러오게 하여 그녀와 동침했다. 얼마 후에 그녀가 임신했음을 알게 된 다윗은 랍비성에서 싸우는 우리아를 예루살렘으로 소환했다. 그리고는 랍비성 전투상황에 대해 물어본 후 집에 가서 쉬라고 말한다.  우리아가 밧세바와 동침하여 그녀의 뱃속의 아이가 그들 사이의 것인 것처럼 하여 자기가 그녀를 범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우리아는 그 날 밤 집에 가지 않고 궁정 문 앞에서 경비병들과 함께 지냈다. 

다음 날 다윗이 어째서 그랬느냐고 묻자 우리아는 그의 상관 요압 장군과 그의 동료 병사들이 랍비성 밖에 진을 치고 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만 집에서 아내와 편히 잘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다윗이 믿고 아끼는 장수다운 답변이었다. 그날 저녁 다윗은 우리아를 취하게 했지만 그 밤도 우리아는 아내에게 가는 대신 궁정 정문의 경비실에서 잤다. 우리아를 죽이려는 첫 번째 계획이 실패하자 다윗은 싸움터로 돌아가는 우리아 편에 사령관 요압에게 편지를 보낸다. 가장 치열한 격전지에 우리아를 투입시키고 다른 병력을 후퇴시켜 그가 죽도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요압은 지령대로 행했고, 그 결과 충신 우리아는 그 전투에서 전사한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은 전령에게 “전쟁에서 칼은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죽이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더욱 힘써 싸워 랍바를 함락시키라“고 요압에게 전하라고 말한다.

다윗이 우리아를 예루살렘으로 부른 목적은 그와 밧세바가 동침하여 자기가 임신시킨 아이를 그들의 것인 것처럼 만들어 그가 범한 간음죄를 은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요압에게 우리아를 적에게 맞아 죽도록 하라는 밀령을 내린 것은 우리아가 전사하면 밧세바는 과부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다고 사료된다. 그렇게 되면 과부인 밧세바를 당당하게 아내로 삼을 수 있다고 다윗이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다윗이 한 일은 왕권을 남용한 치밀하면서도 악랄한 살인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이 같은 다윗의 범죄는 십계명 중 살인과 간음과 이웃의 아내를 탐한 세 가지를 범한 것이다. 이처럼 엄청난 죄를 범하고도 다윗은 전혀 후회하지도 않았고,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채 과부가 된 밧세바를 아내로 맞아드린다. 어진 임금의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이 정욕의 포로가 된 한 철면피한 인간으로 변한 다윗의 모습을 보며 죄의 힘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 가를 느끼게 된다. 이 같이 추하고, 부끄럽고, 비참한 죄의 포로가 된 것은 다윗만은 아니었다.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도 그가 살인죄를 저지르는 공범자의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이 죄는 범한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까지 타락시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충직한 부하 장수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고 그를 죽이는 무서운 죄악을 범하고도 밧세바가 아이를 낳기까지 일 년이란 세월이 지나도록 회개하기는커녕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것처럼 지내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보내시어 한 비유를 들려주신다. 어느 부자가 아주 가난한 사람의 전 재산인 암양 새끼를 빼앗아 찾아온 손님을 대접했다. 자기에게 많은 양과 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이 심히 사랑하고 아끼는 양 새끼를 강제로 빼앗아 손님을 위한 잔치를 베푼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그런 짓을 한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했건만 오히려 그런 짓을 했으니 그 새끼 양의 4배를 배상해 주어야 마땅하다.“(삼하 12:5-6)며 격분한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마7:3) 분노하는 다윗을 향해 나단은 “왕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삼하 12:7)이라 말한다. 그리고는 계속하여 “나는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해주며 네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었는데, 너는 어째서 나의 법도를 무시하고 이런 끔직한 일을 행했느냐? 너는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고 그를 죽이기까지 했으니 칼이 네 집에서 영영 떠나지 않을 것이다”(삼하 12:10)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준다. 

나단의 말을 듣는 순간 다윗은 그가 얼마나 추하고 부끄럽고 중한 죄악을 범했는가를 깨달으며 통곡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배반할지라도 그만은 예수님을 끝까지 떠나지 않겠노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눅 22:34)하 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말한 후 예수님과 마주치자 소리 내어 울어버린 베드로처럼 말이다.

다윗은 진정 하나님의 품으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는 아버지를 떠나갔던 탕자가 제 정신이 들어 집으로 돌아와 그를 얼싸안고 입 맞추는 아버지께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어 이젠 아버지의 아들이라 할 자격도 없습니다”(눅 15:21)한 것처럼 말이다. 다윗의 회개가 참된 것이었음은 그 후 그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다스렸나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시편 150편 중 73편이 다윗의 것이며, 그 중에서도 7편의 참회시(6, 25, 32, 38, 51, 130, 151)에는 그가 어떻게 회개했으며, 어떤 결의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백성들을 다스렸는지가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특별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네게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 51:11-12)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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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억
119278
9195
2024-10-10
다윗의 생애(11)


- 이스라엘의 영토를 확장시킨 다윗 -
                                                 


“그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그들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사람들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들이니라.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 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그들을 쳐서 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다메섹의 아람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셋을 도우러 온지라. 다윗이 아람 사람 이만 이천 명을 죽이고, 다윗이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다윗이 하닷에셋의 신복들이 가진 금 방패를 빼앗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고 또 다윗 왕이 하닷에셋의 고을 베다와 베로대에서 매우 많은 놋을 빼앗으니라.(삼하 8:1-8) 

 

예루살렘을 통일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한 후 다윗은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다윗은 블레셋을 공격하여 그들의 수도 가드를 점령하고 항복을 받았다. 그리고는 모압을 쳐서 정복한 후 포로들을 그들의 능력에 따라 3분의 2는 죽이고, 3분의 1은 살려주었다. 살아남은 모압 사람들은 다윗의 종이 되어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쳤다. 이는 그 옛날 발람이 한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민 24:17) 남쪽의 블레셋과 모압을 제압한 다윗은 마병 1,700명과 보병 20,000명을 생포하고 전차 100대를 위한 말을 제외한 모든 말들의 힘줄을 끊어버렸다. 

