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가로등·태양열 지붕…‘실리콘밸리’ 부럽잖은 ‘솔라밸리’
중국 산둥성 더저우는 최근 10년 사이 ‘상전벽해’의 땅이 됐다. 사방 수백㎞를 가도 산이 보이지 않는 중원의 한가운데 농촌과 도시에 태양에너지 시설들이 들어서면서 나타난 변화를 들여다봤다.
“여기서는 땅에서 돌을 주워 오면 그만한 크기의 금으로 바꿔준다는 말이 있어요. 황하에서 흘러넘친 퇴적토로 온통 뒤덮여 돌이나 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대평원입니다.”
중국 산둥성 서북쪽 끝에 있는 더저우시에 가면 이런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왕복 8차로로 뻗은 도로 어느 곳을 둘러봐도 작은 언덕 하나 없다. 시내를 벗어나면 끝없이 펼쳐진 평야에 밀이나 목화를 재배하는 밭뿐이다. 중국 한족의 중심지역 중원의 한자락인 이곳은 며칠을 지내도 구름 한 점 찾기 어려운 ‘태양의 땅’이다.
최근 10여년 사이 더저우에 큰 변화가 생겼다. 도시 가로등·신호등 수천개에 태양광 전지판이 매달리고, 아파트 지붕마다 태양열로 물을 데워 쓰는 설비가 들어섰다. 오랫동안 이곳을 상징했던 음식 ‘파진’(닭을 삶은 뒤 간장 등으로 양념한 요리)뿐만 아니라 태양에너지 시설이 인구 600만명의 더저우를 전세계로 알리고 있다. 더저우의 은행원 량리핑(26)은 “미국에 실리콘밸리가 있다면 더저우에는 솔라밸리가 있다”고 말했다.
■ 가난한 농촌, 수도꼭지만 열면 온수 지난 17일 더저우 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다터우쓰 마을. 농사짓는 중옌화(56)는 4년 전 집 지붕에 1000위안(17만원)을 들여 태양열 집열기를 달았다. 설치비가 2000위안 가까이 되지만 정부 지원금 덕에 절반 값만 냈다. 외지에 돈 벌러 간 딸을 대신해 부인과 함께 두 손녀를 키우는 그는 농사로 버는 한달 수입이 채 2000위안이 안 된다. 하지만 태양열 설비를 단 뒤 겨울철에도 따뜻한 물을 돈 걱정 없이 쓴다고 했다. 평소 물 온도는 섭씨 100도까지 올라간다. 흐리거나 비가 내리면 물 온도가 높지 않고 겨울에는 좀더 떨어지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고 했다. 그는 “비싼 전기를 안 쓰고도 샤워나 설거지를 하니까 편리하다. 예전엔 큰 가마에 석탄을 때거나 가스를 썼기 때문에 돈도 많이 들고 불편했다. 수입이 적은 우리 농민들한테는 이게(태양열 온수 설비) 딱 좋다”고 말했다.
수입이 넉넉하지 않은 더저우 농부들에게 태양열 온수 설비는 가뭄 끝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현재 농가의 한달 평균 전기요금이 100위안(1만7000원)가량인데, 이 가운데 뜨거운 물을 쓰는 데 드는 돈이 45~55위안(7800~9600원)으로 절반쯤 차지한다. 태양열 설비가 없었으면 전기요금을 아끼려 밤에는 거의 불을 켜지 않는 농민들의 전기요금 부담이 한층 컸을 것이란 게 농민들의 설명이다.
더저우 시인좡 마을은 530여가구 집집마다 태양열 온수 설비가 돼 있어 다른 마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일종의 시범사업으로 이뤄진 이곳은 정부에서 설비를 모두 지원해줬고 농민들은 집열기 설치비 150위안(2만6000원)만을 부담했다.