그는 또 하닷에셋을 도우러 온 시리아 군 22,00명을 죽이고 그곳에 주둔군을 배치했다. 그때부터 시리아는 다윗에게 조공을 바치는 이스라엘의 종속국이 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가는 곳마다 승리하게 해주셨다.(삼하 8:6) 다윗은 하닷에셋의 신하들이 사용하던 금 방패를 빼앗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왔으며, 하닷에셋이 통치하던 베다와 베로데에서 많은 양의 놋도 가져왔다. 다윗이 하닷에셋과 싸워 크게 이겼다는 소식을 들은 하맛 왕 도이가 그의 아들 요람 편에 많은 양의 금과 은과 놋 제품을 선물로 보내며 승전을 축하했다. 하닷에셋과 도이는 서로 적대관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18,000명을 죽이고 돌아온 후 백성들의 다윗을 향한 신뢰와 존경심은 더욱 높아졌으며, 에돔 전 지역에 주둔군을 둔 이후 에돔 사람들도 그의 종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가는 곳마다 동행하시며 그로 하여금 적군을 격파하게 해주셨다. 이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다윗은 그가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에서 얻는 모든 전리품들을 하나님께 바쳤다. 그가 거둔 모든 승리는 그가 잘 싸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싸워주셨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께 드린 모든 전리품들은 후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다윗은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만을 행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왕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그가 남쪽의 블레셋과 모압을 굴복시키고, 북쪽에 자리 잡은 소바 왕국을 쳐서 영토를 확장한 것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겠다.”(창 15:18)라 하신 약속을 이루어드린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한 목적중의 하나를 주위의 이방민족들을 제압하고 국토를 넓힘으로 성취시킨 것이다. 

 

그는 전쟁을 할 때도 군사력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전략으로 싸웠으며, 전쟁에서 획득한 전리품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처리했다. 소바 왕 하닷에셋를 물리치고 마병 1,700명을 사로잡았지만 다윗은 그들이 탔던 말들로 그의 기병을 강화하지 않고 전차 100대를 끌 말을 제외한 나머지 말들은 모조리 그 힘줄을 끊어버렸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여 그의 이름으로 싸우면 아무리 막강한 무장을 한 군대라도 물리칠 수 있음을 확신한 다윗이었던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내와 사랑으로 공평하고 정의롭게 다스릴 수 있었던 것도 온전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때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고, 번영시켜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성군으로서의 다윗의 진면목은 그가 사울의 손자를 선대한 데서 선명하게 들어난다. 다윗은 엘라 계곡의 전투에서 적장 골리앗을 죽임으로 사울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사울은 다윗을 그의 정적으로 간주하여 그를 제거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을 적대시하지 않았으며, 그를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그의 몸에 손을 대지 않았고, 사울이 길보아 산에서 블레셋에게 패하여 자결하자 그와 요나단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했다.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다윗은 사울을 섬겼던 시바를 통해 사울의 장남이며 그의 분신과도 같았던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절뚝발이가 되어 지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윗은 즉시 므비보셋을 불러드렸으며, 므비보셋은 두려운 마음으로 다윗 앞에 섰다. 자신이 사울의 손자이기에 다윗이 그를 처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본 다윗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의 아버지 요나단으로 인해 너에게 은혜를 베풀려고 한다. 너의 할아버지 사울이 소유했던 땅을 모두 네게 돌려주고 또 너를 항상 내 식탁에서 먹게 하겠다.”라 말한다. 그러자 므비보셋은 “이 종이 무엇인데 왕께서 죽은 개 같은 제게 이런 은혜를 베푸십니까?”라며 감격한다. 

 

다윗의 므비보셋에 대한 호의와 사랑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울의 종이였던 시바로 하여금 그를 주인으로 섬기도록 함으로 므비보셋은 평생을 왕자처럼 다윗 왕과 한 식탁에서 먹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진 것도 없고 불구의 몸이 된 상황에서 평생을 불안과 공포 속에서 지내야 할 운명이었다. 하지만 다윗은 그를 어둠과 절망의 구덩이에서 건져내어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살도록 은혜를 베푼 것이다. 이 같은 다윗의 너그럽고 진실한 인품을 보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째서 그를 그처럼 사랑하시며, 그의 귀중한 도구로 사용하셨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에겐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며,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우리에게 있는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우리가 가진 것을 주위의 사람들과 나눈다는 것은 그들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 우리들 자신이 풍성한 삶의 열매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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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억
119021
9195
2024-10-03
자유를 잃은 사람들


 

오래 전에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에서 원숭이에게 몸짓으로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오랜 실험과 훈련 끝에 이 원숭이는 자기 생각을 나타낼 수 있는 140개의 동작을 터득하게 되었다. 시험관들 앞에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 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 원숭이는 계속하여 세 개의 동작을 되풀이 했다. “Let me out!" (나를 놓아 주세요.)

 

자연 속에서의 위험과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안전한 곳에서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으며 사람들의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 했으면서도 이 원숭이는 전혀 만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위한 모든 조건이 완벽히 갖추어졌을지라도 인간에 의해 통제 받으며 살기가 싫었던 것이다. 
숱한 위험에 둘려 싸여 있을 지라도 먹을 것을 찾아 산속을 헤매다 시냇물에 첨벙대며,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옮겨 다니는 원숭이의 “자유로운 생활”로 되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리라.

 

말 못하는 동물조차 이같이 갈망하는 자유를 인간이 생명처럼 소중히 여김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자유를 박탈 당하거나 상실한 인간은 비참하고 무가치한 존재로 전략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스파르타가스도 만적도 자유 잃은 노예로 살기 보다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다 죽어간 것이다. 
억눌린 삶 보다는 자유를 추구하다 숨져간 사람들이 그들만은 아니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란 외침은 미국의 독립운동가 헨리 패트릭만의 것이 아닌 동서고금을 통한 인류 전체의 소망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나는 자유의 땅 캐나다에서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다. 하고 싶은 언행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뻐도 마음껏 웃을 수 없고 견디기 힘든 슬픔 앞에서도 마음 놓고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게 되었다. 냉대와 교만과 억지 앞에 고개 숙이며, 비판을 위한 비판을 받으면서도 침묵해야 한다는 건 분명히 우리가 원하는 자유가 아니다. 
기쁨의 감정조차 사람들이 경망스럽다고 할까 두려워 아무 때나 표현할 수 없고, 외롭고 괴로워도 삼키고 참아야만 한다는 것 역시 기본적인 자유의 상실이라 말해도 잘못은 아니리라. 그런데 난 이 엄청난 자유들을 목사가 된 후부터 스스로 포기해야만 했다.

 

마흔이 넘어 내가 맡은 장로의 직분을 잘 감당하며, 내가 인도하는 성경공부와 구역예배를 충실하고 성실하게 인도하기 위해 Tyndale Theological Seminary에 들어갔다. 그 후 3년 간 아내와 아이들을 반 과부와 고아로 만들며 성경과 신학 서적들을 붙들고 씨름했다. 아내는 혼자서 집안일을 해나가며 한창 자라는 세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여야 했고, 아이들도 불평을 하면서도 만학을 하며 고생하는 아버지를 격려하며 어머니를 돕는 기특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난 인생의 후반기에 목사가 되었다. 때문에 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인간의 기본 자유를 박탈당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나를 보고 어떤 분이 말해주었다. 
“당신은 이제 자유를 잃은 사람입니다. 마음껏 당신의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안 하셨을 줄 믿습니다.”
자유를 빼앗긴 사람은 삶의 의미를 상실한 슬픈 존재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난 내 뜻과 욕망을 나타내지도 못하고 추구할 수도 없는 속박된 삶 속에서 만목하며 삶의 기쁨과 보람을 찾을 수가 있게 되었다. 내가 잃어버린 자유는 벌써 오래 전에 내버렸어야 할, 내 인생을 잡아매고 있었던 쇠사슬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목숨을 걸고 얻어야 할 진정한 자유가 아니었던 것이다.

 

참된 자유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억제하는 것이다. 내 권리를 철저하게 주장하기에 앞서 그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들이 추구하고 쟁취하여 누려야 할 진정한 자유는 우리 생명의 주인 하나님의 품에 거하며 그의 뜻을 올바로 깨달아 그 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난 이 같은 참 자유의 의미를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난 결코 자유를 잃은 슬프고 비참한 신세가 아니라는 사실을. 지금 난 진정한 자유를 찾은 축복 받은 인간이라 자부한다. 내게 부여된 사명은 자유가 아닌 방종 속에서 만족하며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진정한 자유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라 믿는다. 
이 참된 인생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나를 진실로 자유롭게 한 진리 안에 거하며 목사의 길을 걸어갈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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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김대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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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다윗의 생애 (10)