■ 한밤에도 밝은 도시로 변해 더저우 농민들이 태양열 온수 설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면, 시내는 태양광 가로등·신호등의 전시장이 됐다. 더저우 경제개발구 캉보호텔 앞을 가로지르는 도로에는 바람개비 모양의 태양광 전지판을 단 가로등 수백개가 늘어서 있는 모습이 볼거리다. 모든 전지판이 정남쪽을 가리키고 있어 ‘더저우에서는 나침반이 필요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더저우는 밤 12시가 되면 모든 가로등과 신호등이 꺼졌다고 한다. 지금은 도로 양쪽 가로등 가운데 한쪽의 불이 밤새도록 거리를 환히 밝힌다
중국 산둥성 더저우 다터우쓰 마을에 사는 농민 중옌화가 지난 17일 집에 설치된 태양열 온수 설비의 수도꼭지를 틀어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 지원받아 태양열 시설 갖춰
거리마다 환하고 집집마다 따뜻
가난한 농촌 전기료 부담 줄고
공장도 전기료 낮아져 큰 도움
중국은 물론 전세계 모범사례로
일각선 “기후변화가 악재” 우려
더저우에서는 신호등·가로등, 태양열 온수 설비를 넘어 아파트 전체 소비 전력을 태양에너지로 충당하는 곳도 등장했다. 시내 싼바 거리에 우뚝 솟은 ‘웨이라이청’(유토피아 가든) 아파트는 20층 높이 건물 2개 동을 길이 100m 넘는 태양광 전지판이 잇고 있다. 이곳 수백가구 주민들은 집 안에서 쓰는 모든 전기를 태양광발전으로 충당한다. 이곳은 200㎡ 기준 150만위안(2억6000만원)을 훌쩍 넘을 정도로 더저우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가운데 한곳이지만 이미 모두 분양됐다. 이처럼 인기가 높은 까닭에 근처에는 2단지 공사가 한창이고 이곳은 아파트 3개 동을 하나의 거대한 태양광 전지판으로 잇도록 설계돼 있다. 한국 기업과 중국 기업이 합작한 지에스이피에스(GS-EPS) 바이오매스발전소 양춘열 부장은 “1년 전 한국에서 더저우에 처음 왔을 때 태양광 가로등이나 아파트마다 지붕에 한가득 있는 태양열 설비가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인근 태양광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력을 쓰는 공장들은 전기요금 부담을 덜었다. 원목가구 공장에서 일하는 중국동포 리저우싱(22)은 “한국 돈으로 한달 전기요금이 1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70만~80만원으로 30%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 비가 잦아지는 더저우 국제신재생에너지기구(IRENA) 자료를 보면, 더저우의 일조량은 하루 7.3시간에 이른다. 이는 서울의 최근 30년치 일조량 평년값 6.5시간보다 1시간 가까이 많다. 하지만 최근 3~4년 사이 강수량이 부쩍 늘고 있다. 2011년 522㎜였던 더저우 강수량은 지난해 606㎜로 16%나 늘었다. 더저우대에서 2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다 올해 2월 귀국한 이종현(26)씨는 “더저우에 간 첫해에는 우산이 거의 필요 없을 만큼 비가 내리는 날이 없었다. 지난해에는 비 오는 날이 늘어나고 양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최근 겨울철 기온이 예년보다 영하 10도 가까이 더 떨어지는 혹한이 닥치는가 하면 올해 4월엔 폭설이 내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태양광발전에 100% 의존하는 신호등·가로등이 지난 7월 작동을 멈춘 적도 있다. 2013년 가을, 기후변화가 빨라져 일조량이 줄어들면 태양광·태양열 시설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는 더저우 주민들이 늘고 있다. <끝>
더저우/글·사진 전진식 기자 [email protected]
태양광에너지산업 해마다 30%씩 성장
8조8900억 투자해 19조1700억 수입
‘태양광 도시’ 어떻게 달라졌나
중국은 석탄을 발전의 주재료로 삼은 탓에 대기오염이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단기간에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 석탄에 의존했지만 더는 친환경·신재생에너지를 모른 척할 수 없는 처지다. 이 때문에 중국은 현재 1%에 머물고 있는 태양광발전 비중을 2030년에는 8%까지 끌어올릴 참이다.
더저우시가 태양에너지에 본격적으로 주목한 것은 2005년부터다. 시내 동쪽에 경제개발구를 만들어 관련 기업들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현재 기업 127곳이 한해 30억달러 넘는 매출액을 올리고 있다.
올해 초 국제신재생에너지기구(IRENA)가 더저우의 태양에너지 개발 사례를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2005~2010년 더저우 태양에너지 산업의 성장률은 해마다 30%씩 치솟았다. 2008년부터는 고층건물의 경우 반드시 태양광·태양열 설비를 벽 등에 설치하도록 했고 12층 이하 건물은 지붕에 만들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더저우시는 2010년 9월 제4차 세계 솔라시티 총회를 열기도 했다. 더저우시가 지난 9월 낸 투자 자료는 “2013년까지 관련 산업 투자액이 모두 510억위안(8조8900억원), 판매 수입은 1100억위안(19조1700억원)을 넘는다”고 소개했다.
국제신재생에너지기구 보고서는 더저우 사례를 바탕으로 태양광발전 확대를 위해 △정부뿐 아니라 민간 연구소와 학계, 도시계획 전문가 등이 모인 협업 체계 형성 △지역 고유의 자원을 활용한 적절한 시설·제도 마련 등을 제안했다.
전진식 기자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609047.html