- 하나님 찬양을 생의 목표로 삼은 다윗 -


“다윗이 군대 지휘관들과 더불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 그 직무대로 일하는 자의 수효는 이러하니라. 아삽의 아들들은 삭굴과 요셉과 느다냐와 아사렐라니 이 아삽의 아들들이 아삽의 지휘 아래 왕의 명령에 따라 신령한 노래를 하며, 여두둔에 이르러서는 그의 아들들 그달리야와 스리와 여사야와 스므이와 하사뱌와 맛디디야 여섯 사람이니 그의 아버지 여두둔의 지휘 아래 수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며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헤만에게 이르러는 그의 아들들 북기야와 맛다냐와 옷시엘과 스브엘과 여리못과 하나냐와 엘리아다와 깃달디와 로맘디에셀과 요스브가시와 말로디와 호딜과 마아시옷이라.”(대상 25:1-4)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정하고 하나님의 궤를 그리로 옮겨와서 그 법궤를 올바로 섬길 직분자들을 엄선하여 임명한다.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림에 있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겠다는 그의 굳은 결의를 나타낸 것이다. 하나님에 의해 선택 받고,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가운데 온갖 시련과 위기와 핍박을 이겨낸 후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다윗이 이 같이 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다. 다윗의 이 같은 그의 염원을 선지자 나단에게 말하자, 나단은 “하나님이 왕과 함께 계시니 왕께서 좋으신 대로 하십시오.”(대상 17:2)라 답한다. 나단이 이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은 나단 역시 하나님 전을 건축하기를 원하고 있었으며, 그 때가 온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다윗은 성전을 짓는데 필요한 자제들을 모으고, 건축을 담당할 기술자들을 확보해 놓고 있었다.(대상 22:2-4, 14-16) 그뿐 아니라 그는 성전을 위한 봉사자들을 구체적으로 임명까지 해놓고 있었다.(대상 23장-26장) 선지자 나단은 이 같은 다윗의 성전 건축 계획을 알고 있었기에 다윗이 성전 건축문제에 관해 언급하자 주저하지 않고 진행할 것을 촉구했을 뿐 아니라 다윗의 마음과 그의 계획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허락해 주시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피를 심히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대상 22:8) 말씀하시며 다윗의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다윗이 많은 전쟁을 치렀고, 그로 인해 많은 피를 흘렸다. 그러나 다윗이 싸운 전쟁들은 이스라엘을 위해서였으며, 전투에 임할 때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싸워주셨기에 그는 승리를 거둘 수가 있었다.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하나님과 함께 싸운 전쟁 때문에 하나님이 다윗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신 것을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르며, 하나님께서는 그가 택하신 백성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롬 8:28) 축복과 은총을 내려주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간절히 원하는 성전 건축을 막으셨지만 그를 위한 엄청난 축복의 언약을 주신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국의 번영과 영원한 메시아 왕국이 그를 통하여 이루어 질 것이라 말씀하셨으며, 다윗의 아들 솔로몬으로 하여금 그가 진정 원하고 준비해온 성전을 건축하게 하겠다고 언약하신 것이다.(대상 17:11-12)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과 충성은 그 결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때와 방법에 따라 반드시 엄청난 축복의 열매가 맺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갈 6:9)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가 원하는 성전 건축을 막으셨다고 낙망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통하여 지어질 웅장하고 거룩한 성전에서 하나님께 진정과 신령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 돌릴 찬양대를 조직하기 시작한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면 그가 기쁘게 받으실 예배를 드려야 하며, 그런 예배는 은혜로운 찬양을 드리는 것임을 다윗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다윗은 아삽과 헤안과 여두둔을 중심으로 그들의 아들과 딸들이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도록 찬양대를 조직했다.
아삽과 헤안과 여두둔은 레위 족속이었을 뿐만 아니라 선견자로서 그들 자신이 여러 편의 시편을 지었으며, 노래 실력이 뛰어난 이스라엘의 음악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찬양대를 인도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자격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도와 함께 찬양할 그들의 아들딸들은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잘 타는 음악 전문가들이었다. 따라서 다윗은 찬양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에게 영광 돌릴 수 있는 인재들을 선정하여 찬양팀을 구성한 것이다. 
이를 보며 목소리만 좋으면 누구나 성가대원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깊은 진리를 터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다윗의 찬양팀은 “신령한 노래를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했다.”(대상 25:3)는 사실이다. 그렇다. 하늘 보좌에 상달되는 찬양은 신령해야 함은 물론 부르는 이들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감사의 찬양이어야 한다. 다윗이 조직한 찬양대는 사람들의 귀에 듣기 좋은 찬송을 부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셔서 영광 받으실 노래를 경건한 자세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자비하심과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에 진정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를 수 있었다. 이 사실을 기억할진대 현대 교회의 성가대들은 그들이 어떤 노래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불러야 할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은 그 자신이 성전을 건축할 수 있기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그 같은 소망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다윗은 그 때문에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에서 은혜로운 찬양을 드릴 찬양팀을 조직한다. 다윗의 궁극적인 목적은 누가 성전을 건축하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찬송이 울려 퍼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의 그 같은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졌다. 그가 조직한 찬양대는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찬송을 감사한 마음으로 부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찬양대를 만든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지키고 섬길 성전봉사자들 선정하기 위한 유언까지 남긴다. 다윗은 이 모든 일들을 그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기도를 통해 알아내어 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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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다윗의 생애 (9)


- 통일 이스라엘의 임금 다윗의 업적(상) -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다윗이 시온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하였음으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들러 성을 쌓으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삼하 5:6-10)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군사를 이끌고 예루살렘 성을 공격했다.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으로 통치할 때와는 달리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그에게는 새로운 수도가 필요했고, 모든 면에서 예루살렘이 성이 가장 적합한 곳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우선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고, 튼튼하고 안전한 요새였으며, 충분한 수원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울려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예루살렘 성처럼 마땅한 수도를 찾을 수 없었다. 그 당시 예루살렘 성에는 여부스 족속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으로 진격해 들어왔을 때에도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그 곳에 정착해 살고 있었다.(수 15:63) 따라서 천연적이 요새에서 오랜 기간을 안주해 살고 있는 여부스 사람들을 몰아내고 예루살렘 성을 점령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상했던 대로 다윗이 성을 공격하자 그들은 “너는 절대로 이 성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장님이나 절뚝발이 라도 너를 막아낼 수 있다.”라며 큰 소리쳤다. 그만큼 그들을 자기네가 오랫동안 정착해 거주하는 천연적인 요새인 예루살렘 성을 어떤 적군이 침공할지라도 방어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으려는 다윗의 결단도 확고했다. 때문에 다윗은 군사들에게 “여부스 족속을 제일 먼저 공격하는 용사를 이스라엘 군 총사령관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대상 11:6) 

 

그러자 스루아의 아들 요압이 앞장서서 성을 공격하며 성을 함락시켜 다윗 군대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예루살렘 성을 점령한 다윗은 그 성을 “다윗 성”으로 명령한다. 그리고는 요합과 더불어 성벽을 다시 쌓고 증축하여 예루살렘 성을 전보다 더욱 강한 요새로 만들었다. 이렇게 되자 이스라엘의 중심부에 있으면서도 이방인의 땅으로 간주되었던 예루살렘은 나라의 수도가 되었으며 난공불락의 철옹성이 되었다. 이는 다윗의 왕권과 이스라엘의 국권이 한층 강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다윗의 왕권이 확고해지고 이스라엘이 강한 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게 된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었다.(삼하 5:10)

 

예루살렘 성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한 다윗은 유다의 바알레에 있는 법궤를 그 곳으로 옮겨올 계획을 세웠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상징하는 법궤는 엘리 제사장 때 아벡 전투에서 블레셋에게 빼앗겼다 다시 돌아온 후 기럇여하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비치되어 있었다. 다윗은 3만 명의 특수부대를 이끌고 바알레로 가서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얹어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왔다. 그런데 수레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소들이 비틀거리자 수레를 몰던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그 궤를 붙잡았다. 하나님의 궤가 수레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웃사의 그 같은 행위를 보고 노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치자 그는 하나님의 궤 옆에서 죽고 말았다. 

 

원래 법궤는 제사장만이 메고 운반해야 되는데(민 4:15), 이를 알지 못한 웃사가 하나님의 궤를 보호하려다 죽임을 당한 것이다. 이를 목격한 다윗은 두려운 마음이 생겨 법궤를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가져갔다. 때문에 하나님의 궤는 석 달 동안 그 곳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오벧에돔과 그의 모든 가족들에게 복을 주셨다. 이를 알게 된 다윗은 그 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옮겨오기로 작정했다. 지난번처럼 실패하지 않기 위하여 다윗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알려주신 대로 레위인들로 하여금 법궤를 메도록 하였다.(대상 15:14-15) 뿐만 아니라, 법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 걸을 때마다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그 자신은 모시 베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서 힘껏 춤을 추었다. 

이처럼 다윗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나팔을 불며 하나님의 궤를 운반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올 때 다윗의 아내 미갈이 그 앞에서 춤추는 다윗을 보고 속으로 그를 업신여겼다. 이를 알게 된 다윗은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춤을 추겠다.”며 그의 아내를 나무랐으며, 다윗이 춤추는 것을 업신여긴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었다.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 성에 안치한 다윗은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그런 후 그는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자손들을 축복하게 한 것처럼(민6:22-27)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게 한 후 모든 사람들에게 떡과 건포도를 나누어 줌으로 온 나라가 법궤가 예루살렘 성으로 옮겨진 것을 축하하며 기뻐하였다. 그런 후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잘 관리하고 섬길 사람들을 임명하였다. 아삽과 그의 형제들에게는 날마다 법궤 앞에서 섬기게 했으며, 오벧에돔과 그의 집안 68명과 여두둔의 아들 오벧에돔과 호사를 문지기로 삼았다. 제사장 사독과 그의 동료 제사장들에게는 기브온 신당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이와 같이 다윗은 성막과 법궤를 중심으로 한 모든 일을 잘 감당할 직분자들을 적절하게 임명한 것이다. 엘리 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그들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며 이스라엘과 그들의 집안이 큰 불운을 당했음을 상기해 보면(삼상 2:12-25) 올바른 직분자들을 선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통일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된 다윗이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정하고, 오랜 기간 유다의 마알레에 있던 법궤를 그리로 가져온 사실은 그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결의를 분명히 한 것이다. 다윗이 그런 그의 결단을 실천하기 위해 한 일이 하나님의 법궤를 가장 잘 섬길 직분자들을 세운 것이다. 이 같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그의 백성들을 다스릴 준비를 하는 다윗을 본받을 수 있다면 우리들도 주어진 위치에서 하나님의 귀한 사역자가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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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승리하는 사람들


1858년 찰스 다윈이 발표한 진화론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모든 생물은 적자생존의 과정을 통해 번성해 왔다는 것이 그의 진화론의 핵심이고 보니, 당시 보수주의자들과 기독교 지도자들이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다윈이 주장한 적자생존(The survival of the fittest)의 원리는 진리였다. 동물의 세계든, 인간 세계든 강자는 약자를 정복하며 그 위에 군림해 왔고, 약자는 강자 밑에서 고통당하며 신음하다 자취를 감춘 사실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류는 생존을 위한 투쟁 속에서 살아왔다. 한 통계에 의하면 지난 3,100년 동안 지구상에 전행이 없었던 기간은 300년이 채 안 된다고 한다. 기록되지 않은 작은 분열과 다툼까지 고려한다면 이 땅 위에 평화만이 지속된 시기는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인류의 역사를 뒤돌아 볼 때 수많은 전쟁들이 일어났고, 그때 마다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면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형성되며 국가와 사회의 운명이 결정되었고, 그 결과로 세계역사의 흐름과 방향도 달라졌다. 

 

인간이 체험한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들 중 인류의 사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전투는 언제 어디서 벌어졌을까? 그 전쟁은 2천여 년 전, 예루살렘 동편에 위치한 겟세마네 동산에서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기록이 어디 있냐고 의아할 지 모른다. 역사 교과서나 백과사전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검색해 보아도 나오기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난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치열했던 싸움은 겟세마네 동산의 전투였다고 믿는다.
이 전투의 총사령관은 나사렛의 가난한 농부 출신인 예수라는 젊은이였다. 그는 군인도 아니었고 군사학을 공부하지도 않았다. 그 전투에서 그를 뒤따른 병사는 한 명도 없었다. 특사 훈련시킨 12명의 결사대가 있기는 했지만 1명은 적에게 투항했고, 나머지 11명은 세상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깊은 잠 속에 빠져있었다. 그러기에 그 전투는 그가 혼자서 담당해야 할 외로운 싸움이었다. 한 마디로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신 그는 고통과 슬픔과 치욕 속에 십자가를 향한 길을 33년 간 걸었다. 그러다 날이 밝으면 십자가에 올라야 할 마지막 밤에 그 멸시와 고통과 치욕의 길을 피하고 싶은 자아가 고개 들고 나선 것이다.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하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둔탁한 쇠못이 손과 발에 박혀들 때의 소름 끼치는 아픔이나 작렬하는 태양 밑에서 체내의 피가 서서히 소모되면서 찾아올 극심한 목마름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거기서 내려오라”며 그를 조롱하는 군중을 마주 대할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었다. 이 모든 고난과 치욕과 멸시를 예수님은 결코 겁내지 않으셨다. 그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인간의 죄 짐을 지고 십자가에 달리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밤에 아버지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이다.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아야 하는 십자가의 길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핏방울처럼 땀을 흘리시면서 세 번씩이나 간구하셨을까? 그러나 예수님은 알고 계셨다. 그가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으면 전 인류가 멸망의 길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때문에 예수님은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승리하였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패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그 결과 그는 그처럼 피하고 싶었던 아버지로부터 외면당하며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 앞에 죄 짐을 내려놓는 우리들은 영원히 멸망의 길에서 영생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예수께서 거두신 위대한 승리의 결과로 새로운 삶을 부여 받은 우리들도 승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겠다. 일시적인 승리 아닌 영원한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승리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거나, 약자를 정복하고 강자를 굴복시키는 힘의 승리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 속에서 솟아나는 헛된 욕망과 정욕, 탐심과 허망한 꿈은 물론 마음 속 깊이 뿌리내린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증오의 감정을 깨끗이 뽑아낼 수 있어야만 우리는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같은 인생경기의 승리자가 되기 원한다면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천성을 향해 진군하는 십자군의 정병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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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날마다 죽는 사람들

 

30여 년 전에 눈언저리에 돋아난 이물질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는 적이 있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무기력한 환자가 되어 침대에 누었다. 내가 누운 침대가 수술실로 밀려들어가자 두 명의 간호사가 능숙하게 내 몸을 침대에 고정시켰다. 혈압과 심전도 측정을 위한 장치가 끝나자 두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가 부드러운 천으로 덮였다. 다음 순간 태양보다 밝게 느껴지는 불빛이 얼굴에 비쳐왔다.

 

“눈 주위를 마취하기 위한 주사를 놓겠습니다. 움직이면 안 됩니다.” 연하고 엷은 눈꺼풀 사이를 파고드는 주사바늘이 주는 고통은 의외로 컸다. 두 발과 팔을 단단히 침대에 묶어 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대 여섯 번을 계속해서 찔러대는 주사 바늘로 인한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아내야 했다. 외람되게도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미스터 김, 인내력이 대단하시군요. 이제부터는 아프지 않습니다.” 수술이 진행되는 한 시간 남짓 의사는 칼로 베어내고, 가위로 잘라내고, 불로 지저댔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고통은 전혀 없었다. 헤어진 살을 바늘로 꿰매는 작업이 끝나도록 나는 두 눈을 꼭 감고 ‘표본실의 개구리’가 되어 누워 있어야 했다.

한 마리 개구리에서 다시금 인간으로 되돌아온 나의 모습은 처절했다. 두 눈 주위를 돌아가며 붙여진 특수 반창고, 그 사이 사이로 번져 나온 핏자국들, 퉁퉁 부어 오른 눈언저리, 이렇게 되도록 내 몸이 학대를 당하는 동안 조금도 아프지 않았던 것은 마취의 놀라운 효과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 수술을 통해 난 마취의 효과가 얼마나 큰가 보다는 참되고 보람된 인생을 살 수 있는 깊고도 진실 된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때까지 반백이 가까운 나이를 먹기까지 난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써왔다. 가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던 소년시절을 지내면서 패배하면 끝장이라는 삶의 철학이 내 몸과 마음에 스며들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실패하면 또 다시 도전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환경에게도. 그러나 비겁하게 편법을 사용하거나 부당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한 적은 없다. 부정과 불의와 모순을 묵인하거나 그들과 타협하지도 않았다. 거짓과 모함이나 음모의 희생물이 되었을지언정 그것들을 내 삶 속에 용납한 일도 없다.

 

그러나 나는 이기기 위해선 져야 하고, 참되게 살게 위해선 죽어야 한다는 진리를 머리로는 받아들였으되 실천하며 살지는 못했다. 그러기에 내 가슴은 패배의 아픔과 못 이룬 것에 대한 미련으로 얼룩져 있었다. 모욕이나 멸시를 당하면 분했고,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만학으로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된 후 그와 같은 나의 인생관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난 패배자가 됨으로 참된 승리자가 되며, 죽어지므로 삶의 가치를 발휘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러노라니 멸시와 모욕을 당하면서도 분노를 참으며 웃어야만 했다. 입원한 교인을 방문하기 위해 허기진 배를 안고 병원으로 들어가는 꾸부정한 나의 뒷모습을 본 어느 친구가 말해 주었다. “자네도 이제는 죽어가는 구만” 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난 알고 있었다. 난 그때까지도 이기고 싶어 하며, 웃고 있으면서도 가슴 속에는 눈물이 흐르고, 태연한 얼굴을 유지하려고 애쓰면서도 가슴 속에서 분노가 솟구치는 때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진정 자신을 죽임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이 기쁨으로 열매를 거두는 승리자의 삶이다. 진정 승리하는 인생을 사는 것은 평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나를 죽이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런 패배자가 되셨을 뿐만 아니라 죽기까지 하심으로 최후의 승리자가 되신 분이시다.

철학자 니체는 예수님을 십자가로 보낸 로마 총독 빌라도의 힘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비틀거리며 힘에 겨운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의 연약함을 경멸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기고 산 빌라도는 인생의 비참한 패배자가 되었고, 패배하며 죽으신 예수님의 영원한 승리자가 되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매일 매일 우리들 자신을 죽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의 모진 역경과 멸시와 핍박을 받으면서도 천성을 향하는 승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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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김대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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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5
다윗의 생애(8)


-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 -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성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리로 올라갈 때에 또 자기와 함께한 추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다윗이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읍에 살게 하니라.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삼하 2:1-4)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니라.”(삼하 5:1-3)

 

다윗을 제거하는 것을 그의 인생의 사명으로 믿었던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그들의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자 그의 칼을 배에 대고 그 위에 엎드러져 자결한다.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의 손에 죽기 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 것인지도 모른다. 사울과 그의 세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가 길보아 산 전투에서 전사하자 블레셋 군사들은 사울의 갑옷을 벗기고 그의 목을 벤 후 그 시체를 벳산 성벽에 못 박았다. 그리고는 블레셋 땅 곳곳에 이 소식을 알렸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벳산까지 가서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성벽에서 내려 야베스로 가지고 돌아와 화장하고 7일 간 금식하였다.
다윗은 아말렉군을 격파하고 시글락으로 돌아와서 사울과 그의 세 아들들이 전사한 소식을 알게 되었다. 다윗에게 이 소식을 전한 사람은 아말렉 출신 젊은이로서 길보아산 전투 현장을 지나다 부상당한 사울의 요청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왕관과 팔찌를 가지고 왔노라고 말한다. 이 젊은이는 다윗과 사울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다윗에게 사울이 죽은 사실을 알려준 목적이 다윗에게서 큰 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보고를 듣고 크게 노하여 그를 즉석에서 처형하고 사울과 요나단의 즉음을 슬퍼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를 죽이려던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때와 방법에 따라 최후를 맞이한 사울의 죽음을 애도하며 기도하는 다윗을 보며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선택하신 까닭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일이 있는 후 다윗은 시글락을 떠나 이스라엘로 돌아가도 좋을 지를 하나님께 묻는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유다 지파의 성읍이며 다윗을 추종하는 백성들이 많은 헤브론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다윗이 하나님의 명에 따라 헤브론으로 올라가자 유다 지파 백성들이 그를 추대하고 기름을 부어 유다의 왕으로 삼는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그에게 기름을 부은 지 15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후 마침내 다윗은 유다의 왕위에 오른 것이다. 
이 오랜 기간 동안 다윗은 사울을 피해 여러 곳을 방황하며 견디기 힘든 고통과 온갖 수모를 당해야 했으며, 형용하기 힘든 불안과 공포를 안고 쫓기는 자의 신세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다윗은 결코 좌절하지 않고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것을 믿고 기다리는 믿음의 용장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 그 결과 유다의 왕위에 오른 다윗의 믿음을 본받아 살 수 있다면 우리들에게도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 질 날이 올 것이다.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되어 한 첫 번째 일을 사울의 시체를 찾아 장사 지낸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포상한 것이다. 그들은 전에 사울에게 입었던 은혜를 갚기 위하여 한 일이지만 다윗은 그들의 공로를 인정하며 그들에게 상을 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유다를 통치하는 기초로 확립함과 동시에 사울의 통치하에서 상처 받고 흐트러진 민심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삼하 2:6-7)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된 후에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그의 통치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사울이 죽자 그 밑에서 이스라엘 군 총사령관을 지낸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이며 그의 조카인 이스보넷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내세우고 유다의 왕이 된 다윗과 대치했기 때문이다.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로 왕이 되게 한 목적은 이스보넷으로 하여금 사울의 왕위를 계승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기 위한 야욕을 실현시키기 위함이었다. 

 

아브넬은 사울이 다윗을 제거하고 그의 왕권을 든든히 하려고 총력을 기울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일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시기 때문임도 아브넬은 알고 있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던 아브넬은 유다의 왕이 된 다윗의 충성된 신하가 되었어야 했다. 그런데도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넷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것은 그가 모시던 사울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가 아닌 그의 개인적인 욕망의 실현을 위한 것이었던 것이다. 아브넬의 힘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된 이스보넷은 여러 면으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 정치 경력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 또한 아브넬이 그를 왕으로 추대한 진정한 이유는 그의 왕권 위에 군림하여 이스라엘을 자기 손아귀에 넣기 위한 것이었음을 분명히 해준다.

 

이스보넷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다윗과 대적할 수는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아브넬이 이스보넷을 왕으로 내세워 다윗과 겨누려 한 것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하신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도전한 행위였다. 따라서 아브넬은 해서도 안 되고, 성사될 수도 없는 무모한 일을 자행하는 큰 죄악을 범한 것이다. 그 결과 그는 다윗의 부하 장수 요압에 의해 살해당하게 되는 것이다.(삼하 3:22-27) 이 같은 아브넬의 과오와 그로 인한 그의 불행한 최후를 보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된 다윗은 아브넬의 섭정에 의한 이스보넷의 왕권을 무력으로 무너뜨려 통일왕국을 이루려 하지 않았다. 대신 인내와 믿음으로 무장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유다를 계속하여 통치하고 있었다. 그러자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대표들이 찾아와 그를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하게 되는 것이다.(삼하 5:1-5)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된지 7년 만에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려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 보며 우리는 어떤 시련과 역경이 닥쳐올지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때까지 인내와 믿음으로 겸손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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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kim
김대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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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다윗의 생애 (7)


-추종자들에게 배반당하고 위협 받는 다윗-


“다윗의 소년들이 가서 다윗의 이름으로 이 모든 말을 나발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이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이에 다윗의 소년들이 돌아서 자기 길로 행하여 돌아가 이 모든 말을 다윗에게 전하매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하니,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이백 명은 소유물 곁에 있게 하니라.(삼상  25:9-1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올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다윗의 두 아내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 잡혔더라.)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 30: 1-6)

 

사울의 추격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 다윗이 당한 고난과 고충은 많고도 컸다. 그 중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식량 문제였다. 특히 그를 따르는 무리가 늘어가면서 식량 구하기에 더욱 힘들고 어려워졌다. 다윗이 바란 광야로 피신했을 때도 가장 시급한 문제가 양식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거기서 다윗이 생각해 낸 것이 그 지역에서 많은 양과 염소를 기르는 나발에게 양식을 공급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나발의 일꾼들이 그의 가축 떼를 칠 때 다윗의 부하들은 그들을 도둑들로부터 지켜주는 등 여러 면으로 도움을 주고 있었다. 때문에 그가 처한 상황을 잘 설명하면 나발이 도움을 얻어낼 수 있으리라고 다윗은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름이 뜻하는 대로 어리석은 나발은 다윗의 정중하고 간절한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것도 예의 바른 태도를 취한 것도 아니고 “다윗이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며 주인을 배반하고 도망 나온 종들이 많지만 한 이때 어째가 “내가 그들에게 빵과 물과 고기를 주어야 하느냐?”며 다윗을 멸시하고 모욕한 것이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다윗은 즉시로 부하들을 무장시킨 후 600명 병사 중 200명은 남아서 그들의 소유물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 400명을 인솔하고 나발의 처소를 향해 출발한다. 그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모욕한 나발의 처사를 응징하기 위함이었다. 

 

나발이 다윗의 간곡한 청을 매정하게 물리치며, 그를 주인을 떠나 방황하는 불량배 취급을 한 것은 어리석은 자의 무지의 소치였다. 그러나 다윗이 무장병력을 이끌고 민간인 나발을 공격하려 한 것 또한 올바른 처사는 아니었다. 비록 나발이 무지하게 행동했을 지라도 무장한 병사들을 거느리고 그의 처소를 공격하려 한 것은 도덕적으로도 옳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에게 선택 받은 다윗으로서 취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흥분한 다윗이 무장병사 400명을 이끌고 나발의 집으로 향할 때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급히 빵, 포도주, 건포도, 고기 등의 음식을 마련한 후 다윗이 오는 길로 달려가 그 앞에 무릎 꿇고 “제 남편 나발은 성질이 못되고 모자란 사람이라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분을 몰라 뵙고 큰 죄를 범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실 것이니 노여움을 거두시고 무고한 피를 흘리지 말아주십시오.”(삼상 25:14-31)라 청한다. 다윗도 그가 경솔했음을 깨닫고, 그녀가 가지고 온 음식을 받고 그녀를 안심시켜 돌려보낸다.

 

이튿날 술에서 깨어난 나발은 전날 일어난 일을 듣고는 삼장마비를 일으켜 몸이 굳어지더니 열흘 후에 죽고 말았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대신해 그를 무시하고 모욕한 나발을 치신 것이다. 나발이 죽자 다윗은 사람을 보내 아름답고 현명한 여인 아비가일에게 그의 아내가 되어달라고 청한다. 그녀는 다윗의 청혼을 기꺼이 받아들여 다윗의 사람들을 따라가 그의 아내가 되었다. 나발의 많은 재산은 그녀의 소유가 되었을 것임으로 그녀를 아내로 맞아 드린 후 다윗은 병사들의 식량문제를 전보다 쉽게 해결했으리라 생각된다. 

그 후 다윗이 안전한 망명지를 찾아 두 번째로 블레셋 땅인 가드로 갔을 때 가드 왕 아기스는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시글락에서 지내도록 허락해 주었다. 필요에 따라 다윗의 군대를 적절하게 사용하기 위하여 그들을 우대한 것이다. 그러다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하게 되자 아기스 왕은 다윗의 군사들을 그의 군에 편입시켜 그의 뒤를 따르도록 했다. 이를 본 블레셋의 다른 왕들은 다윗은 언제든지 블레셋을 배반할 수 있는 인물이니 그를 이번 전쟁에 투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아기스 왕은 다윗은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며 그를 변호했지만 다른 왕들은 주장이 너무 강경하여 다윗을 시글락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다윗이 군사들을 이끌고 시글락으로 돌아와 보니 아말렉의 습격으로 성읍은 쑥밭이 되어 있었고, 남아있던 그들의 아내와 자식들은 모두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의 슬픔은 크기만 했다. 그런데 다윗의 부하들 중 일부가 이 같은 비극이 일어난 것은 다윗 때문이라며 그를 죽여 가족을 잃은 슬픔을 조금이라도 보상받고자 했다.(삼상 30:6) 다윗은 흥분한 부하들을 군법으로 다스리지 않고 하나님께 그 자신을 의탁하는 믿음의 용장의 모습을 보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다윗의 믿음과 신뢰를 기쁘게 여기셔서 이성을 읽고 날뛰는 다윗의 추종자들을 진정시켜주셨다. 그러자 다윗은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에붓을 가져오게 한 후 하나님께 시글락을 침공한 아말렉을 추격해도 좋을 것인가 묻는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다윗은 그의 병력 600명 중 지쳐서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한 200명을 제외한 400명을 인솔하고 아말렉 군을 추격하여 시글락을 침범하여 큰 성과를 거두고 기뻐하는 아말렉 군을 급습한다. 그 결과 다윗은 대승을 거두고 약탈당했던 모둔 것을 되찾고, 포로 되었던 그의 두 아내 아히노암과 아비가일도 구출했다. 그의 부하들도 잃었던 가족과 소유물을 모두 되찾고 모두들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시글락으로 돌아온 다윗은 아말렉을 물리치고 획득한 전리품을 공평하게 분해했다. 그와 함께 아말렉을 공격했던 병사들은 참전하지 못한 200명 병사들에게는 잃었던 처자식들만을 돌려주자고 했지만 다윗은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여 잔류했던 병사들에게도 똑 같이 전리품을 분배했다. 이를 본 유다 사람들은 다윗을 의롭고, 올바르며, 능력 있는 지도자로 인정함과 동시에 그가 얻은 승리를 하나님께 돌리는 그를 후일 유다 왕으로 추대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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